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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36화 (3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6화

제9장. 이동준비(7)

“거기! 밧줄 더 꽉 안 당기냐!”

“죄, 죄송합니다!”

날카롭게 들어오는 필두의 지적.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병사들에게 있어서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온몸을 찌르는 듯한 통각을 선사했다.

최근 보여준 행보관, 강필두의 행보는 병사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괜히 그의 눈 바깥에라도 나게 되는 순간, 어떠한 보복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포대 내에서도 골머리 썩히기로 유명했던 전도혁을 보라.

도대체 강필두가 무슨 짓을 했길래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전도혁을 개과천선 시켰을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9090대대 제1포대 미스터리 중 하나였다.

그만큼 강필두라는 남자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남자인지를 잘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병사들은 가급적이면 필두 앞에선 빠릿빠릿한 병사가 되기를 자처했다.

포대전술훈련에서도 예외는 없다.

괜히 후환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냥 훈련 때 한 번 개고생하면, 다음 훈련이 있을 때까지 몇 달은 편하게 보낼 수 있는데, 한 번 꼼수 부리겠다고 크나큰 위험부담을 자처할 필요는 없었다.

장진화를 비롯해 행정분과 인원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필두.

“농땡이 피우는 녀석, 한 놈이라도 걸리는 순간 그 즉시 각오해라. 내 말 알아듣겠지?”

“무,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시기 바랍니다!”

병사들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을 선보였다.

평소보다도 좀 더 빡세게 군기를 잡는 필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곧 연대장이 온다는 정보를 접수했기 때문이다.

오후 4시 반. 그때 연대장이 이곳 3993 진지로 올 예정이다.

기껏 먼 길을 달려온 연대장인데, 그 앞에서 당나라 군대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라도 했다간 지금까지 쌓아올린 필두의 공적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병사들을 좀 더 빡세게 굴릴 필요가 있어 보였다.

하나 그때.

예상치 못한 보고가 필두에게 도달했다.

“행보관님!”

‘이 목소리는…….’

하나포 소속, 김조항 상병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포대원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할 정도로 익숙해진 필두였기에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아도 자신을 찾는 병사가 김조항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슨 일이냐. 가만…….”

김조항과 함께 필두에게 다가온 병사, 정성태의 거동이 수상하다.

걸음걸이에는 이상이 없지만, 한쪽 팔의 움직임이 어색해 보였다.

“실은 말입니다.”

김조항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부상이냐.”

“……네.”

김조항의 말을 도중에 끊은 필두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왔다.

순간 말문이 막힌 김조항이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훈련 간에 부상이 발생하는 건 생각보다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필두 역시 최대한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하려 했다.

그럼에도 결국은 그가 피하고 싶었던 최악의 결과가 나오게 된 셈이었다.

“일단 팔 좀 보자.”

필두의 말에 따라 정성태가 조심스럽게 전투복 소매를 걷어 올렸다.

붓기가 아까에 비해서 훨씬 더 커진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니, 확실히 커졌다.

필두가 손을 뻗어 부상 부위를 살짝 어루만졌다.

그러자 동시에 정성태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튀어나왔다.

“으윽……!”

“많이 아프냐.”

“일병 정성태! 아, 아닙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합니다!”

“참을 만하긴 개뿔. 얼굴은 지금 당장 쓰려져도 할 말 없게 생겼구먼.”

“…….”

“김조항.”

“상병 김조항!”

“넌 됐다. 가서 빨리 방열 준비나 해라. 곧 있으면 연대장님 오신다고 하니까 그전까지 준비 마치도록 해라. 안 그래도 너, 사수잖냐.”

“소진언 병장이 대신해서 잠시 사수 봐주고 있습니다.”

“그 녀석이?”

“예. 뿐만 아니라 전도혁 일병도 힘내주고 있습니다.”

“그렇군. 전도혁도…….”

하기야. 필두가 언질을 늘어놓은 말이 있는데, 이 와중에도 전도혁이 농땡이를 부리거나 할 재간은 없을 터였다.

두 사람이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더라도 김조항이 빠진 구멍을 메꾸기에는 쉽지 않을 터였다.

하나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병사는 현재로선 김조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진언이야 어차피 다음 달에 전역하는 말년병장 아니겠는가. 게다가 전도혁이 체력과 힘이 좋다 하더라도 훈련이라는 건 결국 노하우 싸움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지침이 훈련의 질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하나포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김조항이 그들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성태는 내가 돌볼 테니까 넌 가서 일 봐라.”

“그래도 제가 있는 게…….”

“괜히 네가 있어봤자 성태 녀석, 마음만 불편할 뿐이다. 그런 건 내가 직접 말로 하기 전에 눈치껏 알아차리는 거다.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필두의 말이 맞다.

안 그래도 정성태는 자신이 훈련을 같이 뛸 수 없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와중에 하나포 차기 분대장인 김조항이 정성태를 간호한다는 명목하에 훈련에서 잠시 이탈해 있으면, 심적 부담감이 더욱 가중될 게 틀림없다.

필두의 충고에 뒤늦게나마 상황을 인지한 김조항이 거수경례를 해왔다.

“그럼 행보관님 말씀대로 가보겠습니다. 충성!”

“그래, 충성. 그리고 연대장님, 4시 반에 오신다니까 최소한 4시 이전까지는 방열 다 끝내놔라. 가신 발톱 안 보이게끔 파묻는 것도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비록 실사격 일정이 잡혀 있는 건 아니지만, 실사격에 버금갈 정도로 완벽한 준비를 해둘 필요는 있었다.

연대장이 오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마른 방열로 퉁치면 그만이지만, 연대장이 온다는 점 하나 때문에 모든 훈련이 FM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병사들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지만, 필두는 오히려 이것을 반겨했다.

처음으로 받는 훈련을 가라, AM 형식이 아닌 FM으로 받아두면 그 절차를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렇기에 필두는 내심 연대장의 방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병사들뿐만 아니라 대대 모든 간부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정성태.”

“일병 정성태!”

“일어나서 나 따라와라.”

필두가 손짓하며 그를 이끌었다.

정성태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9090대대 제1포대 CP 텐트.

안에선 행정분과 병사들이 한창 방한 작업을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충성!”

장진화가 필두를 보자마자 병사들을 대표해 거수경례를 했다.

가볍게 손사래를 친 필두가 행정분과 인원들에게 다른 명령을 하달했다.

“하던 작업 잠시 멈추고 배수로 작업부터 하고 있어라.”

“지금 말입니까?”

“그래.”

“예, 알겠습니다.”

필두의 명령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그것이 병사들이 필두에게 찍히지 않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장진화를 비롯해 3명의 병사가 자리를 비우자, 필두가 근처에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거기 의자 깔고 앉아라.”

“네.”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래도 필두의 명령이기에 일단은 따르고 보자는 심산으로 멀쩡한 손을 이용해 접이식 의자를 펼쳤다.

착석하자마자 필두가 그에게 다가갔다.

“다친 팔 내밀어 봐라.”

“알겠습니다.”

손을 뻗는 과정 역시 통증이 동반되었다.

무리하게 팔을 움직여서 그런 것일까. 점점 통각의 강도가 더더욱 세지는 듯한 느낌이 압박으로 다가왔다.

역시 김조항과 소진언의 말대로 너무 무리하지 말아야 했었던 것일까.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자신은 더 이상 이번 포대전술훈련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병사들이었더라면 부상을 핑계로 훈련에 빠질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을 속으로 품을지도 모른다. 하나 정성태는 그게 성격상으로 불가능하다.

전도혁과는 반대 성향을 지닌 정성태. 그래서 사실 그는 동기이면서도 전도혁의 태도 때문에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편, 필두가 오른손을 뻗어 정성태의 상처 부위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뒀다.

이윽고 필두가 경고하듯 말했다.

“눈 감아라.”

“잘못 들었습니다?”

“눈 꽉 감으라고 했다. 내가 눈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로 뜨지 마라. 만약 그러다가 나한테 걸리기라도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한다.”

꿀꺽!

절로 넘어가는 침이 정성태의 현재 심정을 대변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정성태.

그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필두의 손에서…… 푸른색의 오라가 펼쳐졌다.

기초 마법 중 하나인 치유 마법, 큐어(Cure)였다.

애초에 필두는 흑마술도 흑마술이지만, 모든 마법에 조예가 깊은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치유 마법 역시 간단히 발동시킬 수는 있었다.

흑마술사라는 이미지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내 주제에 치유술이라니. 웃음이 절로 나오는군.’

* * *

“으랴아아아아아압!”

우렁찬 괴성을 내뿜어대는 한 남자.

불끈거리는 팔뚝을 뽐내며 자키봉을 좌우로 마구 흔들어대는 전도혁의 움직임에 견인곡사포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렇지, 조금만 더 힘내라, 도혁아!”

“알겠숩니돠아아!”

이를 꽉 깨문 채 소진언의 응원에 답하는 전도혁.

악으로, 깡으로 나 홀로 풀(Full) 자키 띄우기를 달성해나가고 있었다.

솔직히 소진언은 제아무리 전도혁이라 하더라도 풀 자키 띄우기는 못할 거로 예상했었다.

하나 소진언의 예상보다 전도혁의 근력이 훨씬 더 상회했다.

마치 보란 듯이 그의 추측을 과감하게 부숴버린 전도혁의 근력과 체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아마 포대를…… 아니, 9090대대 전체를 통틀어도 전도혁처럼 혼자서 단시간 내에 자키를 완벽하게 띄우는 병사는 없을 것이다.

자키봉을 움켜쥔 채 마지막 사력을 다하는 순간.

덜컹!

자키봉이 포차 앞바퀴에 닿았다.

그때, 바로 사수 자리에서 내려온 소진언이 앞바퀴와 지면 사이의 거리를 체크했다.

“나이스! 고생했다, 전도혁.”

“이, 일병 전…… 도혁……헉헉…… 이 정도야…… 껌입니다!”

거친 호흡을 몰아쉰 전도혁이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관심병사에 들고 싶어서 있는 병, 없는 병 다 끌어모아 나 죽겠소! 하고 나자빠지던 그였으나, 지금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필두와의 만남을 통해 달라진 전도혁의 태도.

‘행보관님이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리셨길래…….’

그것은 여전히 베일아 쌓여 있었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닌가.

특히나 군대에서는 더더욱 이러한 법칙이 아주 잘 적용된다.

전도혁의 활약으로 자키 띄우기, 그리고 방위각 맞추기 등을 완성 짓게 된 하나포.

이제 남은 건 땅 까기다.

하나 이것 역시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3993 진지의 경우에는 지면이 상당히 안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 진지 중 하나다.

이미 병사들도 눈치채고 있을 테지만, 땅에 박혀 있는 돌멩이의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중에서는 사람 얼굴만 한 크기의 돌덩이도 자리 잡고 있다.

이것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으면 땅을 파는 데에도 커다란 지장이 생긴다.

그때, 멀리서 김조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진언 병장님! 다녀왔습니다!”

“성태는?”

“행보관님께서 맡아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별걱정 없겠네.”

정성태의 일은 이것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아직 하나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 어쩐담…….”

최악의 땅까기.

하나의 산을 넘었더니 또 하나의 산이 이들 앞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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