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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19화 (119/164)
  • <119화>

    수라의 심장(4)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화령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옥의 악귀가 존재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피부는 검게 변했으며 머리에는 뿔이 돋아났다.

    입을 열 때마다 짐승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령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승려들이 몸을 떨었다.

    오직 불제만이 덤덤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령은 붉게 변한 눈으로 승려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분이 이상해. 지금이라면 어쩐지…….”

    화령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네놈들을 파리처럼 죽일 수 있을 것 같군.”

    무언가를 직감한 방월 대사가 외쳤다.

    “모두 대비하거라!”

    말이 끝난 직후, 화령의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수백 갈래로 쏟아져 나왔다.

    승려들은 즉시 호신강기를 펼쳐 막으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쩌엉! 기운에 적중당한 승려들의 몸이 먼지처럼 부서졌다.

    “으악!”

    홍선은 날아드는 검은 덩어리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러 댔다.

    남량은 그의 머리를 누르며 사자금강을 펼쳐 보호했다.

    다행히도 덩어리는 사자금강의 방어막을 부수지 못했다.

    ‘오래 버티기는 힘들겠군. 이게 수라의 심장이 가진 힘인가.’

    그때, 분노한 방월 대사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다들 내 뒤로 피하거라. 어서!”

    살아남은 자들은 다급히 방월 대사의 뒤로 모여들었다.

    방월 대사는 합장하듯 양손을 부딪치며 기합을 내질렀다.

    “부동금강명왕진(不動金剛明王陳)!”

    그 순간, 방월 대사의 전신에서 환한 금빛의 광채가 터지며 승려들과 남량을 보호했다.

    ‘이건……. 불가 최강의 방어 무공인가.’

    과연, 화령의 무시무시한 기운이 방월 대사의 금광(金光)에 밀려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월 대사가 방어진을 유지하느라 기를 크게 소모하고 있는 반면, 화령의 마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져 가고 있었다.

    화령도 그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흥. 얼마나 더 버틸지 지켜봐 주지.”

    콰콰콰콱! 화령의 기운이 한층 기세를 더해 갔다.

    이제는 숫제 검은 파도가 밀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남량은 방월 대사가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대로 있으면 곧 죽는다. 화령을 막아야 해.’

    절체절명의 상황에, 남량은 묘안을 하나 떠올렸다.

    그는 주변의 승려들을 향해 말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시주.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홍선이 승려들을 대표해 물었다. 남량이 대답했다.

    “제가 가진 방어 무공으로 저 기운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단, 방어막을 유지하려면 내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한 승려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

    “내력을 불어넣어 달라는 말씀이시군요.”

    남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반드시 활로(活路)를 만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담원(曇元)! 담현(曇玄)! 자광(子光)! 다들 여기 남량 도장께 내력을 보내 드리세.”

    가장 많은 내력을 보유한 승려들이 다가왔다.

    남량은 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부탁드립니다.”

    네 명의 승려가 남량의 등에 손을 얹고 내력을 주입시켰다.

    우우웅! 맑고 깨끗한 기운이 등을 타고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일주천을 마친 남량은 긴 숨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내력이 가득 찬 느낌. 나쁘지 않아.’

    남량은 사자금강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홍선을 비롯한 승려들은 그 뒷모습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멍청한 놈. 일찍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화령은 비웃음을 머금으며 기운을 그쪽으로 쏘아 보냈다.

    텅! 터엉! 덩어리는 투명한 방어막에 막혀 튕겨 나갔다.

    내력을 한껏 끌어올린 남량이 최강의 비기를 꺼내 들었다.

    ‘지금의 화령에게 통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량이 검을 휘두르자 매화의 칼날이 주변을 맴돌았다.

    매화천수검의 비기, 연화세계(蓮花世界)가 펼쳐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남량은 통찰안으로 화령의 몸 내부를 살폈다.

    ‘녀석의 힘은 수라의 심장에서 나오는 것. 심장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통찰안으로 살핀 결과, 수라의 심장은 화령의 명치 부근에 위치해 있었다. 남량은 그곳으로 검을 내질렀다.

    파파파파파파팟!

    수천 자루의 검이 일제히 화령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위험을 느낀 화령이 다급히 기운을 돌렸다.

    검은 안개가 허공에서 뭉쳐지며 남량의 공격을 막아 냈다.

    ‘연화세계로도 저 기운을 뚫는 것은 무리인가. 하지만.’

    잠시 시선을 돌린 걸로 충분했다.

    남량이 고개를 돌리자, 방월 대사를 비롯한 소림의 승려들이 일제히 화령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한진(羅漢陳)을 펼친 다음 공격하라.”

    나한승들은 방월 대사의 말에 따라 순식간에 진법을 구성하고 화령을 밀어붙였다.

    팔대호법은 항마복호장(降魔伏虎掌)이나 반야장(般若掌) 같은 다양한 장법을 구사하며 화령의 공격을 받아쳤다.

    사대금강은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 같은 상승의 경신법으로 화령의 눈을 어지럽혔다.

    모든 연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지켜보던 남량이 나직이 감탄을 내뱉었다.

    “천하공부출소림이라더니……. 말 그대로인가.”

    화령의 기운이 약해진 틈을 타, 홍선이 혼신의 힘을 담은 일권(一拳)을 내질렀다.

    쩌엉! 권강이 화령의 명치에 적중하며, 그녀가 휘청거렸다.

    “어림없다. 이까짓 걸로 나를……!”

    이를 갈며 소리치던 화령이 움찔했다.

    방월 대사의 주먹으로 거대한 기운이 몰려들고 있었다.

    백보신권(白步神拳). 소림 최강의 권법.

    그 위력은 홍선의 권격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화령의 붉은 눈동자가 죽음의 공포로 인해 격렬히 흔들렸다.

    방월 대사가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지르자, 황금빛 섬광이 맹렬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

    쩌엉!

    섬광은 화령의 명치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그 자리에 수라의 심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비틀거리던 화령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웃기지 마라.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그 순간, 수라의 심장이 새빨간 빛을 발하며 상처를 빠르게 재생하기 시작했다.

    홍선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명치를 관통해도 죽지 않는다고? 이런 괴물 같은!”

    방월 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의 안색도 굳어졌다.

    “우리는 정말 악마를 상대하고 있는 것인가…….”

    한 승려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생을 하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전력으로 공격을 퍼부어 놈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말한 남량은 매화천수검 7초식, 유성추월로 검을 휘둘렀다.

    검강의 소용돌이가 쏘아져 나가 화령의 재생을 방해했다.

    그제야 승려들도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재개했다.

    “이 날파리 같은 것들이……! 거슬리게 하지 마라!”

    화령이 입을 쩍 벌리자 검은 기운이 응집되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쩌엉! 방월 대사는 소림의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으로 화령의 공격을 받아 냈다.

    그사이,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화령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더 이상 연화세계를 쓰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남량은 검을 휘둘러 허공에 원을 그렸다.

    매화천수검 9초식. 천류신화.

    매화의 꽃잎이 흩날리며 허공을 가득 뒤덮은 장엄한 광경을 만들어 냈다.

    방월 대사도, 홍선도, 다른 승려들도, 심지어 화령마저도 눈앞의 장관을 멍하니 응시했다.

    ‘떨어져라. 죽음의 화우(花雨).’

    매화의 꽃잎이 나선을 그리며 화령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끄아아아아악!”

    화령의 비명마저 곧 꽃잎의 폭풍에 파묻혀 사라졌다.

    꽃잎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붉은 구슬 하나만 남아 있었다.

    잔뜩 긴장해 있던 승려들은 그제야 무기를 내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해치웠나. 정말 힘든 상대였다.”

    “만약 저 괴물이 세상에 나왔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요.”

    남량은 바닥에 떨어진 구슬을 바라보며 말했다.

    “구슬의 마력은 아직 건재합니다.”

    방월 대사는 구슬을 향해 다가갔다.

    “일단 다들 나가 있으시게. 나는 이 구슬의 마력을 잠재우고 나갈 터이니. 팔대호법은 또 누군가 습격해 올지 모르니 호법을 서고 있도록.”

    “네. 방장.”

    승려들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량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구슬을 응시했다.

    ‘수라의 심장……. 다섯 조각 중 하나의 힘이 이 정도라면 조각들이 전부 모였을 때의 힘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짐작할 수조차 없구나. 사악하지만 분명 강한 힘이다. 능히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힘……. 만약 저 힘을 내가 가진다면 과거의 나를 뛰어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남량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남량. 제어할 수 없는 힘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남량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릴 때였다.

    -너. 재미있는 자로구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남량은 그 목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수라의 심장?’

    -우흐흐흐. 나를 그렇게 부르는가.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산한 웃음소리였다.

    -이상하군. 네놈의 영혼은 사악하기 그지없는데 지금의 육체는 그와 정반대로 아주 맑고 깨끗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놈은 남량의 본질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남량이 물었다.

    ‘왜 내게 말을 걸어온 거지?’

    구슬은 또 한 번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네가 가진 욕망의 목소리라고 해야겠군.

    ‘욕망이라고?’

    -힘을 가지고 싶으냐.

    순간 남량이 움찔했다. 구슬은 계속 말했다.

    -간절한 복수를 원하고 있군. 헌데 지금 네 힘으로는 역부족이고. 그래서 몹시 초조해하고 있어. 그렇지?

    남량은 대답하지 못한 채 이를 부득 갈았다.

    -내가 그 힘을 너에게 줄 수 있다. 내 육신을 나눈 조각을 전부 찾는다면 말이다.

    구슬의 말에 남량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게 힘을 주겠다고? 너의 힘을?’

    -그렇다. 너도 이미 짐작하고 있을 터. 내가 가진 지옥의 힘을 얻게 된다면 네가 원하는 복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구슬은 계속해서 남량을 유혹했다.

    -주저하지 마라. 나를 잡고 힘을 얻어라. 네가 바라던 진정한 힘을! 네가 이 세상의 패자가 되는 것이다!

    남량이 이를 악물었다.

    ‘염라는 내가 그들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 화산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라 했다. 그가 나를 화산의 제자로 환생시킨 이유가 분명 있을 터. 허나 매화천수검을 익히고, 자하신공마저 익힌다고 해서 놈들을, 삼천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만약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모될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저 힘을 가지는 것이…….’

    갈등하던 남량은, 귓가로 들려오는 방월 대사의 외침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남량 도장! 당장 그 손을 놓게. 어서!”

    남량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수라의 심장이 어느새 왼쪽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구슬이 붉은 빛을 발하는 것과 동시에, 남량이 정신을 잃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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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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