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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72화 (72/164)

<72화>

유라의 각성. 삼매진화(三昧眞火)(3)

남량이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련하던 일대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저기 봐. 저 백발의 도사…….”

“틀림없어. 매화가 그려진 도복. 백매화 남량이야.”

“어제 본산에 왔다더니 정말이었어?”

“저 사내가 바로 매화검선의…….”

소문 자자한 강호의 풍운아를 직접 마주한 제자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남량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군 유종학의 후계자이자 대제자(大弟子) 포훈은 남량을 바라보며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저자도 꽤나 주목받길 좋아하는 성격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연무장에 찾아올 리 있겠는가?

아무튼 이 자리에서 남량을 맞이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포훈은 당당하게 남량의 앞으로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남량 도장. 저를 찾으신 겁니까? 하하.”

“네.”

남량이 제자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마침 다들 모여 있었군요.”

“부탁이요? 무슨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닐 겁니다. 그냥 간단히…….”

남량이 주변의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무나 한 번 하고 싶습니다.”

“비무 말입니까?”

“네. 화산과 함께 섬서를 대표하는 검파인 종남의 실력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군요. 정말 명성대로인지 궁금해서요.”

“아…….”

“어려운 부탁입니까?”

물론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명성이 자자한 백매화와의 비무라면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좋은 기회였다.

포훈은 친절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라, 얼마든지요. 저희야말로 화산의 검을 견식할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다행이군요.”

“그럼 지원자를 받아서…….”

포훈이 제자들을 부르려는 찰나, 남량이 그의 말을 끊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받아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하하.”

“감사합니다.”

포훈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남량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생각을 예측하기 힘든 자로군.’

남량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포훈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오기 전, 종남산에 올라온 여제자를 기억하나?”

“……?”

“내 사저가, 종남 제자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더군.”

그때, 남량의 말투가 급변하며 더없이 싸늘한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포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남량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비무를 하자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자기 사저의 복수를 하려고 온 건가?’

남량은 얼음장처럼 냉랭한 눈빛으로 그들을 쏘아보며 말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인물들이길래 남을 비웃어? 당신들이 그렇게 대단해? 그럼 어디 구경이나 해 보자고. 그때 내 사저를 비웃은 놈들, 전부 나와.”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남량이 냉소를 머금었다.

“안 나와? 그럼 어떻게 해야 나올래? 미끼라도 하나 던져 줘야 하나?”

남량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좋아. 나와 비무를 해서 이긴 자에게는 매화천수검의 비급과 월인비를 가르쳐 준다. 그냥 무공서를 하나 만들어 줄게. 어때. 이 정도면 혹할 만하지 않아?”

“……!”

제자들의 표정에 경악이 묻어 나왔다.

매화천수검이 어떤 검술인가? 또 월인비가 어떤 경공인가?

일인전승으로 내려오는 화산 최강의 검술이자 그 천마와도 대적했던 검술이다. 그뿐인가? 천하제일검으로 명성을 떨치는 검성 남궁천이 자신의 창궁무애검과 더불어 유일하게 인정한 검술이 바로 매화천수검이었다.

월인비는 말할 것조차 없다.

경공의 끝자락에 도달한 유일한 무공. 이 경공술을 익힌 매화검선은 전성기 당시 새처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절세신공을 고작 비무 한 번 하는 데 내건다고?

제자들은 남량을 무슨 미친놈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뭐야 그 표정. 안 믿어? 각서라도 써야 믿겠어? 내 명예를 걸고 맹세한다. 만약 어기면 내가 종남파로 들어가지. 어때?”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남량 도장!”

포훈이 그를 제지하려 나서기 전, 성질이 급해 보이는 한 제자가 참지 못하고 남량에게 물었다.

“진짜입니까? 진짜 비무에서 이기면 매화천수검과 월인비의 비급을 주는 겁니까?”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말했잖아. 못 믿겠으면 각서 가져오라고. 빼도 박도 못하게 혈서(血書)라도 찍어 줄 테니까.”

“그, 그럼 만약 비무에서 패하면 이쪽은 무엇을 걸어야…….”

만약 남량 쪽에서 두 무공의 비급을 건다면, 응당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걸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남량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무것도 걸 필요 없어.”

“정말입니까?”

“그래. 완전 내가 밑지는 장사지? 너희들은 져도 잃을 게 없다니까? 그리고 하나 더, 혹할 만한 제안을 하지.”

“…….”

“원래 비무는 1 대 1로 진행되지만, 이 비무는 그럴 필요 없어. 그냥 떼거리로 덤비든 돌아가면서 덤비든 해. 한 명이라도 날 쓰러뜨리면 내가 그놈한테 바로 비급 넘긴다.”

“……!”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안 하는 놈이 병신 아닌가?”

“이보시오 남량 도장!”

다른 제자 한 명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나섰다.

“듣자 듣자 하니 겸손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군! 자신의 실력에 얼마나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오!”

남량이 그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하기 싫어? 그럼 넌 빠지든가.”

“이익……!”

“자, 빨리 시작하자고.”

단상에서 내려온 남량은 널찍한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포훈의 눈치를 보던 제자들이 하나둘씩 마당으로 향했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나? 아니다.’

늘 백매화의 경지가 궁금하던 포훈이었다. 정말 소문대로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지, 지금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마당으로 나온 남량은 팔짱을 낀 채 제자들에게 말했다.

“자, 한 명씩 덤비면 승산이 없는 건 너희들도 알 테니까 한꺼번에 나와. 괜히 자존심 세우다가 좋은 기회 놓치지 말라고.”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지!”

가장 먼저 두 명의 제자들이 검을 빼 들고 나섰다.

“두 명? 이 새끼들이 지금 장난하나…….”

차갑게 중얼거리던 남량은 갑자기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들 혹시, 내 실력을 가늠해 보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냐?”

“…….”

“작전 괜찮네. 좋아. 그럼 어디 두 눈 부릅뜨고 잘 지켜봐.”

두 명의 제자는 가볍게 호흡을 고르며 남량의 주변을 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 제자가 남량에게 물었다.

“남량 도장! 왜 검을 뽑지 않는 것이오!”

이미 비무는 시작되었건만, 남량은 여전히 검을 뽑지 않은 채였다.

“하룻강아지를 상대로 발톱을 드러내는 범도 있나?”

남량은 여유롭게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자신 있으면 내가 검을 뽑게 만들어 봐.”

“……이 개자식!”

두 제자가 눈을 부릅뜨며 달려들었다. 포훈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들……. 섣부르게 공격하지 마!”

그러나 이미 늦었다. 남량은 가볍게 몸을 틀어 날아드는 검을 피해 냈다. 그리고 드러난 틈 사이로 손을 내질렀다.

콰앙!

남량의 손바닥이 두 제자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화산의 기본 장공(掌功)인 죽엽수(竹葉手)를 펼친 것이다. 두 제자는 내상을 입은 채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났다.

“사저랑 붙으면 이 초 안에 끝날 수준이군.”

“끄으윽…….”

“그런데 뭐가 잘났다고 비웃어?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남량은 먼지를 털어 내듯 허공에 손바닥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터져 나온 장풍(掌風)이 두 제자를 밀어냈다. 그들은 검을 놓치고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엎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제자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일대제자 둘을 어른이 아이를 데리고 놀듯 가지고 놀았다.

검도 뽑지 않은 채, 화산의 가장 기본적인 무공만으로 말이다.

‘실력 가늠은 무슨.’

제자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역시 한꺼번에 달려드는 수밖에 없는 건가.’

남량은 제자들의 눈빛을 읽고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전부 덤벼라.”

열 명의 제자들이 검을 뽑아 들며 남량을 사방으로 에워쌌다.

남량은 그제야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취했다.

열 명은 손으로 상대하기 버거워서?

천만에. 감히 유라를 비웃은 저들에게 똑똑히 보여 줄 것이다.

화산의 검이, 매화홍주검이 어떤 검인지 말이다.

남량은 매화홍주검의 기수식을 취하며 말했다.

“와라.”

직후, 열 명의 제자들이 일제히 남량을 향해 쇄도했다.

남량은 가볍게 숨을 고르며 천천히 검을 움직여 나갔다.

『매화천수검의 6초식, 화운용무(火雲龍舞)는 타오르는 불꽃의 검무(劍舞). 검의 잔상이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며 상대방을 단숨에 집어삼키고 불태운다.』

화르르륵-!

남량의 검에서 흘러나온 잔상이 불꽃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물론 진짜 불꽃은 아니겠지만 피부에 닿는 열기는 환상마저 진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덮쳐 오는 불꽃의 검기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이게 정녕 검술이란 말인가?

시야를 가득 채운 불길은 저항할 의지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제자들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아-!”

그러나 두려움을 잊기 위한 헛된 몸부림에 불과했다. 불길이 그들을 덮치며 전신에 크고 작은 검상이 생겨났다.

불길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열 명의 제자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철컥. 남량의 검이 검집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량은 쓰러진 제자들을 싸늘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화산의 검이다. 너희들 따위가 비웃을 검이 아니란 말이다. 똑똑히 새겨 둬.”

남량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연무장을 벗어났다. 지켜보던 나머지 제자들이 쓰러진 동문을 부축하기 위해 달려갔다.

포훈은 멍하니 남량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화산의 검이니 뭐니 해도 결국 네 손에서 펼쳐진 결과 아니냐. 다른 제자가 똑같이 펼친다고 해도 결과가 같을까?’

***

도관으로 돌아가는 도중에도 여지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심지어 어제보다 배는 더 거센 빗줄기였다.

‘우산도 못 쓰겠군.’

남량은 손으로 비를 막으며 도관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자식. 설마 또 수련을 하러 나간 건가? 이런 날은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고!’

남량은 다급히 유라를 찾기 위해 종남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흙이며 바위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산사태라도 일어난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미약하지만 유라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필이면 저곳에서……. 설마 아니겠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량은 속도를 더 올려 그곳으로 달려갔다.

쿠르릉-!

역시나, 며칠간 이어진 폭우로 인해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검을 든 유라가 떨어지는 바위를 베어 내는 모습이 보였다.

“저 미친 녀석이!”

이 정도 산사태에 휩쓸리면 남량이라고 해도 위험했다. 그런데 상처까지 입은 주제에 무슨 무모한 짓이란 말인가!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 아니고서야……. 멍청한 것!’

그때, 유라를 향해 제법 큼지막한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유라! 피해!”

남량은 그녀에게 소리치며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유라는 두 손으로 검을 쥔 채 떨어지는 바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걱-!

한 차례 섬광이 번득이며 떨어지던 바위가 둘로 반듯하게 갈라졌다. 그러나 유라는 바위 뒤편으로 짓쳐 드는 흙을 피하지 못하고 휩쓸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남량은 떨어지는 바위와 나무 등을 밟으며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쳤다. 그리고 마침내 가라앉는 유라의 손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남량은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 올린 다음, 품에 안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허공을 밟고 뛰어오르는 허공답보 수법을 발휘해 산사태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이 새끼야! 죽으려고 작정했…… 응?”

뒤늦게 살펴보니 유라는 이미 기절한 뒤였다. 잔뜩 화가 나 있던 남량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깨어나면 일단 대가리부터 한 대 쥐어박아야겠군.”

남량은 기절한 유라를 등에 업고 도관으로 돌아왔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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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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