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60화 (6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60화

제15장. 야간 행군(3)

모든 부대가 병사들을 정렬시켰을 때, 포대장 중에서 가장 짬이 높은 제2포대 브라보 포대장이 선두에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내자 브라보 포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부대 차렷!”

우렁차게 퍼져가는 목소리.

각 잡힌 뒤로 돌아 모션을 취한 브라보 포대장이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충! 성!”

그의 경례를 받아준 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병사들을 쭉 훑었다.

하나같이 전부 다 늠름한 표정들이었다.

하기야. 사전에 사단장이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긴장될까.

9090대대 병력들을 향해 대대장이 오늘 훈련에 임하는 포부를 밝혔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그리고 부상자 없이! 모두 무사히 행군을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 있나!”

“예!”

“좋아! 바로 행군 시작하도록.”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말은 짧고 굵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대대장으로선 그저 병사들이 무사히 이번 행군을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행군 순서는 본부포대를 시작으로 제1포대, 제2포대, 그리고 제3포대 순서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4㎞ 구간 때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지고, 그때마다 행군 순서를 바꿔갈 예정이었다.

가장 늦게 오는 제3포대에게 계속적으로 많은 부담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앞서 걸어가는 본부포대 뒤를 제1포대가 바짝 따르기 시작했다.

“알파 포대, 파이팅!”

“파이티이잉!”

우렁찬 함성이 앞에서부터 시작되어 뒤까지 전달되었다.

제1포대 뒤를 따르기 위해 움직이던 제2포대 역시 질 수 없다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브라보 포대, 아자아자아자!”

“아자아자아자!”

구호 외치기도 기합 싸움이었다. 같은 대대이면서도 포대끼리의 기 싸움도 엄연히 존재한다.

9090대대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어느 포대가 대대장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애정을 받느냐. 그 싸움이었다.

아직까지는 제1포대가 많이 앞서가고 있었다. 이것이 다 강필두의 활약 덕분이었다.

고정현은 그게 상당히 아니꼽게 보였다.

단독군장을 착용한 채 한 손에는 경광봉을 들고서 병사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다른 행보관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차림이었다.

그러나 행보관 중에서 유일하게 강필두만이 완전군장을 착용한 채 병사들을 이끌었다.

이제 막 병사들이 하나둘씩 위병소를 통과하기 시작할 무렵, 대대장이 필두에게 다가와 안위를 살폈다.

“괜찮습니까? 행보관님.”

“예. 거뜬합니다.”

필두에겐 그렇게까지 무거운 짐도 아니었다.

평소에도 헬스라든지 운동 같은 걸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체력은 20대 병사보다 월등히 높았다.

게다가 여차하면 마법도 사용할 수 있으니, 걱정이 든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을 대대장이 알 리가 없었다.

“무리하진 마세요. 몸 좀 안 좋다 싶으면 군장은 바로 앰뷸런스 차량에 싣는 쪽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예.”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대대장이 필두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자, 제2포대 포대장과 고정현의 눈빛에 아니꼬움이라는 감정이 담기기 시작했다.

“포대장님. 제1포대한테 만큼은 지지 말도록 합시다.”

“물론입니다!”

서로 그렇게 의기투합하는 두 사람.

반면, 뒤에서 자신들의 포대장과 행보관이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경청하던 제2포대 병사들의 입에선 무거운 한숨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간부가 의욕을 보일 때마다 고통받는 건 병사들의 몫이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 * *

9090대대 앞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은 병력들.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라곤 하지만, 차가 왔다 갔다 하는 길인만큼 최대한 신경을 써야 했다.

괜히 지나가는 차에 불의의 사고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각각 좌우로 떨어져서 행군 이어간다. 양쪽으로 퍼져!”

간부들이 2열로 행렬하던 병력들을 두 갈래로 나누기 시작했다.

몇몇 간부들은 경광봉을 들고 차량을 유도시키는 역할을 자처했다.

폭이 넓은 도로가 아니었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민간 차량들을 유도해야 했다.

일가족들이 탄 차량 한 대가 행렬을 통과할 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신기한 눈동자로 이들을 바라봤다.

“아빠! 군인들이야, 군인들!”

마치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동물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똑같은 신세가 될 거다.’

‘그날을 기대하라고, 꼬맹아.’

차마 입으로 내뱉을 수 없는 사악한(?) 사념들이 가득 맴돌았다.

그렇게 도로 구간을 통과해 논두렁 입구 쪽으로 접어드는 순간, 대대장이 타고 있는 레토나가 어느 공터 안으로 선두 행렬을 인도했다.

레토나를 따라 공터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병력들. 오와 열을 맞춰 병사들을 정렬시킨 간부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부터 10분간 휴식한다. 군장 내려놓고 탈모하도록!”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단 말인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마냥 바로 방탄모와 군장을 벗었다.

그것만으로도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군장을 내려놓은 필두가 앉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병사 중 일부에게 지시했다.

“분대장들은 부상자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고 보고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부상자의 여부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훈련 중에 발생하는 부상은 무조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결코 이득이 될 일은 없었다.

게다가 사단장이 온다는 점 때문에 병사들의 부상 여부에 더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웃차.”

쉴 틈도 없이 곧장 군화를 신고 일어선 김조항.

분대장이라는 이름의 푸른 견장은 이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인물은 조연도였다.

“연도야, 할 만하냐.”

“이병 조연도! 충분히 할 만합니다!”

아직은 목소리에 활력이 묻어 나왔다.

하긴, 이제 막 행군을 시작하고 나서 첫 휴식을 맞이했을 뿐이었다. 거리로 따진다면 4㎞ 정도 걸은 셈이었으니, 지금까지는 그래도 큰 무리는 없을 거로 예상되었다.

조연도뿐만 아니라 전도혁을 비롯해 정성태 등 후임급들의 안위를 살핀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행보에 소진언이 짧게 태클을 걸어왔다.

“야, 조항아. 난 안 묻냐?”

“무엇을 말입니까?”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소진언 병장님은 너무 건강해 보이셔서 탈이지 말입니다.”

“앗! 갑자기 발목에 통증이! 조항아. 미안하다. 나는 여기까지인 거 같다.”

“…….”

어설픈 연기를 선보이는 소진언 병장이었으나, 불행하게도 때마침 하나포가 모인 곳을 딱 지나치던 강필두에게 걸리고 말았다.

“내가 보기엔 발목이 아픈 게 아니라 양심 쪽이 병든 거 같은데.”

필두의 섬뜩한 말 때문일까. 순간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설사 진짜로 아프더라도 내가 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행군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강필두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그게 현실 가능하다는 걸 잘 알기에 더 많은 공포심을 선사했다.

“그럼 하나포는 부상자 없음인가.”

“예, 그렇습니다.”

“알았다.”

하나포를 비롯해 전포와 비전포를 전부 한 바퀴 순회공연을 한 강필두가 포대장에게 다가갔다.

“아직 특이사항은 없는 거 같군요.”

“그렇습니까. 그보다 행보관님은 안 피곤하십니까? 전혀 쉬질 않으시던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평소 하던 운동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약과라니, 도대체 얼마나 운동을 하시길래…….”

“그보다 이제 곧 해가 떨어질 터이니, 행군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듯합니다.”

“그, 그래야지요.”

해가 떨어지면, 본격적으로 야간행군이 시작된다.

어둠과 추위, 그리고 졸음과의 싸움. 그것이 야간행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현재 시각은 저녁 7시 15분을 막 넘어서고 있었다. 아직까진 춥다거나 졸리다거나 하는 것을 운운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둠이 짙게 깔리고, 행군이 장시간 계속되면 피로함이 졸음과 추위로 바뀌어 병사들을 엄습할 것이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필두가 병사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쉴 때마다 전투화를 벗어 발을 말리는 데에 주력해라. 작은 물집이라도 생기는 순간, 발에 엄청난 고통이 가해질 거다. 자신이 평소에 물집이 자주 나는 타입이라고 한다면 반창고 같은 걸로 물집이 자주 나는 부위에 붙여둬라. 알겠나.”

“예!”

“물집에 주의해라. 그것이 너희가 신경 써야 할 1차 과제다.”

필두도 드리무어 시절 당시, 장기간 동안 여행을 다닐 때 물집과의 전쟁을 자주 치렀다.

물론 그곳에선 치유 마법으로 물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일반 병사.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사후 대처보다 사전 대비에 좀 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제1포대뿐만 아니라 다른 포대 역시 아직까지는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휴식 끝!”

“이동 준비한다!”

그렇게 첫 번째 휴식 구간이 끝나고 행군은 다시 시작되었다.

* * *

저녁 7시 반이 넘어서자 해는 완전히 흔적을 감추게 되었다.

하늘 위에 밝은 달이 떠올랐지만, 달빛이 햇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이제부터는 어둠과의 싸움이었다.

‘라이트 마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

필두가 아쉬운 속내를 남몰래 삼켰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 근방 일대는 전부 다 빛으로 물들일 자신이 있었다.

비록 본업은 흑마법사이긴 하지만, 단순한 발현 마법 정도는 가능했다.

능력이 되지만 그 능력을 펼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갑갑함도 만만치 않았다.

한편, 행군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난코스 중 하나라 불리는 산행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 대열, 가운데로 밀착한다. 밀착!”

“밀착!”

간부들의 말을 복명복창하며 이동을 개시했다.

산길이라 그런지 폭이 그리 넓진 않았다.

게다가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구간도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본래는 이곳에 빙판길이 있었지만, 몰래 사전답사한 필두가 전부 다 소멸시켰다. 그 덕분에 병사들의 산행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앞서 걸어가던 포대장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오른쪽 조심해라. 잘못하다가 굴러떨어지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병사들은 팔팔한 기운을 뽐내고 있었다.

산행이라 하더라도 아직 시간이 채 9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큰 문제 없겠군.’

필두도 안심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

“……?”

수풀 깊은 곳 중심에 마나의 흐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모여든 마나 덩어리.

이윽고 그 덩어리들이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마나의 흐름이 준 여파 때문일까.

산 중심에서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다.

“허리 숙여라! 지금 당장!”

필두의 다급한 명령이 이어졌지만, 이미 강풍은 병사들을 급습했다.

“앗……!”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강풍에 떠밀린 병사 3명이 낭떠러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젠장!”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은 필두.

결국 스스로 봉인했던 마법이란 이름의 힘을 강제로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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