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3화
제9장. 이동준비(4)
포대 이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다수의 군용 차들이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포대 단위가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은 겉보기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자주포도 아니고 견인곡사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운전병의 중요도가 상당히 큰 포대 이동. 이 순간에도 포대장의 입은 바짝 말라 있었다.
불과 몇 분 전에 하나포 포상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던 사고가 있었던 탓일까. 포대장의 시선은 유독 하나포 운전병인 소중한에게로 향했다.
“하나포 반장. 들리나.”
-하사 한상철. 잘 들립니다.
“중한이 녀석, 운전 잘하는지 항상 확인하고, 옆에서 불안하다 싶으면 바로 나한테 알려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포대장님!
하나포 반장도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양인지 포대장에게 힘 있는 목소리를 실어 대답했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대장에게 보고를 하면 된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사건·사고는 사후 처리보다 사전 예방의 중요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특히나 포병같이 사소한 실수 하나가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보직은 더더욱 그렇다.
포대장도, 그리고 하나포 반장도 그렇지만, 실제로 소중한이 운전하고 가야 할 포차 뒤에 탑승해 있는 하나포 분대원들도 사뭇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중한이가 운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소진언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다.
군기 반장인 김조항도 그 점에 대해선 많은 걱정을 품고 있었지만, 그래도 행보관인 강필두가 입 다물고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여기서 더 이상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혹시나 포차가 전복되거나 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동안에도 나 홀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강제적으로 강필두의 충신이 된 전도혁이었다.
“도혁이, 너는 괜찮아 보인다?”
“그렇게 보입니까?”
다른 하나포 분대원들은 사주경계를 하는 와중에도 불안한 기색을 지울 수 없는데, 전도혁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얼굴 표정을 선보이고 있었다.
소진언의 물음에 전도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행보관님 말씀대로 아무런 사고 안 일어날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거야 행보관님이 괜히 우리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일지도 모르잖아. 중한이에겐 엄청난 운전 트라우마가 생긴 셈인데…….”
“저도 뭐라 설명을 드릴 방법이 없긴 합니다만, 여하튼 소중한 일병이 더 이상 조금 전의 사건을 빌미로 막 불안한 운전 실력을 보이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될 겁니다. 이건 제가 보장합니다.”
“……?”
사실 하나포 분대원들은 강필두의 말이 빈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그런 용도로 말이다.
그러나 전도혁은 달랐다.
허세일지도 모를 강필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맹목적인 믿음에 다른 하나포 분대원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었다. 전도혁이 A급을 넘어 S급 병사로 인정받기 위해 행동 방향성을 달리 잡은 시기부터 알게 모르게 행보관에 대한 인식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왔다고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병사들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강필두가 한 말을 어찌 덥석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운전병을 바꾸는 게 더 큰 사고 예방을 위해서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들이었지만, 강필두의 포스 때문에 그 생각을 선뜻 입 바깥으로 내뱉진 못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레토나가 먼저 이동을 개시했다.
한 번 흩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포차들이 이동을 시작한 마당에 더 이상은 분대원들이 필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에이 씨,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나름의 각오를 굳힌 하나포 분대원들이 이를 꽉 깨물었다.
평소 이동 훈련이었더라면 오랜만에 보는 외부 경치도 좀 보고, 사색에 잠기고 할 테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언제 또 소중한이 말썽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만약 이대로 넋 놓다가 또 한 번 더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위병소를 통과하기 시작하는 레토나. 이어 사격지휘소 분대원들을 태운 박스카가 그 뒤를 따랐다.
“충성!”
“충성.”
위병소 근무자들이 선탑자들에게 받들어 총 자세로 거수경례를 대신했다.
포차 중에서도 가장 먼저 이동하게 된 하나포 포차의 차례.
“…….”
“…….”
소중한과 전도혁을 제외하고 하나포 반장을 비롯해 다른 분대원들이 날이 잔뜩 들어선 표정으로 포차 주변을 내려다봤다.
9090대대 위병소는 앞에 하천을 통과할 수 있게끔 작은 다리가 마련되어 있다.
다리의 폭이 워낙 좁은 탓에 포차 운전병들이 차를 몰기에 매우 어려워하는 난코스 중 하나로 언급되는 곳이기도 하다.
까딱하다가 잘못하기라도 하면, 포차 통째로 하천 밑을 향해 굴러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나오자마자 완전 난코스구먼!’
‘제발 무사 통과하기를, 제발!’
‘신이시여,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하나포 분대원들이 평소 발휘하지 않던 신앙심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전도혁은 여전히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중한의 운전 실력이라면 이 정도는 껌이라고 하며 가볍게 통과해 보일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평상시의 소중한이라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하나 분대원들과 간부가 알고 있는 오늘의 소중한은 자신의 운전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평소의 그가 아니다.
사고를 낼 뻔했던 불안감에 사로잡힌 소중한 일병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 그것도 잠시 뒤.
운전대를 잡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차를 몰아가기 시작하는 소중한의 모습에서 하나포 반장은 여유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브레이크 가동 없이 유유히 좁은 폭의 다리를 통과하는 하나포 포차.
뒷바퀴마저 무사히 다리를 통과해 안전 라인에 들어서자, 그제야 하나포 반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소중한이 슬쩍 하나포 반장을 바라보며 의아함을 담은 질문을 꺼냈다.
“왜 그러십니까? 하나포 반장님.”
“아, 아니다. 그냥…… 네가 통과 못 하면 어쩌려나 싶어서 걱정했다.”
“하하하! 너무 걱정이 심하시지 않습니까, 하나포 반장님! 저, 소중한입니다. 설마 제가 여기 다리를 못 통과하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말을 하려고 하다가 순간 헛숨을 삼키는 하나포 반장이었다.
강필두가 언질을 늘어놓은 게 있었다.
브레이크 사건에 대해선 절대로 입 바깥으로 꺼내지 마라.
특히나 소중한의 앞에선 더더욱!
그 말이 뒤늦게 떠오른 하나포 반장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편, 포차 뒤에 탑승해 있던 분대원들도 하나포 반장이 처음 선보였던 것처럼 각자만의 안도 섞인 한숨을 내쉬면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줌에 감사함을 표했다.
도로에 들어서자, 전도혁이 피식 웃음을 토했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냥 행보관님 말씀 믿으시면 이번 훈련은 문제없이 끝날 겁니다.”
“그, 그렇구먼…….”
도대체 강필두는 소중한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소중한이 다시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은 건 물론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필두에 대한 의구심은 더더욱 증폭되었다.
* * *
9090대대 제1포대가 이동을 개시할 때.
필두는 이들과 함께 포대 이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보다 한 발 먼저 3993 진지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포병들의 진지이동 순서에는 가장 먼저 되어야 할 일이 있다. 이동하기로 예정된 임시 진지에 먼저 정찰병을 파견해서 그곳에 방열방위각을 따고, 본대가 임시진지로 들어설 때 각 포반의 정찰병이 포차를 이끌어 미리 선점해둔 위치에 빠른 방열을 할 수 있게끔 이끌어야 한다.
편각을 장입해야 하는 사수 그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찰병들. 이들과 더불어 행정분과 인원들, 그리고 통제관이 탄 차량이 3993 진지에 먼저 도착을 했다.
“전원 하차한다. 하차!”
“하차!”
통제관의 말에 병사들이 복명복창하며 지면을 향해 뛰어내렸다.
한편, 선탑자 자리에서 하차한 필두가 통제관에게 다가갔다.
“언제 연대장님 오실지 모르니까 정찰병 임무, 하나부터 열까지 FM대로 수행하면서 훈련 절차에 임하도록.”
“예. 행보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대가 도착하기까지 앞서 30분이라는 여유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
그때까지 이들은 정찰병 임무를 소화하고 각 전포의 포가 자리를 잡을 위치와 포구의 방향까지 미리 선정을 해둬야 한다.
한편, 강필두는 행보관인 만큼 훈련 외적인 요소들을 책임져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오늘 하루, 이곳에서 병사들을 재울 텐트 자리를 물색하는 것.
“진화야.”
“병장 장진화!”
“잠깐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행정분과 분대장을 맡은 장진화가 빠르게 필두쪽으로 뛰어왔다.
다른 행정분과 소속 병사들은 정찰병들을 태우고 온 차량 뒤에 실려 있는 훈련 물자들을 내리는 별도의 임무를 하달받게 되었다.
적재 물자들을 내리는 게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상당한 노가다력을 뽐내는 일인 만큼 만만치 않다.
그 일에서 제외된 것만으로도 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는 장진화였다.
하나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3993 진지는 땅이 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지역이다. 큰 돌멩이도 사방에 박혀 있을뿐더러, 지면 자체도 울퉁불퉁해 평지임에도 걷기도 여긴 쉬운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필두는 빠른 걸음 속도를 선보이며 텐트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움직였다.
장진화가 미처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말이다.
그런 장진화의 모습을 보고도 필두가 얌전히 넘어갈 이유는 전혀 없었다.
“빨리빨리 못 움직이냐. 젊은 녀석이.”
“죄, 죄송합니다, 행보관님…… 헥헥……!”
그냥 걷기도 힘든 지면인데,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하는 빠른 걸음 속도를 내는 강필두를 무슨 수로 계속 쫓아간단 말인가.
심지어 필두는 장진화와 다르게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과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장진화도 나름대로 운동 좀 한다는 병사로도 잘 알려졌음에도 강필두의 걸음걸이조차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장진화의 나약한 모습에 필두가 절로 혀를 찼다.
“쯧쯧…… 운동 좀 더 해야겠구먼. 비실비실해서 데리고 다닐 수나 있겠나.”
“…….”
하루 일과가 끝날 때마다 개인정비 시간에 헬스장에서 매번 1시간 이상 시간을 보내는 장진화가 설마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운동을 전혀 안 하는 입장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면, 그나마 덜 억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진짜 행보관님, 어디 산에 가서 축지법 수련이라도 하고 오신 거 아니야?’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장진화는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