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0화
제9장. 이동준비(1)
사열대 앞으로 온 전도혁.
그의 모습을 확인한 행보관, 강필두가 용무를 물었다.
“뭣 때문에 왔냐.”
“충성! 핫팩 수령하러 왔습니다!”
“하나포 건 저기 있으니까 가져가라.”
“예, 알겠습니다!”
한 분과에 배급되는 핫팩이라 하더라도 개인당 하나씩이었기 때문에 10개가 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한 명이 와서 가져가도 큰 무리는 없었다.
행보관, 강필두가 따로 분배한 핫팩 주머니를 하나 들쳐멘 전도혁.
말없이 하나포 쪽으로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괜히 필두와 오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 봤자 득 되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괴상한 소리나 듣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답이다.
핫팩을 들고 온 전도혁이 다시 포상으로 돌아와 분대원들에게 하나씩 분배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소진언 병장님.”
“어, 땡큐.”
말년병장이라 하더라도 이 추운 날에 포차 위에 몸을 실은 채 날카로운 겨울바람을 맞이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이럴 때에는 FDC 녀석들이 참 부럽단 말이야.”
불만을 토로하는 소진언 병장.
사격자휘병들은 포차가 아닌 박스카를 타고 이동을 한다.
그래서 이 추운 날에도 그렇게까지 걱정이 들진 않았다.
물론 여름에는 정반대의 입장이 되겠지만 말이다.
겨울에는 그 어떠한 보급품보다도 가치가 한없이 올라가는 게 바로 핫팩이다.
핫팩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다들, 하나씩 꼭 챙겨둬라. 괜히 포차 타고 가다가 감기 걸리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하나포 병사들이 기운차게 외쳤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행정반 방송에서 이동 준비를 알려왔다.
-전 포반은 지금 즉시 이동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동 준비!”
“이동 준비! 서둘러!”
“군장 챙기고! 곡괭이하고 삽도 잊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이동 준비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포상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포대원들이 빠르게 움직임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비단 전포뿐만이 아니었다.
이동 준비 명령이 떨어지면 전포 못지않게 고생하는 분과가 있었다.
바로 수송분과다.
* * *
“하나포, 올라가겠습니다!”
“오케이! 바로 출발해라!”
“예!”
하나포 운전병, 소중한 일병이 곧장 운전석에 올랐다.
이윽고 시동을 건 채 능숙하게 운전대를 꺾으며 제1포대 쪽을 향해 트럭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1개 포대가 움직일 때에는 기본적으로 견인곡사포를 매달고 이동해야 할 군용트럭 여섯 대가 필요하다.
각 포반에는 전담 운전병이 포진되어 있고, 이동 준비 명령이 떨어지면 그에 따라 바로 수송대대에서 배차가 된 트럭을 가지고 각 포상별로 향하게 된다.
소중한도 마찬가지였다.
일병임에도 능숙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는 소중한.
입대를 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운전을 배워온 그였기 때문에 차량을 모는 것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사회에서 몰았던 차와 군대에서 몰게 된 차의 차종이 완전히 상반되긴 하지만, 그래도 운전 한 번 못해본 이와 다르게 주기적으로 운전을 접해온 소중한이었기에 동기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전을 배울 수 있었다.
그 결과, 하나포 운전병으로 발탁되었다.
하나포 운전병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동 시에도 하나포가 다른 분과에 비해 선두로 이동을 해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동 준비를 마쳐야 했다.
일병임에도 선두 차량을 맡는 소중한. 그럼에도 여태까지 그는 단 한 번의 사고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수송부의 에이스! 그게 바로 소중한 일병이다.
부르르르릉!
메케한 매연이 트럭 위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거대한 차량.
튼튼함을 위주로 설계된 덕분에 사실 승차감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주 고장도 난다. 그래서 매번 수송분과가 하는 일이 바로 차량 정비였다.
물론 매번 정비한다 하더라도 차량이 언제나 베스트 컨디션을 유지하진 않았다.
막상 훈련에 돌입하면 꼭 고장 나는 차량이 한 대씩은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것을 대비해 예비 포차까지 배차를 신청해놓긴 한다.
그러나 오늘은 따로 문제가 발생한 포차는 보이지 않았다.
예정대로 각 포차가 제1포대 포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중한이 이끄는 하나포 전담 차량이 포상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 김조항이 포상 안에 있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포차 옵니다.”
“벌써? 역시 소중한이구먼!”
다른 포반의 포차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소중한 혼자서 유일하게 포상 앞에 포차를 정차시켰다.
“충성!”
제1포대 최고참인 소진언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소중한.
흡족한 미소를 지은 소진언이 그의 거수경례를 받아주며 칭찬의 말을 건넸다.
“빠르다, 빨라! 과연 수송부 에이스!”
“하하, 감사합니다. 포는 바로 걸면 됩니까?”
“아니, 아직 걸라는 명령까진 안 내려왔어. 바로 걸 수 있게끔 준비만 해놓으라고 하더라.”
“그렇습니까.”
“아, 그리고 이거 받아라.”
“이게 뭡니까?”
소진언으로부터 작은 봉지 하나를 받은 소중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핫팩이다.”
“핫팩? 저녁에 분배될 예정 아니었습니까?”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한 개는 미리 분배했더라. 네 것도 하나 챙겨뒀으니까 가지고 있어라.”
“그래도 전 어차피 운전하는데 굳이 필요가…….”
“얌마. 네 손과 네 발에 우리 목숨이 걸려 있잖냐. 혹여나 운전하다가 손이라도 얼면 큰일이니까 우선은 가지고 있어.”
“하하, 네.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여기 9090 대대에서 저만큼 운전 잘하는 사람 없으니까요!”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소중한이었다.
하기야. 그는 이런 당당한 모습과 어울리게 출중한 운전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진언을 비롯해 하나포 분과 그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아무튼 이동 잘 부탁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나포 인원들이 포를 걸기 바로 직전 단계까지 이동 준비를 마칠 무렵.
포반장이 오랜만에 포상에 얼굴을 비췄다.
“충성!”
간부의 등장에 분주히 이동 준비를 서두르던 손길을 잠시 멈춘 김조항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했다.
가볍게 손을 들어주며 그의 거수경례에 대한 화답을 한 포반장이 빠르게 포상 안쪽을 살폈다.
“이동 준비는?”
“거의 다 끝나갑니다.”
“30분 뒤에 출발할 거 같으니까 포까지 미리 다 걸어두자.”
“예, 알겠습니다. 전원 집합! 모여서 가신 든다!”
“네!”
김조항의 말에 따라 병사들이 일제히 몰려들기 시작했다.
포를 걸기 위해선 병사들이 직접 가신을 들어 포차에 곡사포를 걸 수 있게끔 알맞은 높이까지 손수 들어 올려야 했다.
최소 4명 이상의 인원들이 있는 힘을 다해야 겨우 들 수 있는 155㎜ 견인곡사포의 가신.
무게가 톤 단위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 밑에 발이 찧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부상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하며 이동 준비를 해야 했다.
포병은 자잘한 부상보다 큰 부상이 발생할 위험이 컸다.
특히나 훈련 간에 이러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행보관, 강필두도 이미 행동을 개시했다.
하나포 포차가 가장 먼저 포상에 도착한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필두의 걸음이 빨라졌다.
포반장의 뒤를 이어 포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강필두.
그의 등장에 이번에는 하나포 포반장이 대표로 거수경례를 했다.
“충성!”
“충성. 포차 거는 중인가.”
“예.”
“조심해서 움직이도록.”
“알겠습니다. 최대한 주의하겠습니다.”
두 간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김조항을 비롯해 하나포 인원 6명이 각각 하나의 가신에 달라붙었다.
“허리 최대한 펴라!”
“하나, 둘, 삼!”
“삼!”
포병 숫자를 외치며 가신을 들어 올리는 장병들.
견인곡사포 자체가 워낙 무거워서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최대한 허리를 펴는 게 요령이다.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힘을 과신하다가 허리가 나간 병사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요령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합당한 최적의 방법을 고안하고 고안해 만들어낸 방법이기에 가급적이면 따르는 것이 좋다.
병사들이 가신을 들자마자 포반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중한아! 천천히 후진해라!”
“예, 알겠습니다!”
신호를 받은 소중한이 천천히 후진 기어를 넣어 차량을 이동시켰다.
워낙 덩치가 큰 포차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정말로 느릿하게 후진을 해야 했다.
물론 가신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고생한다는 건 소중한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급하게 후진을 하면 더 큰 사고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깔, 깔, 깔, 깔…….”
하나포 반장이 큰 목소리로 남은 거리를 신호로 알려줬다.
그의 지시대로 조금씩 움직여가는 하나포 포차.
그 순간.
“……어?”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소중한이었다.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움직이잖아!”
브레이크 고장이 발생한 것이다.
“포, 포반장님! 위험합니다!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듣습니다!”
“뭐어?”
가신과의 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차는 그 육중한 몸을 점점 더 가까이 붙여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신을 던지듯 놓아버리면 병사들의 발등이 가신 밑에 깔릴 것이다.
“이, 일단 내려! 급하게 놓지 말고 천천히!”
“아, 알겠습니다!”
가신을 내려놓기 시작하는 병사들.
하나 그전에 포차가 먼저 이들을 덮칠 것이다.
“젠장……!”
하나포 분대원들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 순간.
터어엉!
강한 마찰음이 이들의 귀를 강타했다.
가신의 끝과 포차 뒤쪽이 충돌하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아직 들고 있는 가신에는 아무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미 충돌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충격은 전달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건 바로 소진언이었다.
그가 목격한 것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강필두. 그가 오른손을 뻗어 포차의 후진을 막아버린 것이다.
“해, 행보관님?”
“빨리 가신이나 내리고 뒤로 물러서라!”
“그,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네놈들이 물러나 준다면 더 괜찮아질 거 같구나.”
“바,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황급히 가신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서는 병사들.
동시에 필두가 가볍게 호흡을 내쉬었다.
“흐읍!”
그러자 갑자기 차량의 시동이 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기세로 병사들을 덮치려 했던 거대한 포차가 순식간에 잠든 것이다.
“후…….”
호흡을 고르는 강필두.
한편, 맨손으로 포차의 후진을 막아낸 필두의 모습에 병사들은 그저 두 눈을 동그라니 뜬 채 어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악마가 되어 돌아왔다고 불리는 행보관, 강필두.
하지만 그는 이미 악마 수준을 뛰어넘은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