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1화
제9장. 이동준비(2)
포차에서 손을 뗀 필두가 옅은 한숨을 토해냈다.
사실 그렇게까지 힘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갑작스럽게 마법을 발동시킨 것 때문에 오는 일시적인 피로였다.
마법사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고도의 정신을 집중해 마나를 다루고, 그것을 활용해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마법사라는 직종이다.
그런데 캐스팅이고 뭐고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톤 단위의 무게를 지닌 철 덩어리를 한 손으로 제압해야 하는 마법을 사용해 보라고 한다면, 과연 몇 명이나 이 긴급 미션을 통과할 수 있을까.
흑마술사로서 정점에 도달한 필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병사들의 눈에선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비칠 일은 없었다.
“해, 행보관님…… 팔 괜찮으십니까!”
“어, 그래. 멀쩡하다.”
엄청난 괴력으로 군용 트럭을 막은 것처럼 보였다.
강필두라는 사람이 이 정도로 천하장사일 줄이야. 듣도 보도 못했다.
“그보다 차량에 문제가 있는 거 같군.”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하나포 반장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한편, 절로 시동이 꺼진 포차 운전석에서 잔뜩 얼어붙은 소중한이 멍한 시선으로 브레이크를 내려다봤다.
분명 브레이크 고장이었다.
운에 좋게 멈추긴 했지만, 혹여나 인명 피해라든지 그런 게 발생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은 차량을 멈추게 한 원인이 필두의 마법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무언가와 부딪쳐 차량이 강제로 정지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설마…… 내가 사람이라도 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걱정거리가 다 들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보통 부상으론 끝나진 않을 터.
이 무거운 포차 바퀴에 깔리게 되면, 어쩌면 사망자가 나올 수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는 소중한.
그때, 하나포 반장이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소중한! 괜찮냐!”
“이, 일병 소중한…… 괜찮습니다! 그, 그보다 하나포 반장님…… 브,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서…….”
“그래, 나도 안다. 일단 차에서 내려와라.”
“네, 네!”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뒤에 하차를 서두르는 소중한 일병.
중간에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지만, 하나포 반장이 그를 부축한 덕분에 경미한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하나포 반장님.”
“괜찮다. 그보다 멀쩡한 거 같으니 다행이구나.”
“저야 뭐…… 호,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차에 치이거나 그런 건 아닙니까?”
“행보관님이 막아주셨다.”
“……잘못 들었습니다?”
소중한은 어떤 식으로 차량이 갑자기 정지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행보관, 강필두가 막아줬다니.
도통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런 소중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는 모양인지 하나포 반장이 재차 상황을 정리해 설명해 줬다.
“말 그대로다. 행보관님께서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손수 차량을 멈춰주셨다.”
“어, 어떻게 말입니까?”
“그냥 손으로 막으시더라.”
“……?”
설명을 듣긴 했지만, 오히려 못 들은 것만도 못하게 되었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지구 상에서 내로라하는 장사들도 맨손으로 포차를 정지시키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필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해냈다.
“아무튼 정말 대단하신 분이란 말이야.”
하나포 반장이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남자.
그자가 바로 강필두다.
* * *
다시 재점검에 들어가게 된 하나포 포차.
그 때문에 포대 이동 시간은 잠정적으로 연장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차량을 점검 중이던 수송부 인원들에게 다가온 필두가 주변을 기웃거리더니 이내 병사 중 한 명을 골라 물었다.
“뭐가 원인인지 좀 알아냈냐.”
“상병 강진석! 아직 정확하게 파악은 못 했습니다!”
“흠, 그러냐.”
“지금 당장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마 예비 포차를 이용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는 게 좋겠군.”
필두도 그 생각에는 동의했다.
설령 하나포 포차의 브레이크 고장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졌다 하더라도 이미 한번 문제를 일으킨 차량을 다시 끌고나가기에는 꽤 많은 위험부담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필두가 일시적으로 힘을 발휘해 크게 번질 수 있었던 사건을 그 자리에서 바로 무마시켰기에 망정이지, 이후에도 사고가 또다시 재발한다면 필두 혼자서 커버를 칠 수 없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험요소는 일찌감치 제거하는 편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포차 교체는 피해 갈 수 없는 해결 방책으로 보였다.
“알았다. 예비 포차 끌고 와라.”
“예, 알겠습니다!”
필두의 말에 따라 일부 수송분과 인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필두와 함께 차량 확인을 위해 재차 포상을 방문한 하나포 반장이 다시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필두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질문을 해왔다.
“행보관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뭐가.”
“그…… 오른팔 말입니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하나포 반장을 비롯해 하나포 분과 인원들 역시 행보관이 보여준 괴력이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와 아직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담담한 태도로 일관했다.
“멀쩡하지 않으면 내가 여기서 이렇고 돌아다니겠냐? 그보다 훈련에나 집중해라. 또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예, 알겠습니다!”
필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하나포 반장이 계속 그에게 괜찮냐고 압박을 넣기에도 난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뼈에 금이라도 갔거나 혹은 부러지기라도 했다면 필두로선 그 통증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필두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게 하나포 반장으로선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신 게 아니라 어디 폐관수련이라도 하고 오신 건가…… 이상하네.’
하나포 반장의 머릿속에는 점점 강필두라는 남자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필두의 행동이지만, 그래도 그의 활약 덕분에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점에 대해선 천만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포 포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커다란 일조를 한 필두.
하지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남아 있었다.
“행보관님! 크, 큰일 났습니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김조항 상병.
그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필두가 절로 일그러지는 미간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었다.
“또 뭐냐.”
“그게 말입니다…….”
숨을 고르던 김조항이 또 다른 트러블을 보고해 왔다.
“소중한 일병, 아무래도 오늘 운전 못 할 거 같습니다.”
* * *
필두의 활약으로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안감까지 진정시켜주진 못했다.
운전병으로서 뛰어난 운전 실력과 무사고 경력을 자랑해 오던 소중한 일병. 그러나 조금 전의 사고를 통해 불현듯 그에게 부담감이 밀려 들어왔다.
혹여나 아까처럼 같은 사고가 재차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특별히 필두가 마법을 이용해 해결해 주긴 했지만, 기적이 두 번 연속 발생해 줄 거란 믿음은 가급적이면 가지지 않는 편이 좋다.
미수로 그친 사고였지만, 소중한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압박감을 선사했다.
만약 이 정신상태로 운전을 하게 된다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소중한을 따로 행보관실로 부른 강필두.
그의 눈이 소중한을 뚫어져라 응시하기 시작했다.
‘글러 먹었군.’
한눈에 봐도 현재 소중한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그에게 운전을 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았다.
소중한 말고 포차 운전을 맡아줄 운전병이 없다는 점이었다.
수송분과 최고참은 말년 휴가를 나갔기 때문에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렇다고 전입을 해온 지 이제 2달밖에 되지 않은 신병을 포차 운전석에 앉히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소중한과 함께 행보관실에 자리를 잡은 포대장과 전포대장 역시 하나포 반장을 통해 포상에서 발생한 사건의 전황을 보고받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가 없었다.
강필두가 맨손으로 포차를 막아내다니.
하지만 그건 둘째치고, 지금 당장의 일부터 먼저 해결하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중한이한테 운전을 맡기는 건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전포대장의 말대로였다.
포대장도, 그리고 필두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했다.
그때, 전포대장이 추가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다른 포대에 운전병 지원을 요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운전병 지원이라…….”
포대장이 옅은 목소리로 전포대장에 제안한 해결책을 반복했다.
그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필두는 그 방법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하나포 포상에서 발생한 브레이크 고장 사건. 까닥하다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몰랐던 그 사건은 대대장에게 보고가 되긴 했지만, 그저 브레이크 고장이 확인되었다는 두루뭉술한 방식으로 보고되었을 뿐. 후진하는 포차 뒤에 병사들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는 상세한 정황은 보고에 포함되지 않았었다.
포대전술훈련 사이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대대장에게 가급적이면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소중한 일병이 갑작스럽게 운전을 못 하게 되어 타 부대에 운전병 지원을 요청했다는 말이 새어나간다면, 우선 의심부터 받게 될 것이다.
소중한 일병은 어째서 훈련 도중에 운전대를 잡지 못하게 되었을까?
만약 그런 문제점이 제기된다면, 어떤 식으로 해명을 하란 말인가.
만약 인명 피해에 관한 사실이 대대장의 귀에 흘러가기라도 한다면, 포대전술훈련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그게 필두의 속내였다.
“잠시 저에게 시간을 좀 주실 수 있습니까?”
필두가 포대장에게 양해를 구해왔다.
“어떤 시간 말씀이십니까?”
“중한이와 잠시 이야기 나눌 게 있어서 말입니다.”
심리 상담 같은 것일까.
그렇게 인지를 한 포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잠시 나가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대장님. 전포대장님.”
두 사람을 행보관실에서 내보내는 데에 성공한 강필두.
행보관과 단둘이 남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소중한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래. 운전하기가 두려워졌다, 그거지?”
“……예, 그렇습니다.”
“흐음.”
운전병이 운전하기를 두려워한다는 건 실로 큰 문제다.
게다가 소중한이 누구인가. 제1포대 수송분과 에이스라 불리던 병사 아니겠는가.
그의 자신감 저하는 포대전술훈련에서…… 아니, 앞으로 치러야 할 대대전술훈련, 기타 연대급 이상의 훈련에서도 크나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약해진 소중한의 정신상태를 다시금 중무장시킬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내가 해결해 주지.”
“행보관님이 어떻게…….”
그 말과 동시에 갑자기 소중한의 몸이 맥없이 축 늘어졌다.
흑마술사, 강필두의 마법이 다시금 시전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