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37화 (37/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7화

제10장. 대항군과의 대결(1)

한창 9090대대 제1포대가 3993 진지에서 방열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무렵.

“어디 보자…… 9090대대란 말이지.”

“예, 그렇습니다!”

연대장의 시선이 군용 수첩 쪽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 방문하게 될 부대는 9090대대다.

그러나 대대에는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목적은 제1포대가 현재 진행 중인 포대전술훈련이 얼마나 잘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함이 위함이니까.

상부의 지침사항으로 내려온 것 중 하나가 바로 ‘실전과 같은 훈련’이었다.

특히나 북한의 도발이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기에 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훈련의 난도를 올리라는 국방부 장관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장관의 명령이었기에 더 신중하게 명령 사항을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연대장도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대가 훈련을 할 때마다 직접 부대를 방문해서 얼마나 규율과 절차에 맞춰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방심하고 있다가 본부에서 직접 검열이라도 나오는 순간, 털리기 쉬우니 말이다.

“차 대기시키도록.”

“네!”

야전상의와 베레모를 챙긴 뒤, 앞에 대기 중인 레토나에 탑승한 연대장.

연대장의 출격과 동시에 덩달아 연대 상황실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대장님은?”

“지금 레토나 타고 나가시는 중입니다. 위병소에서 방금 막 연락 왔습니다!”

“9090대대에 알려! 연대장님 지금 막 나가셨다고!”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의 소재지는 상당히 중요하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불쑥 상관이 튀어나와 기습 순찰을 감행한다면, 대다수의 부대는 털리기 십상이다.

먼지 하나 털어서 안 나오는 그런 청렴결백한 부대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편, 연대 상황실로부터 연락을 받은 대대 간부 중 한 명이 포대장에게 곧장 연락을 돌렸다.

-연대장님, 이제 막 출발하셨다고 합니다. 곧 대대 들리셨다가 바로 대대장님과 함께 3993 진지로 가실 거 같습니다.

“알았어.”

포대장이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9090대대를 찾은 연대장의 최종 목표는 바로 이곳, 3993 진지다.

“전포대장! 방열 진행 상황 확인하고, 다 된 포반부터 CP 텐트 앞으로 전원 집합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연대장의 방문 소식에 포대전술훈련 역시 점점 더 박차를 가해가기 시작했다.

* * *

곡괭이를 짊어진 전도혁이 있는 힘을 다해 울퉁불퉁한 지면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았다.

날카로운 곡괭이의 끝이 깊숙하게 지면 속에 박혔다.

이윽고 요령 있게 앞뒤로 흔들면서 곡괭이를 다시 수거하자, 전도혁의 일격으로 잔뜩 헤집어진 흙과 돌멩이들이 무방비 상태를 뽐냈다.

그렇게 두어 차례 전도혁의 신들린 곡괭이질이 펼쳐진 뒤.

“투입!”

“투입!”

소진언의 명령에 따라 하나포 분대원들이 일제히 삽을 든 채 땅을 까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도혁은 가벼운 호흡을 내쉬며 빠르게 체력을 회복해 나갔다.

자키 띄우기에 이어서 곡괭이질까지.

하나같이 전부 다 엄청난 체력과 근력을 요하는 노가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전도혁은 오히려 자신이 정성태의 빈자리 메꾸기를 자처하며 대활약을 펼쳐가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하나포가 방열 순위 꼴찌를 차지하게 된다면, 내기는 둘째치더라더 강필두에게 무슨 쓴소리와 보복을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혁은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도혁의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소진언과 김조항.

그들은 그저 전도혁이 ‘그렇게나 내기에서 이기고 싶은 건가…….’라는 감탄사를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그렇게 전도혁의 대활약으로 하나포 방열이 마침내 끝이 나게 되었다.

“여기는 하나포라 알리고 방열 준비 끝났다는 통보. 수신 양호한지!”

-하나포 수신 양호.

“양호!”

소진언의 최종 보고로 하나포도 드디어 방열을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하나포의 방열 순위는 2위에 그쳤다.

1위는 에이스 포반 중 하나인 삼포였다.

그래도 많이 선전했다. 일 잘하는 정성태가 빠졌음에도 6개 포반 중 2위라는 성적을 거뒀으면, 양호한 편이었다.

“꼴찌는 아니니까 다행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소진언의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하는 김조항.

뒤이어 그가 옆에서 천천히 호흡을 고르는 전도혁에게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도혁아, 이거 마셔라.”

“이게 뭡니까?”

“추진했던 것 중에서 내가 몰래 꽁쳐둔 콜라다. 마셔라.”

“……정말 마셔도 됩니까? 김조항 상병님 것이지 않습니까.”

“네가 고생해 준 덕분에 꼴찌에서 벗어났으니까. 돈도 아꼈고, 하나포의 명예도 지켰고. 그것에 비하면 콜라 한 캔 정도는 아깝지 않지.”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그래.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

칭찬과 함께 전도혁의 어깨도 가볍게 토닥여줬다.

그의 어깨가 이렇게까지 듬직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드리무어가 강필두로 환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도혁은 포대의 대표적인 골칫덩어리였다.

하나 지금의 전도혁은 사뭇 달랐다.

하나포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 만약 전도혁이 없었더라면, 정성태의 부상과 함께 하나포는 여지없는 꼴찌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전도혁이 자키 띄우기와 더불어 가신 발톱 묻기를 위한 땅까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줬기 때문에 2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성태 녀석은 어찌 되었으려나.”

방열이 끝나고 난 이후, 자연스럽게 정성태의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걱정어린 목소리를 내는 소진언의 말에 따라 부대원들의 머릿속에도 자연스럽게 정성태라는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

그간 방열 준비에 집중하느라 미처 정성태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훈련이 있을 때마다 매번 적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정성태 일병. 지금쯤이면 대대로 들어가 부상 치료를 받고 있으리라.

하나 그것도 잠시.

“소진언 병장님. 저거…… 성태 아닙니까?”

“엉?”

김조항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소진언.

동시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잖아?”

김조항의 말대로였다.

빠른 걸음으로 하나포 분대원들을 향해 다가오는 정성태. 그의 걸음걸이는 아까에 비해 가벼워 보였다.

“충성!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 미친놈아! 가서 치료나 받을 것이지, 뭐하러 왔냐?”

소진언이 정색을 하며 따지듯 물었다.

하나 정성태의 다음 이어지는 말에 오히려 입을 다물고 말았다.

“행보관님께서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훈련 계속 받아도 된다는 말씀도 같이했습니다.”

“행보관님이……?”

“예.”

“무슨 헛소리냐. 너, 부상당했잖아. 그 팔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도 너한테 훈련에 다시 참가하라고 말했다고?”

“네.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가서 확인하셔도 됩니다.”

“그 팔로 무슨 훈련을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팔은 이미 괜찮아졌습니다.”

“……뭐어??”

소진언을 비롯해 하나포 분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한눈에 봐도 하루아침에 나을 만한 부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고작해야 몇 분 만에 그 부상이 나았다고 말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상식적인 말들을 듣자, 이번에는 김조항이 나섰다.

“장난 그만 쳐라, 정성태. 선임들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아닙니다. 여기 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모양인지 직접 전투복 상의 소매를 걷어 상처 부위를 확인시켜주는 정성태.

그러자 분대원들 일동이 눈을 크게 깜빡였다.

“너, 팔이……?”

“멀쩡하잖아!”

“네, 맞습니다.”

조금 전에 봤던 거대한 붓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정성태의 컨디션에 분대원들의 말문이 절로 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길래 심각한 팔 부상이 어떻게 금방 나을 수 있게 되었단 말인가.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자초지종을 묻는 소진언에게 정성태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별건 없었습니다. 그냥 행보관님께서 저한테 눈 감아보시라고 하더니, 상처 부위를 몇 번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팔 확인해 보니 멀쩡해졌습니다.”

“이런 미친.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행보관님이 마법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신기를 부린다는 거냐.”

“저도 처음에는 못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입니다.”

“…….”

직접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어찌 눈앞의 현실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정성태는 소진언처럼 자주 장난기 어린 농담 식 발언을 즐겨 내뱉거나 하는 그런 병사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소위 말해서 ‘진지충’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매사에 진지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런 정성태가 자신의 팔 부상을 놓고 선임들을 상대로 농담 따먹기나 할 일은 결코 없었다.

“거 참…….”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에는 정성태의 부상이 완벽하게 치료되었다.

그것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분명 좋은 일이긴 하지만…….

과정이 영 석연치 않았다.

그 와중에 유독 달관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전도혁이었다.

‘행보관님의 소행일 줄 알았어.’

전도혁은 안 좋은 의미로 강필두가 지닌 기이한 힘을 직접 체험해 본 적이 있었다.

멧돼지를 맨손으로 제압하고, 자신과 소중한 일병에게 최면을 걸고.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 강필두인데, 까짓것 팔 부상 하나 치료했다고 뭐가 놀랍겠는가.

그저 ‘치료도 할 줄 아는구나.’ 하는 감탄만 절로 들 뿐이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소중한과 정성태는 필두의 출처를 알 수 없는 힘의 존재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해 보였다.

반면 전도혁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필두라는 남자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소진언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행보관님 손이 그렇게나 효과 좋은 약손일 줄이야. 나도 다음에 아프면 의무실 말고 행보관실로 가야겠다.”

“하하하, 그러다가 역으로 얼차려 당하는 거 아닙니까.”

“뭐 어때. 행보관님이라면 부상당한 부하를 나몰라라하진 않으시겠지.”

제법 큰일이 될 줄 알았던 정성태의 부상.

그러나 필두의 대활약으로 작은 헤프닝으로 끝나게 되었다.

이러는 와중에 분대원들이 잠시 쉬고 있는 장소로 온 하나포 반장이 다급하게 병사들을 찾았다.

“하나포! 전원 있냐!”

“병장 소진언! 무슨 일이십니까?”

“애들 인원 파악해 봐라.”

“예! 하나, 둘, 삼……하나포 다 있습니다.”

“그럼 당장 CP 텐트로 가자.”

“집합 명령입니까?”

“그래.”

하나포 반장의 얼굴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뭐가 그를 이렇게까지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소진언뿐만 아니라 하나포 분대원들 전부가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하나 그에 대한 해답은 머지 않아 바로 밝혀졌다.

“연대장님께서 출발하셨다고 한다. 아마 20분 내로 도착할 거 같다.”

“……!”

병사들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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