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05화 (105/164)

<105화>

매화검수 심사(3)

남량 일행은 의양현에 위치한 구풍의 대장간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구풍은 반가운 표정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구풍 어르신.”

“자네야말로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군.”

남량은 일행들을 소개했다.

구풍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반갑네. 대장장이 구풍일세.”

찬야와 운휘, 위지혁은 구풍의 거대한 체격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크다. 정말 크다.’

‘뭘 먹으면 저렇게 커지는 거지?’

‘일반인한테서 무슨 절대고수의 위압감이…….’

유라는 구풍을 향해 정중히 예를 표했다.

“강북 최고의 대장장이로 불리는 구풍 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북 최고라는 명성은 내게 과분한 칭찬일세. 연화검을 만들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한낱 퇴물에 불과하지. 하하.”

구풍은 진열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쓸 만한 검이 있나 둘러보고 가시게. 마음에 드는 검이 있다면 하나씩 선물해 주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네 사람의 입가에 동시에 미소가 걸렸다. 강북 최고 장인의 검을 얻을 기회는 결코 흔치 않다.

그들이 검을 구경하기 위해 진열대로 향하자, 작업장 안에는 남량과 구풍, 단둘만 남았다.

구풍은 두건을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어쩐 일인가?”

“화양검의 연마를 부탁드리려 왔습니다.”

남량은 구풍에게 화양검을 보여 주었다.

“으음.”

화양검의 칼날을 유심히 살펴보던 구풍이 입을 열었다.

“날이 많이 상했군.”

“죄송합니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딱히 자네를 질책하려는 뜻은 아니었네. 그저…….”

구풍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그동안 어떤 수라장을 헤쳐 왔는지 보여서 말이네.”

남량도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어르신의 검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부러졌을 겁니다.”

“당연하지! 내가 만든 검은 그리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네.”

구풍은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구풍은 화양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아무튼, 내가 책임지고 연마할 테니 걱정 말게.”

“감사합니다.”

남량은 인사를 마치고 작업장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구풍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남량을 불러 세웠다.

“자네에게 부탁 하나만 함세.”

“무슨 부탁입니까?”

“잠시만 기다리게.”

구풍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고로 향했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손에 비단으로 싼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비단을 풀자 검은색 바탕에 붉은 매화 무늬가 들어간 검집이 드러났다. 남량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화검일세.”

구풍이 남량에게 검을 넘기며 말했다.

“연화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다네. 구하기 매우 힘든 것인데, 최근에 우연찮게 그 재료를 얻을 기회가 있었지.”

남량은 연화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완벽히 복원해 냈군.’

구풍이 말했다.

“연화검을 복원한 이유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함이 아닐세. 단지 연화가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네. 그 검을 유대인께 전해 주겠나?”

남량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연화검을 부순 건 나인데, 복원된 검을 전해 주는 것도 나군.’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남량은 검을 검집에 도로 넣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잘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구풍이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

대장간을 나온 남량 일행은 선의관으로 향했다.

“어머! 정말 오랜만이다.”

가게 주인 원영은 남량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벌써 매화검수 자리에 오른 거야? 대단한데? 내가 만든 옷을 입은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해야지. 후후.”

남량은 순간 울컥했다.

‘이 여자는 볼 때마다 등을…….’

“예전에 입던 도복이 많이 낡았네.”

원영은 직접 제작한 새 도복을 남량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매화검수 남량에게 주는 옷이야. 입어 봐.”

매화검수를 상징하는 삼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복은, 새하얀 바탕에 붉은 매화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여 있었다.

새 도복을 입고 겉옷까지 걸친 남량이 탈의실을 나오자, 일행들과 원영이 동시에 감탄을 내뱉었다.

“남 사제! 정말 잘 어울려!”

“형님. 정말 멋있으십니다!”

“확실히 매화검수 옷을 입으니 위엄이 훨씬 더 사는군.”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저 옷을 입어야지.”

“역시! 이번에도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어!”

남량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나 잘 어울리는 건가…….”

잘생긴 미남자의 웃음에 한순간 객잔 전체가 밝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찬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도사가 아니라 선녀 아니야? 하하.”

운휘는 자신도 새 옷을 맞추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유라는 옷소매로 붉어진 얼굴을 슬쩍 가렸다.

“이만 가자. 해가 지기 전에 화산에 돌아가자고.”

원영은 가게를 나서는 일행을 배웅하며, 남량에게 물었다.

“다음에 또 와. 그때는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량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화산파 장문인이 되면 다시 오죠.”

***

화산으로 돌아온 남량은 공월 진인의 부름을 받았다.

공월 진인은 매화검수 도복을 입은 남량을 보며 말했다.

“도복이 잘 어울리는군.”

“감사합니다.”

“유 도장 젊었을 때와 똑같아.”

“그 말은 오는 길에 도사님들, 장문인, 매화검수 사숙들에게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남량이 웃으며 대답했다.

공월 진인은 헛기침을 하며 본론을 꺼냈다.

“매화검수로서 첫 임무가 내려왔다.”

그가 말했다.

“북해(北海)로 가라.”

남량이 살짝 놀란 표정을 했다.

“북해라면 새외(塞外)가 아닌가요? 빙궁(氷宮)이 있는…….”

“그래. 바로 그 북해다.”

공월 진인이 수염을 쓸며 말했다.

“흑영대의 정보에 따르면, 마교의 흔적이 북해에서 발견되었다는군. 가서 조사해 줄 사람이 필요해.”

공월 진인은 서탁에서 흑영대의 서신을 꺼내 남량에게 내밀었다.

“흑영대는 이 일을 맡아 줄 사람으로 가장 믿을만한 고수들을 지목했다. 그중에 너도 포함되어 있고.”

남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부지런히도 움직이는군. 효초아. 이번에는 북해 세력을 포섭이라도 할 생각이냐? 허나 네 맘대로는 안 될 것이다.’

남량은 서신을 건네받으며 중얼거렸다.

“북해라. 긴 여정이 되겠군요.”

“마침 홍룡표국(紅龍鏢局)의 표행이 두 달 뒤에 있다.”

공월 진인이 덧붙여 말했다.

“화산과 깊은 연을 맺은 표국인데, 최근에 북해빙궁과 교역을 여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군. 북해로 가는 가장 빠른 길도 알고 국경을 넘는 것도 문제없을 테니 그들과 함께 가도록 해. 표사 노릇 하면서 도적들한테서 보호도 해 주고.”

“알겠습니다.”

남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남량은 유우화, 매화오절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임무에 대해 들은 유우화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찬야는 입안에 고기를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첫 임무부터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만약 그곳에 효초아나 칠령귀라도 있으면 어떡해?”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야겠지.”

남량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서신을 보니 남북 십성도 같은 임무를 받았더군.”

위지혁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남북 십성이? 누가 가는데?”

“은왕(隱王). 은왕 유서휘.”

유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북 십성이 있다면 안심이 되는구나.”

유라가 슬쩍 남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북해로 가면 적어도 반 년 동안은 보지 못하겠군.”

“유 사매. 어째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오는데?”

“입 다물어라.”

운휘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형님이랑 같이 수련하나 싶었는데 또 떨어지네요. 마음 같아서는 저도 같이 따라가고 싶은데…….”

남량이 웃으며 운휘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없는 동안 죽을 각오로 수련해서 매화검수에 들도록 해. 돌아와서 성취가 가장 늘지 않은 놈은 정신개조술이다.”

“보나마나 위지혁이 걸리겠군.”

“날 무시하지 마라! 망할 운휘 놈아.”

그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찬야가 남은 탕을 후루룩 들이켜며 물었다.

“두 달 뒤에 간다고?”

“그래.”

남량의 대답에 찬야가 싱긋 웃었다.

“그럼 올해 문연회(門宴會)는 같이 즐길 수 있겠네.”

그날 밤, 남량은 유우화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푸른 달빛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유우화는 뒷짐을 진 채 남량에게 물었다.

“그동안 성과는 좀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남량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밤 생각했지만 도저히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초식을 하나로 합치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매화천수검의 비기(秘技) 연화세계(蓮花世界)는 유우화의 손에서도 단 한 번 펼쳐진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유우화가 연화세계의 심득(心得)을 얻었을 때가 천마 위광의 손에 무공을 잃은 뒤였기 때문이었다.

자세도, 검로도 모르는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 초식을 눈앞에서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금방 따라할 수 있을 텐데…….’

유우화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두 달. 그 안에 단서를 찾아내 보자꾸나. 그동안 너를 도와줄 사람도 불렀다.”

한 사람이 마당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바로 매화검수 이화정이었다.

“심득을 얻었다는 건 분명히 존재하는 검식이라는 뜻이다.”

이화정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해 보거라.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너를 도와주마.”

남량은 이화정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 보자. 천마 위광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남량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

한편, 이건은 어두운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초조한 목소리로 계속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남량의 무용담과 명성이 퍼질 때마다, 이건은 불안을 금치 못했다.

남량의 존재가 커질수록 위지혁이 화산파 장문인이 될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위지혁이 당지황의 눈에 들어 독인이 된다고 했을 땐,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당지황의 독공(毒功)은 그를 남북 십성으로 만들어 준 최강의 무공 중 하나였다. 위지혁이 독왕의 독공을 익힌다면 남량을 능히 뛰어넘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남량이 덜컥 매화검수 자리에 앉아 버렸다.

이대로 가다간 장문인 자리를 영영 빼앗겨 버릴지도 모른다.

이건은 손톱을 질근질근 깨물었다.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지……. 유우화의 제자 따위에게 또 밀려날 수는 없어……. 무조건 내 제자가 정상에 올라야 해. 반드시 그래야만…….”

묘안이 필요했다. 남량을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릴 묘안이.

일순, 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곧 있으면 문연회가 열리지, 아마?”

가장 자연스럽게 남량을 처치해 버릴 방법이 막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군.”

그의 눈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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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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