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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28화 (28/175)
  •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8화

    제8장. 첫 포대전술훈련(3)

    대대장이 대대지휘통제실을 벗어나 제1포대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 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를 기다린 제1포대 포대장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충성!”

    “훈련상황 체크하러 간다.”

    “예, 알겠습니다!”

    포대장을 비롯해 다른 간부들 역시 줄줄이 대대장의 뒤를 따랐다.

    대대와 제1포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위병소에서 가장 가까운 포대로는 본부포대, 그리고 순차적으로 제1포대, 제2포대, 제3포대가 있다.

    대대지휘통제실의 경우에는 본부포대의 앞에 있는 거대한 연병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대대지휘통제실에서 제1포대로 바로 향해봤자 채 5분이 안 걸린다.

    대대장이 먼저 대대지휘통제실 밖을 나섰을 때, 포대장이 근처 간부에게 슬쩍 눈치를 줬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그가 스마트폰을 잽싸게 꺼내 들었다.

    연락을 취한 곳은 바로 제1포대 행정반에서 대기 중인 통신반장.

    “어, 난데. 지금 대대장님, 그쪽으로 가고 있어. 포대장님도 같이 올라가시는 중이야. 오케이, 알았어.”

    제1포대에게 미리 대대장이 그쪽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말을 전해뒀다.

    이제 남은 건, 제대로 훈련 준비를 해왔음을 보여주는 일뿐이었다.

    대대장의 뒤를 따르는 포대장의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이 들었다.

    과연 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을까.

    전포대장과 행보관에게 여러 가지를 맡겨두긴 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가는 와중에 대대장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제1포대 행보관, 건강 상태는 좀 어떤가.”

    “많이 괜찮아진 거 같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보이거나 그런 것도 없고, 식사도 잘하시고. 그리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계십니다.”

    “운동을?”

    “예. 근무 끝나면 주기적으로 헬스장을 다니곤 한다고 들었습니다.”

    “헬스장이라…… 그러고 보니 사고가 나기 전의 행보관과 지금의 행보관은 뭔가 좀 달라 보이더군. 마치 다른 사람 같단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네. 사람이라는 게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달라지거나 하고 싶은 욕심 같은 게 늘 있으니까. 나도 그렇고. 아무튼, 지금의 행보관은 잘해주고 있어. 기대가 참으로 많이 되는군.”

    대대장의 입가에 연신 미소가 번졌다.

    사고가 나기 전의 강필두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간부였다.

    뭐랄까 아슬아슬하게 군 생활을 연명해 오는 듯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나 지금의 강필두는 다르다.

    180도 바뀐 그의 모습에 대대장조차도 때때로 놀랄 때가 있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대대장은 사고가 난 이후 달라진 강필두의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았다.

    병사들의 군기도 잡고, 업무에 빈틈이 없고.

    대대장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따르는 포대장도 강필두에게 보다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조만간, 대대장의 순찰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 * *

    먼발치에서 걸어오기 시작하는 대대장과 포대장, 그리고 기타 간부들의 모습이 필두의 시야에도 포착되었다.

    9090대대 모두가 두려워하는 남자, 대대장.

    그가 포대전술훈련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체크하기 위해 몸소 이곳까지 행차했다.

    “충성!”

    힘찬 거수경례로 대대장을 맞이하는 필두.

    기백 넘치는 그의 모습에 대대장 역시 거수경례로 받아줬다.

    “충성. 고생이 많으십니다. 힘드시진 않습니까?”

    “아닙니다. 고생이야 군인이라면 늘 하는 거니 크게 힘들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어디 보자…… 쭉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여섯 포가 가까우니 여기부터 둘러보는 게 좋겠군요.”

    “하하, 그렇게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본부포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가장 가까운 포상은 하나포가 아닌 여섯포가 된다.

    그래서 대대장도 여섯포부터 먼저 둘러보기를 희망한 것이다.

    대대장과 함께 여섯포 포상 안으로 접어들자, 병사들이 일제히 대대장을 맞이했다.

    “충! 성!”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쳤다.

    훈련이 진행되는 도중엔 지치게 마련.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목소리에 힘이 빠지곤 하지만, 여섯포 인원들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생기가 넘쳐 흘렀다.

    말 그대로 패기다.

    젊은이들이 보여줄 수 있는 넘치는 패기가 대대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충성. 훈련은 받을 만한가.”

    “예, 그렇습니다!”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포대 인원들을 쭉 둘러보던 와중에 대대장의 시선이 어느 한 이병에게로 향했다.

    “가만 있어보자. 자네는 지지난 주에 이 대대장이랑 면담했던 전입 신병 아니었나.”

    “이병 손기병! 예, 맞습니다!”

    이제 막 노란색 견장을 뗀 햇병아리 이등병, 손기병.

    그로서는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전입을 오자마자 바로 포대전술훈련을 뛸 수 있겠는가.

    물론 이보다 더한 케이스도 있다. 전입을 오고 대기기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혹한기나 유격훈련을 뛰는 이등병도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이때도 다시 한번 적용되었다.

    “인생 첫 포대급 훈련일 텐데. 힘들지 않나.”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훈련을 한번 겪고 나면 다음 훈련 때 제 밑에 후임이 들어왔을 때 당당하게 훈련에 대해 아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 기대됩니다!”

    “하하하, 그렇군! 좋아, 아주 좋아!”

    대대장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포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사들 교육이 아주 잘 되어 있구먼!”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포대장이 감격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연출에 불과했다.

    행보관, 강필두는 분명 대대장이 여섯포부터 순찰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필두는 포대장과 사전에 입을 맞춰 여섯포부터 돌게끔 대대장의 순찰 루트를 유도, 변경시킬 생각이었다.

    여섯포에는 최근에 전입을 해온 병사가 있었다.

    손기병. 그가 바로 제1포대 막내 중에서도 막내다.

    9090대대의 경우에는 훈련소에서 전입 신병이 발령을 받고 올 때, 주임원사와 대대장이 한 번씩 이들과 면담을 했다.

    가장 최근에 9090대대로 전입을 온 신병 라인이 바로 손기병과 그 동기 라인이었다.

    그래서 대대장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행보관은 대대장이 손기병을 알아볼 것이란 예상조차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여섯포 포상으로 점검을 진행할 당시, 손기병으로 불러 조금 전에 대대장한테 들려준 말을 잘 외웠다가 그대로 웅변하듯 외치라는 명령을 전달해뒀다.

    어려운 명령이 아니었기에 손기병은 쉽게 필두의 지시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대장에게 다시 한번 제1포대 부대, 병력 관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를 인지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행보관님이십니다!’

    포대장이 대대장 몰래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가볍게 미소로 화답하는 필두.

    하지만 아직 대대장의 순찰이 끝난 건 아니다.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할 뿐이니 말이다.

    * * *

    포상을 다 돈 대대장 일행.

    사격지휘통제실도 완벽했다.

    “기상제원산출표도 최근 것으로 유지시켜뒀습니다! 암구호 전파 역시 12시 되자마자 바로 전파할 예정입니다!”

    “음, 좋군.”

    FDC 분대장, 류태만이 이들이 해야 할 일정, 그리고 임무에 대해 빠르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이러한 것들을 잊지 않고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대장을 한없이 기쁘게 만들었다.

    임무 숙지. 이것은 병사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었다.

    검열관이 타 부대로 검열을 올 당시에도 병사들에게 항상 확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를 똑바로 숙지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점들이었다.

    이 부분을 완벽하게 클리어한 전포반과 FDC.

    하지만 아직 한 곳이 남아 있었다.

    “슬슬 초소로 가보도록 합시다.”

    “예!”

    포대장이 앞장서 대대장을 에스코트했다.

    필두 역시 이들과 함께 초소가 있는 산 언저리에 올라섰다.

    포상, 그리고 지휘통제실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신경 써야 할 장소가 바로 탄약고 초소다.

    생각을 해보라. 초소 근무자들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해 적군에게 탄약고 안에 있는 내용물들을 깡그리 다 털리기라도 한다면 이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전쟁이 날 경우에도 탄약고 초소의 중요도는 한없이 올라간다.

    그것을 고려한다면, 탄약고 초소 확인도 진행해야 했다.

    대대장이 올라서자마자 먼발치에서 초소 근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매기!”

    아직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근무자들은 실제로 대대장이 초소에 접근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었다.

    문어를 먼저 발설하는 경계 근무자.

    그 목소리에 대대장이 곧장 대답했다.

    “대대장이다.”

    “갈매기!”

    “대대장이라니까.”

    “다시 한번 묻는다. 갈매기!”

    “…….”

    어찌 보면 무례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사실 초소 근무자들은 자신들이 말을 거는 상대방이 대대장이라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지휘통제실을 통해서 대대장이 초소쪽으로 올라간다는 정보를 사전에 들었는데, 어찌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근무자들은 오로지 답어가 나올 때까지 문어만을 반복해 물었다.

    그때야 대대장이 초소 근무자들이 원하는 대답을 들려줬다.

    “차도.”

    “누구냐!”

    “대대장이다.”

    “용무는!”

    “초소 순찰이다.”

    “모습이 보이도록 10보 앞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 초소 근무자들의 모습이었다.

    수풀에서 나와 정체를 드러내는 대대장. 그제야 초소 근무자들이 대대장에게 예를 갖췄다.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하하하! 그래, 그래! 아주 잘하는군! 암! 근무를 설 때에는 설령 누가 온다 하더라도 절차와 과정을 엄수해야지. 암구호 묻고 대처하는 그런 방식, 아주 좋았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대대장이 초소 근무자들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다.

    이것 역시 필두가 계획했던 그대로였다.

    대대장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었다. 바로 목소리가 커야 한다는 점이었다.

    야간 때에는 물론 달라지겠지만, 주간 훈련이라든지 혹은 간부에게 거수경례를 할 때에도 무조건 목소리는 커야 된다는 게 대대장이 원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강필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병사들에게 목소리는 무조건 높이라는 말을 강조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아 대대장이 불만족을 표하기라도 한다면, 주말 쉬는 시간에 너희 입에서 우렁찬 비명이 튀어나오게 만들어준다는 협박은 덤이었다.

    강필두는 한다면 하는 남자다. 지금까지 그 모습들을 여지없이 보여왔는데, 병사들이 무슨 깡으로 ‘에이, 설마~’ 하며 가볍게 넘기겠는가.

    강필두의 무서움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병사들이었기에 영혼을 담아 목소리를 높여 대대장을 맞이했다.

    목과 손등, 귓속까지 칠해져 있는 분장도 그렇지만, 근무 태도라든지 훈련에 임하는 자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소리까지.

    어느 하나 대대장의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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