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법사 행보관되다 2화
제1장. 흑마법사 행보관되다!(1)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구별할 수 없는 시공의 균열 안.
그곳에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던 드리무어가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다.
“자…… 이제부터 어떻게 한담.”
시공 마법에 대해선 그도 정확하게 아는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레디너스 대륙 내에선 시공 마법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다.
그가 마법사 길드에 처음 들어가서 마법을 배울 당시만 하더라도 시공 마법을 배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흑마법에 손을 대고 난 이후 시공 마법을 조금씩 건드려 보긴 했었으나, 애초에 시공 마법은 차원과 차원을 넘나드는 마법에 불과했다.
보다 더 강력한 공격 마법을 손에 얻고 싶어 했던 그와는 방향성 자체가 다른 마법 분야였다.
시공 마법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경험도 없었다.
그럼에도 드리무어는 제멋대로 시공 마법을 발현해 지금 이곳, 시공의 균열까지 당도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지…….”
이대로 가면 시공의 균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죽음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도망쳐야 할 차원을 골라야 한다.
그 순간.
“……?”
갑작스럽게 시공의 균열 근처에서 작은 블랙홀과 같은 무언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멀어지려 해도 강력한 흡입력 때문에 도저히 도망을 칠 수가 없었다.
“젠장……!”
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하려 했으나, 이곳은 레디너스 대륙이 아닌 시공의 균열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마법이 발현되기엔 환경 여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결국 작은 블랙홀 쪽으로 점차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는 드리무어.
“이대로…… 죽을 수 없거늘……!”
최대한 손을 뻗어보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 * *
“……허억!”
갑자기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는 한 남자.
환자복은 벌써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의사와 간호사들이 놀란 눈빛을 하며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강필두 씨! 괜찮으십니까?”
“강…… 필두?”
자신의 이름임에도 마치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을 선보였다.
그의 이런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의사가 그의 눈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작은 손전등으로 눈동자를 비추기도 하고, 이상한 의료 기구로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기도 했다.
한편.
그러는 와중에 강필두는 몸에서 심상치 않은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에 감겨 있는 붕대.
그리고…….
처음 보는 복장을 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
‘설마…… 내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는 데에 성공했다는 건가?’
방금까지 시공의 균열에서 방황하고 있던 네거틴 드리무어.
작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다하나 싶었더니만…….
졸지에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외형을 지닌 채 부상자로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다른 이의 육체에 내 영혼이 들어간 건가.’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가 없었다.
레디너스 대륙에선 간혹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육체에 타인의 영혼이 대신 자리를 잡게 하는 악질적인 실험을 한 마법사들도 암암리에 존재했으니 말이다.
물론 흑마법에 손을 댔던 드리무어 역시 그 마법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건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설마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될 줄이야.
게다가 그의 육체는 레디너스 대륙의 주민이 아닌 낯선 이계의 인간이었다.
‘기본적으로 두 팔과 두 다리는 달려 있군.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 똑같아.’
내심 다른 차원의 세계라고 생각해서 외형의 생김새도 다른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몸에 느껴지는 감각과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통해 평범한 인간의 육체란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머릿속으로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을 무렵.
의사와 간호사들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환자가 다시 살아난 기적이 발생했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하나, 이들이 예상한 것과 다르게 강필두란 남자는 죽었다.
대신…….
‘크크큭…… 예상치 못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하는 데엔 성공했군.’
그의 몸에는 역대 최악의 악인이라 평가받은 흑마법사, 드리무어가 강필두의 몸에 자리를 잡게 되었단 사실을 이때 당시에는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
* * *
병원 내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드리무어는 얼추 이 세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적응에 커다란 일조를 한 건 바로 노트북과 TV였다.
1주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임에도 드리무어는 그가 지닌 특유의 높은 이해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마법과 인간 이외의 종족이 공존하는 레디너스와 다르게 이곳은 과학이 발달하고 인간이란 존재가 행성 자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런 체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세계로군.’
노트북을 만지면서 재차 이 세계가 지닌 신비성에 대해 감탄하는 강필두.
그사이, 병실 문이 열리면서 그를 찾아온 부모님이 필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왔다.
“필두야, 우리 왔다.”
“또 오셨어요?”
필두가 정신을 차린 직후, 부모님은 계속해서 필두의 상태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자 병실을 더욱 자주 왔다갔다하기 시작했다.
강필두. 그는 부모님 아래에 형제, 남매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없이 외아들로 혼자서 자라왔다.
그래서 더더욱 부모님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38살임에도 아직 결혼을 한 배우자는 없다. 심지어 여자친구도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드리무어라고 딱히 여자에 목을 매는 건 아니었기에 그런 사항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갔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이제 다음 주면 퇴원해도 될 만한 정도라고 하더라.”
“다행이군요.”
그의 어머니가 정말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좋은 소식을 들려준다.
우선 자신의 육신과 원래 수준의 마법력을 되찾을 때까지 최대한 강필두라는 남자를 연기해야 했다.
시공의 균열로 몸을 숨겼다는 사실을 이미 만천하에 드러냈으니, 분명 레디너스 쪽에서 추격대를 보내올 가능성이 매우 컸다.
괜히 이상한 행동을 했다가 레디너스 대륙에서 보낸 추격대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곳 세계 사람에게 자신이 이계에서 넘어온 자란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그나저나 참으로 신기하구나. 이렇게나 빨리 회복되다니.”
“…….”
어머니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강필두.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치명적인 부상이긴 했으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을 통해 자체적으로 상처를 아물게 했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 발달한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나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의식할 줄 아는 드리무어는 낯선 이계에서도 쉽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직장 동료들이 왔더라.”
“직장 동료요?”
“그렇단다.”
어머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2명의 남자.
그들의 복장을 보자마자, 드리무어의 머릿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스친다.
군복을 입은 자들.
그리고…… 대위 계급장이 붙은 전투모를 착용한 남자가 드리무어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행보관님.”
* * *
행보관.
그 말을 듣자마자 드리무어는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소환되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군인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도 이미 숙지한 바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직접적으로 군부대에서 아는 사람이 나오니,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그에게 있어서 제 발이 저린 격이 된 셈이다.
혹시 이자들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서 체포라도 하러 온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니, 있을 리가 없다. 이 세계에는 마법이란 지식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 시공을 넘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 방법이 어디 있겠나.’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드리무어의 가설에 불과했다.
사실 인터넷이 만능은 아니다. 비록 온라인 세계라는 곳이 이 세계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었다.
그가 모르는 곳에선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고, 심지어 차원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최대한 강필두라는 남자처럼 연기를 해야 한다.
그 생각을 품으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조사했던 강필두의 흔적과 자취를 최대한 떠올리면서 대위의 안부 인사를 받아줬다.
“아…… 네. 괜찮습니다, 포대장님.”
“오, 다행입니다!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하셨다고 들었을 당시에는 행보관님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하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필두는 상사라는 계급을 달고서 제8사단 9090대대 제1포대 행정보급관이라는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자였다.
보병이 아닌 포병이었기에 대위를 향해 중대장이라는 호칭과 달리 포대장이라는 지칭어를 사용했다.
강필두의 직업이 군인이었기에 드리무어는 가장 먼저 대한민국 군대에 관한 지식을 중점적으로 습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처음 접하는 용어들이라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포대장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왜 하필이면 군인으로 환생한 것인지 모르겠군…….’
솔직히 말해서 짜증이 났다.
드리무어는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 알비드 왕국의 친위대에게 죽음을 맞이할 뻔했었다.
덕분에 군대라면 이골이 난 드리무어.
그러나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몰라도, 자신을 사지로 몰았던 ‘군대’라는 곳에 종사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군인을 때려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다시 한번 거짓 웃음을 지어 보였다.
“듣자 하니 곧 있으면 퇴원이시라고 들었습니다만.”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러면 부대 복귀는 다음 주로 일정을 잡아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야…… 감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에게 그렇게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요양이라는 핑계를 통해 좀 더 부대 복귀를 미룰 수도 있었다.
실제로 필두의 부모님 역시 부대 복귀를 2~3주 뒤로 더 미뤄 후유증 치료에 전념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드리무어의 생각은 달랐다.
단기간 내에 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부대 복귀 시일을 앞당겨 강필두란 남자와 빠르게 동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레디너스 대륙에서 보내온 추격대가 설사 시공을 넘어 이곳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정체를 완벽하게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드리무어가 비상한 머리를 지닌 천재라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타인의 인생을 어색함 없이 완벽하게 소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더 빠른 적응을 위해 일부러 부대 복귀를 앞당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드리무어가 먼저 거수경례를 해주자, 포대장 역시 마찬가지로 거수경례를 하며 그의 인사를 받아줬다.
거수경례.
드리무어에겐 영 어색한 포즈이긴 하지만, 강필두에게는 몇십 년간 몸에 밴 습관 중 하나일 터.
거수경례뿐만이 아니라 군인 말투, 기타 그의 행동거지 등등.
아직 완벽하게 적응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녔다.
‘세밀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신경을 써서 완벽하기 강필두를 연기해야 한다!’
다시 한번 남모를 결심을 하는 드리무어였다.
* * *
퇴원을 하고 난 직후.
드리무어가 본래 필두가 살던 집의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 어떠냐.”
필두의 아버지가 드리무어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러자 드리무어가 거짓 웃음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기분을 간단하게 표현했다.
“병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좋군요.”
“하하하, 그렇긴 하겠지.”
애초에 드리무어는 가족이 없다.
지금은 비록 강필두란 남자로서 생활하고 있지만, 드리무어는 아직 그의 부모를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필두의 부모와 같이 생활을 하게 되면 어색한 표정과 행동이 자주 바깥으로 노출되어 괜한 의심을 사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필두는 집안에서 따로 독립해 전셋집을 잡아 나 홀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활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혼자가 더 나을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시공의 균열을 건너오면서 잃게 된 마법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가져 그곳에서 계속적으로 마법 수련을 해야 했다.
만약 가족들과 함께 산다면 마법 수련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만 보더라도 혼자만의 생활은 드리무어에게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셈이었다.
“짐 정리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네 어미도 30분 뒤에 이곳으로 온다고 하니까 그때 같이 가면 될 거 같다.”
“예.”
“그럼 난 잠깐 바깥에서 담배 좀 피우고 오마.”
“다녀오세요.”
현관문을 닫고 복도 바깥으로 나가는 그의 아버지.
한편, 짐 가방을 내려놓은 드리무어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강필두…… 행복한 생활을 하던 남자였군.”
부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니,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드리무어는 그에게 많은 부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잃었기에 흑마법에 손을 댔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며 레디너스 대륙 자체를 멸망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드리무어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시공을 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씁쓸하군.”
그렇다 하더라도 죽은 가족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걸 잘 알기에 드리무어 역시 현실에 수긍하기로 하고 잠시 강필두로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간.
그가 지니고 있던 본래의 힘을 되찾게 될 경우…….
“다시 한번 레디너스로 돌아가 내 가족을 빼앗은 놈들을 전부 파멸로 이끌어주마……!”
희대의 악인이라 불리던 남자, 네거틴 드리무어.
세상을 향한 그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