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화산 전투(5)
울고 있었다.
천마 위광은 평생 동안 누굴 위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는 사내였다. 그런 그가 울고 있었다.
“내가 천마 위광이다.”
남량이 유우화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라. 네 원수가 여기 있다. 네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제자가, 실은 이 몸이었단 말이다. 멍청한 놈, 자기 몸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남량이 눈을 부릅뜨며 크게 소리쳤다.
“일어나. 일어나서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욕을 하든 원망을 하든 해 보란 말이다! 유우화! 유우화아아아아아-!”
아무리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유우화는 죽었다. 생명력이 다해 완전히 죽어 버렸다.
남량은 심장을 움켜쥐고 나직이 신음을 터뜨렸다.
왜냐. 겨우 네깟 놈 하나 죽은 걸로, 왜 이렇게 심장이 터질 듯 아픈 것이냐.
나는 그저 네 무공을 전수받기 위해 제자 흉내를 냈을 뿐인데, 대체 이 고통은 무엇이란 말이냐.
대답해라. 대답해라 유우화.
제발 대답하란 말이다. 제발…….
남량은 떨리는 손으로 유우화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조심스레 닦았다.
‘처음 환생했을 때 도망쳤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매화천수검을 다 전수받았을 때라도 도망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런 빌어먹을 감정 따위 느끼지 않았을 텐데. 사제 간의 정(情) 따위…….’
남량은 유우화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장포를 벗어 몸을 덮은 다음, 눈을 감겨 주었다.
“……적어도 이것 하나는 약속해 줄 수 있겠구나.”
남량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교는 내가 반드시 멸한다. 그러니 저승에서 지켜보거라.”
토구(土丘:흙더미) 속에서 검은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몸을 일으킨 효초아는 가슴팍을 길게 가로지른 검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 방 먹을 줄은 몰랐군.”
촤르륵!
검은 안개가 상처를 감싸자 눈 깜빡할 사이에 재생되었다.
수라의 기운을 받아들인 그는 재생 능력 또한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유우화. 이제 네놈에게 말했던 대로 화산의 모든 도사들을 쳐 죽여 주마.”
효초아가 마지막 심장 조각의 기운을 감지한 것은 그때였다.
‘화령이 도착한 모양이군. 너무 늦었어.’
그는 눈을 번득이며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헌데 도착한 곳에는 죽은 유우화의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는 백발의 청년 한 명뿐이었다.
‘백발……. 그럼 저놈이 바로 백매화인가?’
효초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네놈에게서 마지막 심장 조각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너, 화령을 어떻게 한 거냐. 설마, 그녀도 죽인 건가?”
“…….”
“참, 매화검선이 네놈 스승이었지? 스승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군. 일단 네놈이 가져온 마지막 조각부터 손에 넣어야겠다.”
효초아는 남량이 가진 조각을 흡수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량의 몸속에 있는 조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살짝 당황한 효초아가 수라에게 물었다.
“뭐냐. 왜 심장이 흡수되지 않는 거지?”
“느껴진다. 거대한 분노가. 저 남자가 가진 욕망의 덩어리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커지고 있구나.”
수라의 대답에, 효초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뭐라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앗아 간 자를 죽이고자 하는 복수심이, 힘과 권력을 갈망하는 네놈의 탐욕을 넘어섰다.”
“자, 잠깐만. 그렇다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우웅. 파파팟!
효초아의 몸에서 빠져나온 수라의 심장이, 남량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 사라지자, 효초아의 외형도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건 내 힘이야! 내 힘이란 말이다!”
효초아는 괴성을 지르며 빠져나가는 기운을 붙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순간, 수라의 심장이 완성되며 남량의 전신에서 검은 기파(氣波)가 터져 나왔다.
“크윽!”
효초아는 다급히 자전마공의 뇌전을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크아아아아!”
남량의 입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의 신체가 수라화(修羅化)되기 시작했다.
전신의 피부가 검게 변했으며,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고 눈은 적안(赤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등 뒤에 검은 기운이 날개처럼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불안전한 심장 조각으로 동화를 시도한 화령이나 효초아와는 달리, 완벽한 각성을 이룬 모습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린 남량이 효초아를 바라보았다.
이제 첫 번째 복수를 시작할 차례였다.
“각오해라. 효초아.”
“……이익! 웃기지 마라!”
콰르릉! 효초아가 손을 휘젓자, 남량이 있는 자리에 자줏빛 낙뢰가 떨어졌다.
“여기서 네놈을 죽이고 심장을 되찾겠다.”
효초아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차례 벼락을 내리꽂았다.
남량은 피할 생각도 없이 떨어지는 공격을 전부 받아 냈다.
벼락을 맞아 생긴 상처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저 빌어먹을 재생력이!’
효초아는 이를 부득 갈았다.
그가 손을 뻗자, 거대한 벼락의 창이 생성되었다.
자전마공의 절기, 뇌신창이었다.
“어디 이걸 막아도 재생할 수 있을지 두고 보자.”
효초아가 던진 뇌신창이 남량의 아랫배에 적중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뒤로 밀려난 남량이 복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네놈이 보여 줄 건 이게 다인가?”
자신의 공격이 전부 통하지 않자, 효초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남량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내 차례다.”
직후, 남량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나타난 곳은 효초아의 등 뒤였다.
‘언제?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는데!’
남량은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우선 나를 지키려다 죽어 간 수하들의 몫이다.”
“뭐?”
남량은 대답하지 않고 주먹을 내리쳤다.
마치 태산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효초아는 다급히 번개의 장막을 생성해 몸을 보호했다.
‘젠장. 이걸로는 막을 수 없…….’
쩌어엉! 남량의 주먹이 번개의 장막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효초아는 이를 악물고 양팔을 교차하며 주먹을 막았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바닥에 내리꽂히며 구덩이가 생겼다.
수라의 힘을 얻음으로써 재생력뿐만 아니라 신체 능력 또한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올라간 것이다.
“크으으……. 백매화, 네 이놈…….”
바닥에 처박힌 효초아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앞으로 다가온 남량이 무릎을 차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내 스승, 유우화의 몫.”
효초아는 이번에도 번개의 장막을 생성했다. 이 괴물을 막을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쩌억! 장막을 부순 무릎이 효초아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크악!”
효초아는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 내며 위로 솟구쳤다.
공중에서 피를 흩뿌린 그가 힘없이 꼬꾸라졌다.
“마지막으로 네놈에게 배신당한 천마의 몫이다.”
남량이 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쇄도할 때였다.
손을 뻗은 효초아가 번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龍)을 생성해 쏘아 보냈다.
자전마공의 최강 절기 중 하나인 뇌룡승천(雷龍昇天)이었다.
뇌성을 울리며 쏘아져 나간 뇌룡이 남량을 집어삼켰다.
콰아아아앙! 폭음과 섬광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효초아가 날린 회심의 일격으로도 남량을 죽일 수는 없었다. 효초아는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소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상은 기대했는데 상처 하나 없다고? 질리는군. 흐흐…….”
바닥을 박차고 날아오른 남량이 효초아의 코앞에 떨어졌다.
효초아는 미친 사람처럼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너 대체 뭐 하는 놈이냐?”
남량은 붉은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한때 네 주인이었던 사내.”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긴 효초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
“나를 죽이던 그 순간을 기억하느냐? 너는 그때 분명 이렇게 말했다. ‘천마의 마지막 발악인데 천천히 구경해 봅시다.’ 또 이렇게도 말했지. ‘오늘은 축배를 들어야겠군. 이 망할 괴물 늙은이의 살점을 안주 삼아서 말이지. 하하.’ 그리고 너는 내 얼굴을 향해 침을 뱉었다.”
“……!!!”
효초아의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죽음의 공포조차 잊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리가…….”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남량이 가슴속에 담아 온 분노를 마침내 토해 냈다.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효초아가 피식 웃었다.
“지월과 탄영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안 가는군. 하하.”
“효초아. 배신의 대가를 치를 때다.”
칼끝에 기운을 집중시킨 남량이 검을 내리쳤다.
콰앙! 효초아의 육신은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소멸했다.
검을 내린 남량은 고개를 젖히며 길게 소리를 질렀다.
그 외침에는 첫 번째 복수를 달성한 희열과 스승을 잃은 슬픔이 한데 담겨 있었다.
그렇게 화산 전투는 막을 내렸다.
***
이틀 뒤, 화산에서는 성대한 장례가 치러졌다. 살아남은 도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가족과 같은 동문을 떠나보냈다.
비록 승리하긴 했으나, 이 전투로 인해 화산이 입은 피해는 실로 극심했다.
장문인 자리는 매화검수의 수장인 공월 진인이 맡게 되었다.
당장 화산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그였다.
“폐관 수련을 하겠다고?”
공월 진인의 물음에, 남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있을 예정이냐.”
“수라의 힘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을 때 나올 생각입니다.”
남량이 가진 수라의 힘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삼천위인 효초아를 단신으로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했으나, 언제 폭주하며 동료를 위험하게 만들지 몰랐다.
그래서 수련을 하려는 것이다.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래. 네 뜻은 잘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공월 진인이 눈을 돌리며 물었다.
“너희들은 이제 어쩔 생각이냐. 남량을 따라 폐관에 들어갈 것이냐?”
찬야와 유라, 운휘, 위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대표해, 유라가 입을 열었다.
“매화검수 심사까지 앞으로 1년 정도 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 수련을 마치고 나오겠습니다.”
공월 진인은 도관을 나서는 다섯 도사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전대 장문인, 구양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설중에 핀 매화가 더 향기로운 향기를 내뿜는 법이다. 시련을 겪고 성장했을 때, 화산의 도사들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공월 진인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외쳤다.
‘강해져라.’
***
매화오절은 폐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벽곡단만 먹게 생겼군. 토 나오겠네.”
“그러게. 좀 더 맛있는 걸로 개발해야 하는데.”
“찬야, 운휘. 우린 폐관에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솔직히 벽곡단이 심하게 맛이 없기는 해.”
남량은 피식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최소 1년인가. 누가 먼저 나오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 보자.”
“그래.”
남량은 폐관으로 들어서는 네 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허나 이별의 아픔과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결코 성장할 수 없는 법. 버텨라. 버티고 버텨서 강해져라. 너희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량은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바람을 타고 유우화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도 따라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제 들어갈까.”
남량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어두운 동굴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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