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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9화 (9/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9화

제3장. 거짓말 사냥꾼(4)

“크릉…….”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멧돼지.

들짐승의 어마어마한 덩치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도혁은 이런 소문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야산에 작업을 하러 나갔던 병사 한 명이 멧돼지에 치여 의가사 제대를 했었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 병사의 계급이…….

병장이었다고 한다.

군 생활 이미 다 해본 만큼 해봤을 병사인데, 고작 멧돼지에 한 번 치인 거 가지고 의가사 제대를 하다니. 얼마나 억울할까.

‘차, 차라리 나도 멧돼지에게 치이면…… 의가사 제대를 할 지도…….’

그런 생각을 품어보는 도혁이었으나.

바로 앞에서 거친 콧김을 내뿜는 멧돼지를 두고서 그런 자학적인 생각이 난다는 건 정말로 정신이 나간 짓이기도 했다.

게다가 전도혁은 어디까지나 심신병약인 척 연기를 하는 가짜 관심병사였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아니, 오히려 여우처럼 약삭빠른 지능을 지니고 있는 꾀돌이, 전도혁인데 일부러 멧돼지에게 치여 의가사 제대를 노린다면, 진작부터 칼로 손목을 긋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었다.

살고 싶다!

괜히 오기도 싫은 군대에 끌려와서 반병신이 되어 사회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사지 멀쩡한 채로 나가고 싶다!

그런 본능이 전도혁의 마음속에서 꿈틀꿈틀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인간이라 함은 너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기본적으로 들게 되어 있지. 암, 그렇고말고.”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가 전도혁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어찌 있겠는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해, 행보관님……!”

“잘 있었냐, 미친놈아.”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마…… 행보관님께서 한 짓입니까?”

매섭게 필두를 노려보는 전도혁.

이미 구태여 그에게 대답을 촉구하지 않아도 다음 이어질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야 뻔하지.”

“이건 너무 도가 지나치십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구요!”

‘요’자 체를 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하기야. 지금 당장에라도 멧돼지가 무저항에 가까운 샌드벽, 전도혁을 들이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찌 발버둥을 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거꾸로 매달린 번데기 마냥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는 전도혁의 모습이 필두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남의 고통은 나의 쾌락.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그게 바로 희대의 악인, 드리무어의 관념이었다.

“네가 왜 이러한 처사를 받게 되었는지……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제, 제가 말입니까?”

“내 경고를 무시하고 대대장에게 나의 만행을 토로하려 했던 거, 기억나나?”

“…….”

“나는 단지 그에 대해 보복을 할 뿐이다.”

네거틴 드리무어.

이미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복수심으로 물든 자였다.

“남한테 한 번 뒤통수 치기를 허용당하면, 나 같은 경우에는 그 얼얼함에 꽤 오래가거든. 그래서 더더욱 배신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복수하는 편이지.”

“사,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행보관님!”

“다시 한번 묻겠다. 나의 부하가 되겠는가?”

상담 때에 이어 두 번째 질문.

그러나 이미 물어볼 필요도 없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 하겠습니다!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때도 같은 말을 했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너를 믿지?”

“그, 그건…….”

“이번에는 좀 더 큰 거를 걸고 싶은데.”

필두의 눈빛에 강한 이채가 어렸다.

전도혁의 입장에서 이미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악마 그 자체였다.

“다음에 나와의 이 약조를 어긴다면, 너의 ‘목숨’을 가져가겠다.”

“히, 히익……!”

“왜, 싫은가?”

이건 미친 짓이었다.

고작해야 군 생활 한번 편하게 하려고 관심병사인 척을 했던 것이 결국은 목숨을 담보로 내건 약속까지 오게 되었다.

받아들여도 죽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거절한다면…… 멧돼지에게 치여 죽을 수도 있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든 간에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은 매한가지.

갈등하는 그 순간.

“크르릉!”

갑자기 멧돼지가 전도혁을 향해 돌진해 왔다!

쿵쿵쿵쿵쿵!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마어마한 속도를 뽐내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거의 멧돼지와의 거리가 채 3미터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하, 하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지를 골랐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선택이다, 부하 1호여.”

그 말과 동시에…….

다가오던 멧돼지의 안면을 향해 그대로 오른손을 휘두르는 필두.

그의 주먹이 꽂히는 순간.

뻐어어어억!

둔탁한 마찰음과 동시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분명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뒤로 튕겨 나가떨어져야 할 상대는 필두였다.

그러나 그는 멀쩡히 서 있었다.

오히려.

쿠웅!

거대한 덩치를 지닌 멧돼지가 뒤로 5미터 이상 나가떨어지면서 두꺼운 나무 기둥에 부딪쳤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는지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

전도혁 또한 그대로 정신줄을 놓은 채 축 늘어졌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필두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기절했군…… 내 부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단 말이야.”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전도혁을 필두로 행보관, 강필두는 병사들을 비롯해 간부들까지 하나하나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공략을 해갈 예정이었다.

그가 최종적으로 생각하는 목표는 바로…….

자신만의 부대를 만드는 것.

강필두의 손으로 대한민국 군대를 좌지우지하게 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 * *

이른 아침부터 출근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하는 필두.

화장실에 놓인 거울 앞에 마주 서자, 그의 얼굴에 의미 모를 감정이 번졌다.

분명 시공의 균열을 통해 적들을 따돌려 이곳 세계에 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드리무어는 자신의 육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의 육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아직도 시공의 균열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기존의 드리무어는 결국 죽은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강필두라는 이계의 주민으로 다시 태어났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었지만, 때마침 강필두는 9090 부대에서 행정보급관의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세계를 적으로 돌란 악인, 드리무어가 일개 군부대의 간부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여하튼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곳에서 흑마술을 필두로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면 된다!

“그전에 우선…… 내 밑에서 일할 충실한 부하들을 확보해야 할 터인데.”

자신의 명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을 미리 마련해놓는 것이 최우선 사항으로 꼽혔다.

필두의 수족처럼 움직여줄 수 있는 체스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군부대 내에서 필두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더더욱 커질 터.

차라리 국방부에 쳐들어가서 장관을 세뇌시킬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다.

그러나 아직 시기상조였다.

드리무어는 아직 대한민국 군부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이 나라의 군부대 문화는 드리무어가 알고 있던 레디너스 대륙에서의 군부대 문화와 사뭇 달랐다.

하기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레디너스 대륙에서는 국가 간의 전쟁이 일상화된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전쟁을 접하지 못한 세대들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평화의 시대.

이 한 마디로 지금 이 세계의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평화의 시대인 만큼 사람의 목숨 또한 귀했다.

살인을 저지르기라도 한다면, 무거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필두도 함부로 사람을 죽이거나 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 전도혁이라는 새끼의 모가지를 몸통에서 분리해 버리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행보관인 그가 살인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사회적인 파장이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군대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은 뉴스에서도 항상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괜히 이계의 주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되는 순간, 혹시 모를 추격자들에게 정체를 들통 나게 될지도 몰랐다.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흑막으로서 움직여야 했다.

그게 필두의 전략 중 하나였다.

전투복을 착용한 이후에 전투화까지 신은 뒤.

“슬슬 가볼까.”

흑마법사는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평범한 출근길에 올랐다.

* * *

“충성!”

“그래, 충성.”

건성으로 조장의 거수경례를 받아준 뒤, 차량을 몰아 9090 부대 제1포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차량에서 하차하자, 때마침 집합 전 오전 일과를 소화하고 있던 병사들이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충성. 당직 어디 있냐.”

“행정반에 있을 겁니다.”

“……알았다.”

곧장 막사 계단 위로 올라간 필두.

“당직!”

“상병 오민철!”

후다닥.

빠른 걸음으로 필두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오늘의 당직사병, 오민철이 잔뜩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마침 근무 교대를 위해 완장을 떼어놓으려고 하는 순간, 졸지에 필두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방송으로 전도혁 좀 이쪽으로 오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의무대에서 이제 막 부대로 다시 복귀하게 된 전도혁이었지만.

필두의 부름에 부랴부랴 행정반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충성! 일병 전도혁,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행보관실로 들어와라.”

필두가 손짓으로 행보관실을 가리켰다.

순간적으로 침을 크게 한 번 꿀꺽 삼킨 전도혁이 무거운 걸음으로 필두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문이 닫히는 순간.

“그래…… 오늘부터 내 부하 1호로 활동하기로 했었지?”

“……그, 그렇습니다!”

잔뜩 긴장한 나머지 잠깐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필두는 크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이 재차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너에게 첫 번째로 명령을 내리마.”

“명령…… 이 무엇입니까?”

“명령이라는 단어도 모르냐? 최면술로 알려줄까?”

“아, 아닙니다!”

이제는 최면술에 ‘최’ 자만 들어도 몸이 절로 반응을 할 정도였다.

필사적으로 그것만큼은 참아달라는 의사를 표현하는 전도혁의 모습에 필두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나쳐 갔다.

‘나의 교육이 확실하게 잘 들었나 보군.’

인간을 다스리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돈.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두 번째가 권력.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이라든지 영향력을 나타낸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공포심이다.

인간은 상당히 섬세한 정신상태를 보유하고 있는 생물이다. 그래서 인간만큼 공포라는 감정이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존재 또한 없을 터.

폭력이라든지 협박 등등으로 공포감을 심어주게 되면, 그게 싫어서라도 사람은 가해자의 말을 따르게 된다.

드리무어가 흑마법사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공포였다.

이 세계로 와서 졸지에 드리무어의 공포심 심어주기 첫 번째 희생자가 된 전도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혹여나 행보관이 돈이라든지 금전적인 것을 원하면 집안에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벌써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러나 필두가 첫 번째로 지시를 내린 건 전혀 생뚱맞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관심병사에서 벗어나 A급 병사가 되어라.”

“……?”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그런 전도혁에게 필두가 재차 강조하듯 말을 반복했다.

“못 들었냐. A급 병사가 되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A급 병사가 되라고 하다니.

하나 필두는 그의 이견을 허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그저 짧은 대답만을 들려줄 뿐이었다.

“누가 내 말에 토를 달라고 했지? 넌 그저 내가 하라고 말하면 그대로 따르면 된다.”

“그렇지만…….”

“잊지 마라. 네 목숨은 내 것이라는 사실을.”

“…….”

그랬다. 전도혁의 목숨은 더 이상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강필두.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게 전도혁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최면술로 엄청난 두통을 유발할 수 있는데, 죽이는 것도 어쩌면 정말로 가능할지 몰랐다.

전도혁은 순간적으로 필두의 손이 자신의 심장을 그대로 움켜쥐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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