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2화
제18장. 체육대회(4)
축구와 농구의 결승 진출.
제1포대에겐 참으로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점수 배점이 가장 큰 종목 중 하나인 축구에서 결승 진출을 하지 않았는가.
이대로라면 우승은 그렇다 치더라도 꼴찌 탈출할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나게 된 셈이었다.
그 덕분에 제1포대 포대장은 점심을 먹으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얘들아!”
“네!”
일부러 병사 식당까지 찾아와 이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포대장. 그가 얼마만큼 이 체육대회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에 1시간가량 휴식을 취한 병사들. 다시 연병장으로 모여서 남은 종목들을 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알파 포대, 브라보 포대. 줄다리기 시작할 예정이니 연병장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줄다리기 1차전 상대는 바로 알파 포대의 라이벌, 브라보 포대.
전도혁을 비롯해 8명의 병사와 2명의 간부가 제1포대 진영에 우뚝 섰다.
매번 경기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관람을 해오던 필두도 이들과 같이 행동했다.
필두의 등장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고정현 상사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필두.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텐데 괜히 애들 힘 뺄 것도 없이 그냥 기권하는 게 좋지 않겠어?”
“오늘 아침에 보신탕이라도 먹었나. 입에서 개소리가 절로 나오는군.”
“뭐, 뭐어?”
“너처럼 그렇게 일찌감치 승패를 예상하는 사람들은 항상 뒤통수를 맞곤 하더군. 조심해라. 그러다가 1차전에서 크게 발릴지도 모르니까.”
“…….”
행군 때에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지금의 필두는 고정현이 예전에 가지고 놀던 그런 초식형 남자가 아니었다.
눈에 살기가 가득 어린 상남자. 그게 지금의 강필두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장이었다.
행보관들의 치열한 기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심판을 맡은 부사관이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줄 잡고 대기. 당기지는 말고.”
“예.”
가장 뒤쪽에 위치한 전도혁이 심호흡을 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필두가 보고 있는데 줄다리기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감도 안 잡혔다.
A급 병사가 되어라! 그게 필두가 내린 특별 명령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체육대회에서 맹활약을 보여야 했다.
‘오랜만에 힘 좀 써볼까!’
도혁의 팔 근육이 불끈 샘솟기 시작했다.
사회에 있을 때에도 주기적인 운동으로 몸을 단련했던 그다. 제1포대의 힘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전도혁의 눈에 투기가 샘솟았다.
“준비!”
심판의 말에 따라 병사들의 자세를 잡았다.
머지않아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삐익!
“영차! 영차! 영차!”
“드러누워!”
“으갸갸갸갹!”
수컷들의 신음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제2포대는 지난 3년 동안 줄다리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최강의 포대다. 이들을 상대로 팽팽하게 버티고 있는 제1포대의 모습에 고정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대체 뭐냐, 저 녀석들!’
약골 중에서도 약골이라 불리던 알파 포대. 그러나 이들은 달라졌다.
드리무어가 이 부대 행보관이 되고 난 이후 그는 약골인 제1포대를 바꾸기 위해 주기적인 체력 운동을 권장…… 아니, 강압했다.
그 덕분에 국민 약골이라 불리던 조연도조차도 40㎞가 넘는 야간 행군을 무리 없이 완주했다.
필두의 체력 향상 정책이 암암리에 제1포대의 수준을 확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고정현으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건 줄다리기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제2포대 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새끼들, 뭘 먹었길래 이리 힘이 세?’
‘우리가 아는 그 알파 포대 맞아?’
하나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끄, 끌려간다……!’
‘이럴 수가!’
모두가 예상했던 그림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알파 포대가 브라보 포대를 질질 끌어오다시피 했다!
“이, 이게 말이 되나……?”
고정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쐐기를 박듯 전도혁의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브라보 포대의 진영이 우르르 무너졌다.
“으아아아앗!”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도혁. 앞에서 줄을 당기던 브라보 포대 병사 한두 명이 고꾸라지자, 뒤에 있던 병사들 역시 순차적으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삐빅!
“제1포대 승리!”
“우와아아아!”
심판이 알파 포대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자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를 내질렀다.
믿기지 않는 승리였다!
당사자들조차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이 체육대회 최강자, 브라보 포대를 꺾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자리를 바꿔 한 번 더.
3전 2선승제였기에 여기서도 브라보 포대가 패배하게 된다면 제2포대는 1차전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쫄지 마라! 상대는 고작해야 알파 포대다! 체육대회 만년 꼴찌 팀이라고!”
고정현이 더더욱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사기가 오른다든지 하는 효과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브라보 포대 병사들은 어벙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상대 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해 보였다.
반면, 알파 포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된다! 아자 아자 아자!”
“제1포대 파이팅!”
서로 격려하며 파이팅 구호를 외쳤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줄다리기 싸움.
애초에 힘 대결은 서로 비등비등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쪽은 명백히 기세가 누그러들었고 다른 한쪽은 맹렬하게 샘솟고 있었다.
‘볼 필요도 없군.’
팔짱을 낀 채 여유롭게 줄다리기를 관람하던 필두의 생각이었다.
두 번째 경기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줄을 당기기 시작하는 20명의 장정.
그러나 줄은 제1포대에게로 향했다.
그것도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 잠깐…….”
“우와앗?”
앗차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진영이 무너진 제2포대.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제1포대의 압도적인 승리가 이어졌다.
“제1포대, 2점 선취로 최종 승리!”
“이겼다, 이겼어!”
“하하, 꼴좋구나!”
제1포대는 자화자찬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그간 필두 밑에서 온갖 고생을 다했으니까.
그래도 그 성과가 체육대회를 통해 나타나게 되었으니 헛고생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강력한 우승후보, 제2포대를 1차전에서 떨어뜨린 제1포대의 기세는 다음 펼쳐질 족구 경기에도 쭉 이어졌다.
* * *
“제1포대, 승리!”
“아싸!”
제1포대 선수들이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족구 1차전 상대도 줄다리기 때와 마찬가지로 제2포대였다.
처음에는 제2포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제1포대 선수들. 그러나 줄다리기에서 전해진 승전보를 통해 그 두려움이 어느 정도 극복된 마음가짐으로 족구 시합에 임했다.
그 덕분일까. 족구에서도 제2포대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해버렸다.
1차전, 제2포대 탈락!
제1포대는 승자로서 결승전에 직행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제1포대 따위한테 우리가 져?”
“…….”
“…….”
한창 성을 내는 고정현 상사 덕분에 병사들은 그저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필두가 나타나 만류하는 듯한 발언을 들려줬다.
“네 부하들도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고작해야 경기 졌다고 그렇게 화를 내면 쓰나. 그럴 때일수록 기운차리라고 격려해 주는 게 간부잖아.”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마라, 강필두. 이건 우리 포대 일이니까!”
“후후, 어련할까. 아무튼, 남은 축구도 기대하고 있으마.”
축구 결승은 제1포대와 제2포대로 결정되었다.
여기서마저 지게 되면 제2포대는 우승권에서 멀어지게 된다.
“제길!”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밑에 있다고 생각했던 제1포대와 강필두가 어느 순간 그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으니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게다가 행군 때, 본의 아니게 필두에게 빚까지 지게 되었다. 고마움보다는 필두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감정이 치욕으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에 이번 체육대회에서 멋지게 설욕을 하려 했으나…….
흐름은 고정현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 * *
축구 결승전에 앞서 먼저 진행된 농구 결승전와 족구 결승전.
정성태가 맹활약을 펼쳐봤지만, 필두가 예상했던 대로 농구 1등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그래도 2등이라는 성적을 거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족구는 제1포대의 의외의 선전과 더불어 운까지 따라준 덕분에 1등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농구와 족구에서 각각 50점, 70점을 획득한 제1포대.
뒤이어 진행된 줄다리기 결승전은 제1포대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1등을 가져갔다.
이로써 50점을 더 추가하며 170점으로 단독 선두를 기록했다.
“1등이 알파라고?”
“와, 기적이다, 기적이야.”
“내 군 생활 하면서 알파 포대가 1등을 달리는 건 처음 보네.”
병사들도, 간부들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신기한 현상에 각각의 목소리를 냈다.
병사와 간부들이 활약한 점도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린 필두의 공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하나 필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등을 지키는 일만 남은 건가.’
축구와 이어달리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200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점수를 얻는다.
그렇게 되면 제1포대는 범접할 수 없는 부동의 1등을 차지하게 된다.
축구 결승을 위해 연병장에 들어서는 제1포대와 제2포대.
포대가 4개밖에 없기에 비슷한 매치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했다.
축구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4번 이상 맞붙게 된 제1포대와 제2포대.
“이러다가 서로 정 들겠다, 정 들겠어.”
소진언이 골대 앞에서 가볍게 몸을 풀며 농담조로 말했다.
진수 역시 나름의 몸풀기 방식으로 경기 준비에 임했다.
‘제2포대라. 3년 동안 축구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좀 나으려나.’
진수가 원하는 건 우승이 아니었다.
좀 더 강한 상대. 그것을 원했다.
물론 우승도 하면 좋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대 소속감이라는 게 형성되지 않았기에 개인적인 목표가 더 우선되었다.
몸을 푸는 와중에 상대 팀을 지그시 응시하기 시작하는 진수.
전력 탐색의 일환이었다.
서로 가볍게 공을 주고받으며 화려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제2포대.
상대팀인 제1포대의 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하는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진수의 눈에는 이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재롱 잔치하는 건가. 너무 느려서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인데.’
오죽하면 1차전에서 맞붙었던 제3포대보다도 더 못해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진수의 기준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꽝인가.’
강한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심판이 선수들을 센터로 집합시켰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 서로 인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일렬로 나란히 마주 선 선수들이 서로 거수경례 후 악수를 주고받았다.
그 뒤.
삐이익!
심판의 신호와 함께 두 포대의 자존심을 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