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50화 (5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50화

제12장. 스파이(4)

저녁 점호 시간.

제1포대는 병사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1생활관과 2생활관, 두 군데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점호를 각각 따로 취해야 한다.

단, 점호 시작을 알리는 식순은 생활관 문을 개방한 채로 한꺼번에 실시된다.

“부대~ 차렷!”

당직 사병을 맡은 문나정 상병의 외침에 병사들이 앉은 채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충성!”

“충성.”

“제1포대 저녁 점호 인원 보고. 총원 98명. 열외 휴가 삼, 근무 넷, 환자 하나를 제외한 90명 점호준비 끝!”

“지금부터 점호는 본 당직사관이 직접 실시한다. 점호는 1생활관부터. 점호를 취하지 않는 2생활관은 쉬어.”

“쉬어!”

필두의 말을 따라 크게 복명복창을 들려주는 병사들.

행보관이 당직인 이상, 젖 먹던 힘까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괜히 필두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었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조심해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다.

가장 먼저 1생활관으로 향하는 필두.

그가 들어서자마자 오늘 생활관 책임자를 맡게 된 소진언이 목소리를 높였다.

“부대 차렷!”

이윽고 거수경례가 이어지자, 필두가 짧게 대답했다.

“쉬어.”

“쉬어!”

아직도 초록색 견장을 달고 있는 소진언.

전역까지 이제 대략 한 달 정도가 남았음에도 여전히 분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소진언을 응시하던 필두가 그의 어깨를 한 번 토닥였다.

“병장 소진언!”

“하나포 분대장 교체식은 포대장님한테 말해서 다음 주 정도에 치러질 수 있게끔 하마.”

“네, 알겠습니다!”

분대장 교체식은 포대전술훈련을 치르기 전, 필두가 소진언에게 약속했던 사항 중 하나였다.

필두가 병사들을 빡세게 굴리는 간부로 소문이 나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약속했던 것은 가급적이면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려 했다.

신뢰와 믿음을 주지 못하는 간부는 병사들로부터 충성심을 얻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진언은 필두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줬다. 그에 대한 보상은 마땅히 줘야 하는 법이다.

당근과 채찍은 확실하게. 그것이 필두의 철칙 중 하나다.

부대원들을 쭉 둘러보던 필두가 입을 열었다.

“특이사항 있으면 보고하도록.”

“없습니다!”

“그럼 편히 쉬어서 대기한다.”

1생활관 저녁 점호는 상당히 빠르게 끝이 났다.

평상시에는 관물대를 시작으로 신발장 아래, 옷걸이, 더블백 등.

조사할 수 있는 장소는 전부 다 조사하는 게 당직사관, 강필두의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는 무난하게 넘어갔다.

병사들 입장에선 물음표가 절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생활관 역시 무난한 저녁 점호로 넘기게 된 필두.

행정반으로 돌아와 당직 사병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저녁 점호 마무리 짓고, 병사들 취침하게끔 해라.”

“예, 알겠습니다!”

문나정도 속으로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가 오늘 하루만큼은 천사가 되기로 한 걸까.

“야, 나정아.”

“……?”

행정반 입구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채 손짓하는 두 명의 병장.

이들이 문나정을 부른 이유가 있었다.

“행보관님, 오늘 기분 많이 좋아보이시는데 혹시 ‘TV 연등’ 가능한지 한번 여쭤봐라.”

필두가 당직사관이었을 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허용치 않았던 TV 연등.

취침시간 이후에도 일정 시간까지 TV를 볼 수 있게끔 허가해 주는 것이 바로 TV 연등이다. 그런데 과연 필두가 그것을 허락해 줄까?

오늘의 강필두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파이팅!”

“우리 나정이, 믿고 있으마!”

“저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강한 확신을 심어준 문나정이 다시 행정반으로 들어섰다.

유독 그의 발걸음에 힘이 실렸다. FM 중에서도 FM을 고집하던 필두가 오늘 하루, 정말 보기 드물게 AM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었다.

병장들이 부탁한 TV 연등도 어찌보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보관님.”

“뭐냐.”

용기를 낸 문나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TV 연등은…….”

“뒤지고 싶냐.”

“죄송합니다!

그럼 그렇지, 역시 필두는 필두였다.

결국 TV 연등 제안은 씨알도 안 먹혔다.

* * *

자정이 넘어갈 무렵에도 필두의 두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돌았다.

그는 젊은 병사, 부사관들보다 유독 체력이 좋았다.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동시에 마법 수련까지 겸하고 있었기에 절로 몸이 좋아졌다.

덕분에 체력도 늘었다. 며칠 동안 잠을 안 자고 생활해도 멀쩡할 정도였다.

강철 체력. 그것이 필두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곧 1시인가.’

문석도와 전도혁, 두 사람이 탄약고 초소 근무를 나서기까지 15분이라는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10분 전에 근무자들을 깨우고, 근무 준비를 마친 후에 1시 정각에 전번근무자와 후번근무자가 교대를 한다.

7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거의 반쯤 눈을 감은 전도혁이 비틀거리면서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충성…… 일병 전도혁,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잠결에도 행정반 출입 요령은 잊지 않았다.

A급 병사가 되라는 필두의 압박감이 그를 성실한 병사로 만든 것이다.

하나 불행하게도 오늘은 본의 아니게 전도혁의 자랑거리가 된 성실함이 무너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강필두가 바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외곽 근무자, 그중에서도 후임 근무자가 근무를 나서가 전에 행정반에 들어와 하는 일은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총기함에 걸려 있는 총기현황판에 총기 상태를 수기로 적어놓을 것.

두 번째. 본인을 포함해 선임 근무자 이름이 적혀 있는 말판을 탄약고 초소 쪽으로 이동시켜 놓을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 암구호를 숙지할 것.

이 세 가지는 필수적으로 지켜야 한다.

컴퓨터용 싸인펜을 꺼낸 뒤에 끄적거리기 시작하는 전도혁.

때마침 문석도 역시 환복을 마치고 행정반에 출입했다.

그러면서 유심히 전도혁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털 수 있을 만한 게 하나라도 보인다면, 작정하고 털 의도였기 때문이다.

갈굼은 문석도의 스트레스 풀이 대상이오, 군 생활의 낙이다.

그걸 잘 알기에 문석도와 같이 근무를 나가는 후임 근무자들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산으로 확인, 또 확인을 거친다.

물론 전도혁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과거에 포대의 미친놈이라 불리던 전도혁이지만, 1시간 내내 갈굼 당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마음의 편지 사건 이후, 문석도의 독기가 바짝 오른 상태다. 여기서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행동에 임하는 전도혁. 그가 자대에 전입한 이후로 가장 높은 집중력을 보여주는 때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모든 준비를 다 마친 뒤. 필두에게 보고하기 위해 문석도와 나란히 마주 섰다.

하나 그때.

“야, 전도혁.”

“일병 전도혁.”

“너, 총기현황판 수정 안 하냐?”

“……?”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조금 전에 총기현황판을 수정했는데, 문석도는 도리어 왜 수정 안 했냐는 딴지를 걸고 있었다.

아무리 갈굼거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그렇지, 없던 사실마저 만들어서 일부러 갈굼을 하려고 하다니.

‘이 자식이 왜 이래?’

속으로 문석도를 욕하는 전도혁이었으나, 머지않아 그의 눈을 의심했다.

“어……?”

혹시 몰리 총기현황판을 확인했다.

그런데 정말로 문석도의 말마따나 총기현황판이 수정되어 있지 않은 채였다.

“마, 말도 안 돼. 방금 분명…….”

컴퓨터용 싸인펜을 꺼내 직접 수정한 것까지 기억했다. 그럼에도 어째서 총기현황판이 수정되어 있지 않단 말인가.

어벙한 얼굴을 하는 사이에 문석도의 추가타가 곧장 들어왔다.

“말판도 안 옮겼던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없긴 왜 없어, 이 녀석아! 네가 가서 확인해 보든가.”

“…….”

이번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직접 본인의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자…….

“이런 미친……!”

입에서 욕지거리가 툭 튀어나왔다.

문석도의 말대로였다. 탄약고 초소로 옮겨져 있어야 할 문석도와 전도혁 이름이 적힌 말판 두 개가 여전히 막사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 방금 분명 옮겼습니다! 총기현황판도 수정했…….”

“너, 행정반에 와서 멍때리기만 했잖냐.”

“그, 그럴 리가…….”

아직도 본인의 행동을 인정하지 않는 전도혁의 모습에 당직 사병인 문나정 또한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뭐하냐, 전도혁. 빨리 근무 준비 안 하고.”

“아, 알겠습니다!”

믿기 힘든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문석도의 말이 맞았다.

부랴부랴 총기현황판과 말판을 옮긴 뒤, 근무교대 신고를 하기 위해 필두 앞에 마주 섰다.

그러자 필두가 가벼이 손을 내저었다.

“근무 시간 늦겠다. 신고 생략하고 가라.”

“예.”

“…….”

필두의 지시에 따라 문석도와 전도혁이 곧장 막사 바깥으로 이동했다.

사실 전도혁이 억울해할 만도 하다.

왜냐하면 그가 행정반에 들어설 당시, 필두가 일시적으로 그에게 마인드컨트롤 마법을 걸었기 때문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행정반을 방문한 전도혁이었기에 정신계열 마법을 거는 것도 한층 수월했다.

목적은 근무 준비를 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기.

그렇기에 전도혁은 분명 본인이 근무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멍하니 선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필두가 구태여 이런 수고스러움을 거친 이유는 간단했다.

일부러 전도혁이 갈굼을 당할 만한 사유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선임근무자가 문석도라면, 분명 탄약고 초소에서 1시간 내내 갈굼쇼를 펼칠 것이다.

그것을 노리고자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전도혁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에게 죄가 있다면, 초반에 뭣도 모르고 필두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까지 크게 미안한 감정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필두가 정이 많거나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남자였는데 전도혁이 뭐가 불쌍해 보이겠는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이 정도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선 뒤, 행정반을 나섰다.

그러자 당직병이 필두에게 행보를 물어왔다.

“어디 가십니까? 행보관님.”

“화장실 간다. 불만 있냐.”

“아닙니다!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화장실을 가긴 갈 거다. 하나 화장실에 볼일이 있어서 가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을 들고서 화장실로 직행하자마자 곧장 투명화 마법을 건 뒤, 막사 바깥을 빠져나왔다.

자신이 어디로 갈지 상세하게 말을 하면, 그 소식이 외곽 근무자들에게 퍼진다.

그래서 일부러 당직병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향할 목표는 탄약고 초소.

은밀히 잠입해야 할 장소다.

이미 필두는 모든 것들을 다 세팅해 뒀다.

집합의 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준비를!

“지금쯤이면 슬슬 시작되고 있겠지.”

오늘 밤은 아주 길어질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