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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26화 (2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6화

제8장. 첫 포대전술훈련(1)

“화스트 페이스!”

우렁차게 울리는 병사들의 목소리.

이제 막 포대전술훈련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하나포 분대장인 소진언 자신의 포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사수! 빨리 내려가서 측각수랑 즉각사격준비태세 확립해! 그리고 나머지는 군장 들고서 포상으로 뛰어간다! 총부터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155㎜ 견인곡사포 포병으로서 실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초탄발사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이 났음을 가정하고서 받는 훈련이기에 초탄 발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휘통제실에서 포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포병은 포상으로 내려가 측각수와 함께 편각, 사각을 맞춘다.

그리고 제원을 장입해놓은 이후 언제든지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립을 시켜놓은 뒤에 군장과 치장물자들을 포상으로 옮긴다. 이것이 오늘, 9090대대 제1포대가 오전 내로 훈련을 받을 내용이었다.

“군장 빨리 올려! 게으름 피우지 말고!”

“포상으로 내려가면 바로 얼굴에 위장크림 발라라!”

“암구호 확인하고! 연대장님이 오늘 오실지, 내일 오실지 모르니까 철저하게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선임의 호된 쓴소리와 후임의 악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단 생활관만 바쁘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행정반도 마찬가지였다.

“총부터 수령해라! 어서!”

넷포 반장의 말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분과의 총들을 한꺼번에 수령해가기 시작했다.

본래는 개개인의 총을 남에게 함부로 맡기는 건 절대 금물이었다. 하나 이런 식으로 AM 방식이 이뤄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아무리 군대라 하더라도 상황에 맡게 융통성 있는 대처 능력을 보여줘야 더 효율적인 훈련을 소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6개나 되는 K-2를 양손 가득히 들어 올리는 전도혁. 역시 사회에서 운동깨나 했던 남자답게 힘쓰는 일은 전도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총기 왔습니다!”

“수고했다, 도혁아!”

소진언이 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네줬다.

사수를 맡은 김조항은 이미 다른 하나포 분대원들과 다르게 행정반에서 자신의 총만 챙기고 바로 포상으로 내려갔다. 아마 편각을 장입하고 있을 터였다.

뒷일은 나머지 포대원들의 몫이었다.

한편, 행정반에서 이 모든 상황을 응시하고 있던 필두가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장크림도 제대로 발라뒀다. 이제 행보관으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은 병사들이 무언가를 까먹고 간 게 있나, 어떠한 것을 빼먹었나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1생활관 안으로 들어선 필두.

하루 바깥에서 묶을 야영 준비물들은 군장에 싸서 포상으로 가지고 내려갔다.

남은 개인 물품들은 전부 더블백에 쌓은 뒤에 군장과 같이 포상에 놓아두면 된다.

막사 안에는 군용용품이 하나라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연대장이 와서 막사 상태를 확인하기라도 한다면…… 그리고 확인하던 도중에 군용 물품이 하나라도 나오게 된다면 마이너스를 당할 여지가 있다.

“…….”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다 체크를 해야 한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숨기기 귀찮은 물건들, 혹은 들켜서는 안 되는 민감한 물건들 같은 경우에는 어느 곳에 짱박아뒀을지.

“후우.”

천천히 호흡을 내쉬기 시작하는 필두.

그러더니 이내, 그의 눈동자에 검은색의 오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투시안.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마법 중 하나였다.

마법으로 관물대 안쪽이 훤히 보였다. 이 눈을 이용해 혹시나 남아 있을지 모르는 군용 물품들을 찾아내 제거한다.

“여기군.”

주인이 없는 관물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작은 서랍을 여는 순간, 목토시를 비롯해서 가죽 장갑, 계급장, 오바로크용 부대마크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 녀석들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처리하게 난감한 것들을 스스로 자진해서 떠맡을 양심 있는 분과는 없었다. 그렇다고 행정분과가 뒤처리를 전부 감당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감춰놓기’였다.

하나 이것들을 이대로 방치시킨다면 분명 큰 화를 불러올 것이다.

필두의 감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주변을 둘러보던 필두가 왼손을 뻗었다.

그의 몸동작과 함께 생활관의 문이 알아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문을 잠근 필두가 이번에는 오른손을 공중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 점점 푸른색의 마나 물결들이 형성되더니 이내 숨겨져 있던 다수의 군용 물품들이 마룻바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많기도 하다.”

살짝 짜증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병사들을 혼내기 전에 우선 이것들부터 처리하고 나서 혼내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

중지와 검지를 맞부딪쳐 따악! 소리가 나게끔 손가락을 튕기자, 필두의 바로 앞에 보라색의 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필두가 임시적으로 만든 차원이었다.

이윽고 군용 물품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알아서 움직이더니 보라색 원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다시피 했다.

임시 차원문은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물건들, 혹은 소유하기 힘든 물건들이 있을 때에는 보관용으로 사용되는 마법이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에도 유용하게 써먹던 마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 설마 이곳에 와서도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역시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른단 말이야.”

땅에 묻어놓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필두가 굳이 그런 번거로운 행동을 하겠는가?

천만에. 마법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잔여 군용품들을 일시적으로 다른 차원에 보관시키는 데에 성공한 필두.

2생활관 역시 1생활관과 마찬가지로 같은 방식을 통해 군용 물품들을 숨겨뒀다.

이제 연대장이 온다고 한들, 남아 있는 군용 물품들이 그들의 눈에 띄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연대장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생활관에서 뒤처리를 한 뒤 행정반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필두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통신반장, 구진정이 거수경례를 해왔다.

“행보관님, 곳 대대장님께서 내려오셔서 부대 둘러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냐. 구체적으로 언제.”

“11시 30분 정도에 오실 거 같습니다. 어차피 지금 지휘통제실에 계시니까 그쪽에서 만약 출발한다고 하시면 거기 있는 간부가 저한테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 반.

아직 30분이라는 여유 시간이 남아 있었다.

‘생활관에 갔을 때, 놈들이 짱박아놓은 군용 물품들이 다수 있었지. 아직은 놈들을 믿을 수가 없다.’

본래대로라면 행정반에 남아 훈련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숙지하는 것을 위주로 행동을 하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필두가 직접 몸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행정반에는 포대장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대대장이 오기 전까지 빠르게 포상을 비롯해 탄약고 초소, 그리고 사격지휘실까지 다 돌아보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잠시 나갔다 오마.”

“어디 가시는 겁니까?”

“병사들 경계 잘 서고 있는지 점검하러 간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그리고 대대장님 오신다는 연락 오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나한테 알려줘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구정진이 힘차게 대답했다.

연대장도 연대장이지만, 그렇다고 대대장이 점검을 온다는데 소홀하게 대비할 수는 없었다.

어찌보면 연대장보다도 대대장이 더 중요한 인물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직속상관 아니겠는가. 더 자주 얼굴을 보는 사람은 연대장이 아닌 대대장이다.

그렇기에 대대장의 순찰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첫 번째로 둘러볼 포상은 단연 하나포.

포상 입구로 접어든 필두의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호에서 사주경계를 서고 있던 선임병, 문나정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충성!”

“갈매기.”

“……?”

갑자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필두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정작 돌아온 대답은 조류 중 하나에 속하는 갈매기라는 단어였다.

그 순간, 문나정과 같은 호에 있던 전도혁이 빠른 판단력을 앞세우며 곧장 대답했다.

“차도!”

“아……!”

뒤늦게 필두의 ‘갈매기’라는 단어가 암구호 중 문어였음을 알아차린 문나정.

상병으로서 나름 짬밥 좀 먹었다고 본인 스스로 생각했던 문나정이었지만, 방금처럼 필두의 기습 문어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짧게 혀를 찬 필두가 매섭게 문나정을 노려봤다.

“암구호도 모르고 있었냐.”

“죄, 죄송합니다!”

여기서는 알고 있었다는 핑계 대신 솔직하게 말을 하는 편이 좋았다.

이것도 1년 이상 군인으로서 생활하며 얻은 노하우 중 하나였다.

어중간한 거짓말을 했다가 들킬 바에야 차라리 사과의 말을 들려주는 게 옳은 판단이다. 게다가 상대는 제1포대 내에서 짬 1순위라 불리는 행보관 아니겠는가.

문나정의 처사가 그나마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필두가 가벼운 한숨으로 처벌을 대신했다.

“나중에 대대장님이 와서 암구호 물어봤을 때 대답 못하면 그때는 각오해라.”

“무, 물론입니다!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필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살기가 뚝뚝 묻어나왔다.

만약 대대장 앞에서 암구호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자칫하다간 목숨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섬뜩함마저 감돌았다.

한편 전도혁은 필두의 이런 모습을 워낙 많이 봐왔던 터라 그나마 오싹한 느낌을 덜 받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괜히 악마 행보관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정말로 악마 같은 사기를 뿜어내고 다니는 터라 병사들은 필두를 악마 행보관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이게 되었다.

막 전입한 소위도 이런 냉철함은 뽐내지 못할 것이다.

하나포 포상 안으로 접어든 필두가 다시금 매서운 눈빛을 하기 시작했다.

필두가 왔다는 사실을 곧장 알아차린 소진언이 병사들을 대신해 거수경례를 해왔다.

“충성!”

“애들 데리고 포상 정리 한번 깔끔하게 해라. 곧 있으면 대대장님 오신다고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필두의 눈이 소진언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를 빤히 쳐다보던 필두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너, 위장 상태가 왜 그러냐.”

“위, 위장 말씀이십니까?”

나름 잘했다고 생각했던 소진언이었다.

위에서부터 검은색, 갈색, 녹색. 세 가지 색을, 그것도 농도 진하게 얼굴에 발랐는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필두의 성에 찰 정도로 완벽한 위장은 아니었다.

“목하고 귓속, 그리고 손등까지 전부 다 칠해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잘못 듣긴 뭘 잘못들어. 피부가 노출된 곳은 전부 예외없이 위장크림 바른다. 실시!”

“시, 실시!”

병사들이 위장 크림을 돼지기름이라 부르며 바르기 싫어한다는 사실은 이미 필두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그걸 안다 하더라도 필두가 어디 병사들의 편의를 봐줄 만한 인물이겠는가.

교통사고 이전의 강필두였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드리무어 앞에선 예외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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