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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10화 (10/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10화

제4장. 흑막이 되리라(1)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충성!”

“충성.”

행보관실을 나온 전도혁.

그의 머릿속이 여기저기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어…….’

전도혁에게 A급 병사가 되라니.

그렇단 말은…….

지금까지 해왔던 가짜 관심병사 짓을 관두고 제대로 군 생활을 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물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벌써 이미지가 나빠질 만큼 나빠진 전도혁인데, 과연 이제 와서 그가 노력을 한다 해도 병사들이 과연 전도혁을 받아줄까.

‘……젠장. 행보관, 저자만 아니면 이런 짓도 안 할 텐데……!’

속으로 행보관에 관한 욕지거리를 내뱉어봤다.

독백 형식으로 행보관 욕을 하는 건 괜찮았다. 정작 문제가 되는 건 이 머릿속에 들고 있는 생각을 입 바깥으로 꺼냈을 때가 문제이니 말이다.

그럴 때만 지독한 두통이 동반될 뿐. 그 이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이런 거라도 통제되었다면, 전도혁은 아마 정신이 반쯤 나갔을지도 몰랐다. 뒷담화라도 까야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아마 이 점 때문에 필두도 일부러 전도혁에게 마음속으로 욕하는 행동만큼은 허락을 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건 둘째 치고.

전도혁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A급 병사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단계.

바로 관심병사를 탈출하는 일이다.

전도혁이 조금만 더 괜찮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관심병사를 벗어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행보관이 그의 편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분대장한테 먼저 좋은 면모를 어필해야겠군.’

전도혁이 소속되어 있는 하나포. 이 분과의 분대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소진언이었다.

사람이 약간 풀어지고 빈틈이 많아 보인다 하더라도 할 때에는 하는 그런 병장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평소 소진언이 껄렁이는 모습을 보여도 간부들은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대대전술훈련이라든지 포대전술훈련 등 9090 대대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중요한 훈련 같은 게 있을 때에는 포대 고참 중 한 명인 소진언이 직접 나서서 부대 분위기를 책임져줬다.

자발적으로 후임급들이 제대로 훈련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체크해 준다.

훈련 물자라든지 이런 것도 간부들이 놓친 게 있으면 소진언이 따로 보고해 알려주는 경우도 대다수 존재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훈련 기간 한정으로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게 문제이긴 했다. 평소에는 나태함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게으른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완벽할 수만 있겠는가.

소진언처럼 완벽한 구석도 있으면, 허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 소진언의 마음을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돌려야 했다.

“어렵겠는데…….”

한 번 돌아선 사람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었다.

의외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축에 속하는 전도혁이기에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여하튼 다시 1생활관으로 돌아온 전도혁.

병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전파사항 있습니다!”

1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온 당직사병이 목소리를 높였다.

“분리수거장 작업 3명!”

“이병 강성태!”

“일병 조민수!”

당직사병의 말이 끝나자마자 때마침 1생활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후임급 2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상병장급들은 이미 자신이 자원해서 나갈 짬밥까진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여전히 손을 들지 않은 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필이면 후임급들 대다수가 둘포 반장과 함께 처리할 작업이 있어 나간 덕분에 후임급들이라고 해봤자 방금 손을 든 두 사람밖에 없었다.

아니, 한 명 더 있지 아니한가.

“…….”

“…….”

상병장급들의 시선이 절로 혼자 남은 후임급 한 명인 전도혁에게 고정되었다.

전도혁은 이런 작업병 선출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별로 기대도 하지 않는 선임급들이었지만…….

“일병 전도혁.”

“……?”

모두가 놀란 시선으로 전도혁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오른손을 들고 자신의 관등성명을 들려줬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슨.

작업을 하겠다는 의사표현과도 같았다.

“전도혁…… 네가?”

당직사병도 믿기지 않는 모양인지 재차 전도혁에게 작업 참여 의사를 물었다.

혹여나 억지로 작업에 참가시켰다고 마음의 편지에 긁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네. 작업 나가겠습니다.”

“그…… 렇다면야…….”

약간 못 미더운 표정을 지어 보이던 당직사병이었으나, 그래도 상병장급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에서 전도혁의 자원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3명의 작업 인원들이 당직사병의 뒤를 따라 생활관 바깥을 나섰다.

그러는 사이에.

남은 상병장급들이 전도혁 때문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거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9090대대 제1포대에 새로운 미스터리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분리수거장으로 불려 나온 세 후임급 병사들.

그중에서 유독 의욕에 넘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읏차!”

한눈에 봐도 장정 세 사람이 달라붙어 옮겨야 할 꾸러미들을 전도혁 혼자서 어깨에 짊어진 채 옮기고 있었다.

그런 전도혁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명의 일병과 한 명의 이등병.

서로 말없이 그저 전도혁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나 전도혁은 두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틈이 없다는 듯이 계속해서 짐 꾸러미들을 옮기는 데에 매진했다.

한편.

이들의 작업을 바라보고 있던 하나포 반장, 한상철 하사가 자신의 두 눈을 믿기 힘들다는 듯이 말했다.

“도혁이, 네가 웬일이냐. 작업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다하고.”

“앞으로 마음을 달리 먹고 A급 병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오, 그러냐?”

하나포 반장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병사가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다는데, 기뻐하지 않을 간부가 어디 있겠는가.

하기야. 전도혁이 정말 마음만 먹는다면 A급 병사로 거듭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병사들에 비해 체격도 좋고, 심지어 바깥에서 운동을 했던 자라 그런지 체력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잔머리 또한 비상했다.

그래서 일부러 관심병사인 척하면서 군 생활을 편하게 보내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보관인 필두에게 딱 걸려 버렸다.

A급 병사가 되지 못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야산에 거꾸로 매단 채 멧돼지 먹이가 되게끔 해버린 적도 있는데, 까짓것 그보다 더한 일도 못할쏘냐.

괜히 농땡이 부렸다가 죽는 것보다도 더한 고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도혁이 절로 이를 악물었다.

차라리 2년 동안 필두가 하라는 대로 하면서 군 생활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편한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젠장!’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오만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외부로는 착한 척하며 A급 병사로서 착실히 성장해야 했다.

필두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것이 전도혁에게 부여된 숙제이기도 했다.

* * *

분리수거 작업이 끝난 이후.

“작업 끝내고 왔습니다.”

“고생했다.”

목장갑을 벗으면서 행정반으로 들어온 하나포 반장에게 필두가 수고했다는 의미를 담은 말을 전해줬다.

그러면서 동시에 확인 차원에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작업에 참여한 인원 중에 전도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 맞습니다.”

“그 녀석, 일 제대로 했냐.”

“기가 막히게 했지요! 처음 봤을 때 다른 사람인 줄 알았지 뭡니까!”

“흐음…… 그런가.”

하나포 반장은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다.

설사 거짓말을 한다 해도 구태여 하나포 반장이 전도혁을 위해 상관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의 공로를 높여줄 필요는 없었다.

아마 하나포 반장의 말은 사실이리라.

‘녀석…… 내가 시키는 대로 착실하게 하고 있는가 보군.’

한 번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보다도 행보관님.”

“왜 그러냐.”

“당직사관 명단 보니까…… 내일 모래 당직사관 근무자 이름이 행보관님으로 되어 계시던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안다만. 무슨 일로 그러지?”

“행보관님 사고당하신 이후에 부대로 복귀하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불편하시다면 제가 대신 서겠습니다.”

하나포 반장의 얼굴에 내심 걱정 어린 감정이 묻어나왔다.

최근 들어 안 사실이지만, 하나포 반장을 비롯해 부사관들은 대다수 필두의 건강 상태를 많이 걱정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교통사고에 이어서 산행 작업 도중 멧돼지까지 마주쳤으니 말이다.

포대장도 요즘에는 부쩍 행보관을 주시하는 눈빛을 자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필두는 걱정하지 말라면서 하나포 반장의 친절을 거절했다.

“괜찮다. 당직 정도는 설 수 있으니까 너무 그렇게 과보호하지 마라.”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예, 알겠습니다.”

필두는 이런 간부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야 했다.

간부들이 너무 자신을 예의주시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행동 제약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을 비롯한 간부들까지.

하나하나 9090 대대를 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놓으려면,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흑막으로서 철저하게 정체를 숨긴 채 움직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바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가장 빠른 방법은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건강해졌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필두가 행보관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일정대로 당직사관 업무를 소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 일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말이야 쉽지.

사실 당직사관이라는 걸 전혀 서본 적이 없는 필두였기에 내심 걱정이 앞서긴 했다.

‘당직사관이라…….’

때마침 내일부터 주말의 시작이었다.

필두가 당직사관을 서는 날은 일요일.

‘내일 출근을 해서 토요일 당직사관 근무자가 어떤 식으로 당직을 서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당직사관이란 존재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 습득하는 게 더 편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이해력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때 아닌 주말 출근을 자처해야 함에도 필두는 그다지 큰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있어도 할 일도 없는 솔로 인생이니 말이다.

* * *

토요일 아침.

오전 7시라는 비교적 빠른 주말 아침 기상을 선보인 필두가 자세를 취하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서서히 모여드는 마나의 기운.

처음 이 세계에 왔을 때에 비해서는 양적으로 상당히 많이 늘어난 편이었지만…….

‘아직 멀었어.’

두 눈을 슬며시 뜨고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마법을 주된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세계이다 보니 마나도 풍부하지 않았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건 좋지만, 때로는 텔레포트처럼 마법이 더 편리한 때도 종종 있었다.

“하루빨리 본래 힘을 되찾고 싶군…….”

투덜거리면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하는 필두.

그러는 사이에, 자신이 군복을 입으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주말 출근은 애초에 예정된 출근 일정이 아니었다.

군복이 아닌 평상복을 선택한 필두.

“사복을 입고 출근이라…… 이것도 묘한 기분이로군.”

하지만 그때 당시 필두가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다.

행보관이 주말에 출근해 부대에 있다는 것이…….

병사들에겐 얼마나 괴로운 의미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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