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1화
제4장. 흑막이 되리라(2)
차량을 이끌고 위병소 앞에 도달하자, 근무를 서고 있던 선임 근무자가 의아한 듯 재차 차량을 확인했다.
“저건……?”
“제1포대 행보관님 차량 아닙니까?”
후임 근무자가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임 근무자가 좀 더 눈에 신경을 집중해 차량의 넘버까지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맞네.”
“정말입니까?”
“그래…… 그나저나 별일이네. 행보관님이 주말에 출근을?”
물론 전술훈련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주말에 출근을 하며 훈련 물자를 정비할 정도까지 다급하진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1포대 행보관인 강필두는 본래 주말에 출근하면서까지 부대 정비를 볼 만큼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행보관에 비해서 뭐라고 할까…… 좀 무능력한 편에 속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런 행보관이 주말 출근이라니.
믿기진 않지만, 그래도 간부가 들어오는데 조장을 안 부를 수가 있을까.
“일단 키 넣어라. 바리게이트는 내가 치우고 있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부산스럽게 강필두의 주말 출근을 맞이하기 시작하는 9090대대 위병소.
그의 등장에 여전히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 * *
단독군장에 뭔가 주렁주렁 매달고 뛰어오기 시작한 조장 근무자가 필두를 보자마자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충성. 주말에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부대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조장 근무자도 위병소 근무자들과 마찬가지로 강필두가 일에 대한 열정이 그다지 없는 성격임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떠보기 식으로 질문을 던져본 것이었다.
하나 필두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벼운 말투로 부대 방문 목적을 툭 내뱉었다.
“그냥 잠깐 일 좀 보러 왔다.”
“일…… 말입니까?”
“왜. 안 되냐?”
“아, 아닙니다!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흠…….”
운전대를 잡고 차량을 앞으로 몰고 가려던 찰나에.
유독 위병소 앞 부근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 주차장에 다수의 민간인 차량이 필두의 시야를 뺏고 있었다.
필두가 알고 있는 바로는, 민간인들은 별다른 목적 없이 함부로 이곳 군부대에 들어오는 걸 방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다수의 차량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 차들은 뭐지?”
“저거 말입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조장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자 조장이 간이 주차장을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필두가 원하는 답변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면회 차량입니다.”
“면회?”
“예.”
“흠…….”
머릿속에 저장된 데이터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면회.
군부대에 있는 병사를 만나기 위해 가족, 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부대로 직접 찾아오는 것을 가리켰다.
때에 따라 면회 외출, 면회 외박도 가능하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몇몇 병사들이 면회를 신청했었지.’
이제야 그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간 이곳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군부대에 출퇴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 떠올리는 게 좀 늦었다.
“알았다. 그럼 수고해라.”
“예, 고생하시기 바랍니다! 충성!”
필두에게 다시금 거수경례를 하며 그를 떠나보내는 조장 근무자였다.
한편, 차량을 몰고 부대 앞으로 도달할 무렵, 병사들이 오전부터 개인정비 시간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족구를 하는 병사들의 모습, 간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병사들도 더러 보이고, 사열대 앞에서 전투화를 바삐 손질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
차량에서 내린 뒤, 막사를 향해 계단에 올라서는 와중에 전투화 손질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병사 한 명의 모습을 바라봤다.
통신분과에서 부분대장을 맡고 있는 상병, 나전구였다.
“전투화 손질하고 있나.”
슬며시 말을 걸자, 나전구가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선보였다.
이윽고 거수경례를 시전했다.
“충성!”
“충성.”
“행보관님이 주말엔 어쩐 일로…….”
“내가 주말에 출근하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나?”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전구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행보관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렇게 오해할 수 있을 만한 요지가 충분했기에 곧장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필두는 그런 거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인지 쿨한 입장을 내비쳤다.
“사과할 게 뭐가 있나. 그나저나…… 전투화 손질을 하는데 뭔가 좀 많이 있는 거 같군.”
“예, 그렇습니다.”
“그건 뭐지? 라이터인가?”
“예.”
라이터뿐만이 아니라 구두약 뚜껑에 물도 담겨 있었다.
일반적인 전투화 손질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거지?”
“불광 좀 낼까 합니다.”
“불광이라고?”
“네. 행보관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 라이터 불을 이용해서 전투화의 광을 매끈하게 낼 생각입니다.”
‘신기한 방법이로군.’
병사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투화를 손질하곤 한다는 건 필두도 대략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손질하는 모습을 보는 건 사실상 처음이었다.
좀 더 오랫동안 시간을 두고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행보관이 너무 병사의 전투화 광내기에 자리를 잡고 구경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도 나름 영 아닐 거 같아 곧장 걸음을 옮겼다.
필두가 목표로 삼은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행정반.
사복 차림의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서 데스크톱으로 인트라넷을 즐기고 있던 당직사병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추, 추웅성!”
“충성. 뭘 그리 재미있게 보고 있었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방금 전에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모니터가 뚫어져라, 보고 있던데.”
“그, 그게…….”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당직사병.
그 순간, 필두가 자신의 시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모니터 화면 밑으로 내려가 있는 창의 글씨가 그의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옆집 누나의 은밀한 사생활…… 이게 뭐지?”
“죄, 죄송합니다! 잠시 시간이 나서 야설을 좀 보고 있었습니다.”
“…….”
혈기왕성한 군인들이 군대라는 갑갑한 장소에서 성욕을 풀 방법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맥X이라든지 스X크 같은 잡지를 통해서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를 하는 게 전부일 뿐.
야설 보는 것 정도는 그래도 용서해 줄 용의가 있는 모양인지 필두가 당직사병의 머리 위에 가볍게 꿀밤을 놓았다.
“근무에 너무 지장을 줄 수 있을 정도로만 보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당직사병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 * *
강필두가 행정반에 들어설 무렵.
때마침 불광 내기에 열중하고 있던 나전구에게 당직병이 말을 걸어왔다.
“나전구 상병님.”
“어, 무슨 일이냐?”
바쁘게 전투화에 광을 내고 있던 나전구가 노골적으로 바쁘다는 티를 냈다.
그러나 당직병은 그를 방해하려고 일부러 말을 걸어온 게 아니었다.
“나전구 상병님 면회오신 분들, 지금 위병소에서 부대로 도착했다고 키 왔습니다.”
“정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순 없지!”
곧장 전투화를 들고서 2생활관으로 뛰어가다시피 하는 나전구.
생활관으로 들어오자마자 바삐 A급 전투복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전구 상병님. 오늘 면회입니까?”
FDC(사격지휘) 병과에 속해 있는 한 일병이 전구에게 친근히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전구가 고개를 끄덕여주며 자랑을 하듯 대답했다.
“대학교 친구들 4명이 면회 왔다고 하더라.”
“설마 그 말로만 듣던 여대생이라도 오는 겁니까?”
여대생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생활관에서 각자 알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병사들의 시선이 나전구의 입을 향해 모였다.
그러자 나전구가 옅은 웃음을 토해냈다.
“하하…… 이런 여자에 미친 녀석들을 봤나. 그래. 온다, 와!”
“정말입니까?”
“저도 데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나전구 상병님!”
여기저기서 후임들의 빗발치는 소원수리들.
그러나 나전구는 과감히 이들을 떨쳐내고 A급 전투복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녀석들아. 가서 똥 휴지나 비우고 와라. 2생활관 화장실 휴지통 전부 다 꽉 차 있더라.”
“크읍…….”
“……알겠습니다.”
후임병들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슬리퍼를 신은 채 2생활관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괜히 휴지통이 꽉 차 있다는 게 오늘의 당직사관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얄짤없이 부대 관리에 들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귀찮게 구는 후임병들을 전부 다 물리친 나전구가 A급 전투화와 동시에 불광으로 한껏 멋을 부린 전투화를 연신 내려다봤다.
“이 정도면…… 훌륭하군!”
전투복 상의에 줄까지 제대로 다림질을 해놨다.
물론 이렇게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민간인들 앞에선 결국 다 같은 군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군인만 되면 묘하게 선에 신경을 쓰게 되는 버릇이 생기게 마련이었다.
다림질에 광까지 완벽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전구가 행정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나아가 행정반의 문을 열고 목소리를 높이며 외쳤다.
“충성! 상병 나전구,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을 한 건 다름이 아닌 행보관, 강필두였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방금까지 전투화에 광이나 내고 있었을 텐데.”
“면회 갈 준비 다 끝났습니다!”
“면회?”
강필두의 물음에 당직사병이 다가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늘 나전구 상병, 대학교 동기들 면회 있다고 들었습니다.”
“면회자들은 부대로 도착했나?”
“예, 방금 키 왔습니다.”
“……그러냐.”
오늘 당직을 맡게 된 전포사격통제관은 잠깐 대대 상황실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나.’
필두가 속으로 짧게 혀를 차면서 설레는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나전구에게 지시했다.
“와서 신고하고 내려가라.”
“예, 알겠습니다!”
필두의 말에 따라 전구가 거수경례 이후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본래 강필두의 성격상, 그냥 이러한 절차 없이 내려가 보라고 말했던 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강필두는 달랐다.
신고를 마치자마자 FM대로 면회를 하기 전, 모든 절차를 다 수행하게 했다.
“이, 이제 된 겁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가고 싶어 안달이 난 전구에게 필두가 나가보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빠르게 사열대 바깥을 나서기 시작하는 나전구.
그 모습을 보던 필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기강이 너무 해이해져 있어.”
주말 오전부터 부대에 출근을 해서 병사들의 개인정비시간을 염탐한 결과.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약해 빠진 군대.
그 인식만이 가득 찰 뿐이었다.
‘레디너스 대륙에서 추격대를 보내오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이 녀석들을 전부 나의 충성스러운 부하와 군대로 육성시켜야 하거늘…… 언제 이놈들을 훈련한단 말인가.’
그보다 가장 큰 문제는 병사들이 행보관인 강필두를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행보관이지만, 위압감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병사들은 행보관인 그를 편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실제로 얼마 전, 나전구의 모습을 봐도 충분히 그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행보관이 행정반에 있는데, 그는 군기보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면회자들과 만나 즐겁게 지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기강이 해이해지면, 전도혁 같은 미친놈이 언제든지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전도혁은 한 명으로 충분했다.
제2의 전도혁, 제3의 전도혁은 괜히 양성하고 싶지 않았다.
강필두는 행보관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더욱 엄하게 굳히고 싶었다.
행보관을 너무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그 점을 어떻게 해서든 고치고 싶다는 결심을 품게 된 필두가 머릿속의 데이터를 꺼내봤다.
주말이기 때문에 이들을 노골적으로 굴릴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병사들에게 행보관, 강필두의 악마 같음을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던 찰나에.
‘……가만.’
슬며시 시선을 돌려 당직사병을 불렀다.
“거기 당직.”
“상병 이민철.”
아까 필두에게 인트라넷을 통해 야설을 보다가 딱 걸렸던 그 당직사병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괜히 또 한 소리 늘어놓는 거 아닐까 겁이 든 민철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용무를 물었다.
그러자 필두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병사 입장에서 주말에 간부가 무엇을 시키면 가장 껄끄러워 하는 거 같냐.”
“갑자기 그런 질문을 어째서…….”
“미리 그런 것들을 알아둬야 너희를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않겠냐.”
“과연! 역시 행보관님이십니다!”
곧장 필두의 꾐에 넘어간 민철이 신이 난 모양인지 연달아 입을 열었다.
“부대관리라든지 일광건조, 총기손질, 이런 것들 정도일 거 같습니다.”
“그렇군.”
자리에서 일어선 뒤.
필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리고 곧장 ON 버튼으로 올린 채 병사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아아, 행보관이다. 지금부터 전 분과는 일광건조 실시할 수 있도록.”
필두의 기습 방송에 이민철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