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8화
제6장. 훈련 준비(3)
일말의 기대감에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두 일병 동기들.
그러는 동안, 전도혁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행보관님 오신다.”
“그래?”
용무 볼 거 다 본 모양인지 본인의 차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필두.
문을 열고 운전석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었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하!”
고만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고자 애를 썼다.
행보관이 맛있는 것을 사준다는 말을 선임병들의 입을 통해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행보관에게 직접 ‘맛있는 거 사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필요까진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것에 고만해의 목표였다.
한편, 고만해로부터 행보관에 관한 일화를 접하긴 했어도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한 남자.
바로 전도혁이었다.
‘예전의 행보관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행보관은 아닐 텐데.’
최근 필두에게 붙은 새로운 별명이 있었다.
악마 행보관.
사고를 당한 이후, 악마가 되어 부대로 돌아온 강필두의 정체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병사는 없어 보였다.
심지어 간부들조차도 필두의 본성이 어떠한지 모르는 상태였다.
오로지 전도혁만이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먹거리는 바라지도 않았어. 바깥에 나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애초에 전도혁의 목표는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동행자가 행보관이라는 게 조금…… 아니, 심히 매우 마음에 걸리긴 했다.
‘에이, 그래도 바깥에 데리고 나갔을 때에도 괴롭힐 건덕지가 있나.’
그런 생각이 전도혁의 의심을 덮었다.
그러는 와중에 필두가 차에 시동을 걸고서 운전대를 잡았다.
“출발한다.”
“예!”
기운차게 대답하는 두 일병.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필두의 지옥행 급행 차량에 타고 말았다.
* * *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신선한 기분을 선사했다.
‘포차가 아닌 민간 차량을 타고 나가는 날이 올 줄이야.’
전도혁이 속으로 감탄사를 토해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포차보다 자가 차량이 더 승차감이 좋다.
가족, 혹은 지인들이 면회를 올 때마다 이런 식으로 바깥에 외출, 외박을 나갔던 적이 있긴 하지만 주말이 아닌 평일에, 그것도 남들 뼈 빠지게 일하고 있을 때 부대 바깥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행보관과 함께 간다는 게 여전히 불안 요소가 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디 보자. 시내가 이 근처였나.”
내비게이션에 안내된 지도를 다시금 확인해 보는 필두.
이윽고 운전대를 돌리며 차량을 이동시켰다.
사실 필두는 시내에 그렇게까지 자주 간 적이 없었다.
처음에 이 세계로 왔을 당시에는 신기해서라도, 그리고 이 세계의 문화가 어떤 식으로 자리 잡혀 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라도 갔었지만, 이제는 얼추 알기에 굳이 가진 않았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와 크게 다른 점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게 결국 거기서 거기다.
생각보다 이른 시일 내에 이 세계에 적응하게 된 필두. 아마 현지인의 몸속에 영혼이 들어오는 형태로 워프를 했기에 적응 역시 빨랐던 게 아닐까 예상했다.
근처에 차량을 정차한 뒤.
“내려라.”
“예!”
필두의 지시에 따라 두 일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거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음~ 스멜!”
마치 향기로운 내음이라도 맡은 모양인지 고만해가 두 팔을 벌린 채 시내 거리 냄새를 쭉 빨아들이며 말했다.
전도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보는 민간 사회의 풍경은 이들에게 있어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매번 초록색, 파란색만 지겹도록 보다가 사람답게 사는 색으로 치장된 거리를 보니 얼마나 반가울까.
그리운 네온사인의 간판.
다양한 전자제품들.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 최신 가요까지!
하지만 군인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야, 도혁아.”
“또 왜.”
“저기 봐라, 저기.”
“…….”
고만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는 전도혁.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숨을 삼켰다.
쫙 빠진 몸매.
흰색의 스키니진 밑으로 뻗은 늘씬한 곡선미와 가느다란 허리, 그리고 기다란 생머리.
군인들 대다수가 환장한다는 바로 그 존재! 젊은 여자였다.
“세상에. 겁나 예쁘다!”
“그러게. 근데 저번에 교회에서 봤던 그 목사 따님이 더 예쁜 거 같지 않냐.”
“뭐, 그렇긴 하지.”
31세임에도 20대 초반의 여성에 비해 절대로 꿀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민혜정.
바깥에 나와서 다수의 젊은 여자들을 바라보니, 새삼 민혜정이 정말 관리를 잘한 여성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두 남자가 그렇게 길거리 여자들을 내 멋대로 평가하고 있을 때, 필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둘. 헌병대에게 끌려가고 싶냐. 한눈 그만 팔고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걸음을 빠르게 옮기며 곧장 행보관의 뒤를 따르는 두 남자였다.
병사들 정도까진 아니지만, 필두도 직업이 직업인만큼 예쁘고 젊은 여자를 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고만해나 전도혁처럼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하기야. 여자를 필요로 했다면 진작 그의 부모님이 제안한 소개팅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필두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여자가 아니다.
바로 자신의 힘을 하루라도 빨리 회복시키는 거였다.
언제, 어디서 추격대가 드리무어를 잡으러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론 시공간을 넘는다는 일 자체가 매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드리무어도 죽지 않고 이곳으로 왔으니까.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죽었다고 보는 게 옳은 걸까.’
육신만 남겨두고 영혼만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개념에 적용하기엔 조금 모호할 수도 있지만, 여하튼 드리무어의 영혼은 육신을 갈아타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을 하게 되었다.
마법도 고스란히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본래의 수준까지 회복시키는 데에 시간이 좀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래도 마법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큰 메리트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강필두.
그렇기에 여자에게 관심을 돌릴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에 여색을 탐하는 것보다 자신의 본래 흑마술 실력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소개팅도 피해왔던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마지못해 강제로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 * *
어느 철물점 앞에 도착한 필두와 고만해, 그리고 전도혁.
안으로 들어서자 철물점 주인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잉? 행보관님 아닙니까!”
“안녕하세요. 또 왔습니다.”
철물점 주인과 필두는 아는 사이다.
드리무어가 필두의 육신을 차지한 직후, 이 세계의 정황을 알아보고자 시내로 나와 멋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누군가가 필두에게 아는 척을 해왔었다.
그게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철물점 주인이다.
“큰 사고도 당했으니, 좀 쉬시면서 하시지. 바로 군복을 입으실 줄은 몰랐네요.”
“쉬고 있을 틈이 없었거든요.”
철물점 주인의 상냥한 배려에 필두 또한 마찬가지로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받아줬다.
드리무어였다면 그냥 무시를 했을 테지만, 강필두라는 남자의 인생길을 생각한다면 이런 반응을 보여주는 게 정상이었다.
상반된 성향인 강필두의 육신에 들어온 드리무어. 그러나 그는 천연덕스럽게 강필두라는 남자를 잘 연기해 오고 있었다.
물론 병사들에게는 악마 그 자체로 군림하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평일에, 그것도 체격 좀 괜찮은 놈들 두 명 대동해서 온 걸 보니까 물건 사러 온 거 같은데.”
“실은 이것들 좀 사러 왔습니다.”
포상을 돌아다니면서 부족한 훈련물자들을 미리 적어뒀던 강필두.
그가 내민 수첩 내용을 보던 철물점 주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보다 많은데요?”
“네, 많을 겁니다.”
“아니, 제 말은…… 물건이 엄청 많을 텐데 고작 두 명 가지고 되겠냐는 뜻이었습니다만.”
철물점 주인의 시선이 바깥에서 대기 중인 두 명의 병사에게 향했다.
물론 덩치는 좋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결코 두 명이 달려들어 옮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적어도 6명 정도는 필요해 보였다.
필두의 차량은 6명이 타도 문제가 없는 비교적 큰 차종이었기에 보다 많은 병사를 데려올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단 두 명만 데려왔다니. 이건 또 무슨 심보란 말인가.
“녀석들 좀 단련시켜주려고 일부러 두 명만 데려왔습니다.”
“단련…… 이요?”
“예. 생활 근육 좀 만들게 하려고 말입니다.”
필두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나만의 강인한 군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매번 개인 정비 시간만 되면 비디오 게임기로 축구 게임을 하거나 노래방, PX를 가는 게 대다수였던 제1포대 병사들.
필두는 그 모습조차 왠지 모르게 가만히 놔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쉴 때 쉬더라도 군인의 자격을 갖추게끔 하고 난 이후에 자유 시간을 보장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필두가 생각하는 ‘강인한 군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필두는 일부러 병력들을 단련, 혹은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사소한 심부름조차도 근력을 만들 기회로 활용하고 싶었다.
마치 지금처럼.
“이거 참. 저 친구들, 고생 좀 하겠군요.”
“어차피 고생이야 매번 겪는 일일 테니까요.”
만약 이 말을 전도혁과 고만해, 두 사람이 직접 들었더라면 악마라고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쳤을지도 몰랐다.
* * *
무수히 쌓여 있는 물건들.
멍하니 눈을 뜬 채 이것들을 바라보던 고만해와 전도혁에게 필두가 한 마디를 내던졌다.
“옮겨라.”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인지 고만해가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되물었다.
“저희 둘이서…… 말입니까?”
“그래.”
“해, 행보관님? 두 명이서 나르기엔 상당히 많아 보이지 말입니다?”
“운동도 되고 좋지 않나.”
‘운동 수준이 아닙니다만!’
속으로 절규를 토해내는 고만해였지만, 차마 바깥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한편,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포자기를 한 전도혁이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짐 하나를 어깨에 들쳐멨다.
자신 있게 들어 올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무거워!’
사회에 있을 때 나름대로 운동을 했던 전도혁조차도 무겁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한편, 전도혁이 행동을 개시하자 고만해도 결국 마지못해 필두의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썅! 괜히 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부대에 남아 있을 걸!’
그러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욕지거리와 뒤늦은 후회가 계속 튀어나오는 건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리라.
군대에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시키면 해라.
지금이 딱 그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