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40화
제10장. 대항군과의 대결(4)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오대기 소대원들.
두루미 1으로 활동 중인 대항군 병사는 이들의 인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3993 진지 근처에 폐교가 있긴 하지만, 진지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입구 쪽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설마 오대기 소대원들이 여기까지 수색 반경을 넓힐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안일함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게 된 셈이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총 버리고 손 머리 위로 올려!”
“……큭!”
대항군은 소수로 활동한다.
게다가 폐교 안에 몰래 잠복해 있던 대항군은 단 한 명.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10여 명에 가까운 오대기 소대원들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겠는가.
게다가 이곳은 개활지도 아니다.
폐교. 그것도 빈 교실에 잠복해 있던 터라 도망치려면 창문이나 교실의 정문, 후문밖에 없다.
두 문은 이미 기습 공격을 감행한 오대기 소대원들에게 점령당한 상태다.
창문 바깥으로 도망친다 하더라도 운동장에 대기 중인 부분대장조에게 곧장 잡힐 것이다.
결국 대항군이 선택할 방법은 단 하나뿐.
“……항복.”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이렇게 해서 3명의 대항군 중 한 명을 사살도 아닌 생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연대장이 대항군 상황조치훈련을 명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벌어졌다.
* * *
-아아. 여기는 삼포반장. 삼포반장이라 알리고 대항군 한 명을 사로잡았다는 통보.
“벌써……?”
포대장이 차고 있는 P96K에서 들려오는 오대기 소대장으로부터의 보고.
그 말을 듣자마자 대대장과 연대장의 표정이 제각각 변했다.
대대장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그리고 연대장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연대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이른 시간 내에 대항군이 잡혔다.
물론 3명 중 고작해야 단 한 명밖에 잡히지 않긴 했지만, 소수로 활동하는 대항군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 한 명이 잡힌 것도 치명적이다.
게다가 10분 안에 첫 대항군이 사로잡혔다.
‘빠르구먼…….’
연대장이 침을 크게 삼켰다.
자칫 잘못하다가, 모처럼 준비한 깜짝 대항군 훈련이 망쳐질 우려가 있다.
‘아니, 그건 오산이다. 여태까지 모든 대항군을 잡아들인 부대는 지금까지 한 곳도 없었어!’
본인이 괜히 초반 기세에 눌려 설레발을 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은 연대장.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불안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러나 연대장이 미처 알아내지 못한 변수가 하나 있었다.
강필두. 그가 뒤에서 몰래 오대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
연대장과 대대장, 그리고 포대장이 ‘오대기 VS 대항군’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동안, 필두는 자신의 소환수들이 실시간으로 보고해 오는 다각적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병사 둘에 간부 하나인가.’
각각 어떤 암호명을 사용하는지도 이미 파악을 완료했다. 병사가 각각 두루미 1과 2, 그리고 두 병사를 리드하고 있는 간부, 박한철 하사가 올빼미를 맡고 있다.
‘거리상으로 본다면, 병사 쪽이 더 가깝군. 그렇다면 우선 오대기를 두루미 2가 있는 곳으로 돌리게 만든 다음에 올빼미를 잡으러 가게끔 지시해두면 되겠어.’
삼포반장에게 미리 대항군들의 위치를 알려주긴 했지만, 두루미 1이 포획 당함으로 이들의 위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귀찮은 녀석들이군.’
그래도 그들의 대응은 옳다. 한 명이 허무하게 포획되었으니, 대항군 역시 전략을 바꿔야 할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필두의 눈을 피해 갈 순 없었다.
“…….”
슬그머니 CP 텐트 뒤쪽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삼포반장에게 몰래 연락을 넣어둘 속셈이었다.
P96K로 대항군이 어디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간 연대장과 대대장의 귀에 필두의 정보 전달이 새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려고 일부러 개인 핸드폰을 사용하기로 했다.
‘참으로 편리하군. 핸드폰이라는 건.’
레디너스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방식이다.
전령을 보내거나 혹은 마법으로 서로 간의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핸드폰의 경우에는 버튼 몇 번 누르면 원하는 상대방에게 음성 혹은 문자 등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나머지 대항군 두 명의 위치까지 모두 적어 문자로 보내둔 필두.
‘이제 승전보만 기다리면 되겠군.’
그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 * *
한편.
필두로부터 문자를 받은 삼포반장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거…… 진짠가……?”
남은 대항군 두 명의 위치가 적혀져 있는 문자 메시지. 그것을 보자마자 삼포반장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게다가 아까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도대체 행보관님은 이런 정보를 어디서…….’
마지막으로 ‘붉은 눈의 까마귀를 따라가는 걸 잊지 마라’라는 말까지 적혀 있었다.
필두가 말했던 그대로 까마귀의 도움을 받은 적은 있었다. 마치 까마귀가 정말로 대항군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한…… 그런 모습에 삼포반장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로움까지 느꼈다.
하나 마냥 감탄만 자아낼 수는 없었다.
“삼포반장님.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병사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삼포반장이 손으로 어느 한 곳을 지정했다.
“저 산으로 간다.”
“산 말씀이십니까?”
“그래.”
“대항군 찾으려면 꽤 걸릴 거 같지 말입니다.”
숨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그렇기에 대항군을 찾는 입장에선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장소다.
그러나 삼포반장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라.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거 같으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까 폐교 때도 그렇고…….”
병사들 몇몇이 의문을 제기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폐교에서 두루미 1을 잡았을 당시, 병사들은 속으로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포반장이 정확하게 대항군 중 한 명의 위치가 있는 곳을 지정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대항군과 삼포반장이 서로 합의를 본 부분이 있는 걸까? 천만에. 그런 의심도 할 순 없었다. 왜냐하면, 연대장이 작정하고 대항군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항군이 의도적으로 제1포대 간부들에게 자신들의 정보를 흘린다면…… 그리고 대항군의 패배라는 결과가 발생한다면, 이들은 연대장에게 아니꼬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항군이, 박한철 하사가 그런 불이익을 자처하면서까지 9090대대 제1포대를 도와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필두는 어떤 식으로 적들의 위치를 알아내는 걸까.
그런 의구심에 가득 휩싸인 삼포반장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자잘한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보다 산 입구 쪽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 코너로 도는 길이 나올 거다. 거기 수풀에 잠복해 있다고 하니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간다.”
“알겠습니다.”
삼포반장이 어떤 수단으로 대항군들의 위치를 알아내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간부를 상대로 병사가 추긍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삼포반장의 명령에 따라 멀쩡한 입구를 놔두고 주변을 돌아가기 시작하는 오대기 소대원들.
“…….”
“…….”
“…….”
최대한 말을 아끼며 입구로 진입을 시도했다.
두루미 2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보다 한 단계 위쪽 지역을 점령하는 데에 성공한 삼포반장.
최대한 시선을 집중해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행보관님의 말씀대로야!’
정말로 대항군 한 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병사 계급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대하긴 수월하겠구먼.’
분명 대항군을 이끄는 간부가 포진되어 있을 터.
사전에 잡은 두루미 1의 계급은 상병이었다.
지금 포착된 대항군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인 병장이다.
결국 두 사람 다 병사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남은 대항군 한 명이 간부라는 사실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우선은 저 녀석부터 포획해 볼까!’
자신을 따라온 분대장조 일원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삼포반장의 수신호를 보자마자 병사들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분대장조는 앞서 폐교 때와 마찬가지로 대항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대기 중이다. 여기서 삼포반장이 이끄는 분대장 조가 두루미 2를 포획하면 된다.
‘돌격!’
삼포반장이 최종적으로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일제히 우르르 움직였다.
한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자 두루미 2의 안색이 새파랗하게 변모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이었다.
“꼼짝 마!”
“무기 버리고 손들어!”
“히익……!”
좌, 우.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에 총구를 겨눈 채 경고하는 오대기 멤버들.
도망칠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항군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뿐이다.
“하, 항복한다…….”
이렇게 해서 결국 두 번째 대항군마저 포획되었다.
이것은 앞서 두루미 1을 잡을 때보다도 더 빠른 시간인 5분 이내 벌어졌다.
* * *
15분.
그 시간 안에 두루미 1, 2이 전부 포획되었다.
그것도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말이다.
“말도 안 돼……!”
박한철 하사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루미 1, 2로 활동했던 병사 두 명은 지금까지 박한철과 함께 여러 부대를 농락했던 최정예 대항군 병사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무기력하게 사로잡히다니. 게다가 보병 부대도 아니고 포병 부대에 말이다.
수치라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연대장은 지금쯤 두루미 2가 사로잡혔다는 보고를 듣고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큰일인데.’
지금 이 성적만으로도 연대장에게 꾸지람을 들을 정도다.
비록 박한철이 살아남긴 했지만, 아직까진 15분이라는 절반에 가까운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는 상태다.
‘어쩐다.’
머리를 굴려야 한다.
본래대로라면 두루미 1, 2를 운영하면서 오대기를 농락할 생각이었다.
하나 역으로 대항군들이 농락을 당하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박한철의 귓가에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까아악!
날카로운 새의 울부짖음.
붉은 눈을 지닌 까마귀였다.
“재수 없게 까마귀가…… 훠이, 훠이! 저리 꺼져!”
-까아아아악!
박한철이 손을 휘저어 까마귀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더더욱 커질 뿐이었다.
가뜩이나 연대장에게 잔소리들을 생각 때문에 짜증 나는데, 까마귀까지 와서 신경을 건드리니 박한철의 인내심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이!”
근처에 있던 돌을 집어들어 까마귀 쪽으로 던졌다.
하나 그 순간!
주변의 수풀들이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주변을 경계하듯 빠르게 훑은 박한철.
불길함이 그를 덮쳤다.
“설마……?”
두루미 2와 박한철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꼴사납긴 해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잠복한 채 남은 15분을 버티려고 생각했었다.
하나 그것은 실행되기도 전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꼼짝 마라!”
“여기는 오대기 소대장! 남은 대항군 한 명을 확보했다!”
오대기는 이미 그를 잡기 위한 포위망을 구축한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