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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74화 (74/164)

<74화>

유라의 각성. 삼매진화(三昧眞火)(5)

포훈은 이 황당한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몰라 헛웃음을 흘렸다.

남량이 종남의 제자들을 말 그대로 반 죽여 놓은 뒤, 이틀 뒤였다.

남량과 유라는 짐을 싸고 이만 떠나겠다며 은하궁을 찾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량이 비무를 제안했다. 그것도 자신과 유라의 비무를 말이다.

‘무슨 생각이지?’

유라는 이미 자신에게 철저히 패배했다. 그동안 열심히 수련을 했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도 주제를 모르는군.’

포훈은 속으로 이를 부득 갈았다. 정신을 못 차렸다면 더 철저히 짓밟아 줄 뿐이다.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마.’

유라는 정중히 포권을 취한 채로 포훈에게 물었다.

“포훈 도사. 어떻습니까? 저와의 비무를 승낙하시겠습니까?”

포훈은 얼른 미소를 지으며 마주 예를 갖추었다.

“그 비무, 받아들이겠습니다.”

“다행이군요.”

종남파 장문인 유종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과 종남의 제자들이 이리도 사이가 좋으니 나 역시 흐뭇하다. 비무장은 금방 마련해 주마.”

“감사합니다. 장문인.”

포훈은 도포를 펄럭이며 유라의 곁을 지나쳤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각오해라 망할 년아. 이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

유라는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눈을 돌렸다. 포훈의 이마에 핏대가 솟으며 그가 이를 악물었다.

포훈이 대전을 나서자 남량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유라가 차가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었지?”

“그래. 화가 단단히 난 것 같던데.”

“자기가 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

“그럴 수밖에. 사저와 그의 격차는 아직 크니까.”

“그 생각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유라는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남량은 그녀와 함께 대전을 나서며 말했다.

“종남의 검은 중검(重劍)의 성향이 강하다. 도군의 무학을 그대로 물려받은 포훈의 검은 더더욱 그렇지.”

유라는 묵묵히 남량의 말을 경청했다.

“사저의 경지가 크게 상승했지만 냉정히 말해 아직 검의 속도와 힘은 그가 위야. 하지만 두 가지 유리한 점이 있어.”

“두 가지나 있어?”

유라가 피식 웃었다. 남량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는 바로 방심이야. 포훈은 방심하고 있어. 방심은 곧 틈을 만들지. 한 번 정도는 사저가 파고들 틈이 분명히 생길 거야.”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는?”

“그가 가진 종남 무학의 약점.”

“종남 무학의 약점이라고?”

“그래. 무겁고 진중한 종남의 검은 검격이 닿는 범위와 파괴력 면에선 분명 뛰어나지만, 공방(攻防)을 전환하는 속도가 느려. 포훈의 무기는 도군과 마찬가지로 도(刀)지만, 그 성질은 다르지 않을 테지. 그러니 틈을 노리려면 놈의 공격이 커지는 순간을 노리는 게 좋아.”

“그걸 어떻게 알아?”

남량은 말없이 웃었다. 천마였을 시절, 남량은 유종학과도 제법 많은 결투를 펼쳤다.

매번 다른 남북 십성이 가세하러 오는 바람에 끝을 맺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묻지 마. 알면 다쳐.”

“찬야가 널 보고 비밀이 많은 사내라고 한 이유를 알겠군.”

비무장에 도착하자 종남의 장로들과 유종학, 그리고 포훈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올게.”

유라는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비무장 위로 올라갔다.

남량은 팔짱을 낀 채 비무장 위를 응시했다. 그의 곁으로 유종학이 다가와 말했다.

“솔직히 의외로구나. 나는 네가 포훈과 비무를 청할 줄 알았는데.”

남량은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승패가 뻔한 승부라 흥미가 없었습니다.”

유종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종남의 무학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걸렸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남량을 포훈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 비무도 승패가 뻔한 것은 마찬가지 아니더냐.”

“그렇게 보이십니까?”

유종학의 눈썹이 또 한 번 꿈틀거렸다. 이번에는 그도 가만히 듣고 넘길 수 없었다.

“그럼 자네의 사저가 이길 거라고 보는 건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사저에 대한 믿음이 깊군.”

“두고 보면 알겠지요.”

유종학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도를 뽑아 든 포훈은 길게 끌 것 없이 빠르게 끝을 낼 생각이었다.

‘매화천수검을 익히지도 못한 네년은 내 적수가 되지 못해.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타고난 재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믿는 포훈이었다. 그런 그에게 선택되지 못한 유라 따위가 덤벼 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이 우월하지 못한 걸 인정하라고! 감히 하늘 위로 오를 생각 따위, 꿈도 꾸지 말란 말이다!’

포훈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엄청난 속도로 유라를 향해 쇄도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도격(刀擊)은 마치 두꺼운 망치를 연상케 할 정도로 묵직했다.

저것이 바로 종남의 검의(劍意).

정면으로 덤볐다가는 분명 밀릴 것이다. 유라는 대응하지 않고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내 공격을 피했다?’

포훈은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맹렬하게 유라를 몰아붙였다.

“흥.”

파파팟!

유라는 포훈의 공격을 피하며 매화홍주검의 초식을 펼쳐 역공을 가했다. 화산 특유의 날렵하고 변칙적인 검초가 허공을 수놓았다.

그러나 포훈은 코웃음을 치며 여유롭게 검격을 받아쳤다.

“여전히 검격이 가벼워.”

쇄액! 쇄애액!

포훈의 도(刀)가 허공을 가르며 섬뜩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한 번만 스쳐도 이 비무는 끝이 난다. 유라는 정신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힘겹게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 얼마나 버틸 것 같아?”

“크윽…….”

채앵! 유라는 포훈의 도격을 막아 내지 못하고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녀의 팔과 어깨 부분에 피가 튀었다.

포훈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큭.”

그때, 유라가 포훈의 말을 끊으며 피식 냉소를 흘렸다.

‘웃어? 감히 내 앞에서, 웃어?’

포훈이 눈을 부릅뜨며 이를 악물었다. 유라는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잘난 척은 그때처럼 내 머리를 밟고 나서나 해. 등신아.”

“이제 보니 검이 아니라 주둥이만 수련했구나.”

콰앙! 포훈의 도가 이전보다 더욱 거세게 밀려들었다. 유라는 검기를 쏘며 견제했지만 포훈은 우습다는 듯 유라의 검기를 정면으로 받아 내며 계속 돌진했다.

채채채챙!

“으윽!”

검이 부딪힐 때마다 충격으로 유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결국 지켜보던 유종학이 비무를 중단시키려 했다.

“포훈이 너무 흥분했군. 비무는 이쯤 하는 것이…….”

“안 됩니다.”

남량이 유종학을 막고 나섰다.

“사저는 지금 충분히 잘해 주고 있습니다.”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저걸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유 도사가 제법 잘 버텨 주었지만, 포훈을 상대로 더 이상은…….”

“도군께서야말로!”

남량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정녕 사저의 눈빛이 안 보이십니까?”

“뭐라고?”

유종학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유라의 눈빛을 살펴보던 유종학이 눈을 크게 떴다.

‘조금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단순한 혈기가 아니다. 저 눈빛은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그것과 같았다. 유종학은 굳은 표정으로 비무에 집중했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량은 속으로 짜증을 내뱉었다.

‘어디서 초를 치려고. 남북 십성이라는 놈이 한심하기는!’

이제 비무도 슬슬 막바지에 다다랐다. 이미 유라는 검을 들 힘조차 없어 보였다.

“너 따위랑 여기까지 온 것도 수치다. 이제 끝내자.”

포훈은 지금 유라와 100합을 넘겼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해 있었다.

우우웅!

그의 도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종남의 최상승 검술인 태을분광검(太乙分光劍)을 변형한 태을분광도(太乙分光刀)의 절기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콰아앙!

포훈이 도를 휘두름과 동시에 도기(刀氣)의 빛줄기가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유라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빛줄기를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

남량의 조언을 들은 유라는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 포훈의 틈을 파고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만약 파고들었다 해도 효과는 미미할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비무 시작 전부터 자신의 모든 패를 드러내지 않았다. 포훈의 방심을 극대화시키며 마지막 한 수에 모든 것을 걸기 위해!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으아아아!”

유라의 전신에서 노도와도 같은 기세가 쏟아지며 불길이 터져 나왔다. 유종학을 비롯한 종남의 장로들은 헉,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사, 삼매진화!”

유라는 불꽃으로 온몸을 감은 채 빛줄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쩌어엉!

불꽃을 머금은 검이 빛줄기를 가른다. 포훈은 자신의 절기가 갈라지는 모습에 입을 쩍 벌리며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그가 만들어 낸 빛줄기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눈부신 화광(火光)이 대신했다.

“이, 이게 무슨…….”

“선택받지 못한 자는 평생을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포훈의 코앞까지 도달한 유라가 말했다.

“따라잡았다. 이 개자식아.”

“……!”

포훈은 다급히 뻗은 도를 회수하며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느리다. 남 사제의 말대로 종남의 검은 공수전환이 느려!’

틀렸음을 직감한 포훈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화르륵-!

유라의 검이 포훈을 가르며 불길이 그를 뒤덮었다.

“크아악!”

포훈의 비명이 비무장에 울려 퍼졌다. 유라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내력을 갈무리했다. 동시에 불길이 씻은 듯 사라지며 비무장이 고요해졌다.

콰당.

정신을 잃은 포훈이 도를 놓치고 비무장 바닥에 쓰러졌다. 한바탕 내력을 쏟아 낸 유라가 지친 기색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짝짝짝.

모두가 경악에 찬 그때, 오직 남량 홀로 유라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수고했다. 사저.”

***

“이제 속이 좀 후련해?”

종남산을 내려오는 도중, 남량이 물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유라가 머쓱한지 헛기침을 했다.

“티가 나?”

“어. 아주 좋아서 입이 찢어질 것 같은데?”

“오늘따라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군.”

나직이 웃던 유라는 이전의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포훈을 이긴 건 단순히 그가 방심한 덕분이었어. 만약 그가 처음부터 진심으로 상대했다면 나는 그에게 패배했을 거야.”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 혹시 그를 이겼다고 자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야.”

오히려 그 반대였다. 유라는 포훈과의 대결에서 자신이 아직 멀었음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녀는 앞으로 더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문득 고개를 돌린 유라가 말했다.

“이제 비밀을 말해 줄 수 있어?”

“무슨 비밀?”

“종남의 무학에 대해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남량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나한테 이기면 알려 줄게.”

“…….”

“궁금해하지 말라고. 차라리 그게 속 편해.”

남량은 걷는 속도를 올렸다. 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얼른 따라붙었다.

“언젠가는 너를 이기고 비밀을 듣고 말겠다.”

“그래? 위지혁도 똑같이 말했는데. 둘 다 열심히 해 봐.”

“자고 있을 때 덮쳐도 되나?”

“야. 그건 좀…….”

남량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어 유라를 떼어 냈다.

다음은 종남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낭인회(浪人會)로 갈 차례였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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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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