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71화 (71/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1화

제18장. 체육대회(3)

주말이 끝나고 드디어 체육대회의 날이 밝았다.

포대전술훈련에 행군까지. 훈련의 나날을 보내왔던 제1포대 인원들은 오랜만에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찾아온 덕분에 마음의 안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승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다가왔다.

사열대 앞에 마주 선 포대장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체육대회라고 그저 노는 행사로만 생각하지 마라! 이건 포대 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어떻게 해서든 우승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알파 포대, 파이팅!”

“파이팅!”

포대장의 선창이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포대 간의 기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병사들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제1포대는 근래 열린 체육대회에서 연속으로 꼴찌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사슬을 끊어낼 필요가 있었다.

“가자!”

포대장과 병사들이 대대 연병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체육복과 운동화를 챙긴 필두 역시 남은 부사관들과 같이 내려갈 채비를 갖췄다.

“준비 다 끝났냐.”

“예, 행보관님.”

“그럼 우리도 내려가자. 여섯포반장, 남은 애들 통제 잘하고.”

“네!”

당직사관을 맡게 된 여섯포반장은 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처지였다.

부사관들을 이끌고 대대 연병장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필두에게 다가왔다.

“저번 행군 때도 그렇더니만, 오늘도 늦게 내려오는구먼.”

제2포대 행보관, 고정현이었다.

필두의 활약상에 가장 배 아파하는 인물 중 한 명이며 그를 매우 아니꼽게 보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런 고정현의 태클이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였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좀 늦었다.”

“준비? 네가 할 게 뭐가 있다고. 기껏해야 벤치에 앉아서 구경하는 것 말고 더 있냐.”

“몰랐나. 나, 이어달리기 나갈 예정이다.”

“……뭣?”

정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행보관들은 대게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육대회는 직접 참가하지 않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필두는 본인이 이어달리기에 나간다고 했다.

“정신이 나갔나 보구먼. 쯧쯧, 괜히 애들한테 피해 주지 말고 지금이라도 그 생각, 물려라. 안 그랬다가 이어달리기에서 꼴찌 할라.”

“네가 걱정 안 해도 된다. 포대 일은 우리 포대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라.”

“…….”

필두의 고집은 웬만해선 꺾을 수 없었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태도였다.

제1포대쪽 자리로 향하는 필두와 부사관들. 그들의 뒷모습을 한동안 응시하던 고정현이 혀를 찼다.

“쯧쯧쯧,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 * *

4개의 포대 중 유일하게 행보관이 직접 체육대회 종목에 참가한 포대는 제1포대밖에 없었다.

이런 점 때문일까. 타 포대 간부들이 제1포대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러나 제1포대 간부, 병사들은 필두가 이어달리기에 참가한다는 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병사들보다 체력이 더 좋은 남자가 바로 강필두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필두가 담담하게 체육대회 순서가 적힌 종이를 응시했다.

‘오전에는 농구, 축구 1차전. 그리고 오후에는 2차전하고 나머지 종목들을 다 하는군.’

꽤 빠듯한 일정이었다.

그래도 4개 포대밖에 없는 터라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하면 하루 안에 다 소화할 수 있긴 했다.

게다가 한 종목씩 차례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었다. 축구와 농구, 족구가 동시에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시간 단축도 꽤 되었다.

‘이어달리기는 맨 마지막인가.’

자신의 차례를 숙지하는 동안,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익숙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일더, 황진수였다.

“…….”

말은 하지 못했지만, 눈빛만으로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유추 가능했다.

왜 내 이름을 축구 명단에 올렸는가.

필두는 여태껏 그에 대한 해명을 들려준 적이 없었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기고 싶어서.

그래서 구태여 마일더에게 그 목적을 들려줄 필요까진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포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축구 인원들 모여라! 곧 시합 시작할 거다!”

“예!”

“바로 가겠습니다!”

축구 멤버들을 소집한 포대장이 병사들을 끌고 연병장으로 향했다.

‘축구 쪽은 볼 것도 없겠군.’

마일더가 있으니 축구는 지려야 질 수가 없을 터였다.

‘농구 쪽을 보러 갈까.’

축구와 농구, 두 종목 다 첫 번째 경기에 배치되어 있었다.

농구장 쪽으로 향하는 필두. 행보관의 등장에 제1포대를 포함해 타 부대 병사들도 그에게 일제히 거수경례했다. 심판을 맡은 제3포대 하나포반장도 마찬가지였다.

“충성!”

“충성. 경기 시작은 아직 안 했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5분 뒤에 바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자리를 잡자, 하나포반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들었습니다만…… 이어달리기에 참가하신다고 하시던데, 정말입니까?”

“소문이 금세 퍼졌나 보군.”

필두의 이어달리기 참가가 그렇게나 충격적인 모양인 것 같았다.

“아무쪼록 너무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큰 사고도 당하셨으니 최대한 몸조리를 하셔야…….”

“사고난 지 꽤 됐으니 괜찮다. 어서 경기 준비나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이쯤 되면 귀찮아질 정도였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 답답함.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다.

* * *

삐빅!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작된 농구 시합.

알파포대 VS 본부포대.

제1포대를 제외하고 그나마 최약체로 분류되는 포대가 있다면 바로 본부포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약체끼리의 대결.

‘대진 운이 좋았군.’

필두가 남몰래 이런 생각을 삼켰다.

만약 첫 번째에서 브라보포대나 찰리포대와 붙었다면, 제1포대는 얄짤없이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 것이다.

필두가 나름 최상의 멤버를 골라 농구 주전 멤버를 짜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의 실력은 제2포대나 제3포대에 뒤처지고 있었다.

현재 출전한 제1포대 농구 멤버들은 최강이 아닌 최선의 멤버들이다.

최대한 성과를 낼 수 있을 만큼 내준다면 다른 포대원들에게 덜 부담이 될 것이다.

‘2등만 해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행보관이 지켜보고 있는 덕분일까. 제1포대의 실력이 연습할 때보다 더 잘 발휘되는 듯했다.

“성태야!”

공을 건네받은 정성태.

절호의 기회다!

앞으로 달려든 병사 한 명을 제치고 골망 밑까지 치고 들어간 성태가 곧장 레이업 자세를 취했다.

퉁!

링을 맞고 살짝 위로 튀어 오르나 싶더니 이내 골망을 갈랐다.

성태의 빠른 속공으로 순식간에 2점을 취득한 제1포대.

“나이스였다, 성태야!”

이들이 원하는 플레이가 계속 이어졌다.

29 대 15.

점수는 제1포대가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었다.

흐름을 탔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제아무리 제1포대가 약팀이라 하더라도 본부포대 역시 같은 약팀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건 기세다.

초반부터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는 제1포대. 이 유리함을 끝까지 이끌고 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더더욱 높은 기량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러나 흐름이 한번 끊기는 때가 있었다.

“으랴아아아압!”

상대편 선수 중 한 명이 엄청난 기합과 함께 그대로 덩크를 선보였다.

쿠우웅!

골대가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병사가 그대로 덩크를 성공하니, 본부포대의 사기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세에 눌려 35대 35, 동점까지 따라잡혔다.

그때, 필두가 나섰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결국, 비슷비슷한 팀들끼리 대결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멘탈 잡으면서 해! 겁먹을 필요 없다!”

날카로운 필두의 지적이 이어졌다.

그의 말대로였다. 초반까지는 제1포대가 앞서지 않았는가.

실력 차이는 없다. 결국 기세 싸움이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서자 제1포대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좋아! 작년의 설욕을 갚아주자!”

“준비됐습니다!”

“리바운드는 제가 다 하겠습니다! 맡겨주세요!”

간부가 시합에 관심을 가지고 안 가지고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게 났다.

정신을 차린 제1포대 농구 멤버들.

남은 모든 힘을 쏟아낸 결과.

“시합 종료! 59 대 58로 알파 포대, 승리!”

“앗싸!”

“해냈다, 해냈어!”

1점 차이였다. 한 끗 차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한 승리였으나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값졌다.

어렵사리 승리를 따낸 제1포대. 그러나 필두는 이미 알아차렸다.

‘결승전 때에는 힘들겠군.’

본부포대도 겨우 이겼는데 이보다 한층 더 높은 기량을 지니고 있는 제2포대, 제3포대를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크게 상관없었다. 2등을 확정 지은 것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제 역할을 다한 셈이었으니까.

‘어디 보자. 축구는 어떻게 되고 있으려나.’

한창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곳으로 향한 필두.

가자마자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바로 점수 현황이었다.

후반전 종료까지 앞으로 대략 5분 정도 남은 상황.

추가 시간까지 합한다 하더라도 10분 이내엔 시합이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점수 차이는 꽤 심각했다.

12 대 1.

놀랍게도 제1포대가 12점이었다.

“말도 안 돼! 알파 포대한테 우리가 떡실신이라고?”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제1포대를 상대하는 제3포대 인원들이 허벅지와 볼을 꼬집으며 꿈인지 현실인지를 판가름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것은 현실이었다.

점수 현황판을 응시하던 필두가 속으로 피식 웃음을 삼켰다.

‘마일더 녀석. 봐주면서 했군.’

12골 중 11골을 진수가 기록했다. 그럼에도 필두는 진수가 봐주면서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수가 제대로 마음먹고 경기에 임했다면 11점 차이가 아니라 20점, 30점 차이가 났을 것이다.

농구 스코어가 아니었다. 축구다.

그만큼 실력 차이가 월등했다.

시합 종료까지 2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도 또 하나 추가골을 더했다.

“13대 1!”

이번에도 진수의 골이었다.

혼자서 12골을 넣은 진수. 그러나 그의 표정은 뭐랄까. 그리 기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감에 가득 찼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필두는 그가 어떤 심경인지 공감할 수 있었다.

레디너스 시절이었더라면 진수가 혼자서 이렇게 무쌍을 찍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쪽에도 진수 못지않은 실력자들이 드문드문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곳에선 진수를 막아설 자가 없었다.

오로지 강필두, 단 한 명뿐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이 두 남자 다 제1포대 소속이었다.

추가골 하나를 더 터뜨리며 결국 14 대 1로 최종 마무리를 지은 제1포대 VS 제3포대 경기.

알파 포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진짜 잘했다, 진수야!”

“이 녀석, 오늘 인생 경기하는데?”

진수를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진수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닙니다.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일을 했어, 짜식아!”

“다음 경기도 이렇게만 해다오!”

진수에게 거는 기대감이 더더욱 상승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필두가 묘한 웃음을 흘렸다.

체육대회 역시 필두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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