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39화 (39/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9화

제10장. 대항군과의 대결(3)

3993 진지 근처.

가장 높은 산 언저리 부근에 자리를 잡은 남자가 소형 망원경을 통해 9090대대 제1포대 진영을 응시했다.

“저기군.”

박한철 하사.

그는 연대장의 지시를 받고 대항군 역할을 수행하고자 직접 이곳 3993 진지까지 찾아왔다.

물론 그 혼자만 온 건 아니다.

연대장의 특별 지시를 받고서 날렵하다고 소문이 난 병사 두 명을 선정해 데려왔다.

무전기를 든 박한철 하사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긴급히 통신을 날렸다.

“여기는 올빼미 1. 두루미들, 수신 양호한지.”

-두루미 1. 수신 양호.

-두루미 2. 감도 양호하다는 통보.

“양호.”

P96K를 통해 서로 간의 위치,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연대장의 지시인 만큼 대항군 역할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여기서 연대장이 만족할 만큼 대항군 역할을 소화할 경우, 두루미 1, 2 병사들에겐 포상휴가를 줄 예정이다.

박한철 하사에게도 특별한 포상이 내려질 터.

연대장이 특별히 지시를 내린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언제쯤 시작하려나…….”

제1포대의 동태를 살피며 연대장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박한철 하사.

그때, 건빵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스마트폰이 맹렬한 진동을 선보였다.

‘왔구나!’

액정화면을 직접 응시하지 않아도 연대장으로부터 걸려온 통화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충성! 하사 박한철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작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대장으로부터 하달된 명령.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아. 여기는 올빼미. 올빼미라 알리고 두루미 1, 2는 행동 개시하도록.”

-수신 양호.

-양호.

박한철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곧장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윽고 5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대항군이다!”

“대항군 출현! 대항군 출현!”

“오대기 비상!”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9090대대 제1포대 병사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

그에 따라 박한철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새겨졌다.

“좋아, 그렇게 실컷 당황해 보시지.”

상대방이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사태는 대항군에게 훨씬 더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30분 동안 저들에게 잡히지 않은 채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대항군 경력만 하더라도 수십 차례에 빛나는 박한철 하사.

여태까지 어떠한 부대도 박한철이 이끄는 대항군을 완벽하게 제압해내지 못했었다.

“이번에도 가볍게 농락해 주지!”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박한철이었으나.

그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9090대대 제1포대.

그곳은 바로 흑마술사로 유명했던 남자, 강필두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부대란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 * *

“대항군이라니!”

“이런……!”

대대장과 포대장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훈련 진행 상황을 엿보기 위해 왔을 거로 생각했던 연대장이었으나, 설마 직접 대항군 카드를 꺼내들 줄은 몰랐다.

사실 대대장은 병사들이 화생방 조치 훈련을 훌륭하게 소화했을 당시,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게다가 위장 상태에도 매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이것만으로도 연대장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대대장이지만, 그의 생각이 안일했음을 이제야 알아차리게 되었다.

하나 연대장은 이런 대대장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을 계속 이어나갈 뿐이었다.

“새로운 상황조치훈련을 부여하도록 하지. 근처에 있는 대항군은 총 3명. 30분 안에 전부 제압하도록.”

어려운 임무다.

대항군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3993 진지 주변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30분…… 아니, 적어도 최소 1시간 이상은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잠복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30분 안에 대항군들을 전부 제압하라니.

연대장만 눈앞에 없었더라면, 대대장과 포대장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군대다.

“…….”

“…….”

대대장과 포대장이 서로 눈빛 교환을 마쳤다.

연대장이 친히 준비한 상황조치훈련이다. 여기서 그의 말을 거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처사다.

“오대기 비상!”

포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간부와 병사들이 일제히 그의 말을 복명복창했다.

“오대기 비상!”

“오대기 비사아앙!”

우선은 오분대기조부터 먼저 소집한다.

대항군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선행되어야 할 절차였다.

* * *

오대기 소집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하나포 분대원들의 시선이 특정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모두의 이목을 한 몸에 받으며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서는 남자.

바로 전도혁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고생해라, 도혁아.”

“예.”

소진언의 위로 멘트를 뒤로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전도혁.

오대기 소집은 예정에 없던 상황조치훈련이다.

분명 연대장이 내렸을 터.

그렇기에 더더욱 긴장을 해야 했다.

‘젠장. 하필이면 왜 내가 오대기일 때 포대전술훈련이 걸린 거냐.’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어보는 전도혁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오대기를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도 없으니 말이다.

CP 텐트 앞에 도착했을 때, 포대장을 비롯해 오대기 소대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보관 강필두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대장과 오대기 소대장을 맡게 된 삼포반장의 얼굴에는 잔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나 이들과는 상반된 얼굴을 한 이가 있었다.

바로 강필두였다.

“…….”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간부들도, 그리고 병사들도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필두의 행동에 태클을 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삼포반장이 나서서 병사들에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빠르게 설명했다.

“현재 상황을 전파하겠다. 적 대항군 3명 출현. 30분 이내에 이들을 전부 제압할 것. 이것이 연대장님께서 내리신 명령이다.”

“30분 안에……!”

“말도 안 돼!”

여기저기서 강한 동요가 새어나왔다.

하기야. 이들의 반응도 어느 정도 공감은 된다. 3993 진지가 좁은 지역도 아니고, 게다가 주변은 산과 수풀로 우거져 있다. 이곳을 어떻게 수색하란 말인가.

게다가 오대기 인원들로만 움직여야 한다. 포대 특성상 후방 포격 지원이 주된 목표이기에 대항군 3명 잡고자 본대 인원을 전부 돌린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포병이기에 포병으로서의 업무도 충실히 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오대기 인원들만으로 대항군 3명을 포획, 혹은 사살해야 한다.

물론 훈련이기 때문에 그런 시늉만 내면 되지만 말이다.

“연대장님께서 직접 포섭한 대항군들이니까 아마 순순히 우리에게 잡혀주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사활을 걸고 이번 수색 작전에 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삼포반장뿐만 아니라 오대기 멤버들의 목소리에 강한 결의가 느껴졌다.

대항군에게도 포상휴가가 걸려 있지만, 그건 제1포대도 마찬가지다.

“그럼 바로 이동한다. 분대장조, 부분대당조로 나눠서 각각 좌, 우측으로 행진할 테니까 대열 맞춰라.”

“네!”

이들이 진형을 갖춰 수색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삼포반장.”

“하사 마도창!”

필두의 부름에 삼포반장이 빠르게 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행보관님?”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거, 잘 기억해둬라.”

필두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선 연대장과 대대장이 근처에 없음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입을 열었다.

“둘포 기준으로 12시 방향에 있는 언덕 언저리에 하나, 3시 쪽에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폐교에 하나. 이렇게 총 세 명 있으니 최대한 인기척 줄이고 접근해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삼포반장은 처음 필두에게 이 말을 들었을 당시, 이게 무슨 뜻인가 싶었다.

눈치 없는 반응을 보이는 삼포반장의 모습에 필두가 짧게 혀를 찼다.

“대항군 위치를 알려줘도 모르냐.”

“행보관님이 어떻게 그걸…….”

연대 쪽에 행보관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해 줄 내부고발자라도 있는 건가.

아니, 설사 있다 하더라도 대항군의 위치는 대항군만이 알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필두가 이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납득이 안 가지만, 그래도 지금 여기선 필두의 말에 따르는 것이 좋다.

어차피 삼포반장 본인을 비롯해 오대기 인원들은 대항군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계속 헤매다가 30분을 날려 먹을 바에야, 차라리 필두의 말에 의지하는 편이 더 확률적으로 높을지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럼 폐교부터 먼저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필두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작은 까마귀를 찾아라. 그곳에 대항군이 있을 거다.”

“까마귀……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오늘의 길조는 까마귀다. 그걸 기억해.”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문 필두.

그의 태도에서 더 이상의 힌트는 없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은 행보관님을 믿어보자!’

필두 덕분에 훈련이 여기까지 무사히 치러질 수 있게 된 거 아닌가.

강필두를 믿으면 기적을 맛보리라.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결심하기로 마음먹은 삼포반장이 오대기 소대원들을 이끌었다.

“출발한다!”

“예!”

기운찬 목소리와 함께 행진을 감행하는 오대기 일원들.

그들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필두의 주변에 푸른 마나의 결정체들이 형성되었다.

이윽고 하나의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하더니…… 필두가 언급했던 작은 까마귀의 형태를 지니기 시작했다.

붉은 눈을 지닌 작은 새들이 일제히 날개를 펼쳤다.

“가라.”

-까아아아악!

필두의 한 마디에 곧장 3993 진지를 이탈하는 새의 무리.

대항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기 위해 필두가 직접 두 팔을 걷어 올렸다.

* * *

폐교 근처로 향하기 시작하는 오대기 소대원들.

“…….”

손짓으로 부분대장조에게 입구 봉쇄를, 그리고 분대장조에게 침투를 지시했다.

조심스럽게 폐교 안쪽으로 들어서는 분대장조.

‘정말로 있을까?’

일단 필두를 믿어보기로 한 삼포반장이었지만, 그래도 의구심은 계속 머릿속에 감돌았다.

하나 그때였다.

-까악!

어느 빈 교실 하나를 가리키듯 울부짖는 작은 까마귀 한 마리.

붉은 눈이 왠지 모르게 섬뜩함을 선사했지만, 필두가 한 말을 떠올리며 까마귀가 응시하는 빈 교실 쪽으로 병력을 배치했다.

‘신호 내리면 바로 투입한다.’

‘예, 알겠습니다.’

삼포반장과 눈빛 교환을 마친 병사들.

전도혁 역시 K-2를 힘 있게 들어 올렸다.

‘하나, 둘…… 셋!’

삼포반장의 지시에 따라 병사들이 우수수 교실로 들이닥쳤다.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

갑작스러운 오대기의 등장.

그리고 이들의 기습에 덩달아 놀란 인물이 있었다.

“어, 어떻게 여기를!”

박한철이 이끄는 대항군 팀 병사 1명.

두루미 1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