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찬야의 각성. 신검합일(身劍合一)(4)
치료를 받은 찬야는 족히 일곱 시진(14시간)을 자고 나서야 눈을 떴다.
“으음…….”
정신을 차리자마자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성공했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신검합일에 들었던 그 순간을.
그때의 동작과 호흡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찬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벽에 걸린 검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한 번 더 해 보자.’
검을 뽑아 든 찬야는 차분히 호흡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몇 번을 휘둘러도 이전처럼 신검합일에 들지는 못했다.
‘왜 안 되는 거지?’
분명 그때의 감각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찬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마침 객청 복도를 건너오던 남량과 유라가 마당에 멍하니 서 있는 찬야를 발견했다.
“찬야?”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을 텐데.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두 사람은 마당으로 걸어왔다. 남량이 큰 소리로 찬야를 불렀다.
“뭐 해?”
“남 사제.”
찬야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상해. 난 분명 신검합일에 들었는데……. 왜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는 거지?”
“간단해. 새로 막 얻은 경지라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거야. 유라도 그랬어.”
“정말?”
유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량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당장 안 된다고 초조해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수련하도록 해. 그래서 신검합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도록 만들어. 거기까지가 성장 과제다.”
“알았어.”
찬야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검을 집어넣었다.
“정 빠르게 신검합일을 익히고 싶다면…….”
남량이 돌아서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은왕에게 가서 대련을 요청해 봐.”
“은왕에게?”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은왕의 검술이 너와 비슷하다는 걸. 아마 그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올랐을 거야. 그러니 너와 비슷한 그의 검을 상대하면서 살펴봐.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지.”
직후, 찬야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남 사제……. 넌 정말 대단해!”
남량은 어깨를 으쓱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가서 대련을 요청해야겠어!”
찬야는 바람처럼 무복으로 갈아입은 뒤 은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유라는 한발 늦었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도 은왕께 대련을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쯧.”
“아쉽지만 양보해. 찬야에게 중요한 대련이 될 수도 있으니까.”
유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찬야를 너무 편애하는군.”
“편애는 무슨. 혹시 질투해?”
남량이 귀를 후비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자 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질투는 무슨!”
***
“왜 저는 제자로 받아 주시지 않는 겁니까?”
“…….”
“저 외부인……. 화산파 도사는 제자로 받아 주시면서 왜 저는!”
은왕 유서휘는 졸린 눈을 들어 눈앞의 사내를 응시했다.
“소성(小晟).”
“네.”
“네 나이가 올해 몇이지?”
“스물여덟입니다.”
“익힌 검술은?”
“청운검(淸雲劍).”
“검술의 성향은?”
“무당파 검법의 아류(亞流)로 유(流)를 바탕에 두고…….”
“그게 이유다.”
유서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후계자를 받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내 검을 완전히 이어받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야. 낭인회 전체를 뒤져 봐도 없었지. 그건 회의 젊은 신성이라 불리는 너 역시 마찬가지고.”
“…….”
“네가 말한 화산파의 제자를 상대해 본 적이 있나?”
유서휘는 대답 없는 소성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 찬야는 내가 지금껏 봐 온 검사들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닌 녀석이다. 그러나 단순히 재능 때문만은 아니야. 그 녀석의 검. 검의 성향이 나와 비슷했다. 나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었어. 그게 내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이유다.”
“회주님.”
“충분한 대답이 된 것 같군. 이만 나가 보도록.”
“…….”
소성은 유서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여자나 밝히는 놈이 뭐가 대단하다고!’
놈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저 또한 낭인회 내부에서 신성 소리를 듣는 몸이다. 실제로 붙으면 틀림없이 이길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소성이 주먹을 쥐며 입을 열었다.
“제가 찬야와 대련해 이긴다고 해도 제자로 받아 주시지 않을 겁니까?”
유서휘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소성. 내 말하지 않았나? 너와 찬야의 차이는 단순히 재능의 차이가 아니라, 검의 성향이 문제라고.”
“검술을 바꾸겠습니다. 일단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유서휘가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며 물었다.
“그렇게 내 후계자 자리가 탐나나? 남북 십성의 후계자라는 칭호가 가지고 싶은 것이야?”
정곡을 찔린 소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는 중원의 무림인들이 인정하는 다음 세대의 상징이며 차후 무림을 이끌어 갈 주역들이다. 소성은 그들처럼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세대를 이끌고 싶었다.
잠시 주저하던 소성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
“네. 솔직히 가지고 싶습니다. 다른 남북 십성은 후계자를 두고 키우는데, 왜 회주님만 그러지 않으시는 겁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후계자를 키우신다면, 당연히 낭인회의 젊은 신성인 제가 되는 게 맞지 않습니까?”
“…….”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소성은 고개를 숙였다. 유서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유서휘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친야가 뛰어 들어왔다.
“어르신! 아니……. 스승님!”
소성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감히 은왕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서 예의도 갖추지 않다니!
“이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마음대로…….”
“찬야. 무슨 일이냐.”
유서휘가 소성의 말을 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소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찬야는 숨을 헐떡이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스승님. 저랑 대련 한 번만 해 주십시오.”
“몸이 성치 않아 보이는데.”
“중요해서 그럽니다. 중요해서!”
찬야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했다. 그때 가만히 그를 지켜보던 소성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거 마침 잘되었군.”
“응?”
“대련이 하고 싶으면 내가 상대해 주마.”
소성은 은왕이 보는 앞에서 찬야를 보란 듯이 꺾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찬야는 손을 휘휘 저으며 거절했다.
“아뇨. 저는 꼭 스승님과 대련을 해야 합니다.”
“뭐라고?”
소성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그는 지금 찬야가 자신을 상대로 보지도 않고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게 아니지만.
소성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말했다.
“은왕께서 너를 인정했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허나 네가 나를 이기지 않고 그따위 태도를 보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네?”
“수련장으로 가서 네 실력을 내게 증명해 봐라! 그럼 내 너를 회주님의 제자로 인정할 테니!”
찬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 인간은 갑자기 왜 혼자 화가 나서 난리래?’
뭔지는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유서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찬야에게 말했다.
“찬야. 너만 괜찮으면 소성과 대련을 해 보거라. 소성도 너와 비슷한 또래에 훌륭한 실력을 지니고 있으니 좋은 상대가 될 것이다.”
“하아. 참…….”
은왕과의 비무를 통해 신검합일을 빠르게 익히려 했던 찬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난감하네. 그냥 거절할까?’
그런데 저 소성이라는 낭인은 대결을 받아 주지 않으면 여기서 칼을 뽑고 달려들 기세다.
‘하긴, 뭐 어때?’
은왕이 아닌 건 아쉽지만 지금은 일단 검을 제대로 휘둘러 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결국 찬야는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요. 그럼 수련장으로 가죠.”
“흥.”
소성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려 수련장으로 향했다.
‘두고 봐라. 기필코 네놈을 쓰러뜨려 주마.’
***
남량은 고개를 돌려 힐끗 소성을 쳐다보고는 찬야에게 물었다.
“뭐야. 은왕이랑 대련하는 거 아니었어?”
“그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찬야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그런데 저놈은 아까부터 계속 널 향해 살기를 날리는군.”
“그러게.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애인이라도 빼앗은 거 아니야?”
“설마……. 진짠가?”
찬야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유라가 소성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조심해라. 저 자식 눈이 아무래도 불길해.”
“알았어.”
“몸은 좀 어때? 무리해서 움직이면 위험할지도 몰라.”
“괜찮아. 매화단의 효력이 장난 아니야. 벌써 상처가 대부분 아물었어.”
그때 비무의 심사를 맡은 낭인이 찬야를 불렀다. 찬야는 손을 흔들며 비무장으로 걸어갔다.
“다녀올게.”
“그래.”
찬야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소성의 반대편에 섰다.
주변에는 두 사람의 비무를 구경하러 온 낭인들로 가득했다.
한쪽은 낭인회 최강의 신성. 다른 한쪽은 은왕이 인정하고 제자로 받아들인 인재.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누가 이길 것 같아?”
“아무래도 찬야 도장이 아닐까 싶은데. 회주님도 일단 인정하셨고, 그 악명 높은 월아쌍노를 쓰러뜨렸다잖아.”
“월아쌍노쯤이야, 소성도 이길 수 있을걸? 아무리 화산의 기재라고 불려도 소성한테는 힘들지 않을까?”
“재미있겠는데. 어디 보자고.”
찬야는 소성을 향해 웃으며 예를 갖추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소성 대협.”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소성의 시선이 구석에 서 있는 유서휘에게로 향했다.
‘그래. 잘 부탁한다. 여기서 너를 쓰러뜨려야 회주님에게 당당히 후계자 자리를 요구할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눈빛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찬야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확실히……. 눈이 위험해 보이기는 하네.’
“그럼. 시작!”
파팟!
비무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진 순간, 소성이 찬야를 향해 쇄도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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