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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25화 (25/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5화

제7장.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4)

일방적으로 관심병사 재조정을 하게 된 필두였지만, 졸지에 관심병사로 지정받게 된 병사들 그 누구도 필두의 말에 거역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속으로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드러나지 않은 약점, 치부를 말이다.

외부에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필두는 그들이 숨기고 싶은 진실을 캐내 정확하게 지적해 냈다.

어떤 방식을 사용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미스터리였다.

하나 필두의 이러한 방식을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납득하는 병사 한 명이 있었다.

강압적으로 필두의 충신이 된 남자, 전도혁이었다.

“행보관님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겁니다.”

포상에서 제초 작업을 하고 있던 전도혁이 마침 하나포 포상을 방문한 소진언에게 자신의 소견을 들려줬다.

그러자 소진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면이 많지만…… 여하튼 지금의 행보관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으실 분입니다. 소진언 병장님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야지. 그보다 너, 이번에 관심병사에서 벗어났더라?”

“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전도혁의 입에서 쓰디쓴 미소가 번졌다.

본래 그의 목표는 ‘2년간 군 생활 편하게 보내기’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관심병사를 지칭해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심지어 간부들조차도 손을 댈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관심병사를 연기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거짓 연기는 필두의 앞에서 전부 들통 나고 말았다.

되레 역풍을 맞아 A급 병사가 되라는 미션까지 부여받게 되었으니…… 당사자 입장에서 보자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안 한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다시 한번 무시무시한 멧돼지와 대면을 하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디서 무슨 잔기술을 배워 왔는지, 전도혁의 심신마저 컨트롤할 수 있으니 행보관의 존재가 더더욱 두려워졌다.

“아무튼 지금의 행보관님과 마주하는 건 가급적이면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제 말, 반드시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 어…… 알았다.”

전도혁이 자신을 위해 충고하는 것도 처음 들었다.

도대체 행보관과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경고를 하는 걸까.

소진언으로선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 *

그렇게 개인면담 업무를 전부 끝낸 필두.

평일이 지나고 다시 주말 오전의 시간이 다가오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

변함없이 병사들과 함께 교회로 내려가게 된 필두는 오늘도 아버지를 도와주기 위해 참석한 민혜정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필두 씨. 혹시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되시나요?”

“주말이라면…… 구체적으로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토요일 저녁이요. 저한테 영화 티켓이 두 장 들어왔는데, 같이 볼 수 있을까 해서요. 7시쯤 괜찮으세요?”

“7시라…….”

교통사고의 후유증 치료 명목하에 필두는 다음 달까지 당직사관 로테이션에 포함되지 않고 있었다.

약속을 잡아도 충분할 터.

그것도 그거지만, 설마 민혜정 측에서 먼저 데이트 신청이 들어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필두는 자신이 혜정에게 다정한 면모 같은 걸 어필한 적이 없다고 예상했었다.

그래서 연인으로서는 그냥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정도의 인연으로밖에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건 필두의 착각에 불과했다.

혜정의 속마음은 이랬다.

기간을 두고 좀 더 만나보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의도였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에 때마침 목사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은 모양인지 필두의 결단을 재촉했다.

“한번 같이 영화라도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행보관님. 우리 딸아이가 이토록 원하고 있는데. 이 아비를 생각해서라도 어울려 주시면 좋겠군요.”

“아, 아빠!”

민혜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목사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저녁이라는 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오전, 오후에는 부대로 주말 출근을 할 생각이었기에 퇴근 이후에 혜정과 영화를 보면 타이밍도 딱 맞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죠.”

“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하는 민혜정.

그런 모습에서도 귀여움이 묻어나왔다.

“그런데 또 공포영화입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 필두의 말에 혜정의 얼굴이 다시금 달아올랐다.

창피함과 수치심 때문이었다.

“아, 아니요! 다른 거예요.”

“하하, 그렇군요.”

농담 삼아 한 말이었지만, 혜정에겐 꽤 짓궂은 농담으로 다가왔다.

* * *

일요일 저녁.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후임급 병사들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 들기 시작했다.

반면, 선임급들은 긴장감보다는 귀찮음이 더 묻어나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년에 포대전술훈련이라니. 내 팔자도 참 기구하구나.”

소진언의 입에서 이런 한탄이 새어나왔다.

그의 말대로였다.

제1포대의 포대전술훈련이 바로 내일 시행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훈련을 처음 받아보는 병사도, 그리고 포대전술훈련만 5번 이상을 받아보는 역전의 용사도 함께 혼용되어 있었다.

이들의 준비과정 역시 제각각이었다.

후임급들의 경우에는 훈련 상황 발생 시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상식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등을 계속해서 숙지하느라 바빴다.

반면 선임급들은 대충 군장을 미리 쌓아놓은 뒤에 TV에서 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굳이 후임급들처럼 무언가를 숙지하고 배우고 할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짬의 차이였다.

물론 짬이라고 한다면 행보관, 강필두를 빼놓을 수 없다.

부대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포대, 중대 단위급에서 가장 많은 짬을 자랑하는 건 대다수는 행정보급관이었다.

필두가 있는 9090대대 제1포대도 마찬가지다.

강필두가 가장 짬이 높다. 하지만 드리무어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드리무어가 가장 짬이 낮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그는 빠른 속도로 훈련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점적으로 수행해야 할지 등에 대해서 이미 다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드리무어의 무기는 강력한 흑마술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본질을 파고들면 마법을 습득하는 데에 필요한 천재적인 두뇌가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레디너스 대륙 내에서도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천재 흑마술사, 드리무어.

물론 레디너스 내에서는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며 다른 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의 능력은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흑마술이라는 마법 분야의 지식수준을 순식간에 2티어나 업시킨 장본인이 바로 드리무어였다.

그런 천재에게 포대전술훈련이 뭐가 문제겠는가.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탈이었다.

‘훈련도 단순하군, 이 정도는 어린 애들도 하겠어.’

행보관실에서 다시금 훈련 방식에 관한 사항들을 확인한 필두가 강하게 혀를 찼다.

게다가 훈련이 바로 내일인데도 병사들의 사기를 보면 당나라 군대가 따로 없었다.

‘이래서 어떻게 전쟁을 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필두의 고뇌는 점점 더 깊어졌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필두도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9090대대 제1포대를 단 하루 만에 바꾼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시간과 공을 들여 자신만의 최강의 군대로 육성한다.

그것이 필두의 목표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9090대대 제1포대가 우수한 부대라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했다.

마침 훈련 도중에 연대장이 온다고 했으니, 필두는 이것을 위기 아닌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전도혁을 이용해서 대대장의 마음을 차지하게 된 강필두 아니겠는가. 연대장이 온다 하더라도 주눅 들지 않을 자신은 충만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필두가 제아무리 단단히 준비를 한다 하더라도 병사들이 그의 생각에 동참해 주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좀 더 빡세게 갈 필요가 있겠군.’

이 세계로 건너온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포대전술훈련.

내일이 벌써 기대되는 필두였다.

* * *

다음 날 아침.

평상시에는 오전 8시 반 정도에 출근을 하곤 했던 필두였지만, 오늘 그의 출근은 상당히 빨랐다.

오전 6시. 정확히 병사들이 기상할 시간에 맞춰 출근했다.

“충성!”

일요일 하루. 당직을 맡았던 탄약반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필두의 방문을 맞이했다.

이미 병사들은 생활관에서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추켜올린 채 이부자리 정돈과 환복을 하는 중이었다.

“간밤에 특이사항은 없었겠지?”

“예. 별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고생했다.”

“고생이야 늘 하는 거지 말입니다. 하하하.”

탄약반장은 본부에 소속되어 있는 간부다. 그래서 이번 제1포대의 전술훈련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이제 들어가서 근무휴식을 취하면 될 일이었지만, 쉴 때 쉬더라도 그전에 미리 자신의 수하들에게 이것저것 일을 지시해놓아야 했다.

그래야 병력들이 알아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침점호 시행하고 오겠습니다. 충성!”

“그래, 알았다.”

탄약반장과 당직사병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필두는 행보관실로 들어가 포대전술훈련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이미지로 끊임없이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침 점호가 끝나고 난 이후 식사를 끝낸 병력들이 하나둘씩 막사로 복귀했다.

생활관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는 사이에 부사관들을 비롯해 전포대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대장까지 행정반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각 분과의 분대장들 역시 속속들이 행정반 안으로 들어왔다.

제1포대에 속해 있는 모든 간부, 그리고 분대장들이 총집합을 한 셈이었다.

포대장의 주도하에 마지막까지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연대장 오시면 오분 대기조 상황조치 지시할 수도 있으니까 오대기 소대장이 이번 오대기 인원들 데리고 훈련 중간에 틈이 날 때마다 교육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이번 포대전술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연대장이 포대전술훈련 진행 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불시에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신경을 쓸 수 있게끔. 만전을 기하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포대장의 말과 함께 간부와 각 분과 분대장들이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채 얼마 남지 않았다.

긴장되는 시간.

조용해진 행정반의 분위기 속에 부대 내선 전화기가 우렁차게 울리기 시작했다.

“통신보안. 상병 김오찬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충성!”

곧바로 김오찬 상병이 고개를 돌려 포대장에게 보고했다.

“포대전술훈련, 시작해도 좋다고 합니다.”

“사이렌 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포대장의 명에 따라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동시에 막사 내에 ‘애애앵~!’하는 사이렌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울려 퍼졌다.

사이렌 소리가 막사 전역에 퍼지자마자 병사들이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화스트 페이스!”

“화스트 페이스!”

필두의 첫 포대전술훈련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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