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은영단(隱映團)(4)
남량은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를 맡고 눈을 떴다.
‘이건?’
안개가 마당을 가득 뒤덮고 있어 시야가 불명했다.
그걸 본 순간 남량은 자객의 침입을 확신했다.
낭인들 역시 눈치채고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암습이다!”
땡땡땡!
암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
저택에 있던 무림맹 무사들도 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그때, 담장을 넘어 수십 인영(人影)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시작인가.
남량은 천천히 나무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직후, 나무 위로 올라온 흑의인 한 명이 남량의 목을 노리고 단검을 휘둘렀다.
“어딜.”
남량은 가볍게 허리를 젖혀 공격을 피해 냄과 동시에 발검(拔劍)하여 자객의 목을 날렸다.
파파팟!
그리고 빠르게 나무 아래로 내려와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안개로 낭인들의 시야를 가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시야가 봉인된 채 싸우는 낭인들은 제대로 된 실력을 내지 못했고, 그에 반해 자객들은 제집처럼 안개 속을 휘저으며 낭인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크억!”
“으어억!”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상황이 이쪽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 대인이라고 했나? 돈이 많으면 뭐 해. 제대로 된 무사들을 고용했어야지.’
남량은 한숨을 내쉬며 눈에 보이는 자객들을 베고 낭인들을 구했다.
자객들은 안개 속에서도 자유로이 움직이는 남량을 보고 그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래. 한꺼번에 덤벼라.’
남량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격을 확인하고, 검에 내력을 끌어모았다.
우웅-.
연분홍빛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검을 타고 일렁였다.
남량은 한 발로 중심을 잡고 몸을 빙글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퍼퍼퍼퍽!
회전력이 실린 검기가 벼락처럼 터져 나와 자객들의 급소를 정확히 꿰뚫었다.
“크아악!”
자객들은 허공에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남량의 활약이 주목을 받자 자객들의 공세가 더욱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촤라락-!
사방에서 열 개의 사슬이 남량의 전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캉캉카캉!
남량은 빠르게 눈을 굴리며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름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사슬을 전부 쳐 냈다.
동시에 떨어지듯 자객들을 향해 쇄도했다.
놈들은 뒤늦게 사슬을 회수하며 대응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남량의 검은 가차없이 일 합에 자객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푸화악-! 자객들이 흘린 피가 자욱한 혈무(血霧:피안개)를 만들어 냈다.
남량의 번득이는 신위(神威)에 지켜보던 낭인들은 흥분에 차올랐다.
‘무시무시한 검술이다.’
‘저 모습, 실로 귀신같구나.’
‘저런 검술을 쓰는 도사가 있단 말인가?’
한편, 살아남은 자객들은 늑대를 마주한 토끼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포식자(捕食者)와 피식자(被食者)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으, 으아아-!”
공포에 질린 자객들이 두려움을 떨쳐 내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남량은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서서 달려드는 자객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촤악! 촤아악!
한 차례 도륙이 끝나자 자객들의 공격이 멈추었다. 남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력을 끌어모았다.
‘지금이다.’
휘이잉!
남량이 원을 그리며 검을 휘두르자 거센 검풍(劍風)이 터져 나오며 안개를 걷어 냈다. 안개가 걷히자 마당의 시야가 확보되었다.
망부석처럼 서 있던 낭인들은, 갑자기 안개가 사라지자 깜짝 놀랐다.
빠악!
남량은 그들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리며 말했다.
“안개 걷었으니까 정신 차리고 싸워. 알겠냐?”
“네? 네!”
낭인이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남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파 놈들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멍청할까?
아니면 내가 만난 새끼들만 이런 식인가? 빌어먹을.
바로 그때였다.
저택 안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시오! 임 대인이……!”
뭐야. 안쪽도 뚫린 건가, 설마?
돌아 버리겠네 진짜. 뭐가 이렇게 전부 무능력해!
남량은 속이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멍청한 무림맹 새끼들! 살아남으면 임무고 나발이고 다시 수련해! 낭인 니들도! 알겠냐!”
“네? 아,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외침에 낭인들은 움찔하며 대답했다.
남량은 바람처럼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안쪽을 지키던 무림맹 무사들이 당한 후였다.
남량은 피 냄새를 따라 임 대인의 침소로 달려갔다.
콰앙!
침소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자 자객들을 피해 창문으로 달아나는 임 대인이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네.’
마침 자객이 달아나는 임 대인의 등을 노리고 검을 찌르기 직전이었다.
남량은 자신이 늦을 것임을 직감하고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파앗-!
남량이 손에 든 칼을 던지자, 깜짝 놀란 자객이 공격을 포기하고 몸을 날려 검을 피했다.
검은 그대로 날아가 벽에 박혔다.
그사이 남량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려는 임 대인의 허리띠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임 대인은 자객의 손이라고 생각했는지 발버둥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이 망할 놈아!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 호위! 호위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게야! 나 살려-!”
“이봐요. 같은 편이니까 진정하고 좀…….”
“닥쳐라! 이 손 당장 치우지 못할까! 내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망할 늙은이가 목청만 더럽게 크네. 좀 닥쳐!”
짜악!
남량이 뺨을 한 대 올려붙이자 임 대인은 그제야 조용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충격받아 굳어 버렸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그때, 가만히 그 모습을 보던 자객이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그래?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나. 지금부터 재미없어질 텐데.”
남량이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렸다.
자객은 벽에 박힌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화산의 도사가 검도 없이 나를 상대하겠다고? 허풍이 심하군.”
“허풍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알 것 아닌가.”
남량은 말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자객을 향해 쇄도했다.
이자는 다른 자객들과 다르게 뿜어내는 기의 농도가 다르다.
즉, 배후와 가까운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생포하면 쓸 만한 정보를 토해 낼지도 모른다.
한편, 자객은 다짜고짜 달려드는 남량을 보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멍청하구나. 화산의 도사여. 네놈이 지켜야 할 자를 두고 달려들면 어쩌자는 거냐?”
자객은 품에서 암기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파파파팟!
암기는 남량을 지나쳐 굳어 있는 임 대인을 향해 날아갔다.
직후, 자객이 헉!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남량이 허공에 손을 뻗어 날아가는 암기를 전부 잡아챈 것이다!
“그걸 모르겠나? 당연히 노린 거지.”
“무, 무슨……!”
“고맙다. 덕분에 무기도 손에 넣고.”
남량은 손에 잡힌 암기를 반대로 던졌다.
자객은 당황하며 날아든 암기를 검으로 쳐 냈다.
그사이 품으로 파고든 남량이 손에 쥔 암기를 자객의 어깨에 박아 넣었다.
“크윽!”
자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검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후웅-!
자객의 검에서 뻗어 나온 검풍(劍風)이 남량의 허리를 가를 듯 매섭게 쏘아졌다.
휘릭!
남량은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려 검풍을 피해 냈다.
그와 동시에 발등으로 자객의 턱을 냅다 올려쳤다.
“커억!”
자객이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틈을 타, 남량이 그의 가슴팍에 장력을 날렸다.
쩌엉-!
자객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천장을 뚫고 위로 솟구쳤다.
남량은 그를 따라서 위로 올라 지붕 위에 안착했다.
자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대체 너는 누구냐…….”
“내가 미쳤다고 이름을 알려 주겠나?”
자객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이를 갈았다.
“이름 모를 화산의 도사여……. 너는 우리 은영단(隱映團)의 암살 대상에 올랐다. 앞으로 끊이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가……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네놈들 집단 이름이 은영단이었나?”
남량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차피 칼날 위를 걷는 삶이다. 뭐가 두렵겠는가?”
“젊은 도사치고는 기개가 있군……. 좋다. 다음에는 반드시 네놈 목을 가지러 가겠다.”
자객은 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화악-!
그 속에서 보랏빛 안개가 터져 나오며 삽시간에 자객의 몸을 감쌌다.
‘이런, 독무(毒霧:독안개)인가.’
남량은 그 즉시 내력을 모아 손뼉을 부딪쳤다. 그러자 풍압(風壓)이 터져 나와 독무를 흩어 버렸다.
그러나 이미 자객은 몸을 내뺀 후였다.
‘상관없다. 상처를 입기도 했으니 멀리 도망가지는 못할 터.’
남량은 기감을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네놈의 기는 이미 충분히 파악했다.’
이내 남량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걸렸군.’
파팟!
남량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
후욱-.
자객의 뒤를 추격해 도착한 곳은, 허창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마을이었다.
그곳은 특이하게 밤인데도 불을 사방에 켜고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기척을 알아채기 어려워졌네.’
남량은 검을 늘어뜨린 채 인파 속을 걸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객의 기척을 찾던 남량은, 어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뭔가 달라. 이건 기척을 감춘 게 아니라…….’
기척이.
‘설마…….’
주변과 똑같아졌다.
즉,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기운이 전부 자객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똑같다는 뜻이다.
남량은 걸음을 멈추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알아서 적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었단 말인가?
돌겠네.
남량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징그러운 놈들. 어떻게 마을 하나를 완벽하게 본거지로 만들 생각을 하나?”
“…….”
“피차 눈치 깠는데, 연기는 이쯤 하지.”
직후, 거리를 걷던 사람들, 물건을 파는 상인들 할 것 없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남량을 포위했다.
남량은 빠르게 적의 숫자와 위치를 파악했다.
‘어림잡아 100명 정도인가.’
100 대 1의 싸움.
남량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칼춤 한번 추자고.”
파파파팟!
그와 동시에 마을 사람들로 위장한 자객들이 일제히 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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