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53화 (153/164)

<153화>

황성 전투(3)

내성 안, 전심전(傳心殿).

태화 진인은 복마십군의 검군(劍君), 적연을 상대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태화 진인은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한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적연의 검에 베인 오른쪽 어깨와 왼쪽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역시 내상을 입은 몸으로 저자를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었나.’

적연은 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승부는 정해진 것 같군. 그럼 이만 끝내도록 하지.”

파파팟! 적연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검을 찔러 왔다.

태화 진인은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어쩔 수 없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을 노리는 수밖에.’

태화 진인이 목숨을 버릴 각오로 몸을 날리는 순간.

바람을 가르며 쇄도한 찬야가 적연에게 검을 내리쳤다.

적연은 눈을 부릅뜨며 공중에서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검을 휘둘러 찬야의 목을 노렸다.

채앵! 찬야는 적연의 검을 막아 내며 바닥에 착지했다.

적연은 찬야의 얼굴을 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 살아 있었나.”

찬야가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오랜만이다. 적연.”

“분명 힘줄을 잘랐을 텐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궁금하냐? 궁금해도 안 가르쳐 줄 거야.”

찬야의 표정이 일순 싸늘해졌다. 그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하러 왔다. 각오해라.”

“아둔한 놈. 제 발로 죽을 자리에 걸어 들어왔군. 후회할 것이다.”

직후, 두 사람이 뿜어낸 기운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쩍. 쩌억. 날카로운 예기(銳氣)에 바닥이 갈라졌다.

잠시 찬야를 노려보던 적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성장했군. 그새 기연이라도 얻은 건가. 재미있겠어.’

태화 진인이 찬야를 불러 말했다.

“찬야. 상대는 복마십군이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고개를 돌린 찬야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날을 위해 죽을 각오로 수련했습니다.”

채앵! 발검(拔劍)한 찬야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이에 맞서 적연은 천천히 흑사검법(黑蛇劍法)의 자세를 잡았다.

‘시작이군. 과연 승리는 누구의 손에 떨어질 것인가.’

무림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두 검객을 응시했다.

파팟! 먼저 움직인 건 적연이었다. 그는 흑사검법의 초식을 펼치며 한 차례 검격을 쏟아 냈다.

채채채챙! 적연의 검을 막아 내며, 찬야는 생각했다.

‘놈이 가진 이능은 상대방의 전의(戰意)를 사라지게 만든다. 내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각(15분) 정도였어.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찬야는 적연의 공격을 피하며 그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찬야의 생각을 예측하고 있던 적연이 피식 웃었다.

‘무리하게 파고드는 것을 보니 ’나태의 권능‘을 의식하고 있는 거로군. 멍청한 놈. 그 다급함이 외려 네 목을 조르게 될 것이다.’

적연은 흑사검법의 흑사절맥(黑蛇絶脈) 초식으로 검을 내질렀다.

쇄애애애애액! 적연의 검끝이 찬야의 전신 요혈을 동시에 노려 갔다.

그러나 검이 닿기 직전, 찬야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촤악-! 찬야의 검이 벼락같은 속도로 적연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적연은 어깨의 상처를 쥐며 뒤로 물러났다.

‘이럴 수가!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놀란 건 지켜보던 태화 진인도 마찬가지였다.

‘빠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야. 무엇보다 저 움직임은!’

잔영보법.

은왕 유서휘가 남긴 무공을, 찬야는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바닥에 착지한 찬야가 나직이 혀를 찼다.

‘그새 몸을 틀어 피해를 줄인 건가.’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적연은 이를 악물었다.

‘검속(劍速)에서 밀리는 이상, 방법이 없다. 나태의 권능이 놈을 느리게 만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때, 적연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은 찬야가 말했다.

“내가 느려지는 걸 기다릴 셈인가? 실망이군. 겁쟁이 같은 놈.”

찬야의 말은, 적연의 자존심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개자식이 감히…….”

분노에 찬 적연이 무시무시한 기세를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나태의 권능이 없어도 네놈 따위는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

파팟! 파파팟! 수십 개의 검격이 폭우처럼 찬야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흑사검법의 최강 초식인 흑천뇌우(黑天雷雨) 초식이었다.

찬야는 하늘을 뒤덮은 검우(劍雨)를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들었다.

“지금부터 보여 주마. 진정한 화산의 검을.”

쉬익! 찬야는 검을 휘둘러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을 전개했다.

1초식을 전개할 때마다 검끝에서 매화 모양의 검기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매화의 검기는 날아드는 적연의 검격을 막아 냈다.

“이럴 수가!”

최강의 초식이 간단히 막히자, 적연이 경악했다.

찬야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매화의 꽃잎이 이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적연을 감쌌다.

‘이대로면 전신이 갈가리 찢겨 죽고 말 것이다.’

적연은 내력을 극성까지 끌어올려 그대로 방출했다.

콰아아아앙! 폭발과 함께 매화의 장벽이 사라지고 피투성이가 된 적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그는 찬야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나태의 권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네놈의 기술도, 의지도 전부 사라지게 만들어 주마. 이걸로 끝이다!”

찬야에게 접근한 적연이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었다.

‘끝이다. 나의 승리…….’

직후, 찬야의 신형이 매화 꽃잎이 되어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잔상인가?

당황한 적연의 뒤에서, 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사라지는 건 너다.”

푸화악-!

그 순간, 적연의 가슴팍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정말 대단한 검술이로군……. 이름이 뭐지?”

적연은 그 말을 끝으로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철컥.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찬야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 신화백야(神華白夜)다.”

가볍게 한숨을 내쉰 그는 괴물들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저 징그러운 것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찬야의 곁으로 달려온 태화 진인이 말했다.

“네가 싸우는 동안, 내성 중앙에서 검은 빛이 솟아올라 하늘에 구멍을 만들었다. 저 괴물들은 그 구멍에서 나오고 있어. 아무래도 지월, 그 남자가 무슨 짓을 한 것 같다. 어서 가서 그자를 막아야 한다.”

찬야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지월은 남 사제가 반드시 물리쳐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보다 저 괴물들이 도성 밖으로 나가게 되면 백성들의 피해가 엄청날 겁니다. 제가 막겠습니다.”

“알았다. 조심하거라.”

파팟! 찬야는 괴물들이 떨어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

한편, 위지혁은 문연각(文淵閣) 앞에서 복마십군의 암군(暗君), 장범과 대치 중에 있었다.

장범은 소리가 나는 방향을 힐끗 쳐다보고 말했다.

“다른 곳은 벌써 싸우는 모양이네. 우리도 슬슬 시작해 볼까?”

“…….”

위지혁은 일언반구 없이 돌진하여 검을 휘둘렀다.

채앵! 비수로 검면을 찔러 튕겨 낸 장범이 히죽 웃었다.

“이 정도로 나를 이길 수 있겠어? 네가 자신하는 독공을 펼쳐 보시지?”

그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덧붙였다.

“물론 그 즉시 내가 가진 ‘탐욕의 권능’으로 흡수해 버릴 테지만. 낄낄.”

위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장범을 응시했다.

‘수련의 성과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군.’

매원향에서 독지주를 상대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끝에 만들어 낸 새로운 독공. 귀왕독(鬼王毒)을.

스스스-.

위지혁의 피부가 점점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뭐지? 자신의 피부를 맹독으로 두른 건가?’

위지혁은 장범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디 오래 버텨 주기를 바란다. 그럼 시작하지.”

콰직! 말을 마친 그는 검으로 바닥을 찍었다. 직후, 마치 먹물이 번지는 것처럼 바닥이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뭐 하는 거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을 내려다보던 장범이 순간 비틀거렸다.

“으윽?”

신음을 흘린 그가 다급히 몸 내부를 살폈다.

맹독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면을 통해 독기를 흘려 보내다니……. 이런 독공이 있었던 건가!’

발목에 정신이 팔려 있던 장범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의 주변은 검붉은 독무(毒霧:독안개)가 가득했다.

“네놈은 이능을 사용해 타인의 힘을 흡수하지만, 타인의 신체 능력까지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다시 말해 네놈은 내 독을 흡수할 수는 있지만, 만독불체의 신체가 아니니 당연히 독에 중독될 수도 있지.”

위지혁이 섬득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어때? 독지주의 독을 가지고 만들어 낸 귀왕독이. 처음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다 점점 내장이 썩어 문드러질 거다. 한번 중독된 이상,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크윽, 네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양손에 비수를 든 장범이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네놈을 저승길 동무로 삼겠다!”

푹! 푸욱! 장범의 비수가 위지혁의 심장과 목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장범은 코피를 폭포수처럼 쏟으면서도 히죽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뭐 하고 있나? 나는 여기 있는데.”

장범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위지혁이 멀쩡히 서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

더듬거리며 말하는 장범에게, 위지혁이 말했다.

“귀왕독은 자신이 가장 원하는 상황을 환각으로 보여 준다. 나를 찔러서 죽이는 상상이라도 한 거냐? 장범.”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농락해? 당장 죽여 버릴……!”

푸욱! 위지혁의 검이 장범의 심장을 찔렀다.

한 차례 부르르 경련한 장범이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월 님이 만드시는 진정한 마도를,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는 허공에 손을 뻗더니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위지혁이 독기를 갈무리하자 독무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는 반쯤 녹아 버린 장범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런 세상 따위, 절대 오지 않을 거다.”

위지혁은 고개를 돌려 괴물들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내가 막을 거니까.”

그때, 등 뒤에서 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서 싸우려고? 아서라. 저런 놈들을 상대로 너 혼자서 싸우면 금방 죽는다.”

“뭐야, 너희들? 벌써 끝내고 온 거냐?”

운휘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너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 말 심히 거슬리는군.”

곁에 서 있던 유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해라! 지금이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눌 때냐?”

네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떨어진 괴물들이 충격에서 회복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가 저 괴물들을 많이 잡는지, 시합이다. 알겠지?”

“좋아. 보나 마나 내가 이기겠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한 싸움이다. 그런 자세는 옳지 않아.”

“후우. 이것들을 믿고 싸워야 한다니…….”

바람에 도복이 펄럭이며 매화의 문양이 선명히 드러났다.

“가자. 매화오절!”

파파팟! 네 명의 도사들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남북 십성의 후계자를 비롯한 수백의 무림인들이 뒤따랐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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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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