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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41화 (41/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41화

제10장. 대항군과의 대결(5)

순식간이 그를 에워싸는 오대기 인원들!

위, 그리고 좌우까지 전부 오대기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취했다.

‘언제 여기까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어째서?

이런 의구심이 들 때, 박한철 하사의 시야에 까마귀들이 포착되었다.

붉은 눈을 지닌 까마귀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박한철은 저 까마귀에게 신경이 팔려 있었다.

‘까마귀들 때문에 미처 녀석들이 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구나!’

까마귀들의 울부짖음. 그것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오대기의 인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도망칠 곳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하나 빈틈이 없었다.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온 모양인지 진형 역시 탄탄해 보였다.

‘아니, 이대로 잡힐 수는 없어!’

서서히 좁혀들어오는 포위망. 더 조여오기 전에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결단을 내린 박한철 하사가 특정 방향을 향해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삼포반장님!”

“타깃이 도주하려고 합니다!”

순식간에 득달하는 박한철 하사!

산속임에도 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괜히 수차례 타 부대들을 농락한 경험이 있는 게 아니다.

연대장 밑에서 전문 대항군으로 활약하며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박한철 하사. 그런데 만약 이곳에서 9090대대에게 허무하게 잡힌다면, 연대장의 꾸지람도 꾸지람이지만 자기 자신이 스스로 용서치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남은 시간은 8분밖에 남지 않았다.

‘8분 동안 잘 도망 다니면 돼! 침착하자, 박한철!’

인근은 어차피 수풀과 나무로 우거져 있는 산속이다. 집중만 하면 8분 정도는 우습게 잘 숨어다니며 도망칠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이 숲의 지리는 박한철 하사의 앞마당과 다를 바가 없다. 9090대대가 3993진지에서 훈련을 받는다는 말을 듣자마자 박한철은 이곳 지형 데이터를 미리 받아 머릿속에 충분히 숙지를 해뒀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서 대항군으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어느 곳이 숨기에 최적의 명당인지, 그리고 어떤 곳이 도망치기 좋은 루트인지까지 전부 다 꿰차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 이들의 포위망부터 벗어나는 편이 좋다.

박한철 하사가 목표로 잡은 곳은 바로 일병 한 명이 맡은 방향이었다.

상대적으로 병장과 상병보다 일병이 더 어리숙하다. 그 점을 이용해 일부러 오대기 중 계급이 가장 낮은 병사가 포진된 쪽으로 도주 루트를 잡은 것이다.

‘두 명 정도면 쉽게 재칠 수 있지!’

괜히 하사라는 직책을 달고 있는 게 아니다. 두 명도 아니고 일병 한 명 정도는 쉽게 지나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냅다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병의 정체가 문제였다.

“흐읍!”

곧장 자세를 낮춘 일병. 그를 향해 삼포반장이 외쳤다.

“무슨 짓을 해서든 막아라! 도혁아!”

“일병 전도혁! 맡겨만 주시기 바랍니다!”

강필두의 충신, 전도혁이 폭주 기관차 마냥 뛰어오는 박한철 하사를 정면에서 응시했다.

전도혁은 사회에 있을 때부터 운동을 했던 이력을 지니고 있다.

몸싸움이라면 오히려 전도혁이 환영하는 바였다.

“비켜라! 일병 나부랭이 녀석아!”

박한철이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돌파를 시도했다. 하나 여기에 움츠러들 전도혁이 아니었다.

관심병사 코스프레를 하면서 간부들 앞에서도 배 째라는 식으로 버텨온 철면피, 전도혁이다.

배짱이라면 이미 두둑하다 못해 철철 넘쳐 흐르는 수준의 전도혁이 두터운 팔을 움직였다.

덩치와 다르게 상당히 빠른 움직임을 선보이는 전도혁! 그의 오른팔이 박한철의 왼팔을 움켜쥐었다.

“아닛……?”

그를 제치고 도망치기엔 충분한 속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도혁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도장에 다니면서 상대했던 아마추어 유도 선수가 더 빨라 보였다.

“으랴아아아아압!”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이 있는 쪽으로 박한철을 끌어온 전도혁.

이윽고 몸을 돌려 곧장 엎어치기 자세를 시도했다!

“……!”

부우웅!

공중 위로 떠오른 박한철 하사.

그의 눈에는 마치 세상이 180도 돌아가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었다.

이윽고…….

쿠웅!

둔탁한 소리와 함께 파란 하늘과 초록색의 나뭇잎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뭐…… 지?’

순간 자신이 무슨 공격을 당했는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후.

“포박해라!”

“예!”

두세 명의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포승줄로 박한철의 손과 발을 묶어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박한철이라 하더라도 장정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전도혁의 엎어치기 이후 남은 오대기의 포박까지.

완벽한 콤보 공격에 박한철 하사는 이를 잘근 깨물며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6분이라는 시간을 남겨두고 모든 대항군이 제압되었다!

그것도 사살이 아닌 포획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끝이 났다.

“이거 참…… 박 하사가 이끄는 대항군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제압당하는 건 내 연대장 인생 처음 있는 일이구먼.”

연대장이 짧게 혀를 차며 9090대대 제1포대가 보여준 저력에 경의를 표했다.

그 칭찬 덕분일까. 대대장과 포대장의 어깨는 한층 위로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연대장의 대항군 상황조치 훈련을 마치게 된 제1포대.

흡족한 표정과 함께 대대장과 포대장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여준 연대장이 레토나에 몸을 실었다.

그를 배웅하기 위해 나선 대대장과 포대장. 이윽고 연대장이 탄 레토나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대대장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잘했어, 정말 잘했어! 제1포대, 정말 최고라고!”

“감사합니다!”

제1포대의 대활약으로 대대장의 입꼬리는 한동안 아래로 내려올 줄 몰랐다.

연대장으로부터 100점 만점 평가를 받게 된 제1포대 포대전술훈련.

기분이 급속도로 좋아진 모양인지 대대장이 포대장과 행보관, 강필두에게 지시했다.

“훈련이긴 하지만 오늘 하루, 병사들에게 최대한의 휴식을 보상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그전에 대대장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필두가 슬쩍 입을 열었다.

“뭔가요?”

“이번에 오대기 인원들도 그렇고, 병사들도 연대장님 참관 오신다고 준비 많이 했는데, 행보관으로서 병사들에게 분과별로 포상휴가 하나씩을 주고 싶습니다. 대대장님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포상휴가! 좋지요. 인사과에 따로 말을 해둘 터이니 행보관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필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대장이 곧장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그리고 포대전술훈련 끝나면 병사들 고기도 좀 먹이게끔 합시다.”

“알겠습니다.”

포상휴가와 더불어 고기 회식까지.

얻을 수 있는 포상은 다 얻은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 * *

대대장이 다시 대대로 돌아간 이후. 저녁 식사를 마친 병사들을 CP 텐트 앞에 불러모은 포대장이 병사들을 훑어봤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높여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너희들 덕분에 연대장님도, 그리고 대대장님도 포대전술훈련 상태에 크게 만족하며 다시 부대로 돌아가셨다.”

“사, 살았다…….”

“옥 진탕 먹을까 봐 엄청 걱정했는데…….”

병사들 사이에서도 안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심적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중간에 연대장이 직접 상황조치를 걸었을 때에는 이걸 어쩌나 싶었을 때도 있었다.

하나 그것은 필두의 대활약으로 너무나도 쉽게 극복하게 되었다.

물론 이 정황에 필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삼포반장, 그리고 전도혁 정도뿐이다.

포대장이 병사들 앞에서 훈련에 대한 소감을 이것저것 토로할 무렵, 삼포반장이 필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행보관님.”

“내가 뭘.”

“행보관님 덕분에 대항군 쉽게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난 한 거 없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잖냐. 오늘의 길조는 까마귀라고.”

자신이 마법을 사용했다는 흔적을 웬만해선 들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삼포반장 앞에서도 웬만하면 티를 내려 하지 않은 것이다.

눈치 좋은 삼포반장이기에 필두가 구태여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필두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저도 앞으로 붉은 눈의 까마귀들을 만나면 복권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네 맘대로 해라.”

억지로 이야기를 끝내버리는 필두.

어차피 오늘의 목표는 달성했다.

연대장으로부터 9090대대 제1포대가 우수한 부대라는 사실을 인정받게끔 한다.

간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끔 만들어 점점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간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건,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은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흑막으로서 움직여야 한다. 괜히 앞에서 나댔다간, 혹시 모를 추격자들에 의해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자신이 직접 담당하고 있는 부대가 당나라 군대 취급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필두의 성격상, 오늘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 * *

대대장의 지시로 오늘 예정되어 있던 야간 훈련도 대충 끝내고 달콤한 휴식을 맞이하게 된 병사들.

물티슈로 위장크림을 최대한 지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귀 안쪽까지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덕분에 좀처럼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냥 내일 지울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결국 포기한 병사들이 하나둘씩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한편, CP 텐트로 돌아온 필두의 시선이 축 늘어진 채 코를 골며 단잠에 빠진 포대장에게 고정되었다.

“피곤했나 보군.”

연대장 덕분에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숨은 주역인 필두 또한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고생들을 몇 날 며칠 겪어왔다. 그렇기에 피곤하다는 생각 같은 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의 훈련이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는 인식만 가득 들었다.

‘내가 대항군이었다면, 이런 부대 정도는 쉽게 날려 버렸을 터인데.’

제1포대는 필두가 대항군 역할을 안 맡게 된 것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

물론 이런 사실을 이들이 알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자리에 누운 필두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포대장의 코골이 소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소음 차단 마법을 발동시켰기 때문이다.

“이제야 잠 좀 잘 수 있겠구먼.”

아무리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필두라 하더라도, 수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코를 골아대는 남자와 함께 동숙을 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이럴 때에는 마법이 참으로 편리하다.

“마법이라…….”

흑마법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과거의 모습이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취침 시간을 앞두고 있음에도 필두의 눈은 한동안 계속해서 낯선 CP 텐트의 천막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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