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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5화 (15/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5화

제5장. 주말 출근(4)

9090대대 위병소 앞.

일요일 오전을 맞이할 때마다 항상 부대를 방문하는 민간인 차량 한 대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차량의 정체를 확인한 위병소 선임근무자가 곧장 키를 넣었다.

“위병소 근무자 상병 김태평입니다. 목사님 차량 들어오고 있습니다.”

-바리케이드 치우고 들여보내라.

“예, 알겠습니다.”

김태평 상병이 곧장 초소에서 나와 바리케이드를 치우기 시작했다.

뒤이어 잠시 정차한 차량에게 다가갔다.

“충성. 목사님 오셨습니까.”

“오늘도 고생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옆에 분은……?”

기독교 종교 행사가 있는 날엔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보통은 차량을 직접 몰고 온 목사 한 명만 부대로 오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옆에 앉아 있는 아리따운 미인.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김태평 상병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군대에 있는 이상, 젊은 여자 보기가 영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평범한 여성도 아니었다.

미모도 미모였지만, 몸매 역시 뛰어났다.

안전벨트 덕분에 의도치 않게 강조된 큰 가슴.

잘록한 허리와 탄력적인 허벅지가 남심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멍하니 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동안, 목사가 너털웃음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허허, 내 딸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목사님께 따님이 계실 줄이야……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처음 데려오는 거니까 김 상병이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럼 슬슬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네! 조심해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충성!”

목사를 보낸 뒤에도 김태평 상병의 시선은 여전히 목사의 차량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후임 근무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평 상병님! 바리케이드 다시 쳐야 하시지 말입니다?”

“어? 어…… 그래.”

“목사님 차량에 문제라도 있던 겁니까?”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뭐랄까…….”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정신을 차린 김태평 상병이 대쯤 이렇게 말했다.

“나, 오늘부터 종교 행사는 기독교로 갈까 한다.”

“김태평 상병님. 불교 신자 아니셨습니까?”

“개종하면 되잖아.”

“……?”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개종까지 한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걸까.

그의 뜬금없는 개종 선언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 * *

위병소를 통과해 근처 주차장에 차를 정차시킨 9090대대 목사.

“다 왔다. 이제 내리거라.”

“벌써요?”

놀라움을 토로하며 차량에서 하차한 미녀.

위병소 근무자의 혼을 빼놓았던 바로 그 여성, 민혜정.

현직 목사의 딸이며 나이는 31세. 오늘을 기점으로 당분간 아버지의 군대 종교 행사를 도와주기로 했다.

목사의 딸임에도 그녀는 사실 열렬한 기독교 신도가 아니었다.

직업도 기독교와 별로 큰 접점은 없었다. 그림을 그리며 외주를 받는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럽게 목사인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게 된 이유는 복잡하지 않았다.

일이 잘 안 풀려서 분위기 전환 겸, 그리고 군대라는 풍경을 직접 눈으로 보고 뇌에 저장해둘 겸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일러스트레이터였기 때문에 본인의 눈으로 보고 듣고 하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소재로 환산될 수 있었다.

목적은 달랐지만, 그녀의 아버지도 딸이 종교 행사 일을 도와준다고 하니 굳이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일손이 늘어나게 되었으니 오히려 좋은 일 아니겠는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혜정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손 그늘을 만들며 부대 경관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경치 좋네요.”

“산골짜기나 다름없는 곳이니까.”

목사의 말대로였다.

보이는 거라곤 푸른색과 하늘색, 그리고 갈색뿐.

네온사인이라든지 이런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산골짜기나 다름없는 게 아니라 산골짜기 그 자체인 거 같은데요?”

“허허허!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보다 곧 예정 시간보다 좀 늦었으니 빨리 가자꾸나.”

“네. 이거 들고 가면 돼요?”

“무거우니까 조심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어린아이 아니니까요.”

강한 호기를 드러내며 초코파이가 담긴 있는 박스를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무게감 때문에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내 무게중심을 잡고 목사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딸의 나이도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혜정이도 슬슬 시집을 보내야 할 때가 된 거 같은데.’

아버지의 또 다른 고민이 추가되었다.

* * *

9090대대 제1포대에서 기독교 군종병을 맡은 고민종 상병.

오늘 그는 때아닌 악마 행보관, 강필두의 등장에 덩달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단 고민종뿐만이 아니었다.

본부포대와 제2포대, 제3포대의 기독교 군종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에는 목사가 오기 전에 대충 준비 끝내놓고 교회에 있는 컴퓨터로 인트라넷에 접속해 시간을 떼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간부가 교회에 등장하니, 농땡이 부릴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일반 간부도 아닌 행정보급관이었다. 흥청망청 일을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전 10시가 되었을 무렵.

“이런, 늦어서 미안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목사의 모습에 필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목사가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니! 제1포대 행보관님 아니십니까?”

“예, 맞습니다.”

목사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필두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필두를 보자마자 그가 행보관이라는 사실을 곧장 알아차렸다.

그 말인즉슨.

‘강필두라는 남자와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있다는 소리가 되는군.’

그렇다면 드리무어 역시 목사를 예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행보관님! 사고당하셨다고 들었었는데 쾌차하신 거 같군요!”

“예, 덕분에 괜찮아진 거 같습니다.”

“하하! 제가 한 거라고는 그냥 기도밖에 없는 걸요. 이게 다 행보관님 복입니다.”

목사치고는 꽤 개방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남자였다.

필두는 목사의 이런 사상관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사실 필두는…… 아니, 드리무어는 과도하리만치 종교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신을 믿지 않는 그의 성향 탓도 있긴 하지만, 종교에 너무 심취해 인생 자체를 파탄 내버린 사람들도 수도 없이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목사는 달랐다.

‘이 사람과는 친해질 수 있겠군.’

목사는 둘째 치더라도, 뒤따라 들어오는 젊은 여성이 신경 쓰였다.

비단 필두뿐만이 아니었다.

“야야, 저기 봐!”

“세상에, 여자잖아?”

“그것도 엄청난 미인……!”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초코파이가 담긴 박스를 들고 교회 내로 진입한 민혜정에게 군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위병소에서도 그랬다시피, 군인들에겐 젊은 여성이 환상의 존재 그 자체이기도 했다.

물론 사회에선 충분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군대라는 특정 환경에선 추녀라 하더라도 젊기만 하면 여신으로 보이는 현상이 간혹 발생한다.

그러나 민혜정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추녀도 아니었을뿐더러, 미모에 한창 물이 올라 있는 시기인지라 군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나가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목사가 뒤늦게 혜정을 가리켰다.

“제 딸입니다.”

“안녕하세요, 민혜정이라고 해요.”

목소리 역시 맑고 고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필두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삼켰다.

‘레디너스 대륙에도 이런 미인은 찾아보기 힘든데, 놀랍군.’

그러나 금세 평정심을 되찾은 필두가 마주 인사를 건넸다.

“강필두라고 합니다. 제1포대에서 행보관을 맡고 있습니다.”

“행보관? ……아! 네. 알고 있어요. 행정보급관의 줄임말이죠?”

“네, 맞습니다.”

잠시 멍 때리던 혜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내 곧장 아는 척을 해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그녀의 모습조차 귀여워 보였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목사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재차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저를 도와 이곳에 오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도 군부대라는 곳이 어떤 장소인지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주변에 볼 건 딱히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만족할 때까지 여유 있게 보시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그렇게 목사와 더불어 그의 딸인 민혜정과 짧은 인사를 마친 필두.

이윽고 고대하던 종교 행사의 막이 열렸다.

* * *

첫 종교 행사에 참가했던 필두의 소감은 간단했다.

그냥저냥 볼만했다.

찬송가도 부르고, 목사가 나와 좋은 말도 해주고,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먹을 것도 뿌렸다.

1시간 투자해서 이 정도 시간을 보낸다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병사의 입장이 아닌 간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병사들은 귀찮아하는 게 다수였다.

만약 필두처럼 종교 행사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선임급 병사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참석 거부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오늘도 종교 행사를 무사히 마치게 된 병사들.

“제1포대! 이쪽으로!”

“좌우로 정렬해라! 막사로 올라간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력들을 재치고 교회 입구에 마주 선 필두가 때마침 혜정과 같이 나오는 목사에게 배웅 인사를 건넸다.

“조심해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행보관님도요. 그리고 몸조리 잘하시고요.”

“다음에 봬요, 행보관님.”

혜정도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어줬다.

그때, 목사가 잠시 걸음을 멈추며 필두에게 못다 한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행보관님. 다음 주에 제 딸이 군인이랑 소개팅을 가지기로 했는데, 혹시 조언 같은 거 받을 수 없을까요?”

“아, 아빠! 그 이야기를 뭣 하러 꺼내요?”

당황한 혜정이 필사적으로 목사에게 다가가 오른쪽 팔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까지 새빨개진 그녀의 모습이 사뭇 귀엽기까지 했다.

“뭐 어떠냐. 어쩌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전 아직 시집갈 생각 없다니까요! 그냥 아빠가 억지로 보게 한 거잖아요!”

“어허. 너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잖냐. 네 엄마하고 이 아빠 안심시켜주고 싶다면 얼른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거라.”

“그래도…….”

두 부녀지간의 모습에 필두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여자랑 연이 없는 터라 딱히 좋은 조언은 못 해줄 거 같습니다.”

드리무어는 달랐지만, 필두의 설정상 여자와 깊은 연을 맺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한번 물어본 것뿐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길.”

목사가 먼저 악수를 건네자 필두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럼 다음 주에 또 오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목사 부녀를 떠나보낸 필두.

잠시나마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재미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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