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8화
제10장. 대항군과의 대결(2)
긴장 어린 표정으로 속속들이 모여드는 9090대대 제1포대 병사들.
그런 이들을 쭉 훑어보던 필두가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다 모였나.”
그의 물음에 통제관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예, 행보관님.”
“그렇군.”
한 명의 열외자 없이 모든 병사를 깡그리 다 불러모은 강필두.
병사들을 쭉 둘러보던 그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잘 들어라. 연대장님께서 곧 있으면 이곳에 오신다고 한다.”
“……!”
“연대장님께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집합하기 전에 간부들의 입을 통해서 연대장의 방문 소식을 이미 접하긴 했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벌렁거리는 심장의 고동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연대장 앞에서 한 번의 실수라도 보이는 즉시, 최소 3개월 이상은 포대, 대대에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휴가와 외박, 외출을 나가는 데에도 어떤 암묵적인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
병사들에게 있어서 휴가는 말 그대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 그런데 그 휴가에 문제가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상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연대장님이 오시면 분명 높은 확률로 상황조치훈련을 지시할 거다. 그때, 너희가 해야 할 건 단 하나다.”
필두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하나만 잘하면 된다. 그게 뭔지 알고 있나.”
“…….”
“잘 모르겠습니다!”
알 리가 있겠나.
의구심을 표현하는 병사들에게 필두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이와 같이 말했다.
“무슨 행동이든 간에 오버해라. 그러면 연대장님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오버라니…….”
“그게 무슨…….”
필두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병사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본래 군대란 조직은 보여주기의 끝판왕과 같은 장소다. 상관에게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오버액션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게 바로 군인 아니겠는가.
게다가 실전처럼 훈련하라는 상부의 지침사항에 내려온 만큼, 그에 따르는 훈련 내용을 보여준다면 연대장도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위장크림도 목뿐만 아니라 귓속까지 바르지 않았겠는가.
“만약에 연대장님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게 된다면…….”
병사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필두가 최강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분과별로 한 명씩 포상휴가를 내어주겠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오 마이 갓……!”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분과별로 하나씩 포상휴가를 준다 하더라도 없던 의욕까지 생성될 정도였다.
10명의 병사가 포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너희 손에 달려 있다. 그러니까 연대장님 앞에서 최대한 훈련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목숨 걸고 한번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포대장과 포상휴가에 대해 합의를 봤다 하더라도 포대전술훈련 하나에 10명의 병사에게 휴가를 준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적어도 대대장과도 논의가 되어야 할 사항이다.
하나 그럼에도 필두는 별다른 걱정이 들지 않았다.
연대장이 그만큼 9090대대 제1포대의 포대전술훈련 내용에 깊은 만족도를 표한다면, 대대장으로서 병사들에게 그 정도 포상도 안 해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진급에 대해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9090 대대장 아니겠는가. 상관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제1포대에게 포상휴가를 밀어주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줄 것이다.
단, 어디까지나 병사들이 연대장에게 ‘특별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으로 깔려 있다.
그러나 필두는 오히려 포상휴가 하나로 병사들의 사기를 이렇게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 더 단순하고 심플하게 느껴졌다.
‘병사들 구슬리기가 레디너스 대륙에 비해선 훨씬 편하군.’
이렇게 해서 필두의 진두지휘 아래에 9090대대 제1포대의 특별한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름 하야…….
연대장 대만족시키기 작전.
* * *
3993 진지에 등장한 레토나 한 대.
그곳에서 하차한 인물, 연대장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대대장과 포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목에 피를 토할 만큼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충! 성!”
“충성. 훈련은 잘되어가고 있나.”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 어디 보자…….”
연대장의 고개가 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바로 하나포였다.
“…….”
“…….”
매의 눈으로 사주경계를 하고 있는 병사들.
은폐엄폐도 제대로 했을뿐더러, 위장 역시 완벽했다.
“병사들 위장 상태가 아주 좋군. 살색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야.”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고자 위장 역시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완벽하게 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훌륭하군.”
연대장이 지금까지 본 위장 중에서 가장 양호한 상태를 자랑했다.
얼추 눈으로만 봐도 외부에 노출된 피부란 피부에 전부 위장크림이 꼼꼼하게 발려져 있었다.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위장 상태는 가장 먼저 보이는 훈련의 지표 중 하나다.
그런 와중에 병사들이 구석구석에 위장 크림을 바른 채로 훈련에 임하고 있으니…… 연대장으로선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위장 하나 잘했다고 모든 것들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겉모습만 보러 오고자 이곳까지 직접 온 게 아니니 말이다.
CP 텐트 앞에 도착한 연대장 일행.
그곳에는 때마침 이들을 기다리던 한 남자가 대기 중이었다.
“충성!”
“자네는…….”
“상사 강필두! 행정보급관을 맡고 있습니다!”
“행보관이구먼. 듣자 하니 예전에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하던데, 이제 좀 괜찮은가?”
“예, 멀쩡합니다.”
“다행이군.”
행보관의 부상 소식은 연대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행보관 직위에 복귀한 강필두의 모습에 연대장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뒤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대대장이 넌지시 한 마디를 보탰다.
“부대를 아주 잘 이끌어가고 있는 행보관입니다. 일 처리도 깔끔하고, 병사들에게도 많은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존경받는 상관만큼 좋은 군인도 없지. 훌륭하구먼.”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대대장의 나이스 어시스트.
필두가 고맙다는 식으로 눈빛을 보내자, 대대장이 몰래 엄지를 척! 하며 세웠다.
대대장으로선 당연한 보답을 한 셈이었다. 그간 대대에서 필두가 보여준 활약상만 놓고 봐도 그가 얼마나 능력 있는 행보관인지 충분히 잘 알 수 있었다.
물론 사고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나 큰 사고를 겪고 난 이후, 그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약간 의아한 면도 들긴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의 행태가 바뀌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나 포대장, 대대장으로선 더더욱.
“가만 있자…… 이거, 훈련용 수류탄인가?”
“예, 그렇습니다.”
고이 보관되어 있는 훈련용 수류탄을 거머쥔 연대장.
그러더니 이내 어느 한 지점을 응시했다.
“병사들이 얼마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 한번 보도록 할까.”
“……!”
순간 대대장과 포대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연대장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안전핀을 뽑은 직후.
있는 힘을 다해 수류탄을 던졌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통보도 없이 날아드는 수류탄.
과연 병사들은 어떤 식으로 이 연대장의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인가.
대대장과 포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동시에 퍼엉! 하는 단발적인 소리가 퍼져 나갔다.
“아아.”
확성기를 든 연대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포대 진영 한가운데에 적 생화학 포탄이 낙하했다. 상황조치에 들어가 보도록.”
고작해야 이 말뿐이었다.
하나 병사들은 당황해 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연대장의 말과 동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외쳤다.
“적포탄 낙하!”
“가스, 가스, 가스!”
“가스! 가스! 가스!”
서로 입을 맞춘 듯 가스라는 단어를 세 번 외치면서 빠르게 방독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란색의 연기.
한 발뿐이라서 연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상황조치훈련이기 때문에 실제로 연대장의 말마따나 생화학 포탄이 진영 근처에 떨어졌다고 가장하고 행동해야 했다.
K-2, 혹은 K-1이 땅바닥에 닿지 않게 무릎 위에 올려놓은 병사들.
이윽고 최대한 빠르게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무조건 빨리 써야 한다! 자칫 너무 늦은 행동을 보인다면 연대장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포상휴가는 물 건너 간다!’
‘어떻게든 해내야 해!’
병사들이 이를 잘근 깨물었다.
현재 그들을 지탱하고 있는 건 포상휴가에 대한 강한 열망. 그리고 악바리였다.
화학전 상황이 펼쳐지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물품들이 웬만해선 지면에 닿지 않게끔 조처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방독면의 정화통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보호두건을 두른 뒤에 최종적으로 끈 처리를 하면 된다.
모든 병사가 30초 이내에 방독면 보호두건까지 착용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선보였다.
중간에 아슬아슬한 병사들도 있긴 했지만, 포상휴가를 향한 열정으로 어떻게든 극복을 해냈다.
“오…….”
연대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가 확성기를 통해서 상황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반응 속도가 여타 다른 부대에 비해 상당히 빨랐다.
게다가 모든 병사들이 망설임 없이 방독면을 착용했다.
판쵸우의를 착용하며 혹시 모를 추가 화학 오염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깔끔한 상황조치에 연대장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훈련 상태가 상당히 우수하군.”
“감사합니다!”
대대장의 얼굴에, 그리고 가슴에 감격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대대장이 봐도 완벽했다.
기습적인 훈련 상황을 줬지만 병사들은 당혹감에 휩싸이지 않았다. 마치 연대장이 이런 시련을 내려줄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나 그것도 잠시.
“어디 한번 더 욕심을 내볼까.”
연대장이 어디론가 통화를 시작했다.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대대장과 포대장.
“시작하게.”
긴 대화 없이 그저 짧은 말로 통화를 마무리 짓는 연대장이었다.
‘도대체 뭘…….’
‘……시작하라는 거지?’
그 불안감은 머지않아 한 병사의 목소리에 의해 현실이 되었다.
“11시 방향에 대항군 출연!”
“뭐어?”
“대항군이라고?”
대대장과 포대장이 절로 새된 비명을 질렀다.
대항군이라니. 대대에서는 그런 인력을 따로 배치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뻔하지 않은가.
범인은 연대장밖에 없다.
“나 혼자만 덜렁 오기 좀 그래서 말이야. 지인들도 좀 데려왔네.”
연대장의 입에서 불길한 말이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