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33화 (133/164)
  • <133화>

    무림학관(武林學館)(3)

    수라화한 남량이 낭연청을 향해 쇄도하는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사흉마 윤손과 남북 십성 노학개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윤손은 입을 둥글게 모아 침을 뱉어 냈다.

    쇄애액! 침이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노학개를 노려 왔다.

    그 위력은 단단한 금강석에 구멍을 낼 정도로 강력했다.

    파팟! 노학개는 개방의 보법인 취팔선보(醉八仙步)를 펼치며 윤손의 공격을 피해 냈다. 윤손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다. 빠른 건 아닌데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

    단숨에 윤손의 앞으로 접근한 노학개는 벼락처럼 손을 뻗어 강룡십팔장의 일장(一掌)을 내쏘았다.

    쩌엉! 충격파가 터지며 윤손의 거구가 뒤로 밀려났다.

    “크윽!”

    신음을 흘린 그가 노학개를 노려보았다.

    ‘금왕 노학개. 분명 검성 남궁천이나 명왕 고경홍에 비하면 한참 약하다고 들었는데……. 남북 십성의 칭호를 거저 얻은 건 아니라는 건가.’

    윤손과 시선을 마주친 노학개가 히죽 웃으며 그를 도발했다.

    “생각이 많은 표정이군. 이 늙은이를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는 모양이지? 허허.”

    도발이 먹힌 것인지, 윤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놈 명치에 바람구멍을 만들어 주마.”

    터엉! 기세를 끌어올린 윤손이 바닥을 박차고 돌진했다.

    양각(羊角-양의 뿔)이 노리는 곳은 노학개의 명치였다.

    노학개는 타구봉법 황룡출동(黃龍出動)의 초식으로 타구봉을 옆구리에 붙인 다음 그대로 내질렀다.

    쩌엉! 다음 순간, 윤손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노학개의 봉격(棒擊)에 의해 돌진이 막힌 것이다.

    직후, 봉을 치운 노학개가 윤손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윤손의 피부가 단단해 평범한 공격으로는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 번의 장력을 한곳으로 동시에 날린다.’

    생각을 마친 노학개가 강룡십팔장의 구룡난격(九龍亂激) 초식을 펼쳤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아홉 번의 공격이 적중하며 윤손의 가슴 부위가 움푹 파였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했다.

    “크아악!”

    노학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격을 날렸다.

    퍼퍼퍼퍼퍼퍽! 누런 봉이 윤손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온몸이 으스러진 그가 뒤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퍼억! 윤손의 머리 절반이 날아가며 피가 튀었다.

    노학개가 강룡십팔장의 폭룡장(爆龍掌)을 날린 것이다.

    비틀거리던 그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한숨을 내쉰 노학개는 곧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윤손의 시체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이며 그의 상처가 재생되기 시작한 것이다.

    봉격에 맞아 너덜너덜해진 육체는 물론이고, 장력에 적중당해 날아간 머리 절반마저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저게 바로 혈마의 힘인가. 역시 저놈도 그 힘을 받았군.’

    노학개는 이곳에 오기 전, 흑영대의 정보를 받아 보았다.

    그래서 혈마의 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머리가 날아가도 재생할 줄이야.’

    심히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노학개는 당황하지 않았다.

    불사(不死)로 보이는 놈의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혈마의 돌을 찾아 부수면 놈은 죽는다.’

    그사이, 재생을 마친 윤손이 끌끌 웃음을 터뜨렸다.

    “보았느냐. 네놈의 공격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

    무시하고 달려든 노학개가 윤손의 턱을 차올렸다.

    ‘분명 턱 아래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었다.’

    노학개는 개방의 동조수(銅鳥手)를 펼치며 손을 뻗었다.

    ‘이놈이 혈마의 돌을 노리고 있구나!’

    기겁한 윤손이 입을 쩍 벌리고 음공(音功)을 발했다.

    직후, 굉음이 울려 퍼지며 기파(氣波)가 터져 나왔다.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아, 노학개의 귀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턱을 향해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푸욱! 마침내 턱을 찌른 노학개가 혈마의 돌을 잡았다.

    “아, 안 돼!”

    죽음의 공포를 느낀 윤손이 미친 듯이 손톱을 휘둘렀다.

    촤악! 팔뚝과 어깨가 갈라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노학개는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어, 돌을 부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탄영 님…….”

    허탈한 표정으로 탄영을 부르던 윤손이, 천천히 무너졌다.

    쓰러진 그는 곧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허억. 허억……. 아이고, 죽겠다.”

    노학개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명색이 남북 십성인데 마교의 간부 따위를 상대하다 상처나 입고 말이야. 한심하구만. 하하.’

    당분간은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을 해야 할 듯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가 마연항을 향해 걸어갔다.

    퍼억! 노학개가 휘두른 봉에 항아리는 산산조각 났다.

    ‘이걸로 무림학관을 뒤덮은 마기는 사라질 것이다.’

    콰앙!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남량, 그 아이가 아직 싸우고 있는 모양이군.’

    그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효초아를 죽인 사내라면 언젠가 남북 십성의 자리에 오른다. 안 그래도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잘되었어.’

    노학개는 바닥에 대(大)자로 드러누워 중얼거렸다.

    “누가 술 한 병만 가져다주면 좋겠구만…….”

    ***

    남량과 낭연청의 전투 또한, 끝을 보이고 있었다.

    콰앙! 바위에 처박힌 낭연청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녀는 눈앞의 검은 사내를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강하다. 너무 강해.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어.’

    도망칠 수도 없다. 기력은 이미 전부 소진해 버렸다.

    ‘죽는 건가. 이제…….’

    그녀의 눈에 그리움과 슬픔의 빛이 떠올랐다.

    처억. 낭연청의 목에 검을 겨눈 남량이 말했다.

    “끝이다. 낭연청.”

    낭연청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죽여라. 이승에 미련 따위는 없다.”

    검을 들어 올린 남량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죽이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낭연청이 다시 눈을 떴다. 남량이 물었다.

    “왜 천마를 배신한 건가. 너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수하였을 텐데…….”

    낭연청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궁금한 거지?”

    “대답해라.”

    남량의 눈에서 간절함을 엿본 낭연청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배신은 내가 아니라 그가 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남량은 순간 멍해졌다.

    “……뭐라?”

    “하루는 그가 내게 임무를 내렸다. 정파의 거물을 암살하는 임무를.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암습을 당했고, 나를 암습한 자의 정체는 바로 천마의 전령이었다. 그는 쓰러진 내게 말했다. 천마에게 새 정인이 생겼으니 더는 내가 필요 없다고. 그때 지월이 나를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칼날에 목을 대며 말했다.

    “죽여라. 백매화.”

    그때였다. 검을 내던진 남량이 낭연청을 끌어안았다.

    “무슨 짓이야!”

    당황해 소리치는 그녀에게, 남량이 말했다.

    “아니야.”

    남량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너를 배신한 게 아니야.”

    발버둥 치던 낭연청이 일순 멈칫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지금 무슨 말을…….”

    “몰랐다. 임무에서 돌아오는 너에게 전령을 보낸 건 사실이지만, 너를 해치게 하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다. 네가 돌아오지 않자 사람을 보내 확인했더니, 전령의 시신만 있었고. 그래서 네가 나를 떠난 줄로만 알았어……. 그래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정신이 나간 낭연청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은 남량이 젖은 눈으로 말했다.

    “내가 천마 위광이다. 청아.”

    낭연청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남량의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천마는 죽었어! 그 시체를 내 눈으로 확인했다고! 이 비열한 자식……. 끝까지 나를 희롱하려 들어?”

    “그래. 분명 죽었지.”

    남량은 낭연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죽기 직전, 염라를 만나 환생했다. 화산파의 이대제자, 남량의 몸으로 말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환생한 이후, 나는 나를 배신한 마교에 복수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매화검선의 무공을 배우고, 정파 무림의 큰 자리에 올라 너희와 대적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였어.”

    그녀는 문득, 남량을 조사하며 느꼈던 이상한 점을 떠올렸다.

    남량은 분명 재능도 없는 범인(凡人)에 불과했으나. 어느 날 갑자기 매화검선의 제자가 되고 매화천수검을 익혔다.

    마치 다른 사람이 몸 안에 들어간 것처럼.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정말 그 사람이…….’

    낭연청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처음 만났을 때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거지?”

    남량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네가 배신한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걸 어떻게 말한단 말이냐. 그리고 그때는 너도 알다시피……. 보는 눈이 많았다.”

    남량은 다시 한번 낭연청을 품에 안았다.

    “미안하다. 너를 의심해서……. 너를 아프게 만들어서…….”

    “정말……. 정말 당신이 위광이라고?”

    “그래.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때 후계자 다툼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중원으로 도망친 나를, 네가 처음 발견했었지. 명월루 창고에서……. 기억나느냐? 그날 네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 무엇인지.”

    남량은 아련한 얼굴로 낭연청을 응시했다.

    그리곤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공자.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낭연청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시리도록 차갑던 기세는 어느새 사라지고 가슴속에 감춰 두었던 과거의 기억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순간에도 남량의 회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돕겠다는 것이냐? 나는 이렇게 되물었지. 그러자 너는…….”

    남량은 말꼬리를 흐리며 낭연청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후의 내용은 직접 듣고 싶다는 듯.

    낭연청이 눈시울을 붉히며 힘겹게 답을 꺼내놓았다.

    “……당신이 누군지는 관심 없습니다. 제 눈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래. 청아. 내가 위광이다.”

    낭연청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교주님!”

    낭연청은 남량을 붙잡으며 오열을 토했다.

    평생 지키겠다 마음먹었던 사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자신을 그저 한낱 여인 중 하나로 치부했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며 오랜 시간 원망했다.

    그러나 순전히 본인만의 착각이었다.

    사모해 마지않았던 그때와 변함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낭연청은 정인(情人)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쉴 새 없이 회한을 토해 냈다.

    남량은 분노로 이를 부득 갈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내가 당신을 죽이려고 했어요.”

    남량은 그런 낭연청을 포근히 안은 채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

    여인의 자책과 사내의 포용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반복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통곡하고 나서야 낭연청은 가까스로 울음을 멈췄고, 이내 그녀가 쏟아 낸 감정은 극한의 분노.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을 향해 거침없이 노기를 드러냈다.

    “기필코 그 자식을 죽여 버리고 말겠어요.”

    남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지월이 꾸민 짓이라면, 그놈은 결코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분노가 치미는 것은 남량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남량은 감정에 휩쓸려 과오를 범할 만큼 아둔하지 않았다.

    이 순간, 복수보다 더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청아, 말해 다오. 탄영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한편, 전투가 벌어진 곳에 도착한 유라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학개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방주님!”

    유라는 급한 대로 장포를 찢어 그의 상처를 지혈했다.

    천천히 눈을 뜬 노학개가 입을 열었다.

    “고맙네. 덕분에 살았군.”

    “조금만 참으십시오. 남 사제에게 치유 능력이 있으니 금방 나으실 겁니다.”

    “그 아이의 전투도 끝난 것 같으니 어서 가 보시게.”

    마침 운휘와 찬야, 위지혁이 그곳으로 도착했다.

    유라는 그들에게 노학개를 맡긴 다음, 남량에게 달려갔다.

    남량은 멀지 않은 곳에 홀로 서 있었다.

    “남 사제! 괜찮아? 다친 데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유라. 당장 낙양으로 가야겠다.”

    “낙양? 무림맹? 그곳에는 갑자기 왜?”

    유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량은 그녀에게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혈마의 힘을 완전히 흡수한 탄영이 무림맹으로 쳐들어갔다. 목적은 맹주야.”

    유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

    낙양 무림맹. 맹주전.

    어두운 대전에 촛불을 킨 채, 고경홍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사기(邪氣)가 진동하는구나.’

    그래서일까?

    매일같이 하던 명상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어젯밤 꿈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목을 친 아들, 고위영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큰일이 일어날 모양이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뜬 고경홍은 대전에 들어온 세 인영(人影)을 향해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발을 들이는 것이냐.”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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