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9화
제8장. 첫 포대전술훈련(4)
“아무튼 이대로만 훈련 계속해 줬으면 좋겠군.”
대대장이 포대장의 어깨를 연신 토닥이며 충만해진 기대감을 가득 드러냈다.
그가 이런 노골적인 기대감을 드러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없었다.
이게 다 강필두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필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과를 어필하지 않았다.
여기서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지휘관인 포대장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도록.”
“예! 충성!”
포대장과 기타 제1포대 간부들이 대대장을 향해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이로써 대대장의 기습 순찰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훈련 자체가 종료된 건 아니었다.
포대전술훈련은 이제 막 시작된 셈이었으니까.
* * *
훈련이 진행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여전히 단독군장 차림을 유지한 채 식당으로 번갈아 향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도 실제 상황처럼!
대대장이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병력들을 전부 집합시킨 통제관이 식사 진행해 관한 사실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각 분대원 중에서 그룹을 두 개로 나눠 서로 번갈아 식사를 한다. 식사하는 인원들은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아닌 그룹은 포상에 남아 사주경계 한다. 언제 또 대대장님이 기습적으로 순찰을 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철저하게 근무서도록.”
“예, 알겠습니다!”
기껏 좋은 점수 다 따놨는데, 막판에 그 점수가 주식 폭락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오전의 노력이 헛되이 돌아갈 수도 있었다.
그건 병사들에게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다.
강필두가 대대장에게 뭔가 지적이라도 받는 병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병사는 군 생활 끝날 때까지 지옥을 맛보게 해줄 거로 엄포를 늘어놨는데, 그런 상황에서 어찌 훈련에 소홀히 임할 수 있겠는가.
되려 이것이 인생 마지막 훈련인 마냥 열심히,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임해야 했다.
특히나 소진언 같은 말년병장들은 더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말년휴가라도 잘린다면 그들은 맨정신으로 군 생활을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말년휴가가 짤리는 것으로 끝난다면야 그나마 다행일지도 몰랐다.
영창이라도 가 봐라. 안 그래도 휴가 없는 말년 생활에 군 복무 기간까지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그 이후의 일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여하튼 이번 포대전술훈련은 매우 중요하다. 대대장에게 찍히기 싫어서가 아닌, 강필두에게 찍히기 싫어서 강제적으로 열과 성의를 다하는 병사들의 눈에는 생기보단 공포감이 묻어나왔다.
통제관이 말한 그대로 자체적으로 조를 편성해 번갈아 식사를 하기 시작하는 병력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행보관이 간부들에게 물었다.
“너희는 식사 언제 할 거냐.”
“이제 막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행보관님도 저희와 같이 가시지 말입니다.”
“포대장님은?”
“대대장님이랑 같이 대대 간부들이랑 따로 먹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야…… 난 됐으니 너희가 먼저 먹고 와라. 난 그동안 행정반 지키고 있으마.”
“그럼 차라리 제가 행정반을…….”
통제관이 직접 나서서 교대를 희망했지만, 필두가 그를 만류했다.
“아니, 됐다. 너희끼리 밥 먹는데 내가 괜히 끼어 있으면 서로 불편할 테니까. 가서 먼저 먹고 와라.”
“……알겠습니다. 충성!”
“충성!”
마지못해 필두의 말을 받들기로 한 간부들이 곧장 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필두가 알아서 희생을 자처했으니, 최대한 빠르게 밥을 먹고 난 이후에 필두와 교대를 해주는 것이 부사관들이 그나마 해줄 수 있는 보답이었다.
한편, 부사관들과 병사들을 먼저 식당으로 내려보낸 필두는 곧장 행보관실로 걸음을 옮겼다.
의자에 몸을 기대자마자 군장을 벗은 후에 가볍게 몸을 풀었다.
“움직이는 데에 영 불편한 장구류군.”
차라리 기사단의 플레이트 갑옷이 안전을 지키는 데에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리란 생각을 품었다.
고작해야 단독군장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속으로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싶었던 필두였으나, 이내 그 속마음을 꾹 눌렀다.
여기서 괜히 태클을 걸어봤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 군대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군인으로서 활동을 해봤던 필두가 내린 결론이 있었다.
이곳은 꽉 막힌 곳이다.
융통성 따위는 찾아보기 매우 힘든 곳이다. 그리고 변화를 거부하는 곳이다.
물론 군대라는 게 보통은 그런 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여기는 너무 심했다.
짬이 계급을 앞서고, 시설 같은 건 노후화된 지 오래다.
지금 당장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들은 살아남지 못하리라.
“여기 포대 문제가 아니었어.”
군대 전체가 문제였다.
하나 아직 필두는 힘이 없다. 차라리 국방부 장관의 육신에 들어가기라도 했었다면 참으로 좋았을 테지만, 현실은 일개 포대의 행보관이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포대 내에서만큼은 강필두의 지위가 결코 낮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인간이란 생물은 욕망 덩어리 그 자체 아니겠는가.
게다가 필두는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흑마술사로 불렸다.
그에게 야망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대한민국 군대…… 이 전체를 내 손으로 주무르고 싶군.”
더욱 큰 야망을 품기 시작하는 필두.
흑막을 목표로 잡은 그의 속내를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 * *
모든 병력들, 그리고 간부들이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슬슬 이동준비 해야 할 거 같군.”
포대장이 손목시계를 바라보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예정된 임시 진지로 가 방열을 하고, 거기서 상황조치훈련을 몇 차례 거친 채 1박을 할 계획이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자야 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그래도 혹한기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강원도의 추운 날씨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기온이 어디까지 떨어질까 궁금할 정도로 엄청난 영하의 온도를 자랑하는 이곳.
특히나 군대는 유독 다른 장소에 비해 춥게 느껴진다.
몸도 추운데 마음마저 추운 곳.
그곳이 바로 군대 아니겠는가.
추운 날씨인데도 바깥에서 1박을 해야 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동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다.
돼지갑바천을 비롯해 병사들에게 필수적으로 내복과 깔깔이를 챙겨두라는 전파사항을 남겨뒀다.
뿐만 아니라 필두가 별도로 바깥에서 사 온 핫팩들도 저녁에 일 인당 3팩씩 지급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좀 달라졌다.
예상치 못한 한파가 이들을 덮쳤다. 아침부터 추위가 왠지 모르게 비범하지 않다 느껴지더니만, 결국 영하의 날씨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핫팩 지급 시간을 확 앞당길 필요가 있었다.
“행보관님.”
슬슬 이동 준비 명령을 내릴 생각을 하던 포대장이 행보관을 불렀다.
때마침 근처에서 앞으로의 훈련 일정을 재차 검토해 보고 있던 필두가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포대장님.”
“다름이 아니고…… 이제 곧 진지로 이동할 텐데, 그전에 병력들에게 미리 핫팩을 배급하면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핫팩이라…….”
견인곡사포 포병들이 이동하는 방식은 대략 이러했다.
5톤이라 불리는 군용 트럭의 뒤에 포를 건다. 그리고 방열이나 숙박에 필요한 훈련 물자들을 포차 위에 싣고서 병사들 역시 그 위에 탑승한다.
사방이 전부 오픈된 포탑 위에 탑승해야 했기 때문에 매서운 찬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절로 떨리는데, 거기에 달리는 차 위에서 만끽하는 바람의 날카로움은 살이 베일 듯한 느낌을 선사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것이 우려되어 미리 핫팩을 나눠주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물론 3개 전부 다 미리 분출하는 건 아닙니다. 하나씩 정도만 미리 줘도 될 거 같습니다만. 행보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핫팩의 개수가 무한은 아니었기에 분배를 하는 데에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나쁘지 않은 거 같습니다.”
포대장의 수정 의견에 찬성하는 강필두.
병사들의 건강 역시 중요했다.
이 나라는 레디너스 대륙과 달리 인권이 제대로 보장된 국가다. 그러는 와중에 혹여나 훈련을 받으면서 큰 사고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분명 필두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면 곤란하지.’
기껏 상관들에게 자신의, 그리고 자신이 맡은 부대의 좋은 이미지를 잔뜩 각인시켰는데, 여기서 안전사고 한 방으로 이 모든 것들을 날려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럼 바로 배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행보관님.”
“알겠습니다.”
핫팩은 행보관실에 보관되어 있었다.
필두가 걸음을 옮기는 순간, 행정분과에 소속되어 있는 병사 두 명이 절로 필두의 뒤를 따랐다.
그러자 필두가 그들을 저지했다.
“옮길 때 부를 테니 너희는 잠시 대기하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 두 명에게 대기 명령을 내리고 곧장 행보관실의 문을 닫는 필두.
혹시 몰라 마법으로 소리를 차단한 뒤에 문고리까지 걸어 잠궜다.
그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건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한 개씩 미리 분배를 하려는 핫팩. 이곳에 마법을 걸어두기 위해서였다.
분배해야 하는 핫팩의 개수는 90여 개가 넘어간다. 병사들에게 한 개씩만 미리 분배를 하기로 했음에도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병사들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핫팩의 효능에만 의존하는 편이 아니라 이것을 일시적으로 마법의 힘이 깃든 아티팩드로 만들어두는 편이 훨씬 더 좋았다.
목적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체온 유지다.
핫팩들을 책상 위에 나열시킨 필두.
백 개에 근접한 핫팩들을 올려놓은 뒤, 양손을 뻗어 정신을 집중했다.
핫팩의 효과를 3배 이상 올리고, 지속시간을 더 늘린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온기가 온몸에 스며들게끔 효과를 증대시킨다.
아티팩트를 만드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두라면 이런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희대의 흑마술사라 불리던 그 아니겠는가.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들과 마법 대결을 펼쳐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니고 있던 그인데, 이 정도 되는 아티팩트 만들기는 일 수준도 아니었다.
단지 아직 온전한 수준까지 마법력을 회복한 건 아니었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된 끝에 필두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되겠군.”
행보관실을 나선 뒤, 병사들에게 사열대 앞으로 핫팩들을 미리 옮겨둘 것을 지시했다.
이윽고 방송장비쪽으로 향한 필두가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를 마친 뒤, 방송을 통해 새로운 전파사항을 들려줬다.
“이동 도중에 사용할 핫팩을 개인당 한 개씩 나눠줄 예정이니 각 분과는 수령할 인원 선별해서 사열대 앞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한다.”
이로써 핫팩 준비까지 완벽하게 끝났다.
남은 것은 오늘 훈련의 하이라이트.
바로 진지 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