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복마십군의 등장(3)
관군이 떠난 날 밤, 남량이 화산에 도착했다.
그는 찬야가 중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매월관으로 향했다.
“이제 왔느냐?”
남량은 곁으로 다가온 이화정에게 물었다.
“찬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간신히 목숨만 건진 상태다.”
“그럼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남량이 매월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때였다.
그의 어깨를 붙잡은 이화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더 큰 문제요?”
“손목을 베였다는구나. 그것도 오른쪽 손목을. 문제는, 힘줄이 베였다는 거다. 의원의 말이, 앞으로 오른손은 영원히 쓰지 못할 거라고…….”
충격을 받은 것인지 잠시 멍해 있던 남량이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래.”
“찬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이화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월관으로 들어서자, 찬야가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잠들었는지 고른 숨소리만 들려왔다.
‘찬야…….’
찬야를 응시하던 남량이 이를 악물었다.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자.’
그는 환부에 손을 대고 신유유합의 능력을 발했다.
화륵-! 녹색 화염이 타오르며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치료를 마친 남량은 찬야의 옆에 앉았다.
‘미안하다. 찬야. 천양신경의 이능(異能)으로도 잘린 힘줄은 회복시킬 수 없어.’
남량은 탄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더는 검을 잡을 수 없다. 검사로서의 생명이 끝났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찬야가 느꼈을 상실감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너라면 최고의 검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때, 잠들어 있던 찬야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남량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 사제. 왔어?”
고개를 든 남량은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화정 사숙에게 들었다. 복마십군을 상대했다면서?”
“놈을 이기지 못했어. 남 사제.”
“상대는 마교의 간부다.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그리고 오른손도…….”
말을 멈춘 찬야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힘을 줘도 손이 움직이지 않아.”
“……들었어.”
찬야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더는 검을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절망했던 건 이번 생에 검의 최고 경지에 들 수 없어서도 아니고, 남북 십성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서도 아니야.”
“…….”
남량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찬야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내가 가장 절망했던 건 더 이상 너와 유라, 운휘, 위지혁과 함께 싸울 수 없기 때문이야. 왼팔로 수련을 시작해도 도움이 되지 못하니 물러나서 지켜봐야만 하겠지. 나도 너희들과 함께 싸우고 싶어. 그런데 이제 그럴 수 없어…….”
“찬야.”
“아, 젠장.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운휘 놈이 놀리겠네.”
찬야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남량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났다.
“쉬고 있어라.”
매월관을 나서자, 이화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찬야는 좀 어떠냐?”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한다. 한때 나도 그랬으니까.”
이화정은 허전한 왼팔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겨 낼 겁니다. 강한 녀석이니까요.”
“그래. 너희들이 곁에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다른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 있죠?”
남량의 물음에, 이화정이 대답했다.
“팽가, 남궁가, 당가에 있다. 조금 전 서신이 왔는데, 셋 다 복마십군과 일전을 치른 모양이다.”
“모두 무사한가요?”
“조금 다치긴 했지만 무사하다고 하는구나. 찬야의 소식을 듣자마자 화산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다행이군요.”
“그보다, 찬야를 보고 나오는 대로 상궁에 들라는 장문인의 지시다. 이번 일로 긴급 연담회가 소집되었거든. 남북 십성인 너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남량과 이화정은 상궁으로 향했다.
***
연담회가 열리는 상궁 대전은 한창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무림인이자 도인이기 전에 백성이오. 천자의 명을 거스르고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소이까? 자칫 천자의 분노를 사 화산의 역사가 한순간에 지워질 수도 있소.”
“도지휘사와 함께 온 그자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시오? 그자는 마교의 간부였소! 마교가 무림을 다스리는 꼴을 지켜만 보자는 말이오?”
격렬한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한 도사가 소리쳤다.
“그럼 황명을 거역하고 반란이라도 일으키자는 말입니까?”
마침 대전 문을 열고 들어온 남량이 그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공월 진인이 말했다.
“왔는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남량이 상석으로 걸어갔다.
연담회에 참석한 도사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향했다.
공월 진인의 옆에 선 남량이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도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십성인 그의 말을 누가 막으랴?
남량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황궁에 가서 마교의 수장인 지월을 만났습니다.”
남량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대전이 술렁였다.
“지월은 마교내전이 끝난 직후부터 꾸준히 황제의 신임을 얻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요.”
한 도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모든 것이 천자가 아닌 지월이 꾸민 짓이란 말인가?”
“네. 황제의 입장에서도 무림이라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을 겁니다.”
공월 진인이 나직이 탄식했다.
“황명을 따른다면 지월은 시간을 들여 우릴 전부 죽이겠군.”
남량이 말했다.
“싸워야 합니다. 무림을 위해, 백성들을 위해. 황태자 전하는 중양절에 거사를 일으킬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다. 납북 십성은 그 계획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허나 실패하면 우리는 전부…….”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여러분도 결정해 주십시오.”
대전에 한바탕 언쟁이 벌어졌다.
“황태자 전하를 따릅시다. 모두 함께 싸우는 겁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건 반란이오! 지금 스스로 역적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오?”
“백성들을 구하기 위함이오.”
“다들 미쳤군! 제정신이 아니야!”
쾅! 공월 진인이 탁자를 내리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장문인…….”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공월 진인이 말했다.
“만약 이 자리에 전(前) 장문인이 계셨다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오.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때로는 명예를,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허나 그 길이 옳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협객의 길이다.’ 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소. 떠날 사람은 떠나도 좋소.”
대전에 잠시 침묵이 돌았다.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도사 한 명이 고개를 숙였다.
“도사 진화. 장문인을 따르겠습니다.”
곧이어 다른 도사 한 명도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도사 백윤. 장문인을 따르겠습니다.”
조용히 있던 매화검수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이화정이 피식 웃었다.
“이것들이 수장이 가만히 있는데……. 하하.”
매화검수 곽준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같은 마음 아닙니까?”
마침내 모두 마음을 정했다. 떠난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주위를 둘러본 공월 진인이 나직이 말했다.
“다들 고맙소.”
“아닙니다. 장문인.”
남량은 도사 한 명 한 명의 눈을 응시했다. 다들 결의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거사 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북경으로 진격합니다. 성문에 도착하면 황태자 전하가 이끄는 군대가 문을 열고 호응할 것입니다. 지월은 제가 반드시 처단합니다. 그러니 모두 끝까지 살아남읍시다.”
그 순간, 도사들은 남량에게서 유우화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따르겠습니다!”
남량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공월 진인은 미소를 지었다.
‘장문인. 보고 계십니까? 장문인의 믿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유 도장. 보고 있는가? 자네가 남긴 희망이 지금 이곳에 있네.’
남량은 눈을 빛냈다.
‘아마도 이 싸움, 황성(皇城) 전투가 마교대전의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다. 반드시 이기리라.’
거사일까지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다.
***
이틀 뒤, 유라와 운휘, 위지혁이 화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찬야의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남량은 찬야를 포함한 네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말했다.
“너희는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남량은 찬야로부터 ‘칠욕의 권능’에 대해 들었다. 그것 역시 마교의 금지된 비술 중 하나였다.
“복마십군을 상대했으니 그 격차를 잘 알고 있겠지? 그들은 이능(異能)을 얻어 더욱 강해진 상태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려면 너희도 특별한 수련이 필요해.”
“특별한 수련?”
“너희를 매원향으로 보낼 생각이다.”
남량의 말에, 네 명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위지혁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매원향은 장문인에게만 출입이 허락된 장소 아니야?”
“지금 그런 걸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어. 매원향으로 가서 광영자에게 가르침을 청해라.”
“만약 거절한다면?”
“시도는 해 봐야지.”
찬야가 말했다.
“난 가겠어. 신선이라면 손을 고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고개를 끄덕인 운휘가 남량에게 물었다.
“그럼 형님도 같이 가시는 건가요?”
“나는 다른 방식으로 수련을 할 생각이다.”
남량은 화양검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매화오절이 매원향으로 떠난 뒤, 남량이 향한 곳은 바로 남궁세가였다.
남궁월은 남량을 보고 크게 놀랐다.
“남량 도장님!”
“오랜만입니다. 남궁 여협. 가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남량은 남궁월의 안내를 받아 가주전으로 향했다.
남궁천과 마주앉은 그가 찾아온 목적을 꺼냈다.
“우주검을 익히고 싶습니다.”
“우주검이라…….”
“우주검은 전설상의 경지로,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실존하는 경지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남궁 가주님은 우주검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가요?”
“선대 가주님들이 남긴 저서에 그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기는 한데, 나 역시 우주검의 비밀에 대해서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걸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궁천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남량을 응시했다.
‘그래. 이 아이라면 무언갈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저서는 본가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다.”
“감사합니다. 장문인.”
남량은 남궁천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지월은 삼천위 중에서도 가장 강했다. 그리고 녀석도 분명 마교의 금지된 비술을 익혔을 거야. 수라의 힘을 얻고 자하신공을 수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더 강해지려면 검의 최고 경지라 불리는 우주검을 반드시 익혀야 해.’
남량은 화양검의 검집을 꽉 쥐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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