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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32화 (32/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2화

제9장. 이동준비(3)

마인드컨트롤(Mind control).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마법은 상당히 고난이도의 마법 실력을 요구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신적인 부분은 매우 민감하고, 그리고 예민하다. 그래서 실력 있는 마법사들도 정신 계통을 컨트롤하는 마법에 대해선 별로 자신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러나 필두는 다르다.

흑마술에 매진하던 그. 한때는 정신 마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고든 적도 있었다.

일시적으로나마 타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메리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디너스 대륙에서 소문난 흑마술사, 드리무어의 클라스는 차원 이동을 겪은 뒤에도 여전했다.

정신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소중한 일병.

한편, 필두의 손에서 검은 오라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시전할 마법은 ‘기억 조작’이다.

사고가 났을 때, 그 당시의 기억을 모조리 도려내 제거한다.

어찌 보면 단순무식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안 좋은 기억을 소멸시키는 것만큼 완벽한 치유 방법 또한 없다.

굳게 닫힌 필두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워낙 정교한 마법이었기에 제아무리 필두라 하더라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건 레디너스 대륙에서 마법을 사용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어려움 난도로 따진다면 단언컨대 지금이 가장 어렵다.

마나도 풍부하지 않을뿐더러, 차원을 이동하느라 그간 소모된 마냐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시간이 날 때마다 본래의 능력을 되찾기 위해 꾸준히 재활을 해왔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마법조차 시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밀하고 미세한 그의 컨트롤이 이어졌다.

만약 현직 마법사가 지금의 필두를 본다면, 입을 쩍하고 놀라움을 토해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후…….”

깊은 숨결을 토해낸 필두가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시간만 흐른 게 아니다.

그의 식은땀 역시 걸쭉하게 흘러내렸다.

겨울임에도 비 오듯 땀을 쏟아내는 필두가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아마 이 세계로 들어와서 가장 많은 집중력을 발휘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힘들군.”

본래 드리무어였을 시절의 실력으로도 발동시키기 쉬운 마법이 아니었을 터.

일단 성공적으로 마법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방심은 절대 금물. 혹여나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미리 테스트를 해보는 편이 좋다.

“어이, 소중한.”

“…….”

깊은 최면에 빠진 모양인지 필두의 목소리에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럴 때에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아주 특효약이!

“흡!”

오른손에 가볍게 힘을 준 필두.

천천히 소중한에게 다가가 이마에 손을 가져간 이후에 딱밤 자세를 취했다.

머지않아 ‘따아악!’ 하는 경쾌한 소리가 퍼졌다.

“아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하는 소중한 일병.

하기야. 방심하고 있던 와중에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 육체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 역시 동반되는 법이다.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필두의 딱밤이 너무나도 아프다.

아마 소중한이 인생을 살면서 가장 아프게 맞아본 딱밤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필두의 표정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이 녀석이, 면담하려고 하는데 잠이나 쳐 자고 있냐.”

“자, 잤다니…… 제가 말입니까?”

“그럼 네 꼴을 봐라. 안 잔 사람처럼 보이냐?”

“그, 그게……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꾸벅꾸벅 졸다가 막 일어난 사람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중한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감돌 뿐이었다.

‘이상하다. 포대장님하고 전포대장님이 나가시는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그 이후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 떠오르네.’

설령 잠에 빠졌다 하더라도 그 과정이라도 떠올라야 정상이다.

하나 자신이 어쩌다가 잠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사이에 기억이 백지가 되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필두가 주장하는 그대로 ‘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후딱 가서 이동 준비나 해라.”

“예, 알겠습니다!”

빠르게 행정반을 나서는 소중한.

문을 열고 허겁지겁 포상 쪽으로 달려 나가는 그의 모습에 포대장과 전포대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중한은 세상 다 산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녀석이 강필두와 몇 분 면담하고 난 이후에 저렇게나 생기가 넘치다니.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모르기 때문에 소중한에게는 소위 말해서 극약처방이 될 수 있었다.

한편, 행보관실을 나선 필두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중한이 녀석 앞에서 당분간은 ‘그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도록 하게끔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그거야 뭐…….”

굳이 성찬이 말하지 않아도 포대장도 그렇고 전포대장도 그렇고, 구태여 소중한에게 브레이크 고장 사건을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차량 고장 문제인데다가 안 그래도 심리적으로 많이 위기에 몰린 병사를 더더욱 닦달해 봤자 얻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계속된 갈굼에 견디다 못한 소중한이 최악의 선택을 할지도.

그것을 우려해서라도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직접적으로 브레이크 고장 사건을 언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소중한이 빨리 잊어줬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 바람은 드리무어의 흑마술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수단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하나포 반장. 나랑 같이 포상이나 가자.”

“포상이라면 어디를…….”

“어디긴. 중한이 녀석 따라 하나포 포상으로 간다. 바로 준비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하나포 반장을 데리고서 빠른 걸음으로 포상을 향하는 필두.

간부들에게 입막음을 시키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아직 목격자들인 하나포 분대원들이 남아 있다.

* * *

“충성!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포상에 도착한 소중한이 최고참인 소진언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어? 어…… 그래. 그보다 너, 괜찮냐?”

“무엇이 말입니까?”

“아니, 그게…….”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을 상을 하던 소중한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칫 잘못해서 사람을 치이게 할 뻔했지 않았는가. 게다가 덤으로 수송분과 에이스라는 자존심도 무참히 짓밟혔다.

방금의 사건으로 소중한은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나 소중한의 얼굴에는 절망이라든지 실망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는 싹 걷혀 있었다.

아까와는 너무나도 판이한 모습에 되려 하나포 분대원들이 당황하고 말았다.

‘뭐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 그러게 말입니다.’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하나포 분대원들.

그 와중에 전도혁의 뇌리를 스치는 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행정보급관 강필두.

‘어쩌면 또 행보관님이……!’

그는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는 남자다. 그 힘의 정체가 마법이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는 전도혁. 하지만 필두가 사고 이후 비상식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필두가 분명 무슨 수를 썼으리라.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필두가 저지른 짓이라고 의심할 무렵, 때마침 본인인 강필두가 하나포 반장과 함께 이곳 하나포 포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그래, 충성.”

병사들의 거수경례를 받아준 강필두의 시선이 소중한에게로 향했다.

“소중한.”

“일병 소중한!”

“곧 이동준비 재개할 거다. 포차에 타서 시동 걸어두도록 해라.”

필두의 말에 순간 병사들이 헛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포차에 탑승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던 소중한 아니었나.

그런데 갑자기 포차 운전을 맡으라니. 이건 무모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상황이 펼쳐졌다.

“예, 알겠습니다!”

“뭐어?”

“미, 미친!”

병사들의 입에서 각자 나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몇 분 전의 상황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중한의 대답이 씩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운전대조차 잡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소중한이 당찬 걸음으로 포차 운전석에 탑승했다.

수송분과 에이스라는 자부심을 품고 있을 당시의 그 모습과 동일했다.

“에이, 그래도 설마…….”

“그냥…… 타는 시늉만 내겠지 말입니다?”

“그, 그러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하나포 병사들의 추측은 머지않아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되었다.

부아아아앙!

포차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매캐한 연기가 마치 화산 폭발의 전조인 마냥 매섭게 뿜어져 나왔다.

시동까지 걸었다!

충분히 운전 가능한 상태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데에 성공한 소중한의 모습에 병사들뿐만 아니라 간부인 하나포 반장 역시 믿기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소리는……?”

“포, 포대장님! 중한이가 포차에 시동 걸고 운전대 잡고 있습니다!”

“뭐!”

사열대 앞으로 뛰쳐나온 전포대장과 포대장도 놀라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먼발치에 있는 하나포 포상쪽을 응시했다.

도대체 하나포 포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한편, 오로지 나 홀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던 인물, 강필두가 하나포 반장을 포함해 병사들에게 신신당부하듯 강조했다.

“이 시간부로 소중한 앞에서 브레이크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 즉시 영창 보낼 거다. 알겠냐?”

“아, 알겠습니다!”

“훈련 정상적으로 하고 싶다면, 너희도 포대전술훈련 끝날 때까지는 그 사건에 대해 잊고 있어라. 뒷수습은 훈련 마치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어차피 큰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송분과의 에이스, 소중한이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타격이 되어 돌아왔다.

하나 필두는 그 문제를 고작해야 십여 분에 불과한 면담 시간으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병사들도, 그리고 간부들도 제각각 추론을 해봤지만,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저 필두의 심리치료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 * *

“포대, 이동 준비!”

“이동 준비!”

필두의 기억 조작 마법으로 소중한이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

지금부터는 진지로 이동해야 한다.

이들이 이동해야 할 진지는 3993 진지. 차량으로 가면 대략 40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진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민간 차량을 기준으로 산출된 시간일 뿐, 155㎜ 견인곡사포를 단 포차의 느린 속도를 고려한다면, 최소 1시간 이상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가는 길이 꽤 험난하다.

그렇기에 각 차량의 운전석, 선탑자석에는 사뭇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1포대 레토나에 탑승한 포대장이 P96K를 통해 각 선탑자들에게 외쳤다.

“각 차량 선탑자들, 들리는가.”

“하나포 감도 양호.”

“둘포 감도 양호.”

“삼포 양호.”

“넷포…….”

각 선탑자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포대장이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외쳤다.

“지금부터 포대 이동을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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