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6화 (16/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6화

제6장. 훈련 준비(1)

월요일 오전.

새벽 6시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필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위에 정좌 상태를 유지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하던 필두의 주변에 푸른색의 오라가 드러났다.

그의 주변이 일렁이는 푸른 기운. 마법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마나였다.

시공간을 넘어와 다른 인간의 육신을 차지했음에도 여전히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건 호재 중에서도 호재였다. 하나 이 세계는 레디너스 대륙보다 마나의 양이 풍부하지 않았다. 그게 유일한 불만이었다.

‘마법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건가.’

천천히 눈을 뜬 필두.

그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현재 시간, 오전 7시. 슬슬 출근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전신거울 앞에 마주 선 그가 전투복을 차려입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멋없군.’

이 세계의 디자인 감각은 아직 드리무어에게 낯설었다.

전투복이랍시고 어째서 구성이 천으로 되어 있는지조차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철판 갑옷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전투복에 대한 불만을 가득 뿜어내며 출근길에 오른 필두.

위병소를 통과해 사열대 앞에 차량을 주차한 뒤, 막사로 올라섰다.

그가 부대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오전 8시 반.

아침 식사를 끝낸 병력들이 한창 청소에 열중할 시간이었다.

행정반에 모습을 드러내자, 당직사병을 포함해 부사관들이 필두에게 일제히 거수경례를 해왔다.

“충성!”

“충성! 좋은 아침입니다, 행보관님!”

“어, 그래. 충성.”

건성으로 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는 동안, 하나포 포반장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행보관님. 포대장님께서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어디 계시지?”

“포대장실에 계십니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여준 뒤에 걸음을 옮겨 포대장실 앞에 마주 섰다.

똑똑.

오른손으로 가볍게 노크를 하며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충성. 행보관입니다.”

“들어오세요.”

“예.”

문고리를 잡고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아침부터 각종 서류와 씨름하고 있는 포대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앉으세요, 행보관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포대장의 말에 따라 소파에 자리를 잡은 필두.

무슨 일이길래 아침부터 자신을 호출한 것일까.

그런 의구심이 필두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고 있을 때였다.

“행보관님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2주 뒤에 저희 포대전술훈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포대장이 한 말은 이미 저번 달 들었던 기억이 있다.

포대전술훈련. 1개 포대급이 자체적으로 훈련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정된 훈련 기간은 1박 2일. 대대장도 중간마다 짬을 내 참관할 예정이었다.

“포대전술훈련 말씀이시군요.”

“네. 그래서 행보관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무엇입니까?”

“훈련 준비 상황을 행보관님께서 직접 체크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연대장님께서도 훈련 참관을 나온다고 하니, 아무쪼록 행보관님께서 신경 좀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대라…….”

연대장이 온다는 건 예정에 없던 일이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사항인지라 포대장도 아침부터 급히 행보관을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대대장님도 그것 때문에 날이 바짝 서 있습니다. 훈련 준비 도중에 기습적으로 대대장님이 오셔서 훈련 물자라든지 준비 상황 같은 걸 확인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포대장님.”

“행보관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하군요.”

안 그래도 얼마 전, 필두는 전도혁을 이용해 대대장에게 제대로 점수를 땄던 적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대대장의 머릿속에 제1포대 행보관은 ‘병사들을 생각하는 진정한 참군인’이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여기서 점수를 더 딴다면, 앞으로 군 생활을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을 터.

‘이번 주 할 일은 이미 정해졌군.’

포대전술훈련 준비를 완벽하게 해낸다!

그것이 필두에게 새롭게 하달된 임무였다.

* * *

훈련 준비에 임하기 전, 포대전술훈련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필두가 처음 이 세계로 건너오고 난 이후 겪게 되는 훈련.

레디너스 대륙에서 보아왔던 군사 훈련과 판이할 거란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레디너스 대륙에는 견인곡사포라는 화기도 존재하지 않았다.

필두도 대충 인터넷을 통해서 9090대대 제1포대가 소유하고 있는 KH-179이라는 곡사포에 대해 알아보긴 했지만, 두 눈으로 실제사격을 본 적은 없었다.

어차피 포대전술훈련에 실제사격훈련이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니었기에 크게 고려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훈련 스케줄이었다.

“오전 9시에 파스트페이스, 진돗개 발령. 이후 물자 수납, 이동 준비. 점심식사를 한 뒤 8118 진지로 이동. 방열. 그 뒤 1박이란 말이지.”

수첩에 적혀 있는 훈련 일정을 입으로 직접 언급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사실 이 모든 훈련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이론상으로만 알고 있을 뿐.

그게 좀 걱정이었다.

눈으로 본 것과 직접 경험하는 건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부족한 건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수밖에 없겠군.’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훈련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포대전술훈련으로 가볍게 훈련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미리 익혀두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찌감치 맞는 게 좋을 테니까.

“바깥에서 1박이란 말이지.”

막사가 아닌 외부에서 하루를 보낼 경우에는 텐트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 훈련 물자들이 필요했다.

그것들이 각 포상에 잘 적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당직!”

“병장 안태원!”

넷포의 병사 포반장을 맡고 있는 안태원이 필두의 부름에 후다닥 다가왔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필두가 곧장 명령을 하달했다.

“병력들 사열대 앞으로 집합시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머지않아 안태원 병장이 마이크를 들고 병사들에게 오전 집합을 알리는 방송을 시작했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즉시 사열대 앞으로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포상 정리를 하고 있던 전포반 인원을 비롯해 통신병, 사격지휘병, 마지막으로 수송부까지 전원 사열대 앞으로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시간은 오전 9시 반.

“행보관님. 병력들 집합 끝났습니다.”

“알았다.”

메모 중이던 수첩을 잠시 접어두고 사열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섯 개 전포반과 그 이외의 비전포까지.

모든 병력의 시선이 행보관, 강필두에게 집중되었다.

“전체 주목!”

“주목!”

“지금부터 내가 호명하는 병사들은 앞으로 나온다. 각 전포, 그리고 사격지휘와 행정분과 분대장들은 앞으로. 분대장이 근무 나간 분대는 부분대장, 부분대장이 없다면 최고선임이 나오도록.”

“……?”

왜 갑자기 전포 분대장들을 따로 빼는 걸까.

의아함을 잠시 뒤로하고 필두의 말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는 분대장들.

넷포의 경우에는 분대장인 안태원이 당직사병을 맡고 있었기에 부분대장이 그를 대신해 앞으로 집합했다.

“이 8명은 오전 동안 이 행보관을 따라 각 포상을 돌면서 부족한 훈련 물자가 있는지, 혹은 폐급이라서 교체가 필요한 재물이 있는지 확인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통제관이랑 같이 철조망 보수 작업하면 된다.”

작업 내용이 공개되자, 필두에게 호명되지 못한 병사들의 표정은 말 그대로 울상이었다.

“당직. 행정반 가서 통제관 불러와라.”

“예!”

“그리고 분대장들은 나를 따라오도록.”

사열대 계단을 내려가 분대장들을 데리고 장소를 이동하는 필두였다.

그가 가장 먼저 향할 곳은 바로 전도혁이 속해 있는 하나포 분대의 포상.

졸지에 첫 타깃이 된 소진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괜히 꼬투리라도 잡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포상에 자주 왔다갔다하는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매번 훈련 물자를 꺼내 일일이 확인하는 번거로운 일까지는 잘 하지 않는다.

간부가 일광건조 시키라고 지시를 하거나 할 때만 간혹 꺼내서 확인할 뿐이지, 그 이상은 굳이 손을 대지 않는 것이 9090대대 제1포대의 암묵적인 관습이었다.

포상 입구를 기준으로 각각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공간 쪽으로 들어선 필두.

대낮임에도 빛이 거의 새어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기에 손전등은 가히 필수였다.

훈련 물자로 보이는 박스들을 확인한 필두가 뒤따라온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꺼내라.”

“아, 알겠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이런 허드렛일은 후임급들이 대부분 도맡아 하곤 했다.

하나 이곳에 모인 병사들은 최소 상병 3호봉 이상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후임급들이 없으니 본인들이 직접 움직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필두에게 직접 옮기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필두의 지시에 따라 분대장, 부분대장들이 협업을 해 하나둘씩 훈련 물자를 포상 바깥으로 꺼냈다.

그와 동시에 필두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소진언.”

“병장 소진언!”

“위장막 상태가 이게 뭐냐?”

“그, 그게…….”

눅눅해진 채로 장시간 벙커 안에 방치되어 있던 위장막.

그 때문에 곰팡이 썩은 냄새가 확 풍겼다.

위장막의 악취 덕분에 다른 병사들 역시 코를 막고 싶은 심정이 절로 샘솟았다.

필두의 질책에 소진언이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냐. 아무튼, 이대로 놔두면 안 되니 일광건조 시킨다.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다른 훈련 물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도 남김없이 햇볕에 말리도록.”

“네!”

주말에 겪었던 일광건조의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훈련 물자 확인이 졸지에 일광건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포에서만 자그마치 40여 분이라는 시간을 보낸 뒤, 두 번째 차례인 둘포 포상으로 이동한 필두 일행들.

하나 훈련 물자의 상태는 하나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이 상태 그대로 훈련에 임하게 된다면, 연대장에게 온갖 잔소리를 들을 건 안 봐도 훤했다.

필두가 병사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하나포 때와 동일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지?”

“…….”

“…….”

필두의 말에 병사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모르겠는가.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일광건조한다. 실시.”

“시, 실시!”

병사들이 예상했던 모범 답안이 필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둘포도 예외는 없었다.

곰팡이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일광건조는 가히 필수적이었다.

두 번 연속 일광건조를, 그것도 고작해야 8명이서 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하니 벌써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철조망 보수 작업 쪽으로 갈 걸 그랬어!’

뒤늦은 후회를 해보는 병사들이었지만, 이미 강필두라는 마수의 손길로 들어온 이상, 쉽사리 나갈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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