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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23화 (23/175)
  •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3화

    제7장.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2)

    교회에서 펼쳐지는 예배는 전반적으로 저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찬송가와 더불어 주기도문, 기타 등등.

    다른 종교 행사에는 아직 참가해 본 적이 없는 필두지만, 그래도 기독교 종교 행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들이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레디너스 대륙의 종교 활동에 비해선 확실히 뭔가가 더 풍부했다.

    장비들 때문일까. 아니면 목사가 그만큼 종교 행사를 재미있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뜻일까.

    아직은 경험과 지식이 다소 부족했기에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예배를 마친 뒤, 병력들이 교회에 나서며 포대별로 일제히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필두가 가장 선임급에 속하는 소진언에게 인솔자 자리를 양보했다.

    “병력들 데리고 막사로 올라가라.”

    “예, 알겠습니다.”

    필두의 명에 따라 곧장 병사들과 함께 걸음을 떼는 소진언.

    본래는 그냥 막사로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아직 해야 할 게 남아 있었다.

    바로 목사와 혜정에게 따로 인사를 건네는 일이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목사님.”

    교회 안에서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목사에게 필두가 다가가 수고했다는 의미를 담은 인사를 건넸다.

    동시에 옆에 마주 선 혜정에게도 말을 걸었다.

    “혜정 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천만에요. 그보다 필두 씨는 주말에도 부대를 나오시네요? 혹시 당직이셔서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그냥 병력들이 주말에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 차원으로 나오는 것일 뿐입니다.”

    “어머, 성실하시네요.”

    전혀 의도치 않았으나, 주말 출근을 매번 고집한다는 면모가 혜정에게 또 다른 플러스 요소로 작용한 듯했다.

    물론 혜정뿐만이 아니었다.

    “성실함이라고 하면, 우리 행보관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목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필두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한 그런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필두로서도 이들의 반응은 대환영이었다.

    하나 이 평가가 두 사람의 교제까지 이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혜정은 매력적인 여자다. 하지만 아직 필두는 여자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목사에게 괜찮은 행보관, 일 잘하는 행보관으로 이미지를 굳히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필두의 생각이었을 뿐. 목사는 이미 그를 사윗감으로 내정하는 듯한 눈빛을 하기 시작했다.

    ‘일이 잘못되어가는 거 같은데…….’

    혹시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단계에서 필두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 * *

    주말의 끝은 곧 평일의 시작이다.

    9090대대도 역시나 마찬가지.

    특히나 제1포대의 경우에는 다음 주에 포대전술훈련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에 허투루 이 한 주를 보낼 수 없었다.

    게다가 훈련 중간에 연대장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물자들의 수량과 체크는 이미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병사들과의 개인 면담뿐.

    행정반 안에 마련되어 있는 행정보급관실로 들어온 필두.

    그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다수의 서류에 꽂혔다.

    “일거리가 밀렸군.”

    당연한 현상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필두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 뒤에도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부대 업무를 도맡아 해왔다.

    그중에 병사들의 개인면담은 없었다.

    행정보급관이 해야 할 중요한 업무 중 하나. 그것이 바로 병사 관리였다.

    개인면담은 그중에서도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병사들을 겉으로만 봐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은 위험한 사상관을 가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을 확인하고자 마련한 제대고 바로 개인면담이다.

    부대 내에서 자살, 혹은 탈영 사건이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해당 부대의 지휘관은 군복을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레디너스 때와는 너무나도 다르단 말이야.”

    그곳에서는 병사가 탈영을 하든, 속은 훈련 도중에 사망을 하던 간에 여기 세계만큼 중대한 영향력을 끼치진 않았다.

    군인이란 직업은 항상 죽음과 밀접한 경계선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 범국민적으로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이곳은 다르다.

    인권이 너무나도 잘 보장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비록 분단국가의 군인이라 할지라도 군인들을 홀대하거나 그럴 수도 없었다.

    인권 보장이 확립된 군대.

    그렇기에 필두는 더더욱 많은 괴리감을 느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강필두라는 남자의 육신에 들어올 때부터 이러한 각오는 이미 굳혔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 남아 추격자들에게 목숨을 잃는 것보다야 나았다.

    “읏차.”

    의자에 앉아 가장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를 들어 올리는 필두.

    병사들 한 명 한 병의 개인신상명세가 담긴 파일들이었다.

    제1포대의 경우에는 도합 98명의 병사가 속해 있었다.

    “순서대로 면담하는 게 좋겠군.”

    하나포를 시작으로 여섯포까지, 그리고 차례대로 비전포 인원들을 면담하면 되지 않을까.

    머릿속으로 분과 차례를 정해둔 필두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직!”

    “병장 소진언!”

    문을 열고 황급히 들어온 소진언이 자신의 관등성명을 댔다.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필두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오늘 네가 당직이냐?”

    “예, 그렇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소진언은 하나포 분대장으로 활약 중인 병사다.

    마침 하나포부터 개인 면담을 시작하려 했는데, 때마침 당직이 하나포 분대장이라니.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김에 어쩔 수 없군. 너, 바쁘냐?”

    “저 말씀이십니까?”

    “너 말고 또 누가 있다고 그러냐. 잔말 말고 대답이나 해라.”

    “바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만…….”

    “좋다. 그럼 개인면담 할 테니까 여기 와서 앉아라.”

    “자, 잘못 들었습니다?”

    순간 소진언이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뜬금없이 개인면담이라니.

    예정에도 없던 일이 벌어진 터라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두의 주장은 굳건했다.

    “왜. 싫냐.”

    “아, 아닙니다! 그럼…….”

    바로 맞은편 의자에 착석한 소진언. 악마 행보관이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은 필두와 이렇게 단둘이 마주 앉으니 무의식적으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그 와중에 소진언의 개인신상명세를 쭉 훑어보던 필두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 전역 언제 한다고 했지?”

    “이제…… 두 달 정도 남았을 겁니다.”

    “두 달이라. 운이 좋다면 혹한기 훈련은 피하겠군.”

    “하, 하하하…….”

    이럴 땐 대답을 보류하는 편이 좋았다.

    괜히 ‘예! 전 혹한기 안 뜁니다! 라고 말했다가 필두의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안 뛸 것 같았던 혹한기 훈련에 억지로 끌려가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자고로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그건 소진언 역시 마찬가지였다.

    행보관은 떨어지는 낙엽 이상의 위력을 지닌 무서운 존재다.

    9090대대 제1포대에서 그의 말을 거역하는 건 곧 암울한 군 생활을 맞이하겠다고 선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을 잘 알기에 얌전히 필두의 개인 면담에 협조하기로 한 소진언이었다.

    그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말년인데다가 포대 왕고니까 군 생활에 별로 어려움은 없겠군. 안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말년이라 하더라도 군대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군대가 싫은 건 말년이든 이제 갓 전입한 이등병이든 간에 매한가지였다.

    이놈의 더러운 군대. 빨리 집에나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은 계급 차이 없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물론 말년병장이 군 생활 600일이 넘게 남은 이등병보다야 훨씬 더 나았다. 게다가 그 부대에서 왕고가 되었다고 한다면, 내무생활에서 소진언을 터치할 사람도 없으니 한결 편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건 확실했다.

    “사회에 나가서 뭐 할 거냐?”

    “공부 좀 할까 합니다.”

    “공부?”

    “예. 어렸을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재학 중인 대학교가 교대군.”

    “그렇습니다.”

    “흠, 교사라…… 나쁘지 않지.”

    곧 있으면 군대를 전역할 소진언.

    그렇기에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 역시 미리 세워두는 편이 좋았다.

    하나 전역하기 전, 해결해야 할 건 해결하는 것이 좋았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분대장 인수인계였다.

    “저번에 전포대장님도 말을 하긴 했지만, 이번 포대전술훈련 끝나면 하나포 분대장 인수인계식 거행할 거다. 너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

    “예.”

    “차기 분대장이 누구였지?”

    “김조항 상병입니다.”

    “김조항이라…….”

    소진언과 다르게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병사였다.

    소위 말해서 바른 생활 사나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책임감이 있는 면모도 보인다.

    물론, 아직은 다소 부족한 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거야 분대장에 올라서고 나면 알아서 자연적으로 빈틈이 메꿔질 것이다.

    지위가 곧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소진언도 그렇게 따져보면 처음에는 분대장이 될 재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분대장을 맡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어쩌다가 견장을 차게 되었고, 지금의 소진언이 탄생하게 되었다.

    김조항도 그렇게 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알았다. 말년이기도 하니까 너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군. 다음 타자 불러와라.”

    “누구 불러오면 됩니까?”

    “네 후임 분대장.”

    “알겠습니다. 조항이 불러오겠습니다.”

    거수경례를 하며 행보관실을 벗어나는 소진언.

    이렇게 병사들과 개별 면담을 했던 적이 없던 필두였기에 약간은 신선한 기분도 느껴졌다.

    * * *

    하나포 인원들을 면담한다는 말은 곧, 필두의 첫 번째 충신과도 면담을 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추, 충성!”

    행보관실에 들어오자마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전도혁.

    필두에게 워낙 당한 게 많은 터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정상처럼 느껴졌다.

    “앉아라.”

    “예!”

    최대한 빠른 몸놀림으로 의자에 착석한 전도혁에게 필두가 질문 하나를 건넸다.

    “군 생활할 만하냐?”

    “할 만합니다!”

    “알았다. 그만 가 봐라.”

    “끝…… 입니까?”

    “그래.”

    “…….”

    이게 무슨 개인면담이란 말인가.

    게다가 전도혁은 아직까진 관심병사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더욱 심도 있는 개인면담을 추진해야 할 터.

    하나 필두는 관심 없다는 어투로 손사래를 쳤다.

    “안 나가고 뭐하냐. 가서 다른 녀석 불러와라.”

    “그, 그렇지만…….”

    “왜. 힘든 점이라도 있냐.”

    “…….”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힘든 원인이 바로 눈앞에 있는 필두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 이번에야말로 멧돼지 밥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 아닙니다! 그럼 바로 다음 사람 불러오겠습니다!”

    “그래라.”

    “충성!”

    그렇게 10초도 안 돼서 끝나 버린 면담.

    덕분에 전도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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