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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4화 (14/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4화

제5장. 주말 출근(3)

일요일 오전.

어김없이 주말 출근길에 오른 필두는 도착하자마자 막사의 상태부터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제 대청소를 했음에도 위생 상태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면 다시 청소를 시킬 심산이었다.

한편, 필두의 위생점검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병사들.

특히나 오늘 당직사병을 맡게 된 소진언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대청소를 시작하게 되면 일반 병사든 당직사병이든 막사의 전 인원의 고생길이 열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필두의 뒤를 따라다니며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소진언.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있으면 필두가 보기 전에 자신이 먼저 손을 뻗어 증거를 없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막사 주변을 뺑 돌던 강필두가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이군.”

“휴우……!”

소진언을 비롯해 주변에서 몰래 필두의 행적을 곁눈질로 살피던 병사들의 입에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방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탄약고 초소로 간다. 뒤따라오도록.”

“초, 초소 말입니까?”

막사 한 곳만 둘러보고 끝날 줄 알았건만. 그러나 필두의 감시 영역은 이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그저 간다는 말만 하고서 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필두. 덩달아 당황한 소진언이 재빨리 당직병에게 눈치를 줬다.

‘초소에 키 넣어서 행보관님 올라가신다고 알려! 빨리!’

‘아, 알겠습니다!’

마치 100미터 단거리 경주를 하듯 행정반으로 뛰쳐 가기 시작하는 당직병이었다.

그러나 눈치 좋은 강필두가 소진언과 당직병이 서로 의사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동시간을 없애기 위해 순간이동으로 탄약고 초소를 급습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다수가 보는 앞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건 최대한 억제해야 했다.

물론 전도혁의 썩어빠진 마인드를 개선하기 위해 마법을 부리는 건 별개의 일이었지만 말이다.

무시당할 바에야 차라리 마법을 사용하는 편이 훨씬 더 좋았다.

그게 필두의 마음가짐이었다.

탄약고 초소는 산 정상에 있었다. 그곳까지 걸어가기 위한 여정길에 오르려던 순간.

행정반에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아아.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행정반에서 알려 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사열대 앞에 종교 행사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지금 전 병력은…….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막 산길을 오르려던 찰나에 걸음을 멈춘 필두가 손목시계를 바라봤다.

현재 시각, 오전 9시 50분.

10시부터는 대대에서 각각 종교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당직사병.”

“병장 소진언!”

“탄약고 초소 내려가는 건 나중으로 미룬다. 내려갈 테니 다시 키 넣어둬라.”

“예, 알겠습……?”

‘다시’ 키를 넣어두라는 말에 순간 소진언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방금 필두가 한 말인즉슨, ‘나는 너희가 조금 전에 무슨 작당 모의를했는지 알고 있다’라는 걸 알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도대체 우리 행보관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못 본 사이에 눈치 9단이 되어 돌아온 행보관, 강필두.

소진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필두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가는 듯했다.

* * *

필두와 함께 다시 행정반으로 내려온 소진언.

“인원 체크, 내가 하마.”

“예, 알겠습니다.”

인원현황판을 들고서 곧장 사열대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행정반에서 계속 필두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 분명 뭔가 이런저런 귀찮은 일이 엮이게 될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위 말해서 인원체크를 빙자한 도주였다.

“자자자! 오른쪽부터 기독교, 불교, 천주교 순서로 서라.”

“예!”

종교 행사 참가는 대부분 이등병, 일병, 그리고 물상병급으로만 이뤄져 있었다.

그 이상의 선임병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종교 행사에 잘 참가하지 않았다.

본래는 의무적으로 종교 행사에 참가하게 되어 있었지만, 짬이 높으면 이런 관행도 암묵적으로 허용되었다.

“어디 보자…….”

인원현황판을 통해 종교 행사 참가 인원을 체크해나가기 시작해나가는 소진언이었다.

그 순간,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그의 등 너머로 들려왔다.

“다른 놈들은 어디 있냐.”

행보관, 강필두였다.

그의 물음에 순간 잔뜩 긴장한 소진언이 말끝을 흐렸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오늘 종교 행사 참가는 힘들다고 하…….”

“핑계가 어디 있냐. 노가다를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서 앉았다가 오는 것만 하면 될 일인데. 그리고 한눈에 보니 선임급 놈들만 죄다 빠졌군.”

“그, 그게…….”

“열외는 없다. 전원 집합시켜!”

“예, 알겠습니다!”

결국 필두의 등쌀에 못이긴 소진언이 1생활관으로 향했다.

종교 행사에 몰래 불참한 선임급 병사들의 시선이 소진언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진언 병장님.”

“행보관님한테 들켰다. 전원 열외 없이 종교 행사 참가하라고 말씀하셨다.”

“저희도…… 말입니까?”

“그래.”

소진언의 확답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하아, 그 순둥이 행보관. 또 꼬장 부리네.”

“진짜 교통사고 당하더니 머리라도 다친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왜 갑자기 저렇게 빡세졌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네요.”

“진짜 마음의 편지에 확 써버릴까…….”

“아서라. 포대 분위기 개판 되면 고생하는 건 간부가 아니라 우리야. 그리고 행보관님 행동패턴을 자세히 살펴보면 FM으로 따져봤을 땐 다 맞는 말이기도 하니까. 마음의 편지 써봤자 너희만 피 보는 거야.”

“젠장…….”

“어쩔 수 없네요.”

병사들은 아직 필두를 얕보고 있었다.

멍청하고 순하기만 한 바보 행정보급관, 강필두.

물론 며칠 동안은 병사들을 좀 빡세게 굴리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직까진 오랫동안 굳혀졌던 강필두란 남자의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1생활관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언성을 높였다.

“언제까지 농땡이 피울 거냐! 오늘 또 대청소하고 싶냐!”

갑작스럽게 등장한 강필두의 외침에 병사들이 혼비백산하며 움직였다.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선임급 병사들.

뒤에서는 필두를 욕해도, 앞에서는 그의 말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필두의 호통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근무를 나가 있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모든 병력이 종교 행사 집합을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하나 누구 하나 필두의 면전 앞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이 없었다.

하극상이라는 명목하에 영창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영창행이 가장 무서운 건 그만큼 군복무 기간이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휴가 하나에 목을 매는 병사들인데, 도리어 군 생활이 늘어난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악몽이란 말인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다른 건 몰라도 강필두는 이 시스템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호사를 여기 와서 누리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기구한 운명이었다.

“다 모였나.”

“예!”

필두의 물음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병력들.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병사 몇몇이 보이긴 했지만, 필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직사병.”

“병장 소진언.”

“종교 행사 별로 나눠서 정렬시킨 거냐?”

“예. 오른쪽부터 기독고, 불교, 천주교 순입니다.”

“기독교가 가장 많군.”

제1포대뿐만이 아니라 다른 포대 역시 기독교 인원이 가장 많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기독교가 간식을 가장 잘 챙겨주기 때문이었다.

대대장의 종교가 기독교이다 보니 세 종교 중에서 기독교에 대한 지원이 가장 빵빵했다.

그 때문에 후임급 병사들은 특정 종교에 절실한 신자가 아니라면 웬만해선 기독교를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도 기독교를 가볼까.”

필두가 넌지시 던진 한 마디.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놀라움이 번진 표정을 애써 다시 진정시킨 소진언이 재차 필두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해, 행보관님이 직접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인솔해 내려가마.”

“구,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왜. 내가 가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냐?”

“그건 아닙니다만…….”

종교 행사를 포함해 작업이라든지 모든 군대 관련 활동을 할 때에는 병사의 입장에선 가급적이면 간부가 동행하지 않는 게 훨씬 편했다.

병사의 주 적은 북한군이 아닌 간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

병사들은 간부를 대하기 어려워한다. 필두 역시 그 사실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굳이 기독교 인원들을 인솔해 교회로 내려가겠다고 자처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호기심 때문이다.

기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실제로도 몇 번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아서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기회가 찾아왔으니 도리어 잘 된 일 아니겠는가.

한편, 필두가 동행한다는 말에 기독교 참가 인원들의 표정은 점점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반면, 불교와 천주교를 선택한 소수의 인원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선택의 갈림길이 병사들을 웃고 울게 만든 것이다.

사열대 계단을 내려간 필두가 자연스럽게 기독교 인원들에게 외쳤다.

“좌우로 정렬한다.”

“좌우로 정렬!”

필두의 말을 복명복창하며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하는 기독고 행사 참가 인원들.

인솔자 자리에 선 뒤, 필두가 기운차게 외쳤다.

“앞으로 갓!”

그의 말에 따라 선두에 서 있던 병력들이 억지로 첫걸음을 뗐다.

어제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9090대대 제1포대는 주말 양일 다 조용할 날이 없었다.

* * *

교회는 9090대대 위병소 바로 근처에 있었다.

그 말인즉슨, PX와의 거리 또한 가깝다는 뜻이 된다.

평소 같았으면 기독교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PX에 들려 미리 먹을 것들을 챙겨놓곤 하는 병사들이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강필두. 그가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에 PX를 몰래 이용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래서 간부랑 같이 내려오면 피 본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 불만 어린 목소리게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필두는 다 들리고 있음에도 짐짓 모른 척을 하며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흙 털고 들어가서 착석한다. 실시!”

“실시!”

병사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뒤, 필두 역시 교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필두…… 아니, 드리무어는 신을 믿지 않는다.

만약 신이 있었다면, 애초에 자신에게 과거의 비극들을 줄 리 없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레디너스에 있었을 때도 신전에는 간 적이 없었는데, 설마 낯선 세계에서 교회라는 곳에 오게 될 줄이야.’

호기심에 의해 스스로 선택한 발걸음이었지만, 자조 섞인 웃음은 억제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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