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2화
제7장.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1)
일요일 오전.
오늘도 어김없이 부대로 주말 출근을 한 필두의 앞에 위병소 선임근무자가 다가왔다.
“충성! 행보관님 오셨습니까!”
“그래. 근무 잘 서고 있었겠지?”
“예, 그렇습니다! 아, 바리케이드 금방 치워드리겠습니다.”
“오냐.”
바리케이드가 사라짐과 동시에 열리는 위병소의 문.
능숙한 운전솜씨로 위병소를 통과해 9090대대 제1포대 막사 앞까지 차를 몰아갔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종교 행사가 잡혀 있는 오전 10시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전에 미리 해둘 것이 있었다.
막사로 올라서자마자 당직사관을 포함해 행정반에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충성. 그간 별일 없었겠지?”
“예, 그렇습니다!”
일요일 하루, 당직사관을 맡게 된 통제관이 행보관에게 이상 무를 보고했다.
부사관 중에서 필두와 통신반장 다음으로 가장 짬이 많은 부사관, 서강민 중사.
병사들 사이에서는 ‘미친개’라 불릴 정도로 성격이 까다로운 간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드만 잘 맞으면 병사들과도 하염없는 친근함을 선보일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경우의 수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오늘 당직사관이 통제관인가 보군.”
“네.”
“본래는 탄약반장이 당직사관 보기로 하지 않았나?”
“오늘 상견례 있다고 저한테 잠시 근무 좀 조정해달라고 했습니다.”
“상견례라…….”
필두도 상견례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커플이 양가 부모님과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는 그런 거 아니겠는가.
상견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필두의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안 그래도 어제 저녁. 혜정과의 데이트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화 통화가 빗발쳤다.
내용은 불 보듯 뻔했다.
데이트 잘했는지, 여자는 마음에 드는지. 그런 질문 투성이었다.
중매쟁이 아주머니의 말을 통해 혜정과 구면이라는 정보까지 이미 들은 모양인지 그의 어머니는 이번 소개팅에 제법 많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게다가 커피 한잔 하고 바로 뒤돌아서 제 갈 길 가듯 헤어진 것도 아니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데이트를 즐기기까지 했으니…… 기대감은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필두도 그의 어머니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이르다.
‘좀 더 만나 봐야 알 것 같다’라는 여지를 남겨두는 말로 얼버무린 필두. 실제로도 첫만남을 통해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해내는 건 매우 힘든 일에 속했다.
혜정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다.
물론 첫만남치고는 비교적 코드가 맞는 곳이 많아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첫 만남을 가지고 앞으로의 만남에 빗대어 통계를 내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이 많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면모가 감춰져 있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잠시나마 어제 있던 일을 회상하는 사이에 통제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통신반장한테 들은 소식입니다만…… 목사님 따님하고 같이 계셨다고 하셨는데, 정말입니까?”
“왜 그런 걸 묻지?”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통제관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풍겨 나왔다.
하기야. 이런 건 사적인 일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를 대놓고 묻는다는 건 실례되는 행동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필두는 자신의 상관. 말실수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통제관이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들려줬다.
“그 일에 대해서는 당분간 함구하도록. 아직 무엇하나 정해진 게 없는데 괜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난 둘째 치더라도 혜정 씨도 곤란해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특히나 병사들에게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
“네!”
간부들은 둘째 치더라도 기독교 종교 행사를 왔다 갔다 하는 병사들에게까지 필두와 혜정의 관계가 퍼진다면 분명 혜정에게도 폐가 될 수 있었다.
혜정이 군부대 종교 행사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별다른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저번 주부터 당분간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부대를 왔다 갔다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괜히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혜정의 귀에 들어갈까 봐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필두 역시 당분간은 기독교 행사에 계속 참가해야 하지만, 불안 요소를 굳이 만들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그리고 9시 50분경에 종교 행사 미리 집합시키는 거, 잊지 말고.”
“네, 행보관님.”
“저번 당직사관한테도 말해뒀지만, 종교 행사에 열외는 없다. 통제관도 상병장급들 종교 행사 참가 안 하는 거 방관하지 말고.”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당직, 열심히 서도록.”
그렇게 말하고선 곧장 행정반을 나섰다.
오늘도 여전히 막사 주변을 돌아다니며 부대 관리에 힘을 쓸 예정인 필두.
그의 모습이 막사 근처에 목격될 때마다 병사들의 얼굴에 덩달아 긴장감이 묻어나왔다.
* * *
오전 9시 50분.
필두가 언급했던 시간이 되자마자 행정반에서 종교 행사 집합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즉시 사열대 앞으로 종교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방송이 나옴과 동시에 상병 한 명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누워 있는 소진언에게 의견을 구했다.
“소진언 병장님. 이번에도 상병장급들도 다 모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행보관님 오셨을 때나 통용되는 말이잖아.”
“아까 사열대 지나치다가 봤는데, 행보관님 차량 있었습니다.”
“……이런 썅.”
입에서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필두가 주말에도 부대를 방문할 거란 사실은 이제 병사들에게 있어서 기초 상식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주말에 쉬지도 않고 부대에, 그것도 상당히 이른 시간에 모습을 비추는 악마 행보관, 강필두. 그의 행적에 병사들은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 부대를 방문하면 일단 병사들에게 무엇을 시키고 본다. 그게 병사들을 더욱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종교 행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본래는 암묵적으로 상병장급들 이상의 선임병사들은 종교 행사에 의무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규칙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나 강필두 덕분에 이제는 예외 없이 종교 행사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강필두 본인이 부대까지 왔다고 하니, 종교 행사에 참가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찌감치 환복 준비하는 게 차라리 속 편하겠구먼.”
포기하면 편하다.
소진언의 마음가짐 역시 딱 그러했다.
전투복으로 환복을 하자마자 1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
바로 최근에 병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로 급부상하게 된 강필두였다.
“종교집합해라. 거듭 말하지만, 예외는 없다.”
“아, 알겠습니다!”
“곧 나가겠습니다!”
강필두의 직접 출연으로 병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렇기 필두의 억압 덕분에 외곽근무자를 포함해 휴가, 외박을 나가 있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생활관에 있던 전 병력이 종교집합을 하게 되었다.
각각 기독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나뉘게 된 병사들.
역시나 마찬가지로 기독교 인원이 가장 많았다.
평상시에도 기독교 종교 행사를 택하는 인원들이 많긴 했지만, 오늘따라 유독 더 많이 늘어난 듯한 그런 기분을 선사했다.
인원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이유는 안 봐도 뻔했다.
민혜정의 존재 때문이었다.
저번 주, 기독교 종교 행사에 참가했던 병사들이 민혜정 목격담을 퍼뜨리고 다닌 덕분에 기독교 참가를 희망하는 병력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되었다.
참으로 본능에 충실한 그런 선택이었다.
“이 녀석들이…….”
기독교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병력들의 종교 행사 배치 현황을 바라보던 필두가 짧게 혀를 찼다.
여색에 놀아나는 군인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 드리무어는 여자들과의 놀음에 빠져든 국왕 덕분에 민심이 어지럽혀진 국가를 꽤 자주 목격했었다.
그 덕분에 들끓는 민심이 강한 역풍으로 형성되어 혁명과 반란으로 이어지는 때도 있었다.
여자란 무서운 존재다.
특히나 남자들에게 있어서 말이다.
여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는 필두. 그래서 그의 부모님이 여자 좀 만나라고 사정을 해도 끝까지 완고한 태도를 보여왔던 것이다.
그래도 대놓고 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좀 그랬다.
어제 필두는 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9090대대의 여신, 민혜정과 단 둘이 데이트까지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사열대 밑으로 내려온 필두가 기독교 인원들이 서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 때문일까.
병사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역시 행보관님도 남자구나.”
“목사님의 따님 정도라면 안 갈 수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
여기저기서 필두의 선택에 공감한다는 듯한 말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태클을 걸까 말까 고민하던 필두였으나, 이내 관두기로 했다. 곧 있으면 종교 행사도 시작되니 지금 당장에라도 빨리 내려가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인솔자 위치에 선 필두가 기독교 인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교회로 내려간다. 앞으로 갓!”
그의 말에 병사들이 힘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 * *
병력들을 이끌고 교회에 도착한 필두.
때마침 군종병들과 함께 이것저것 준비를 서두르던 목사가 밝은 표정으로 필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오셨군요, 행보관님.”
“오늘도 예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물론이죠. 그게 저의 일이니까요. 그보다 말입니다…….”
목사가 갑자기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뭔가 긴히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의구심을 품을 무렵, 목사가 천천히 입을 열어 필두에게 질문 하나를 건네 왔다.
“어제 혜정이한테 들은 겁니다만…… 소개팅 상대가 행보관님이었다고 하던데, 정말입니까?”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대한민국 땅, 좁다 좁다 하더니만 정말 그런가 보군요.”
“저도 놀랐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흑마술을 연구해 온 그도 설마 혜정과 토요일에 데이트를 즐기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목사와 혜정 역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소개팅 상대방이 필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저번 주에 그런 말들을 들려주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괜히 저 같은 남자와 만나게 되어서 혜정 씨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예요! 오히려 혜정이도 즐거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행보관님 정도라면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필두를 칭찬해 왔다.
마치 필두를 사윗감으로 맞이하면 나야 오히려 좋다는 식의 그런 의미가 담긴 어투처럼 들렸다.
“앞으로도 혜정이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행보관님.”
“아직 그런 말을 논할 단계는 아닌 거 같습니다만…….”
“본래 남녀관계라는 것이 계속 만나고 만나다 보면 정이 쌓이고, 평생의 반려자로 언약을 맺고 하는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보아하니 혜정이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고, 행보관님만 괜찮다면 지속적으로 한번 만나보는 걸 권유하고 싶군요.”
“하, 하하하…….”
목사가 직접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딸을 어필해 올 줄이야.
필두로서는 그저 어색한 웃음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