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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54화 (54/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54화

제14장. 마성의 남자(1)

강필두가 피해자 일병들에게 약속했던 그대로 문석도 상병 조치는 이른 시일 내에 처리되었다.

포대장과의 면담 이후 군장을 싸고 바로 영창행이 되어버린 문석도 상병의 처지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 건 바로 최민복 병장이었다.

‘문석도 녀석이 설마 영창갈 줄이야……!’

속으로 많은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오늘 당직사관을 맡게 된 강필두가 완장을 차고서 저녁 점호를 시작했다.

본래는 순서상으로 1생활관, 그리고 2생활관이 각각 따로 저녁 점호를 받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전 병력은 1생활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행정반에서 들려오는 방송 내용에 병사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오늘, 통합 점호인가 보네.”

“그러게 말입니다.”

“슬리퍼, 신발 정리하고 1생활관으로 가자.”

“예!”

“매트리스 선 정리도 잊지 말고!”

오늘의 당직은 강필두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할 것투성이었다. 괜히 사소한 것 하나에 트집 잡히면, 어떤 고행이 펼쳐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이 대열에 맞춰 1생활관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모든 병사가 1생활관에 집합하자, 당직 사병이 행정반으로 넘어와 필두에게 보고했다.

“집합 끝났습니다.”

“알았다.”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당직 사병이 곧장 인원현황을 보고해 왔다.

이후 필두의 눈이 빠르게 병사들을 훑었다.

하나같이 전부 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필두를 업신여기던 이들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악마 행보관. 그것이 필두에게 새롭게 부여된 별명이었다.

“전체 주목한다. 주목!”

“주목!”

“문석도 상병이 후임들에게 지속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했다는 게 밝혀져서 오늘 오전에 영창 갔다는 소식, 이미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

“…….”

영창이라는 제법 무게감 있는 단어가 필두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생활관 내부가 긴장감으로 물들었다.

군인이라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영창 아니겠는가. 문석도 상병의 영창으로 다른 병사들에게 경각심이 생성되었다.

“조금의 내무 부조리라도 발견되는 즉시,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영창 보낼 거다. 정도가 심하다 싶으면 문석도처럼 전출까지 고려할 수 있으니, 앞으로 처신 잘해라.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목소리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최민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문석도와 공범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최민복 아니겠는가. 영창과 전출이 확정된 문석도가 간부들에게 혹여나 ‘최민복 병장도 저와 한 패입니다.’라는 말을 꺼내기라도 했더라면, 최민복 역시 긴장의 끈을 항시 붙잡고 있어야 했다.

부대 분위기가 내무 부조리로 무거워져 있을 때에는 당분간 후임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최고였다. 괜히 분위기 파악 못 해서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것처럼 내무 부조리를 저지르게 되는 순간, 군 생활이 늘어나는 마법 같은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하는 게 가장 좋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자! 그것이 최민복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오늘의 저녁 점호는 이것으로 끝내겠다.”

필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병사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은 또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에 비해 비교적 싱겁게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행정반으로 향하던 필두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잊을 뻔했군. 류태만, 한지철, 나전구. 이 세 명은 행정보급관실로 오도록. 지금 바로.”

역시 곱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이 세 명일까. 병사들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가득 찼지만, 대다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호명 당한 당사자들은 왜 필두가 이들의 이름을 거론했는지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다.

세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포대전술훈련 당시, 상황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농땡이를 피우다가 필두에게 걸렸다는 점이었다.

‘설마 행보관님께서 그것 때문에……?’

류태만을 비롯해 사건 당사자 3인방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하필이면 타이밍도 안 좋았다. 내무 부조리 사건이 터진 이후에 호명된 탓에 불안감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필두가 오라는데 안 갈 수도 없지 않은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슬리퍼를 신고 천천히 행정반으로 나아갔다.

행정반 출입문 바로 앞에 선 3인방.

가장 짬이 낮은 한지철 일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번에 그…… 스마트폰 사건 때문에 부른 거 같지 않습니까?”

“그것밖에 없지, 뭐.”

“설마 우리도 전출 보내시려는 건…….”

불안에 떠는 한지철의 혼잣말.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물론 문석도에 비해선 이들의 행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반입물품을 들여온 것 역시 잘못된 행동에 속했기에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잔뜩 불안한 감정을 이끌고 행정보급관실 안으로 들어서는 이들. 의자에 앉아 3인방의 모습을 지켜보던 필두가 슬쩍 마법을 발동시켰다.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끔 해주는 사일런스 마법이었다.

“앉도록.”

“……예.”

소파에 나란히 앉은 이들을 향해 필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 뭔지 알고 있겠지.”

“스, 스마트폰에 관해서…… 입니까?”

이 중에서도 가장 짬이 높은 류태만이 필두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자 필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한번 눈감아주는 대신에 내 명령에 충성하기로 한 거, 기억나나?”

“예, 기억납니다!”

“명령만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의 충성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하기야. 필두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곧장 포대장에게 스마트폰 관련 사실을 토로할 거로 했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필두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새겨졌다.

“너희가 움직여줘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고 있겠지만, 난 우리 포대에 존재하는 내무 부조리를 송두리째 뿌리 뽑기로 했다. 그 첫 스타트가 문석도의 전출이었지.”

잠시 말을 끊은 필두의 시선이 세 사람을 번갈아 응시했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과도 같았다. 살기마저 느껴지는 필두의 눈빛에 세 명의 병사들은 주눅들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해야 할 건 간단하다. 내 다음 타깃은 고명전. 그 녀석이 뭐로 유명한지 너희도 잘 알고 있겠지?”

“그건…….”

“…….”

“…….”

알다마다. 아니,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고명전 병장. 그는 제1포대 내에서도 ‘성추행의 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성소수자, 즉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직까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필두는 앞선 사단 검열을 위해서라도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들 앞에서 고명전 병장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궁금증이 들 무렵, 때마침 타이밍 좋게 필두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너희 세 명이 고명전을 유혹해 봐라. 그게 미션이다.”

* * *

필두에게 필요한 건 바로 내무 부조리 3대천왕들이 실제로 내무 부조리를 행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최우선 되지 않는다면, 포대장에게 이러이러한 병사가 병영생활 물을 흩뜨려놓고 있다고 말해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번거로워도 이런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고명전이 실제로 성추행하는 장면을 스마트폰 영상 촬영으로 담아낸다. 문석도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전략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이번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전도혁은 이미 문석도 사건에서 많은 활약을 선보였다.

게다가 필두가 부여한 특별 휴가까지 내정되어 있으니, 그를 재활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체스 말을 사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고된 일과가 끝난 다음. 저녁식사 시간 전에 필두가 당직 사병을 시켜 다음과 같은 방송을 내보내게끔 지시했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온수 샤워 가능하니, 샤워가 필요한 병사들은 지금 즉시 샤워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 이 시간에 온수 샤워라고? 개꿀이네!”

“소진언 병장님, 바로 샤워하러 가시지 말입니다,”

“그래, 그래. 어디 보자. 샴푸부터 미리 짜야…….”

한창 준비를 서두르는 와중이었다.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는 고명전의 모습을 보자마자 소진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비단 소진언뿐만이 아니었다. 1생활관의 모든 병사들 역시 같은 반응을 보였다.

“……야, 명전아.”

조심스럽게 그를 부르는 소진언. 그러자 고명전이 고개를 돌렸다.

“예, 소진언 병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너 말이야…… 지금 샤워하려고?”

“그렇습니다만?”

“그, 그래?”

꿀꺽!

병사들이 크게 침을 삼켰다.

제1포대에는 병사들만 알고 있는 타부(Taboo)가 있었다.

고명전 병장. 그가 샤워실로 들어갈 때 절대로 같이 샤워하지 마라. 이것이 만약, 그 금기를 어기게 된다면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매우 호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한창 샤워 준비를 하던 소진언을 비롯해 모든 병사의 손길이 느릿느릿해졌다. 고명전과 같이 샤워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괜히 비누를 줍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누가 미쳤다고 그와 같이 샤워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럼 먼저 샤워하러 가보겠습니다.”

“그, 그래. 즐거운 샤워 시간 돼라.”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샤워 용품을 들고 생활관을 나서는 고명전 병장에게 소진언이 어색한 웃음을 선보였다.

덕분에 온수 샤워 타이밍을 놓치게 된 병사들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네. 저 녀석 나오고 난 다음에 샤워하러 가자.”

“예, 알겠습니다.”

소진언과 함께 샤워하러 가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던 정성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지철아, 전구야! 샤워하러 가자!”

“예, 류태만 병장님!”

“……?”

샤워할 준비를 마친 이들 세 명이 난데없이 샤워실로 향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이들은 2생활관 멤버였다. 그럼에도 구태여 1생활관 샤워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상해 보였다.

“야야야, 류태만! 한지철! 나전구!”

1생활관 샤워실 입구로 후다닥 뛰어간 소진언이 필사적으로 이들의 앞길을 막았다.

“지금 샤워실에 명전이 녀석 있어. 들어가면 큰일 난다.”

“……알고 있습니다.”

“뭐……?”

순간 소진언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고명전이 샤워실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세 명은 샤워를 하러 가기 위해 가까운 2생활관 샤워실을 놔두고 이곳까지 왔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 아닐까.

“혹시 너희들, 일부러……?”

“소진언 병장님.”

류태만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남자란, 때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행해야 하는 법이 있습니다.”

“…….”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이 못난 후임은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충성!”

류태만을 비롯해 한지철, 나전구가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이윽고 무거운 걸음을 내밀며 1생활관 샤워실로 진입하는 3인방.

“저 녀석들, 도대체 왜 저래?”

소진언은 일부러 지옥 길을 자처하는 세 얼간이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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