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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행보관되다-3화 (3/175)

흑마법사 행보관되다 3화

제1장. 흑마법사 행보관되다!(2)

시간이 지나 드디어 약속된 출근의 날이 다가오게 되었다.

“…….”

군복을 입은 채 전신거울 앞에 선 드리무어.

그의 솔직한 심경을 빌려보자면…….

“……구리군.”

그의 기준에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이었다.

군복은 디지털복이라 불리는 신형 군복이 아닌 야구 모자 형태의 전투모와 국방색의 무늬로 치장되어 있는 구형 전투복을 입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디자인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옷 자체도 실용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군. 여름에 입으면 딱 쪄 죽기 알맞게 짜인 복장이로구먼.”

그나마 지금 시기가 겨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눈으로 보기만 했던 전투복을 막상 드리무어가 직접 입어보니 신기함이나 그런 감정보다는 입기 싫다는 그런 기분만 마구 들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복을 입자, 드리무어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자꾸 기력을 빼앗기는 듯한…… 그런 느낌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어떻게 해서든 강필두란 남자를 완벽하게 연기하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군복을 입자마자 의욕이 뚝 떨어지면서 동시에 무기력증마저 느꼈다.

처음에는 군복 자체에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아무리 군복을 조사해 봐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런 정신통제 계통 마법은 걸려 있지 않았다.

“희한한 옷이로군…….”

입자 마자 사람의 의욕을 뚝 떨어뜨리는 신기한 옷, 군복을 착용한 채 전투화까지 완벽하게 신었다.

이윽고 현관문 바깥을 나선 뒤 자신의 개인 차량에 올라 운전대를 잡는 드리무어.

처음에는 운전이라는 것도 할 줄 몰랐으나, 쉬는 동안 혼자서 가끔 차량을 몰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운전을 하면서 동시에 이곳 세계의 과학 기술력에 몇 번을 감탄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러나 마법이 없는 탓에 그 빈자리를 과학과 기술이 메꿔주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세계란 말이지.”

감탄도 잠시.

운전대를 잡고 차량을 몬지 대략 30분이 지났을 때.

드리무어의 눈앞에 강필두가 근무했던 군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제 시작이로군.”

흑마법사, 드리무어가 아닌 9090대대 제1포대 행정보급관, 상사 강필두로서 드디어 첫 출근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는 부대 앞.

위병소 근무를 서고 있던 한 병장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후아암…… 겁나 졸리네…….”

병사도 간부고 구분 없이 군대는 피곤함과의 싸움이었다.

새벽에 기상하자마자 곧장 밥부터 먹고 위병소 근무에 투입된 두 병사.

그 순간, 군부대 앞에 익숙한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차량을 목격하자마자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후임 근무자가 병장을 향해 외쳤다.

“김수완 병장님. 저거…… 행보관님 차량 아닙니까?”

“뭐? 행보관님?”

제1포대에 소속되어 있는 김수완 병장.

그의 시선이 어느 한 차량으로 고정되었다.

준중형급 차량 한 대가 바리케이드 앞에 잠시 정차하는 순간, 수완이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진짜네…… 행보관님 차다.”

“오늘부터 퇴근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인 거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제1포대 간부 중에서 개인 차량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은 정확하게 딱 3명밖에 없다.

포대장, 통신반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보관인 강필두까지.

단 세 명밖에 개인 차량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병사들은 웬만해선 자기 포대 간부가 어떤 차종을 끌고 다니는지 다 숙지하고 있었다.

특히나 위병소 근무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더더욱 그렇다.

“단수야, 위병조장한테 키 넣어둬라. 알파포대 행보관님 차량 왔다고.”

“예,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출근하는 간부 차량을 맞이하기 위해 움직이는 위병소 근무자들.

한편, 이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드리무어가 짧게 혀를 찼다.

“아침부터 귀찮게 구는군…… 다음부터는 그냥 텔레포트로 출근을 해버릴까.”

출근길부터 그의 성질을 마구 건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텔레포트 마법으로 출근을 했다간,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자란 사실이 들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욕구를 억제했다.

속으로 벌써 군대 욕을 하는 사이에, 다른 병사들과 달리 뭔가 몸에 찰랑거리는 이상한 은색 금속물들을 마구 달고 있는 병사 한 명이 다가왔다.

“충성! 오랜만입니다, 행보관님!”

“…….”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여주는 강필두였다.

사실 드리무어는 출근하기 전에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제1포대 병사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외워뒀다.

행보관이어서 그런 모양인지 병사들의 개인 인적사항을 비롯해 그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한 소견 등이 따로 적힌 일지 같은 게 있다.

덕분에 쉽사리 제1포대 병사들 하나하나가 어떤 인물들인지 거의 완벽하게 파악하는 데에 성공했다.

위병조장이라 불린 이 병사는 행보관의 데이터 내에 없는 병사였다.

아마도 타 부대 병사이리라.

“너는 어디 소속이지?”

“행보관님. 혹시 저 잊으셨습니까? 본부포대 도하승 상병입니다.”

“도하승이라…….”

“하하,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위병조장도 잊으시다니. 섭섭합니다.”

“미안하다. 내가 잠깐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아닙니다. 아, 바리케이드 금방 치워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관할 밑에 소속되어 있는 병사들의 이름과 얼굴만 외워두면 안 됐다.

위병조장이라든지 대대상황실, 인사과처럼 타 간부들과도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병사들도 외워뒀어야 했다.

‘정보가 더 필요하겠군.’

첫 출근부터 뭔가 알아둬야 할 것투성이였다.

* * *

연병장을 지나 제1포대로 향하는 길.

도중에 드리무어의 시야를 자극하는 독특한 화포가 있었다.

‘저게 이 부대의 주력 무기인가.’

KH-179.

155㎜ 견인곡사포라 불리는 대량살상 화기를 직접 목격하게 된 드리무어.

자연스럽게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 그곳에 존재했던 화포와 이곳 세계의 무기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레디너스에선 이런 거대한 화포는 없었는데…… 이 세계 기술은 보면 볼수록 놀라움의 연속이로구먼.’

제1포대는 총 여섯 개의 포문을 지니고 있었다.

제2포대, 제3포대도 마찬가지.

9090대대 자체가 총 18개의 견인곡사포를 지니고 있는 후방화력지원 부대인 셈이었다.

게다가 포대들을 지원하는 본부포대까지 다 합해서 총 4개의 포대로 이뤄져 있다.

이 세계 무기는 과연 얼마만큼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품으며 제1포대 사열대 앞에 정차를 하는 순간.

“충성!”

“충성!”

때마침 막사 바깥으로 나오는 제1포대 병사들이 행보관 강필두를 거수경례로 반갑게 맞이했다.

차량에서 하차한 뒤.

“충성.”

마주 거수경례로 화답해 주는 강필두.

행보관으로서 그의 첫 출근 일정은 그렇게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시작되었다.

* * *

제1포대 막사 계단 앞에 마주 선 필두.

후방에 있는 지역에는 신막사를 사용하는 부대가 많은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이곳 9090부대는 경기도 연천, 전곡 지역에 위치한 부대이기에 아직 신막사의 혜택을 받진 못했다.

‘일단 한번 들어가 볼까.’

드리무어가 알고 있는 군대 지식은 온라인 세계에서 접했던 것들밖에 없었다.

게다가 인터넷 정보들이 100% 진실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중에 허구로 느껴지는 정보가 과반수 이상이었으…….

그런 정보들 덕분에 초창기 드리무어는 많은 혼란을 겪었었다.

물론 지금도 머릿속이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실제 군대 관습과는 맞지 않은 것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걱정이 앞서자, 필두가 주체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하겠다는 그런 적극적인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행보관이다.

부대 내에서 부사관들의 왕이라 불리는 남자가 바로 행보관 아니겠는가

‘차라리 일반 하사라든지 그런 직급으로 빙의했으면 참으로 좋았을 것…….’

운명이란 녀석의 야속한 장난을 탓하면서 막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부사관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 성!”

“충성! 복귀를 축하 드립니다, 행보관님!”

“어…… 그래, 고맙다.”

지금 이 순간.

드리무어는 속으로 강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개 왕국의 병사들에게 매번 쫓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가 지금은 이계에서 어느 한 부대에서 어느 정도 직급 있는 군인이 된 것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행보관님.”

중사 계급을 지니고 있는 한 중년의 남성이 필두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이름이 적힌 명찰을 바라보자, 드리무어의 머릿속에 어느 한 인물의 데이터가 떠올랐다.

중사, 민찬수.

부사관 중에서 행보관인 강필두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짬을 지니고 있는 남자였다.

듣자 하니, 필두가 병원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동안 찬수가 행보관의 업무를 대신 도맡아 하고 있었다는 말 또한 건너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찬수야, 네가 고생이 많았다.”

“중사, 민찬수. 아닙니다. 행보관님께서 무사히 돌아와 주신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입니다.”

“그래. 고맙다.”

잠시 병원에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봤다.

그때, 포대장을 비롯한 대대장, 기타 9090대대 인원들을 비롯해서 타 부대 인원들까지 필두와 연을 지니고 있던 자들은 웬만하면 병문안을 와서 그의 안부를 물었다.

병문안 온 군인들의 숫자만 하더라도 상당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강필두…… 이 남자는 나와 다르게 인맥관리가 잘 된 남자인가 보구먼.’

흑마법에 손을 댄 이후로 독고다이 식의 인생을 살아왔던 드리무어.

그가 위기에 몰렸을 때도 사람들은 그를 악인이라 욕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물론 드리무어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맥이 아닌…….

순수한 강함의 힘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기에 드리무어는 딱히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필두는 달랐다.

지금만 하더라도 부사관들의 눈빛에서 필두의 부대 복귀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듯한 진심 어린 감정이 느껴져 왔었다.

타인에게 이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과연 얼마 만일까.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면서 행정반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충성!”

“충성!”

막사 복도, 부사관들이 필두에게 거수경례를 보내온 것처럼 행정반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뿐만이 아니라 간부들 역시 그에게 복귀 축하의 의미를 담은 거수경례를 해왔다.

“충성.”

마주 거수경례를 받아준 필두가 병사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직사병을 나타내는 노란색 완장을 찬 병사를 향해 특정 인물의 소재지를 물었다.

“포대장님은 아직 출근 안 하셨나?”

“예. 잠시 연대 쪽에 일이 있다고 하셔서 점심 지난 오후 시간대에나 부대로 오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음…… 그렇군.”

“그리고 당분간은 특별한 훈련도 없으니, 부대관리 쪽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알았다.”

그 말인즉슨.

아침 집합은 행보관이 주도적으로 알아서 잘해달라는 뜻과도 같았다.

‘부대 관리라…… 어렵군.’

단어의 의미나 뜻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한 부대 관리를 해야 하는지 도통 그 개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변 환경을 다듬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어차피 때가 되면 다 해질 거늘.

배수로를 까면 무엇하겠는가. 차라리 마법 한 방으로 훑으면 그만이거늘.

‘……아니지. 마법은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

최대한 마법은 억제해야 한다.

그 때문에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한 출근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자가 차량을 타고 출근하지 않았는가.

“부대 관리라…….”

고심에 빠지기 시작하는 강필두.

그때, 전포대장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위, 유태백이 다가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측각기 자리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있지 않습니까. 행보관님이 입원하신 동안에 멧돼지 새끼가 거기를 잔뜩 헤집어놔서 완전 엉망이 되었던 거 같습니다만……. 병력 좀 빼서 계단 보수 작업으로 투입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계단…… 말입니까?”

“예. 얼마 전에 행보관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셨던 그 역작 말입니다.”

“…….”

강필두가 신경을 써 만든 계단이 망가졌는데, 무덤덤하게 넘기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 오늘은 그쪽 보수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레디너스에서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며 최고의 흑마법사 반열에 올랐던 드리무어였으나.

이계로 넘어오자마자 처음으로 할 일이 계단 보수 작업으로 확정되었다.

‘내 체면이 말이 아니군…….’

그냥 흑마법으로 확 이들을 세뇌시켜 자신만의 군대로 만들어버릴까 생각도 했으나, 아직 마법력이 그 정도 수준까지 회복되지 못했다.

원인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시공의 균열을 건너온 후유증 탓이라는 것밖에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본래의 내 힘만 되찾는다면……. 이런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룰 수 있을 터인데.’

오늘 첫 출근을 하게 된 흑마법사 출신의 행보관은 허드렛일을 해야 한다는 처지 때문에 벌써 짜증이 마구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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