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07화 (107/164)

<107화>

암살 계획(2)

다음 순간, 이건은 깜짝 놀랐다.

남량이 술을 마시지 않고 잔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어서 그는 모두가 경악할 만한 발언을 했다.

“누군가 저를 살해하기 위해 술에 독을 탔습니다.”

장내에 가득하던 함성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매화오절을 비롯한 제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궁양중은 잔에 채워진 술을 살피며 냄새를 맡아 보았다.

“보통의 매화주와 다른 점이 없군.”

구양중이 남량에게 물었다.

“술에 독이 든 걸 어떻게 알았느냐?”

“이 사실을 제게 알려 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구양중의 물음에 답한 사람은 남량이 아니었다.

“접니다. 장문인.”

단상 위로 올라온 사람은 다름 아닌 위지혁이었다.

문연회가 열리기 전날 밤.

위지혁은 이건의 부름을 받고 그의 도관을 찾았다.

이건은 위지혁에게 천년살을 보여 주며 계획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위지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남량을……. 남 사제를 독살한다구요?”

“그래. 마침 문연회라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았느냐.”

위지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남량은……. 남량은 같은 동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걱정하지 말거라. 아무도 우리가 한 짓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천년살은 독이지만 다른 독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훗날 남량의 시체를 부검한다고 해도 독살의 흔적을 전혀 찾아내지 못할 것이야.”

“그런……. 제 말은 그게 아닙니다.”

위지혁이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남량이 가장 뛰어난 제자이고 그가 있는 한 제가 장문인이 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문을…….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제를 죽이다니요. 그건…….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스승님.”

“가족? 언제부터 남량이 네 가족이었더냐?”

이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 그동안 같이 붙어 다녔다고 정이라도 든 것이냐?”

“아닙니다. 저는…….”

위지혁은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남량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는지를.

이건은 위지혁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정신 차려라 위지혁! 너는 반드시 장문인이 되어야 한다.”

말하는 이건의 눈에는 광기마저 엿보였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했다.

이건은 이미 괴물이 되어 버렸음을.

그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막아야 한다.’

만약 이 사실을 계율원에 알린다면?

‘동문 살해는 금기 중에 금기다. 스승님이 남량을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단순히 파문 정도로 끝나지 않을 터. 스승님의 단전을 부수고 그분을 폐인으로 만들 것이 분명해.’

이건은 여전히 소중한 은인이자 하늘 같은 스승이었다.

그가 폐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위지혁은 결국 한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남량을 구할 것인가. 스승을 구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분명 후회할 터였다.

‘빌어먹을.’

밤새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연회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위지혁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멍하니 서 있던 그에게 남량이 다가와 건넨 한마디 덕분이었다.

-너, 괜찮냐?

이 한마디 덕분에, 그는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스승님에게 나는 유 도장님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할 수단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남량은 달랐다.

‘남 사제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고 있어. 나란 사람을.’

그래서 위지혁은 남량을 선택했다.

조금은 이기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이건의 암살 계획에 대해 전해 들은 남량은 잠시 굳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군.”

“……미안하다.”

“뭐가 미안한데? 충분히 고민할 만해. 오히려 망설임 없이 한쪽을 선택했으면 너에 대한 내 평가가 많이 낮아졌을지 모르지. 그리고 마지막에는 날 선택해 줬으니 그걸로 됐어.”

남량은 위지혁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마음 고생하느라 수고했다.”

무심하게 툭 던지는 한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위지혁은 울먹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고맙다. 남 사제…….”

장내의 시선이 위지혁에게 집중되었다.

위지혁은 남량과 말없이 눈빛을 교환했다.

구양중은 노한 목소리로 위지혁에게 말했다.

“위지혁. 너는 그 사실에 대해 어찌 알고 있느냐.”

“이 일을 꾸민 자의 입으로 직접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누구인지 어서 말하라!”

위지혁은 손을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에는 이건이 일그러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유우화는 탄식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였는가. 내 설마 했는데…….”

일 장로 노백이 물었다.

“이건 도장이 술에 독을 푼 것이 확실하더냐.”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술 안에 들어간 독은 천년살이라는 것으로, 복용하게 되면 1년 동안 서서히 죽어 가게 됩니다. 시체를 부검해도 증거가 나오지 않아 완벽하게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구양중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천년살은 나 역시 들어 본 적이 있다. 무색무취의 극독으로 복용한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더군.”

이건이 동문 살해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매화검수들과 계율원 소속 도사들이 즉시 그를 포위했다.

스륵.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이건이 크게 소리쳤다.

“이건 모함입니다! 다들 속지 마십시오!”

구양중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 모함이라고?”

이건은 진심으로 억울한 듯 계속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천년살이라니? 내가 왜 남량을 죽이려 든단 말인가! 의심하려면 오히려 저놈을 의심해야지!”

이건의 손가락이 위지혁을 향했다.

“내게는 남량을 죽일 동기가 없네! 허나 저놈이라면 남량을 시샘해서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어찌 여기 사형제들은 일대제자 한 명의 말만 믿고 수십 년을 함께해 온 동문에게 칼을 겨눌 수 있단 말인가!”

위지혁은 멍한 표정으로 이건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운휘가 커다란 손으로 위지혁의 귀를 막으며 말했다.

“듣지 마. 저런 개소리는.”

찬야와 유라는 분노로 이를 갈며 이건을 향해 소리쳤다.

“입 닥쳐! 이 쓰레기 새끼야!”

“네놈은 화산의 수치다!”

남량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 지를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증명해 주지.”

남량은 천년살이 든 술병의 마개를 따고 이건을 향해 들이부었다. 이건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남량은 냉소를 지으며 빈 술병을 던졌다.

“왜 피하지? 고작 술일 뿐인데 말이야. 아니면 천년살이 들어 있어서 한 방울이라도 입안에 들어갈까 봐 겁이 난 건가? 그래?”

방금 전 이건의 행동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과 같았다. 구양중이 싸늘히 말했다.

“저놈을 당장 포박해 뇌옥으로 끌고 가라.”

이건은 계율원 도사들의 손에 끌려 나갔다.

유우화는 이건의 뒷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

그날 밤, 한 사람이 이건이 갇힌 뇌옥을 찾았다.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온 사람은 바로 유우화였다.

팔다리가 묶인 이건이 유우화를 발견하고 말했다.

“나를 조롱하러 온 건가. 유우화.”

“설마. 그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왔네.”

“하긴, 지금이 아니면 그럴 기회도 없을 테지.”

유우화와 이건은 창살을 두고 마주앉았다.

이건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오랜 시간 홀로 갇혀 있다 보니 조금은 머리가 맑아지더군.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았네. 언제부터 내가 괴물이 되어 있었던 것인지. 그건 남량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어. 내 제자만큼은 자네 제자의 그늘에 가려 살게 하고 싶지 않았네. 평생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 하는 기분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유우화는 슬픈 눈으로 이건을 응시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위지혁과 대화를 나누었다.

위지혁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만약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이건의 계획을 들었을 때 기뻐하며 찬성했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남량이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라고.

그 말을 들으며 유우화는 가슴이 아팠다.

‘미안하네. 내가 조금 더 자네를 살피고 진심을 나누었다면 자네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이건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 지혁이는 나를 막고 싶었을 것 같네. 괴물이 되어 버린 스승을……. 그런데 나는 마지막까지 그 아이에게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뚝뚝.

말하는 이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유우화는 이건이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화.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지혁이를, 지혁이를 한 번만 보게 해 주게. 맨정신일 때 그 아이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네.”

유우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이건은 눈앞에 있는 위지혁을 향해 말했다.

“내 제자가 되어 줘서 고맙다. 못난 스승의 염원을 이루어 주기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맙다. 괴물이 된 나를 막아 줘서 고맙다. 나를 보러 와 줘서 고맙다.”

위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이건이 고개를 숙였다.

“너를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올바른 스승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하다. 연회장에서 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 미안하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킨 이건이 말했다.

“너는 분명 훌륭한 도사가 될 거야.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위지혁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건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건의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감사합니다.”

위지혁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굶어 죽거나 도적들한테 죽었을 겁니다. 스승님이 저를 화산으로 데려와 주신 덕분에 저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든 위지혁은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는 스승님을 원망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몸을 일으킨 위지혁은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뇌옥을 나갔다.

홀로 남은 이건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냈다.

“으흑. 으흐흐흑…….”

뇌옥을 나선 위지혁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으흑. 크흐흐흑!”

처절한 울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갔다.

***

다음 날, 이건은 뇌옥에서 혀를 깨물고 자결했다.

동문 살해를 시도한 죄인이라 장례는 치를 수 없었다.

대신 시체를 화장해 강가에 뿌리는 건 허락되었다.

위지혁은 이건의 뼛가루를 드넓은 강에 뿌리며 말했다.

“한평생 힘들게 사셨으니 이제라도 마음 편히 지내십시오.”

위지혁은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건을 처음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화창한 날씨였다.

-배가 많이 고픈 모양이구나. 내가 먹으려고 싸 둔 만두이긴 한데, 네가 먹어라.

위지혁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 말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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