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4화
제7장.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3)
하나포 차례가 끝난 이후.
둘포 병사들을 순차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필두의 앞에 한 병사가 마주앉아 있었다.
둘포에 소속되어 있는 일병, 서만식.
병사들 사이에선 자기 역할은 그래도 제법 할 줄 아는 그런 병사로 잘 알려졌기도 했다.
관심병사 타이틀을 따내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해 온 전도혁과 달랐다.
선임병들에게도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간부들 역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릴 정도로 평이 자자하다.
필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 군 생활은 할 만한가.”
“예. 그렇습니다!”
기운차게 대답하는 서만식.
평소 그가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
필두는 아까부터 의미 모를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위화감을 풍기는 근원지는 바로 눈앞에 있는 서만식이었다.
‘뭐지? 이 녀석.’
이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필두는 잘 안다.
뒤가 구린 느낌.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을 때 풍겨오는 그런 오라였다.
“…….”
잠시 말을 아끼던 필두가 대뜸 서만식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의 기이한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서만식.
“행보관님. 갑자기 왜 팔을 저한테 뻗으시는 겁니까.”
“질문 몇 개만 하마. 성실히 대답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1 더하기 1은?”
“……?”
이건 또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인적사항에 관련된 물음을 해올 줄 알았더니만, 난데없이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 문제를 제출했다.
서만식 입장에선 어이가 없었다.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상대는 악명높기로 소문난 악마 행보관, 강필두다. 그의 말에 반발심을 드러내는 순간,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모른다.
현실과 타협하기로 한 서만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2입니다.”
“2 더하기 2는?”
“……4입니다.”
“3 더하기 3은?”
“6 아닙니까.”
“정답.”
그렇게 말하고서 갑자기 오른손의 중지와 검지를 튕기는 필두.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나의 흐름이 급격하게 응집했다.
보이지 않는 푸른색의 마나 덩어리들이 빠른 속도로 서만식을 급습하더니, 이내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서만식조차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애초에 마나의 흐름조차 볼 수 없는 일반인에 불과한데, 과연 필두가 ‘마법을 사용한다’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나 있을까.
천만에.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전도혁을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어떠한 트러블이 발생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지 않은가.
결국 서만식도 예외는 없었다.
허무하게 쓰러지는 그. 한동안 서만식의 모습에 시선을 고정한 필두가 다시 자리에 앉아 펜을 들어 올렸다.
“네 이름이 뭐지?”
“……서만식입니다.”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의 의지로 대답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었다.
필두의 장기이자 특기인 흑마술. 그중에서도 사람의 본심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심리조작 마법을 발동시켰다.
약간의 최면술을 가미시킨 탓에 지금 서만식은 무의식 상태로 필두의 말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제 계급과 소속을 말해봐라.”
“……일병, 둘포 소속입니다.”
“마법에 제대로 먹혀들어갔군.”
혹시 몰라서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본 결과. 필두의 말대로 마법이 잘 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좋아. 그럼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 볼까. 최근에 뭔가 문제 될 만한 게 있지 않나.”
“…….”
잠시 말을 아끼던 서만식이었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의식이 절로 거부감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미 몸도, 마음도 필두의 흑마술에 지배를 받기 시작한 서만식에게 감출 수 있는 사생활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헤어졌단 말이지.”
서만식의 개인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적혀 있는 바로는 서만식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사귀던 연하의 여자친구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편지 같은 것도 보내오는 것으로 보아선 서만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서만식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부대로 배달오는 편지가 점점 뜸해지더니, 한동안은 그의 여자친구가 보내오는 편지의 존재 자체를 보기 힘들었다.
아마 그것이 변심의 전조였으리라.
“과연, 그렇군.”
필두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헤어졌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과정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본인이 헤어졌다고 말하는데 말이다.
다시 오른손을 들어 올린 필두가 재차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한 번 더 경쾌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
순간 제정신을 차린 서만식이 황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아마 꾸벅꾸벅 졸다가 잠에서 확 깨어난 듯한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하나 필두는 못 본 척을 하며 무언가를 끄적끄적 적어 내려가는 그런 거짓된 연출을 유지했다.
그러고서 고개를 돌려 다시 서만식을 응시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닙니다!”
서만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상하다. 방금 나, 졸은 건가? ……행보관님한테 안 들켜서 다행이구먼.’
만약 자신이 조는 모습을 행보관이 바로 앞에서 봤다면, 어떠한 벌이 내려질지 감도 안 잡혔다.
‘천만다행이다!’
속으로 깊은 안심을 표하는 서만식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이런 반응이 필두가 유도한 것임을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근 3일 가까이 개인면담 업무에 집중했던 필두,.
병사들과의 개인면담을 진행하는 동안,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관심병사 재조정이 필요하겠군.”
서만식처럼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든지, 혹은 사회에서 안 좋은 일이 발생한 덕분에 심리적인 불안감이 급속도로 커진 병사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서만식을 포함해서 총 3명이었다.
“어디 보자. 우선 전도혁, 이 녀석은 관심병사에서 빼는 게 좋겠군.”
넣을 가치가 없었다.
요즘은 너무 군 생활을 잘해서 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언제까지 관심병사 뽕을 빨려고 한단 말인가.
전도혁을 뺀 뒤, 다른 병사들을 채워넣는다.
관심병사 재배치를 끝낸 뒤 가벼운 한숨과 함께 결과물을 다시금 확인했다.
하나 그럼에도 필두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내 부대에 관심병사가 이리도 많을 줄이야.”
지금 당장 9090대대 내부적으로만 봐도 제1포대에 속해 있는 관심병사가 가장 많을 것이다.
이것이 필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강한 육체와 강한 정신. 그리고 강한 군대 육성을 추구하는 필두로선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이었다.
“레디너스 대륙으로 보내면 금방 단련될 텐데…… 아무튼 문제로군, 문제야.”
그렇다고 이들을 전부 차원 이동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막상 정말로 추진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차원 이동이라는 마법 자체가 거의 금기시되는 위험한 마법이었기 때문에 괜히 심신 단련시킨답시고 보냈다가 부대가 궤멸할 수도 있다.
필두가 무사히 이곳으로 온 건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
기적이라는 건 거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라 불리는 거다.
차원 이동에 기적을 바라는 건 흑마술사가 아닌 마법사로서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행동 양식이었다.
여하튼 새로운 관심병사 명단을 들고서 포대장실을 향한 필두가 가벼운 노크와 함께 포대장을 찾았다.
“행보관입니다.”
“들어오세요.”
반갑게 필두를 맞이하는 포대장.
포대전술훈련이 코앞이라 그런지 그의 눈 밑은 다크서클이 짙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포대장님께 이걸 보여 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이건…….”
새로운 관심병사 목록이었다.
요 며칠 동안 필두가 개인면담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건 포대장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재조정이 꽤 되었군요.”
“예. 해당 병사가 관심병사로 지정되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해지되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도 상세하게 적어뒀으니 보시면 되실 겁니다. 필요하시다면 녹취록 같은 것도 만들어뒀으니 포대장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녹취록까지…… 하하, 철저하시군요, 행보관님.”
“병사들이 혹여나 나중에 발뺌할 수도 있기 때문에 증거물로 만들어뒀습니다.”
포대장이 알고 있는 강필두란 남자는 원래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한 사람이 아니었다.
교통사고 한 번으로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이런 모습을 접할 때마다 놀라는 건 이제는 기본 옵션이었다.
전의 강필두와 후의 강필두.
이 두 강필두를 놓고 보면 포대장을 포함해 간부들은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물론 병사들은 전자를 택하겠지만 말이다.
여하튼 필두의 활약으로 새로 지정된 관심병사 명단이 발표되었다.
포대장의 확인을 거쳐서 새롭게 배정된 관심병사 소식이 병사들 사이에서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졸지에 관심병사가 된 서만식이 둘포 포상을 청소하던 도중, 강한 반발심을 선보였다.
“아니, 내가 왜 관심병사라는 겁니까!”
또다시 당직사병을 담당하게 된 소진언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글쎄다. 난들 아냐.”
사실 그건 소진언도 묻고 싶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해서 탈인 서만식을 왜 관심병사로 지정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든 건 비단 서만식뿐만이 아니었다.
말을 전하러 온 소진언도 마찬가지였다.
“뭐…… 그래도 행보관님이 생각이 있으시니까 그런 거겠지. 그분이 엄격하게 바뀌긴 했어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건 맞긴 합니다만…….”
“그보다 네가 면담 때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 않냐.”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그런 건 없었던 거 같습니다.”
“흠, 그러냐.”
물론 이상한 요소는 있었다.
도중에 깜빡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모호한 구간이 있긴 했다.
혹시 서만식의 조는 모습을 보아서 화가 난 나머지 행보관이 그를 관심병사로 지정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신빙성은 없었다.
소진언도 언급했다시피 행보관이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까진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작 면담 시간에 잠시 존 것 가지고 관심병사로 지목을 하거나 할 만한 그런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심병사가 어디 행보관 혼자서 마음대로 지정하고 그러는 건가?
포대장 역시 확인을 했기에 정식으로 이런 발표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행보관님이 내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다는 걸 알고 계시기라도 한 걸까? ……아니지, 아니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행보관님이 그걸 알겠어?’
여자친구와 헤어진 사실을 필두가 알고 있다고 한다면, 관심병사로 지정받는 것도 납득은 된다.
헤어진 지 꽤 된 것도 아니고, 불과 며칠 전.
그러니까 정확히 일주일 전에 이별을 통보받았다.
실제로 서만식은 그날 이후부터 급격한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어쩌면 눈치 빠른 행보관, 강필두가 이러한 사실을 눈치챘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서운 사람이야……!’
순간 서만식의 온몸에 닭살이 절로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