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55화 (55/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55화

제14장. 마성의 남자(2)

1생활관은 2생활관에 비해 머무르는 인원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화장실과 샤워실 규모 역시 2생활관에 비해 컸다.

제1포대 내에서도 가장 큰 샤워실이 바로 1생활관 샤워실이었다. 그 큰 샤워실에 오로지 고명전 병장, 단 한 명뿐이었으니 휑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상하단 말이야. 왜 아무도 안 오지?”

매번 자신이 샤워할 때마다 유독 샤워실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고명전을 제외한 모든 병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고명전의 취향 때문이었다.

괜히 샤워하러 갔다가 비누라도 줍는 경우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대미지를 입겠는가.

이러한 불상사를 피하고자 병사들은 일부러 고명전과의 샤워를 피해왔다.

하나 오늘은 좀 달랐다.

끼릭!

낡은 샤워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고명전의 시선이 절로 입구 쪽을 향했다.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세 명의 남자. 류태만과 한지철, 그리고 나전구였다. 문제가 있다면, 전부 다 2생활관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응? 너희가 여긴 무슨 일이냐?”

고명전이 곧장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순간 움찔한 류태만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 그냥…… 2생활관 샤워실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흠, 그래?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마침 잘 됐다. 혼자 샤워하기 심심했던 찰나에 전우들이 왔으니, 고명전의 입장에선 오히려 땡큐였다.

어차피 제1포대 내에선 1생활관에서 생활하는 인원은 반드시 1생활관 전용 시설을 써야 한다는 규율 같은 건 없었다. 2생활관 멤버가 와서 1생활관 화장실을 사용해도 좋고, 샤워를 해도 무방했다.

문제 될 건 없었기에 이들의 방문에 대해 태클까지 걸 필요도 없었다.

“…….”

입을 꾹 다문 채 샤워실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는 류태만과 한지철, 그리고 나전구.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다 알몸 상태였다.

그 모습을 예의주시하던 고명전이 대뜸 손으로 류태만의 엉덩이를 가볍게 툭! 쳐보였다.

“오늘따라 엉덩이가 탱탱하네.”

“이 게이 새…… 어흠! 그, 그러냐…… 하, 하하하!”

고명전과 류태만은 동기였다. 그러나 동기라고 항상 친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고명전이 성적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류태만은 알게 모르게 그와 거리를 뒀다.

괜히 자신도 사냥(?)을 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아직은 나름 정조를 잘 지키고 있었지만…… 글쎄. 이번에도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한편, 샤워실로 진입하자마자 류태만의 엉덩이를 탐내는 고명전의 시선에 한지철과 나전구가 몸서리를 쳤다.

본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직접 당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소름이 끼칠까. 그런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필두에게 이미 약점이 잡힌 마당에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도 보이지 않았다.

영창을 가느니 그냥 짧은 시간 내에 정신적 고통을 받고 끝나는 게 더 이득 아니겠는가.

류태만에게만 집중되었던 눈길을 거둔 뒤, 다른 두 사람에게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요, 귀여운 녀석들! 오랜만에 선임이랑 목욕하니까 좋지!”

“그, 그렇습니다!”

“매우 매우 좋습니다!”

물론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과 본심은 정반대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샤워실 환풍구 너머로 보이는 필두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닭살이 돋을 정도였다.

이들이 필두가 내린 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몰래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감시도 감시지만, 고명전 관련 문제의 실상을 직접 두 눈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도 컸다.

그 희생양이 스마트폰 사건 3인방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고명전의 입가에 짙고 짙은 미소가 새겨졌다.

“좋다, 기분이다! 오랜만에 우리 후임들, 잔뜩 귀여워해 주마!”

“제, 제발 그것만은……!”

“괘, 괜찮습니다, 고명전 병장님!”

“어허! 거절 안 해도 된다. 자자, 태만아. 너도 일로 와라. 서로 뜨거운 전우애 한번 느껴보자고!”

“으아아악!”

의미심장한 비명이 1생활관 샤워실을 가득 채워갔다.

* * *

집으로 돌아온 필두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녹음된 고명전의 행각을 리플레이로 돌려보기 시작했다.

“취향 참 특이한 놈이군.”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물론 성적소수자는 레디너스 대륙에도 존재했다. 다만, 필두는 이성애자였기 때문에 이들에게 많은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제1포대 행보관이라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문제 역시 그의 손으로 해결해야 했다.

오른손을 들어 올린 뒤, 손바닥을 펼치자, 마나가 응집되며 그 위로 검은 구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구체가 점점 덩치를 키워가더니, 이내 필두의 손바닥 위를 벗어나 그의 앞에 부유했다.

서서히 구체의 형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외형을 갖추기 시작하는 검은 존재. 머지않아 검은색의 단색마저 사라지고 한 명의 인간으로 탈바꿈했다.

필두보다 키가 조금 작은 편이며, 제법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닌 미형의 존재가 알몸 상태로 필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이군요, 드리무어 님. 그보다 이곳은…….”

“이계다.”

“이계? 과연.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나름 살 만한 곳이다. 마법이 없다는 것 빼곤.”

“희한한 세계군요. 제가 여기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간단하다. 네 능력으로 인간 남성 하나만 유혹시키면 된다.”

“인간 남성…… 말입니까?”

“그래.”

“저기, 드리무어 님. 그렇다면 소환 대상을 잘못 고르신 거 아닙니까? 차라리 서큐버스를 부르심이…….”

“아니, 이번 일은 네가 해야 한다.”

“…….”

“대답은?”

검은 존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래도 소환사인 필두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좋은 대답이로군.”

고명전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두가 또 하나의 계책을 발동시켰다.

이름 하야…… 일편단심 작전.

* * *

토요일 오전. 당직 사병을 맡게 된 소진언이 늘어지게 한숨을 쉬었다.

“말년에 당직이라니. 그것도 주말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소진언 병장님. 대타 뛸 사람이 없지 말입니다.”

“문석도 녀석, 괜히 영창 같은 걸 가서 이게 무슨 고생이람. 엄한 사람만 피해 보네.”

소진언이 투덜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본래 그는 당직 로테이션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석도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사람은 소진언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가 당직근무에 투입되고 말았다.

“주말에 당직 근무 서는 것도 짜증 나는데, 하필이면…….”

소진언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행보관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재수 없게도 오늘 당직사관은 행보관, 강필두였다. 깐깐한 필두의 밑에서 당직을 서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된 지 이미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이에 필두가 행보관실 문을 열고 나와 이들을 찾았다.

“당직.”

“병장 소진언!”

“상병 권준성!”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군기 바짝 잡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그들에게 필두가 이질적인 말을 들려줬다.

“오늘 나한테 손님이 한 명 올 테니까 위병소에서 연락 오면 바로 보고해라.”

“손님 말씀이십니까?”

“혹시 목사님 따님이십니까?”

필두의 손님이라고 하니 병사들의 머릿속에선 가장 먼저 민혜정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러자 필두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괜한 소리 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살기만으로도 두 병사를 단숨에 제압해 버릴 정도였다.

“하여튼 연락 오면 바로 나에게 알려라. 알겠냐.”

“예!”

필두가 다시 행보관실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을 때, 두 병사의 입에서 ‘살았다’라는 감정이 담긴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마치 죽을 위기를 모면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직후.

10분가량이 지났을 때 유선망이 울리기 시작했다.

“통신보안. 제1포대 병장 소진언입니다.”

-위병소 상병 안근태입니다. 알파포대 행보관님 찾아오셨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올 것이 왔다.

행보관실을 향해 바로 튀어 나간 소진언이 노크를 하며 위병소로부터 연락이 왔음을 보고했다.

“행보관님, 손님 오셨답니다.”

“고명전 찾아서 위병소로 내려보내라. 그리고 손님 데리고 다시 막사로 오라고 해.”

“고명전을…… 네, 알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고명전일까. 그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제1포대에는 몇 달 전부터 생긴 유명한 말이 하나 있었다.

행보관의 말을 의심하지 마라.

의심하면 본인만 손해다. 그것을 상기시킨 소진언이 군말 없이 고명전을 찾았다.

“명전아, 전투복 A급으로 갈아입고 위병소로 내려가라.”

“무슨 일입니까?”

“행보관님 찾아오신 손님 계시다는데, 너보고 직접 데려오라고 하시더라.”

“왜 하필 저를…….”

“글쎄, 나야 모르지.”

한창 TV 드라마를 통해 잘생긴 남자 배우들을 눈요기로 보고 있던 고명전이 아쉬움을 담은 듯 입맛을 다시며 환복 했다.

전투화를 착용한 뒤, 위병소로 내려가자 근처에 서성이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저 사람이 행보관의 손님임을 알 수 있었다.

흰색의 스키니진에 와이셔츠 차림을 갖춰 입은 사람. 단발에 예쁘장한 외모가 몸매 좋은 미인임을 나타냈다.

“충성. 행보관님 명령받고 내려온 고명전 병장이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이성준이라고 해요.”

“막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죠.”

“네, 고마워요.”

이성준. 생긴 것과 다르게 남성스러운 느낌이 많이 풍기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외형만 보면 남자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았다. 중성적인 매력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여자에 가까워 보였다.

‘여자는 관심 없다.’

오로지 남자에게만 일편단심인 고명전이었기에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물론, 다른 병사였다면 헤벌레 하며 힐긋 그녀를 쳐다보느라 바빴을 테지만 말이다.

“…….”

“…….”

막사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는 과정이었다.

중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앞으로 걷기만 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실례라는 생각이 든 모양인지 고명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혼자 오셨습니까?”

“네.”

“행보관님과는 어떤 관계 신지…….”

“제 삼촌이에요.”

“삼촌이라. 그렇군요.”

예쁜 조카를 두었거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때, 이성준의 입에서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형, 동생하며 지냈을 정도로 친해요.”

“형…… 이요?”

“네. 설마 모르셨나요?”

이성준의 안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저, 남자예요.”

“나, 남자라고요?”

“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에겐 일체 관심 없다던 고명전의 심장이 급격하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랑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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