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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7화 (7/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7화

제3장. 거짓말 사냥꾼(2)

행보관실을 나서는 전도혁.

그의 어깨에는 뭐라고 할까, 잔뜩 군기가 잡혀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가봐라.”

“예! 충성!”

목소리에 잔뜩 힘이 실린 전도혁.

순간적으로 행정반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당직사병과 당직병, 두 사람이 못 볼 꼴을 봤다는 시선을 유지했다.

“아니,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래?”

“뭘 잘못 먹었나?”

도대체 필두와 무슨 상담을 주고받았길래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의아함을 드러내는 두 사람에게 필두가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전해뒀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두 사람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어차피 전도혁은 그 누구에게도 필두가 최면을 걸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도혁의 말을 믿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관심병사인 척하면서 선임과 동시, 그리고 간부들에게 밉상이 찍힐 만한 짓을 많이 했던 전도혁.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잔꾀는 오히려 역풍이 되어버렸다.

이제와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한들, 전도혁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필두는 그 점을 이용해 일부러 전도혁에게 자신이 최면을 걸었다는 사실을 들려줬다.

결국 전도혁에 걸린 이 정신계열 마법은…….

행보관인 강필두와 전도혁, 두 사람만의 강제 기밀인 셈이었다.

* * *

퇴근길을 서두른 필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자세를 갖추고 정신을 집중했다.

“…….”

명경지수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마나의 기운을 느꼈다.

멧돼지를 상대할 당시, 오랜만에 마법을 사용해서 살아 있는 생물체를 공격한다는 감각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의 마법력이 많이 약해져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직 본래의 힘을 되찾으려면 한참 멀었군.’

드리무어 시절 때의 힘과 지금을 비교하자면 대략 5분의 1도 안 되었다.

그토록 무궁무진했던 마나 덩어리들이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차원을 넘는다는 건 그만큼 많은 마법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드리무어의 육체가 어떻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영혼이라도 온전히 보전에 사고로 죽은 걸로 추정되는 강필두의 육신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어디겠는가.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 든 필두가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파악했다.

이윽고 자신의…… 아니, 강필두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엄마란다. 오늘 첫 출근은 어땠니? 몸 상태는 괜찮고?

“네,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렇구나. 네가 다시 건강해져서 이 어미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오랜만에 체험해 보는 어머니와의 대화.

그 속에서 드리무어는 한참 예전에 잃어버렸던 ‘가족’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다시금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무참해 살해된 가족들.

그리고…….

세상의 배신.

마법사로서 엘리트의 길을 걷고 있었던 드리무어는 그 일로 폭주를 하게 되었고, 결국 흑마법의 힘을 접하게 되며 희대의 악인이라는 칭호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직도 가족들의 시체가 눈앞에 펼쳐진 일이 정확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차원을 넘고 보니 새로운 어머니가 생기게 되었으니…… 드리무어의 입장에선 영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중.

필두의 어머니가 전화를 건 또 다른 용무를 발설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이제는 장가를 가야 하지 안 그러냐.

“장가…… 말입니까?”

-그래. 나하고 네 애비는 멀리 떨어져 사니까 널 잘 보살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한 며느리 하나 얻어서 내조를 맡기든가 해야 우리가 안심할 수 있을 거 같구나.

“…….”

-어떠냐. 때마침 좋은 아가씨 있는데 소개 한번 받아볼래?

여자를 소개받아보라는 제안이 들어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물론 드리무어도 레디너스 대륙에 있었을 당시에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가족이 몰살당하는 일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드리무어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직은 생각이 좀 없군요.”

여색을 밝히는 것보다 잃은 힘을 되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연애로 괜히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에 우선 한 번 정중하게 그의 어머니가 들려준 제안을 거절해 봤다.

그러나 필두의 어머니 또한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과거의 이야기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서 30살부터 지금까지 장장 8년을 홀아비로 지내오지 않았냐. 이제는 여자 좀 만나야지.

“…….”

-이번에는 이 어미도 양보 못 한다.

아무래도 필두가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더더욱 이런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필두를 옆에서 챙겨주고 내조해 주는 여자가 있으면 부모로서 안심이 되는 건 당연지사.

게다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8년을 버텨왔다고 하니…… 더 이상 강경하게 제안을 물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만나는 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잘 생각했다!

어차피 만나고 밥 한번 먹고 그 뒤로 연락을 안 하면 그만이다.

말 그대로 만나기만 할 뿐.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를 끝낸 이후, 다시 정좌를 하고 앉아 정신을 집중하는 필두였다.

* * *

다음 날 아침.

오늘은 대대장이 제1포대로 순찰을 오는 날이었다.

자체 검열이었기에 포대장을 비롯해 간부들 역시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두 가지 것이 바로 즉각사격준비태세와 내무 병영생활 문제였다.

즉각사격준비태세의 경우에는 전포사격통제관이 책임을 지고 FDC(사격지휘소)와 연계를 해 이른 아침부터 주기적으로 체크를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바로…….

내무 부조리 여부 조사뿐!

“이등병, 일병은 1생활관으로. 그리고 상병장급들은 2생활관으로 각각 집합한다. 실시.”

“실시!”

하사관의 말에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머지않아 포대장의 기운찬 충성 소리가 들리고 난 직후.

1생활관의 문을 열고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성!”

“충성.”

가장 선임으로 보이는 일병 병사의 거수경례를 받아주면서 동시에 대대장이 후임급들을 바라봤다.

“오늘 여러분을 이렇게 보고자 한 것은…… 제1포대 내무 부조리 여부에 관한 조사를 하기 위함이다. 대대장이 한 명씩 호명해 1대 1로 면담을 할 터이니, 혹시 병영 생활에 관해 뭔가 안 좋은 점들, 혹은 문제점들이 있다면 그때 나에게 말을 해오도록. 이상.”

그렇게 말하고서 포대장실을 향해 걸어나가는 대대장.

그 순간.

후임급들의 모든 시선이 전부 전도혁에게 꽂히기 시작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전도혁의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 * *

대대장의 방문.

이미 예견되어 있는 방문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급자가 올 때마다 하급 부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혹여나 병사들이 이상한 걸 적어서 마음의 편지에 넣어두진 않을까.

아니면 대대장에게 위험한 발언을 들려주거나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포대장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대대장님이 오실 때마다 심장 떨려서 못 살겠네…….”

포대장의 앓는 소리가 행정반에 울려 퍼졌다.

현재 1생활관 안에 들어가서 뭔가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는 대대장.

1생활관에 들어가 있는 간부는 오로지 대대장 한 명뿐이었다.

괜히 제1포대장, 혹은 필두라든지 다른 간부가 대대장과 함께 생활관에 들어가면, 병사들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껴 본심을 말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탓일까.

그런 생각에 대대장은 매번 이렇게 내무생활 실상 파악을 위해 부대를 방문할 때에는 혼자서 병사들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더해 후임급들에게는 1대1 면담도 일일이 다 할 예정이라고 하니…….

포대장으로서는 한 마디로 살 떨리는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본래 9090 대대장은 유독 병영생활에 관해서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선임 기수들이 내무 부조리로 인해 발생한 자살, 혹은 폭행 사건 덕분에 불명예 전역을 한 경우가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바로 밑에서 그러한 경우를 자주 보아온 대대장이기에 이렇게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밑에 간부들만 애간장이 탈 뿐이었다.

“이번에도 그 전도혁 녀석 때문에 불안해 죽겠습니다.”

전포대장 역시 포대장의 말에 공감하듯 자기 생각을 표현했다.

두 장교 계급은 특히나 더 살 떨릴 수밖에 없었다.

진급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두 장교의 약한 소리에 필두가 무표정으로 그들의 말을 받아줬다.

“전도혁에 관한 거라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만…….”

행보관인 강필두가 직접 이런 말을 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바로 엊그제만 하더라도 전도혁에게 가장 많은 분노를 산 게 바로 강필두 아닌가.

그런데 당사자인 그가 오히려 이런 으름장을 늘어놓다니.

전도혁에게 가장 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을지도 모르는 인물이 역으로 태평한 말을 들려주니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1생활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행정반으로 들어오는 대대장.

“충성!”

“충성. 당직사병한테 1생활관 병사들한테 낮은 계급 순번으로 차례차례 한 명씩 포대장실로 들어오게끔 호명하라고 해라.”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이 그 말을 마치고 곧장 포대장실로 들어가버렸다.

* * *

“그럼 호명하는 순번대로 한 명씩 들어오도록.”

그 말을 하고 대대장이 곧장 바깥으로 나갔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의 시선이 절로 전도혁에게로 향했다.

그의 선임들이 신신당부 주의를 시켜도 전도혁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마음의 편지를 써온 독종이다.

오히려 전도혁에게 갈구면 갈굴수록 더더욱 심한 반작용이 돌아오는 탓에 사실상 병사 중에선 아무도 그를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일은 그저 이렇게 ‘쳐다보는’ 일뿐이었다.

한편.

눈앞에 놓인 종이를 바라보던 전도혁이 속으로 짧게 혀를 찼다.

‘어차피 행보관의 최면 때문에 내가 아무리 지랄을 떨어도 마음의 편지는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직접 말로 하는 것도 불가능할 터이고…….’

머릿속에 뭔가를 꾸준히 생각하기 시작하는 전도혁.

그때, 마침 1생활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당직사병이 입대 시기가 가장 늦은 막내 병사를 호명했다.

“병철아.”

“이병 이병철!”

“포대장실로 들어가라.”

“예!”

한두 명씩 차례차례 호명되는 순번으로 포대장실을 향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1포대 내에서 일병, 이등병 계급이 차지하는 병력의 숫자는 다 합해서 총 45명.

이들을 전부 불러놓고 한 명 한 명씩 면담을 한다는 건 꽤 많은 소요 시간을 요구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대장은 자신이 직접 면담을 추진해야 속이 풀리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이런 방식을 고수해 왔다.

그의 노력 덕분일까.

그나마 9090대대는 같은 사단 내에 있는 다른 부대에 비해 내무반 사건 사고가 가장 낮았다.

그만큼 내무 생활에 관한 안 좋은 말이 대대장의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병사뿐만이 아니라 해당 간부라 하더라도 분명 엄벌이 내려질 것이 틀림없었다.

한 명씩, 그리고 또 한 명씩 계속 차례가 불리는 와중에.

당직사병이 재차 1생활관 안에 들어오며 특정 인물의 이름을 거론했다.

“전도혁.”

“일병 전도혁.”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문제아의 차례가 돌아왔다!

* * *

위풍당당하게 행정반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

그가 바로 전도혁이었다.

고작해야 일병 계급을 지니고 있는 주제에 어찌 이리도 당당할 수가 있겠는가.

간부라든지 선임병 입장에서는 얼마나 약이 오를까.

그러나 미친놈이라 불리는 전도혁이라 하더라도 제1포대 내에 두려워할 만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바로 강필두.

고작 하루 만에 전도혁을 제압한 남자였다.

하지만.

오늘, 전도혁은 이 강필두를 잡기 위해 필살의 한 수를 꺼내들 예정이었다.

‘내가 곱게 숙이고 들어갈 거란 생각은 하지 마시길. 크큭……!’

강필두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선보이며 포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충성!”

“충성. 앉아라.”

“예, 알겠습니다!”

대대장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전도혁이 생각을 정리했다.

행보관의 만행에 관한 사실들을 말로 꺼내면 그에게 두통이 엄습해 왔었다.

그래서 당연히 이런 기회가 와도 필두는 분명 전도혁이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도혁의 생각은 달랐다.

‘어제는 오늘과 다르다. 하루가 지났으니까…… 그 빌어먹을 최면인지 뭐인지도 분명 사라져 있겠지?’

전도혁은 필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미친놈이었다.

어제부터 줄곧 내내 대대장과의 면담을 하기를 소망하던 그.

만나자마자 행보관의 만행을 고발하겠다!

그 생각을 품을 무렵.

대대장이 본격적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래. 군 생활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나?”

‘지금이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말을 꺼낸다면 분명 괜찮을 거다.

그 생각을 품으며 입을 연다.

“실은 말입니다!”

“실은?”

“어제 아침부터 자꾸 행……!”

행보관이라는 단어를 입에 언급하기도 전에.

“끄아아아아아악!”

말 대신 전도혁의 입에선 고통에 일그러진 비명이 대신해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지러움증을 동반한 기분 나쁜 감각.

이 통증은 분명…….

어제와 같은 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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