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복마십군의 등장(2)
운휘와 팽자엽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앞에 선 사내를 향해 노려보았다.
사내는 검은 피부에 사나운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복마십군의 도군(刀君) 조표(趙豹).
그는 황제의 명을 거부하고 나선 두 사람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자존심 때문인지 도지휘사와 수천 군대의 힘은 빌리지 않은 채였다.
그럼에도 운휘와 팽자엽은 그의 옷자락 하나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강하다. 정말 강해. 역시 마교의 간부를 상대하는 건 무리인가.’
팽자엽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며 운휘에게 말했다.
“운휘 도장. 이만 물러나시오. 이놈은 나 혼자 상대하겠소.”
“저 괴물을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십 초도 버티지 못할 거다.”
“이건 우리 가문의 일이오! 도장까지 희생시킬 수는 없소!”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싸움에 좀 집중할 수 없어?”
쩌어엉! 두 사람 사이로 검은 도강(刀罡)이 떨어졌다.
운휘와 팽자엽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장도(長刀)를 휘둘러 도강을 날린 조표가 말했다.
“건방진 애송이들. 감히 이 조표 님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려?”
몸을 일으킨 운휘와 팽자엽은 동시에 달려들었다.
조표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두 놈 다 맷집 하나는 상당하군.”
팽자엽은 오호단문도의 격천진뢰(擊天震雷) 초식으로 도를 휘둘렀다.
쩌엉! 장도를 들어 팽자엽의 일격을 가볍게 막아 낸 조표가 말했다.
“팽가 놈이라 도를 다루는 건 제법인데 그것뿐이군. 딱히 흥미로운 점이 없어.”
빠악! 조표는 이마로 팽자엽의 안면을 들이받았다.
팽자엽은 뒤로 넘어지며 이를 악물었다.
‘죽을 각오로 수련했는데……. 분하다.’
쓰러진 팽자엽은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팽자엽!”
운휘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 개자식이이이이!”
운휘는 괴성을 지르며 조표의 정면으로 쇄도했다.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는구나. 오냐. 뜻대로 해주마.”
조표는 운휘를 향해 검은 도강을 날렸다.
운휘는 날아드는 도강을 응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와라! 무조건 한 번은 받아 낸다.’
쩌엉! 도강이 적중하며 폭음이 터졌다. 흙먼지가 주변을 뒤덮었다.
조표는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어떠냐. 종남의 유종학보다 내가 더 도군(刀君)이라는 칭호에 걸맞아 보이지 않으냐? 참. 죽었으니 대답도 하지 못하려나?”
직후, 흙먼지가 걷히며 운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표의 얼굴이 굳어졌다.
“닥쳐! 겨우 이 정도 위력으로 남북 십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아?”
운휘는 칠절매화검의 최강 초식, 허무적멸(虛無寂滅)로 검을 내리쳤다.
촤악-! 운휘의 일검(一劍)은 조표의 어깨에 검상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그랬군. 금강불괴였나. 네놈.”
조표는 싸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운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얕았구나. 빌어먹을!’
뒤로 물러난 조표가 도를 바닥에 찍으며 외쳤다.
“어이! 거기 누구 만두 있으면 하나만 줘라!”
병사 한 명이 천으로 싼 만두를 던졌다. 조표는 만두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운휘는 순간 멍해졌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가! 지금 나랑 장난하냐? 어떤 미친놈이 싸우는 도중에 만두를 먹어!”
소리치던 운휘가 벌어지는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조표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된 것이다.
조표는 천을 바닥에 버리며 미소를 지었다.
“잘 먹었다.”
“방금 그건 대체…….”
“놀랐느냐? 이것이 내가 지월 님에게 받은 칠욕의 권능 중 하나. ‘식탐의 권능’이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 상처를 회복시키고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지.”
운휘는 조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짐작했다.
‘형님의 신유유합 같은 이능(異能)을 저놈도 손에 넣은 건가.’
조표는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금강불괴라. 젊은 나이에 그 경지에 들다니. 대단한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육참골단(肉斬骨斷)을 노리는 전법도 마음에 들어.”
“인정받으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
“배짱도 마음에 들고. 내 손으로 죽이게 되어 아쉽군.”
조표는 도를 수평으로 휘둘렀다. 도강의 위력은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운휘는 조표의 도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일공자님! 운휘 도장!”
팽가의 식솔들과 무인들이 슬프게 외쳤다.
그들은 우르르 달려와 기절한 두 사람을 막고 나섰다.
조표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비켜라.”
“못 비킨다! 어디 전부 죽여 보거라!”
날카롭게 소리친 이는 팽가의 안주인이자 팽자엽의 모친 가월(歌月)이었다.
비록 연약한 여인의 몸이지만 눈빛은 진심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조표가 도를 치켜들자 도지휘사가 다급히 말렸다.
“그만! 그들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조표는 혀를 차며 도를 거두었다.
“짜증 나는군.”
그는 쓰러진 운휘를 한 번 쳐다보고 몸을 돌려 사라졌다.
“그럼 건물을 수색하도록 하겠소이다. 숨은 자가 있는지 뒤져라!”
“존명!”
팽가의 사람들은 관군들이 소중한 저택을 뒤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한편, 위지혁과 당룡은 복마십군의 암군(暗君) 장범(張汎)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놈이 사용하는 암기술은 당가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당룡은 당가의 암기술, 연환십이참(連環十二斬)을 구사해 암기를 쏘아 보냈다. 동시에 장범도 암기를 던졌다.
카카캉! 암기가 허공에서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직후, 당룡은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비수 두 자루가 박혀 있었다.
‘내 암기를 요격한 것만 아니라 반격까지 한 건가.’
장범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중원 제일이라는 당가의 암기술을 구경이나 해 볼까 했더니 실망이군.”
가문의 자랑이 모욕당했다. 당룡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당 사형. 놈의 도발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위지혁은 장범에게 몸을 날리며 독기를 가득 머금은 검을 내질렀다.
“독기인가? 제법 위험해 보이는군.”
장범은 허공으로 치솟으며 거리를 벌렸다. 동시에 암기를 던졌다.
위지혁은 날아드는 암기를 쳐내며 장범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필사적으로 거리를 좁히려 드는군. 좋은 판단이야.”
위지혁은 장범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경공을 펼쳐 검을 피한 장범이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특별히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지.”
장범은 위지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암기가 들려 있지 않은 맨손이었다.
‘기공파라도 내쏠 생각인가?’
직후, 위지혁은 깜짝 놀랐다.
그의 전신에 흐르는 독기가 장범의 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독기는 둥근 모양으로 뭉쳤다. 장범이 말했다.
“내가 주군에게 받은 칠욕의 권능. 그건 바로 ‘탐욕의 권능’이다. 상대가 가진 능력을 흡수해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지.”
위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한 재주를 부리는군. 허나 헛수고다. 나는 만독불침의 몸이거든.”
장범은 당룡을 힐끗 쳐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너와 다르게 저자는 만독불침이 아닌 것 같은데?”
위지혁은 아차 싶었다. 그는 즉시 당룡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그는 당룡에게 날아드는 독기의 구체를 몸으로 막아 냈다.
순간 방비가 약해진 그에게 장범이 암기를 날렸다.
푹푹푹! 암기 대여섯 개가 팔다리에 박혔다. 맞기 직전 몸을 튼 덕분에 요혈은 피했으나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윽. 스승님이 오시기 전까지 버텨야 하는데…….’
위지혁은 검을 놓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귓가에 당룡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당한 것인가.
이내 관군들이 저택으로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막아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옅어졌다.
***
화르륵! 남궁세가의 전각 하나가 불에 타고 있었다.
이런 짓을 한 자는 복마십군의 화군(火君) 방림(邦琳). 극양(極陽)의 내공으로 불을 다루는 자였다.
“잘 타는군.”
나직이 중얼거리는 그에게 안휘성 도지휘사가 곤란한 듯 말했다.
“설마 남궁세가의 건물을 모두 불태울 건 아니지요?”
고개를 돌린 방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저 경고의 의미로 한 채 불태운 것이니.”
“다행이군요.”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놈이 감히 우리 가문의 전각을!”
남궁월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림을 향해 쇄도했다.
방림은 달려드는 남궁월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했다.
“나는 복마십군의 ‘삼강(三强)’ 중 한 명. 네 힘으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다.”
남궁월은 창궁비연검의 풍운어수(風雲魚水)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방림은 뒤로 몸을 날려 검격을 피했다. 그의 옷자락 끝이 잘려 나갔다.
“빠른 검이군.”
남궁월은 방림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창궁비연검의 가장 빠른 검을, 이렇게 쉽게 피할 줄이야.’
방림은 남궁월을 향해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직후, 남궁월의 발밑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아가씨!”
지켜보던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불기둥이 걷히자, 멀쩡한 상태의 남궁월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유라가 옆에 서서 그녀를 보호하고 있었다.
방림은 눈에 이채를 띠며 말했다.
“나의 불을 막아 내? 삼매진화인가?”
유라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막아 냈는데 손에 화상을 입었다.
‘놈이 다루는 화공(火功)의 경지가 나를 한참 넘어서 있다는 뜻이겠지.’
방림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렸다.
“지금의 너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 금방 잡아먹힐 테니까.”
유라는 싸늘한 어투로 대꾸했다.
“누가 잡아먹히게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그녀는 흥분한 남궁월에게 말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입니다. 언젠가 복수할 때가 올 겁니다.”
남궁월은 이를 악물고 무너지는 남궁세가의 전각을 응시했다.
***
황태자 민은 어두운 황궁 복도를 걷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도독부의 수장과 밀담을 나누고 오는 길이었다.
‘곧 중양절(重陽節)이다.’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그때가 바로 거사를 일으키는 날짜였다.
무림인들이 북경에 도착하면 즉시 호응해 성문을 열고 황궁으로 진격할 것이다.
그때, 복도 건너편에서 지월이 검은 장포를 펄럭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민과 마주친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전하. 이 늦은 시각에 어딜 다녀오십니까?”
“그러는 자네야말로 왜 이 시각에 황궁에 있는 건가.”
“폐하와 나누는 대화가 길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그리 나누었는데?”
“뭐가 그리 궁금하십니까?”
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네놈 태도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아, 송구합니다. 전하의 눈빛이 너무 적대적이라. 저도 모르게 그만.”
민은 속으로 놀랐다. 설마 표정에 드러난 것인가?
지월은 민을 지나치며 그에게 말했다.
“올해 중양절은 특히 기대가 됩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
“그럼 이만.”
민은 멀어지는 지월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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