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77화 (77/164)
  • <77화>

    찬야의 각성. 신검합일(身劍合一)(3)

    찬야는 남량이 건넨 매화단을 복용하고 운공을 끝마쳤다.

    “후우…….”

    찬야는 가부좌 자세를 풀며 가볍게 목을 주물렀다.

    차를 마시며 기다리던 남량이 몸을 일으켰다.

    “끝났어?”

    “응.”

    “그럼 바로 이동하지.”

    찬야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남량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미 결심했지만 막상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손발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남량이 찬야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객청 뒤편에 위치한 작은 공터였다.

    찬야는 남량이 시키는 대로 공터의 가운데 섰다.

    “받아.”

    남량은 품에서 수건을 꺼내 찬야에게 내밀었다. 찬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 사제. 이걸로 뭐 어쩌라고?”

    “그걸로 눈을 가려.”

    남량이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찬야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서, 설마 눈을 가리고 남 사제랑 싸우라는 건 아니지?”

    “맞아.”

    남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팟!

    남량은 검을 들고 바닥을 박차 몸을 날린 뒤, 왼편 나무 위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베었다.

    찬야는 남량이 무얼 하려는 건지 몰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남량은 잘려 나간 나뭇가지를 찬야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사물을 베는 경지. 이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경지라고 볼 수 있다.”

    쇄애액!

    남량은 검을 휘둘러 허공을 베었다. 근처를 날아다니던 나비 한 마리가 정확히 반으로 잘려 떨어졌다.

    “사람들은 검을 꾸준히 연마하여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베기를 가능하게 하지.”

    남량은 고개를 돌려 찬야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이 위의 경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

    “신검합일(身劍合一). 이기어검(以氣馭劍). 심검(心劍) 등, 이능에 가까운 검술들이 있어. 이것을 우리는 신기(神技) 혹은 신검(神劍)의 경지라고 말하지. 범인(凡人)은 결코 오르지 못할, 선택받은 이들만이 오를 수 있는 초인의 경지.”

    남량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시작점에 있는 경지가 바로 신검합일의 경지다.”

    “신검합일…….”

    찬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신검합일에 들고 싶다면 이전처럼 눈으로 상대방의 시선과 동작 등을 읽어서 상대할 생각을 버려. 검과 하나가 되는 검각. 그걸 익히기 위한 수련이니 오직 감각만으로 나를 상대해야 한다.”

    “그걸 하루 만에 할 수 있단 말이야……?”

    남량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은 불가능하지.”

    “보통은 어떻게 올라서는데?”

    “긴 시간을 들인 명상과 단련.”

    “아…….”

    고개를 끄덕이던 찬야가 또 물었다.

    “그럼 만약에, 내가 정상적으로 수련한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신검합일의 경지에 들 수 있을까?”

    남량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대충 잡아서 십 년 정도.”

    “십 년…….”

    남량은 잔뜩 긴장한 찬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도박에서 네가 이기면 십 년이라는 시간을 앞당길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만약에 지게 되면 대가는 네 목숨이다.”

    “말 안 해도 알아.”

    “농담 아니야. 마지막으로 묻는다. 각오는 되어 있나?”

    “그래.”

    찬야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수건 제대로 묶어.”

    찬야는 수건으로 눈을 가린 다음,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말해 두는데, 내 손으로 널 죽이는 일은 없게 했으면 좋겠다.”

    남량이 싸늘히 말했다. 찬야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나 죽으면 할아버지한테 속 썩여서 죄송하다고…….”

    “시작하자.”

    “유언이라도 남기게 해 줘라 인마…….”

    찬야는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자세를 잡았다.

    ‘할 수 있다. 찬야.’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기감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눈으로 보지 않고도 남량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팟!

    그가 공격을 해 오는 순간, 날카로운 예기(銳氣)가 먼저 날아들었다. 찬야는 날렵하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 냈다.

    칼끝의 서늘한 기운이 콧잔등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찬야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 돼! 두려움은 손발을 굳게 만든다!’

    찬야는 치솟아 오르는 공포심을 억제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그제야 싸우고 있는 상대가 남량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사이, 남량의 공격이 재차 날아들었다.

    슈슈슈슉!

    이번에는 조금 더 크고 넓은 범위의 초식이 펼쳐졌다.

    찬야는 떨리는 손발을 억지로 움직이며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 냈다.

    채채챙!

    전부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옆구리가 시큰해졌다.

    손을 대자 끈적한 핏물이 묻어 나왔다. 베인 것이다.

    죽는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고 숨소리가 가빠 오기 시작했다.

    ‘진정해야 한다. 진정해야…….’

    그러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시각, 유라는 남량을 찾아 낭인회를 돌아다니다 후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는 찬야가 눈을 가린 채 남량을 상대로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대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량의 검이 찬야의 어깨를 베고 지나가며 선혈이 후드득 떨어지는 모습을 보자 단순한 대련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 사제!”

    유라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때, 남량이 그녀를 불러 막았다.

    “오지 마.”

    “뭐?”

    “이 수련이 끝나기 전까지, 후원에 발 들이지 마.”

    남량이 싸늘하게 경고했다. 동시에 찬야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사매. 남 사제의 말대로 해.”

    “너 설마…….”

    “맞아. 내가 부탁했어. 남 사제에게. 사매 너처럼 목숨을 걸고 경지에 오르고 싶다고. 도와 달라고.”

    찬야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자세를 잡았다.

    “놀랍지?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짓, 절대로 안 했을 텐데 말이야.”

    “……혹시, 나 때문이냐?”

    유라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찬야는 피식 웃었다.

    “사매. 난 그동안 무인으로서 중요한 한 가지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간절함’ 말이야. 지금껏 꽤 많은 적과 싸우고 수련하며 성장했지만 아직까지 목숨을 걸 정도로 힘을 간절하게 바란 적이 없었어.”

    “……찬야.”

    “어쩌면 난 그동안 내 재능을 너무 과신했는지도 몰라. 남들처럼 노력하지 않고 적당히 수련해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고. 그런데 사매와의 대련에서 지고 난 이후에야 알았지. 재능이 다가 아니라는 걸.”

    “…….”

    “그래서 너무 부끄러웠어.”

    고개를 돌린 찬야가 유라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 이상 사매한테도, 나 자신한테도 부끄럽지 않은 무인이 되고 싶다. 그러니 지켜봐.”

    “…….”

    “왜 말이 없어? 내가 너무 멋있어서 굳은 거야? 하하.”

    가벼운 농을 던지는 모습은 평소 때의 찬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드시 성공해라.”

    “물론이지.”

    유라는 멀찍이 물러나 팔짱을 낀 채 지켜보기 시작했다.

    “간다.”

    “들어와.”

    남량이 재차 찬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팟-!

    남량의 검이 찬야의 등을 베고 지나갔다. 찬야는 비틀거리며 비명을 토해 냈다.

    “크악!”

    찬야는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점점 정신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대충 열다섯 번 정도 베인 건가.’

    피곤하다. 당장 드러눕고 싶다.

    ‘이제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

    감각이 이전보다 곱절은 더 예민해지고 검을 휘두르는 동작도 훨씬 정교해졌다.

    신검합일은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봐도 될 터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잖아? 진짜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대로 쓰러지면 남량도 이해하고 치료해 줄 것이다. 그래. 이대로 엎어져서 눈을 감으면 된다. 눈을 감으면…….

    그럼 편해질 것이다.

    바로 그때, 귓가로 남량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걸로 만족하나?”

    남량의 한숨 소리가 말에 섞여 들려왔다.

    “정말 이대로 만족해?”

    “…….”

    “목숨을 걸겠다는 네 각오도 결국 이 정도였나?”

    입이 열리지 않지만 말해 주고 싶었다.

    이 정도로 충분히 만족한다고.

    십 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오 년은 앞당긴 거 아니냐고.

    남량은 찬야의 속마음을 들은 것마냥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신이 결단한 것조차 지켜 내지 못하는 놈은 강해질 자격도 없다. 네놈은 그저 강호에 널리고 널린, 재능만 믿고 설치다 그저 그런 무인으로 남고 싶은 모양이로군.”

    “…….”

    “수련은 끝이다. 이만 가서 치료를 받아.”

    덥석.

    그 순간, 찬야를 지켜보던 유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찬야의 피 묻은 손이 남량의 바지를 붙잡고 있었다.

    찬야의 손을 바라보는 남량의 시선에 이채가 돌았다.

    고개를 돌린 찬야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누가 포기한다고……. 잠깐 졸았던 것 가지고 무슨 말이 이렇게 길어……?”

    “…….”

    “오해하지 마……. 진짜 졸았던 거야…….”

    찬야는 아주 천천히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리며 힘겹게 자세를 잡았다.

    “자, 다시 시작하자고…….”

    이미 그의 몸은 망신창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처.

    ‘여기서 한 번만 더 공격을 허용하면 찬야는 아마도…….’

    유라는 이를 악물고 남량을 응시했다.

    ‘어떻게 할 거야. 남 사제?’

    찬야의 목숨을 위한다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좋다.

    지금이라면 의원에게 데려가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남량은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찬야.”

    “……왜.”

    “살아남아라.”

    유라는 눈을 감았다. 남량은 절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찬야는 두려움에 몸을 떠는 대신, 끌끌 웃음을 흘렸다.

    “빨리 들어와. 하도 피를 많이 흘렸더니 무섭지도 않네.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

    남량은 검을 세우고 기척을 지운 채 찬야를 향해 쇄도했다.

    ‘찬야!’

    유라는 마음속으로 찬야를 불렀다. 찬야는 자세를 잡았지만 전혀 대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찬야는 눈을 감은 채 긴 숨을 내뱉었다.

    ‘온다.’

    기분이 이상하다.

    검이 날아드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든 것처럼 마음이 평온하다.

    조금의 감정도 들어 있지 않은, 그래서 더 완벽한 검. 그것이 바로, 신검합일의 경지.

    바로 이것이었다.

    채앵!

    찬야의 칼끝이 날아드는 칼날을 정확히 찔러 멈춰 세웠다.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동작이었다.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남량이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고했다.”

    “아…….”

    쨍그랑.

    찬야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밥이나 좀 먹자…….”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찬야는 의식을 잃었다.

    남량은 손을 뻗어 허물어지는 그의 몸을 받았다.

    남량의 곁으로 다가온 유라가 잠든 찬야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남 사제. 이 자식, 웃고 있는데?”

    “……그러게.”

    남량은 찬야를 안아 들고 의원으로 향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