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6화 (16/164)
  • <16화>

    은영단(隱映團)(1)

    늦은 밤, 손님을 맞으러 나간 저택의 노복(老僕)은 문 앞에 서 있는 젊은 도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두 분은 꼴이 왜…….”

    분명 함께 왔을 텐데 어째서 세 명은 눈빛이 총총하고 깨끗한 반면, 나머지 두 명은 꾀죄죄하고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란 말인가?

    남량은 멋들어지게 미소 지으며 노복에게 말했다.

    “뭐,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안으로 드시지요.”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노복이 말했다.

    “늦었지만 저녁을 준비하라 이를까요?”

    “천천히 해도 되는…….”

    “최대한!”

    남량의 말을 끊은 유라가 다급히 소리쳤다.

    “최대한 빨리 해 주세요. 씻을 물도!”

    “아,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 드리지요.”

    노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라와 위지혁을 어디론가 안내했다.

    물론 두 사람은 가기 전에 남량을 한 번 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찬야가 뺨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좀 심했을까?”

    “배고파야 말을 잘 듣지.”

    남량은 싱긋 웃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거처를 배정받은 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노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음식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시지요.”

    “고맙습니다.”

    별채에서 나와 정실(正室)로 향했다.

    정실에 도착하자 식탁 위에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고, 미리 도착한 유라와 위지혁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흡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량은 유라의 옆에 앉아 찻잔에 차를 채우며 말했다.

    “많이 배고팠던 모양이군.”

    “시끄럽다.”

    “자존심은 때로 독이 되는 법이지.”

    “…….”

    유라와 위지혁은 동시에 이를 부득 갈았다. 어쩜 저리 얄미울 수 있을까!

    남량은 그들의 눈빛을 여유롭게 받아넘기며 차를 홀짝였다.

    이것들아. 내가 너희들보다 수십 년은 더 강호에서 굴러먹은 몸이다.

    ‘애송이들 상대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위지혁은 입에 오리 고기를 잔뜩 머금은 채 말했다.

    “기다려라. 언젠가는 이 굴욕을 갚아 줄 것이니.”

    “네가 아직 우리 형님 무서운 줄 모르지? 쯧쯧.”

    운휘가 가소롭다는 듯 혀를 차며 젓가락을 들었다.

    “됐다, 운휘. 이 둘도 남 사제한테 죽도록 얻어맞다 보면 자연히 정신을 차리게 되겠지.”

    이미 경험한 자로서 찬야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도 한참 어린 사제한테 빌빌거리는 게 자랑이냐? 너희들이 한심할 지경이다.”

    유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찬야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알고 싶어? 그럼 남 사제한테 싸움이라도 걸어 봐. 금방 알게 될 테니까.”

    “흥.”

    유라는 코웃음을 치며 식사에 집중했다.

    그때였다. 거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그곳으로 검은 도복을 입은 젊은 도사들 한 무리가 들어왔다.

    ‘월계화(月季花).’

    화산의 상징이 매화이듯, 월계화를 상징으로 삼는 도교 문파가 한 곳 있었다.

    종남파(終南派).

    구파일방(九派一幫)의 한 축이자 화산파와 마찬가지로 섬서성에 위치한 문파다.

    종남산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변화무쌍한 화산파의 검술과 다르게 묵직한 중검(重劍)이 특징이었다.

    “저들도 우리와 비슷한 이유로 온 모양이군.”

    종남파 무리는 남량 일행을 발견하고 저들끼리 무언가 속닥거렸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낄낄거리며 남량 일행을 지나쳐 자리에 앉았다.

    “웃기는 놈들이네. 손이나 한번 봐 줄까?”

    찬야가 웃으며 말하자, 남량이 대답했다.

    “가만있으면 먼저 도발해 올 거야.”

    남량의 말은 정확했다.

    힐끗힐끗 남량 일행을 쳐다보던 종남파 무리는, 시시껄렁한 말투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화산파 샌님들은 참 좋겠네. 여제자들도 받아 주니 검술 수련 대신 애정 행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던데.”

    “가끔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게 사실은 회임(懷妊)을 해서 아이 낳으러 가는 거였다지?”

    “그럼 그냥 화산에 아이 받는 노파를 고용하는 게 나을 텐데. 하하하!”

    노골적인 음담패설에 유라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지금 뭐라고 했어?”

    멍청한 녀석. 저런 저급한 도발에 걸려들다니.

    남량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종남파 무리는 기다렸다는 듯 응수했다.

    “왜 그렇게 열을 올리지? 우린 그냥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혹시 찔리는 거라도 있나?”

    “그렇네! 그런가 보네.”

    “설마하니 벌써 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화산파 수준도 알 만하군그래! 부럽다, 부러워!”

    “하하하!”

    이번에는 위지혁이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닥쳐라! 천박한 것들이 감히 화산을 모욕해!”

    남량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애송이들을 앞으로 키워야 한다니…….

    이번에도 종남파 무리들은 능숙하게 위지혁을 조롱했다.

    “너무 그러지 마시오. 그냥 농담 한번 한 걸 가지고.”

    “역시 화산파 도사들은 속이 좁다는 말이 사실이라니까.”

    “이익…….”

    유라와 위지혁은 차마 덤벼들지 못하고 손을 부들거렸다.

    불쌍해서라도 지금은 좀 도와줘야겠다.

    나도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던 참이기도 하고.

    “중원무학의 본산은 무당과 소림이며, 검(劍)은 화산이다.”

    남량의 말에 종남파 무리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화산의 시조(始祖)인 광영자(廣寧子)는 고금 제일 최강의 검성(劍聖)으로 추앙받았으며, 작금의 검술들은 그 대부분이 화산의 검공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그에 비하면 종남 따위……. 운 좋게 구파에 든 떨거지들에 불과하지. 안 그런가?”

    “뭐라고?”

    남량의 말은 종남의 검이 화산에서 파생된 것이며, 종남은 감히 화산에 비견될 수 없다는 뜻과 같았다.

    같은 구파의 문파로서 이는 심히 모욕적인 언사였다.

    당연히 종남파 무리들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남량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화산의 도사들은 자유로우며, 풍류를 알고, 생각이 깊으며 시야가 넓다. 그에 비해 종남은……. 너희를 보면 왜 종남파가 중검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구나. 애새끼들이 저급한 농이나 던지며 도발이나 해 댈 줄 알지, 무게가 없어. 무게가. 하긴, 검으로 덤비면 탈탈 털릴 걸 네놈들도 아는 게지.”

    “하하하!”

    찬야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애정 행각? 맞는 말이야. 우리는 청춘을 마음껏 즐기며 젊은 시절을 보내지. 그런데도 작년 무림대회에서도 그렇고, 화산은 지금껏 수없이 많은 우승을 했어. 반대로 종남은? 그렇게 죽어라 수련만 했는데 우승한 적은 손에 꼽지 아마? 수련만 하고 그 정도인 것도 참 대단한 일이야. 그렇지?”

    “다, 닥쳐라!”

    “그리고 말이야. 애정 행각을 하는 것도 다 능력이 돼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네놈들 얼굴 상태를 보면……. 참 글렀다 싶어. 그냥 열심히 도나 닦으면서 수련하는 게 좋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희희낙락하던 종남파 놈들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져 있었다.

    그래. 뭐 하러 쓸데없이 손을 쓴단 말인가?

    버러지들은 버러지들 수준으로 상대해 주면 되는 것이다.

    “하긴, 여기 찬야 놈이 짜증나긴 해도 얼굴 하나는 빼어나고, 우리 형님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우시지. 그러다 네놈들 얼굴을 보면 주먹으로 수십 번 치댄 반죽 같아 보여.”

    “크하하! 운휘. 네 말이 정확하다. 반죽 같아.”

    운휘의 말에 찬야가 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됐다. 평생 미인 손 한 번 잡아 보지 못할 놈들이니 상상이라도 마음껏 해야 하지 않겠나?”

    남량의 말이 도화선이 되었다.

    종남파 무리들은 식탁을 엎으며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이런 개 같은 화산파 놈들! 오늘 아주 끝장을- 컥!”

    앞서 달려오던 놈의 얼굴이 뒤로 젖혀지며 그대로 쓰러졌다.

    나머지 무리들은 깜짝 놀라서 쓰러진 도사를 쳐다보았다.

    “뭐야, 방금…….”

    “암기를 날린 건가?”

    “암기는 무슨.”

    남량은 보란 듯 손에 든 철전을 내보였다.

    방금 전은 철전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머리를 맞춘 것이다.

    “말도 안 돼. 겨우 철전만으로…….”

    “밥 먹는 데 먼지 일으키지 말고 거기서 놀아라.”

    남량은 귀찮다는 듯 나머지 철전을 한꺼번에 띄운 다음, 동시에 날렸다.

    팅-팅팅팅!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간 철전이 그대로 종남파 놈들의 몸에 화살처럼 박혔다.

    “끄악!”

    “으억!”

    쿠당탕!

    팔이나 다리에 철전을 맞은 종남파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단숨에 상황을 정리한 남량은 멍하니 서 있는 유라와 위지혁에게 말했다.

    “쓸데없이 화만 낸다고 되겠어? 영리하게 굴 줄 알아야지.”

    “…….”

    “앉아서 밥이나 마저 먹어라.”

    둘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뭐, 이렇게 천천히 하나하나 가르치면 되겠지.

    남량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

    그날 밤, 모두가 잠든 시각 남몰래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종남파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될까?”

    “무슨 상관이냐! 공격은 저놈들이 먼저 한 것인데.”

    “그래도…….”

    “우리도 당한 만큼 갚아 줘야지.”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기거하는 별채에는 정실에 비해 무림맹의 보초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 틈을 노려 조금 전, 남량에게 받은 수모를 톡톡히 갚아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어두운 복도를 따라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엇?”

    종남파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중원 전통 가면인 검보(臉譜)를 쓴 흑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일언반구 없이 종남파 제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푹, 푸슉!

    종남파 제자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 낸 흑의인이 주변을 둘러싼 동료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대로 쭉 ‘목표’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모조리 치워라.』

    『존명(尊命).』

    슈슈슉-!

    일순 그림자가 일렁이며 수십 인영(人影)이 빠르게 흩어졌다.

    모습을 드러낸 흑의인도 곧 다시 은신하여 복도를 빠르게 내달렸다.

    그런데 그때, 복도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특이하군. 백발이라니.’

    흑의인은 대수롭지 않게 검을 꺼내 종남파 제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쨍그랑!

    백발의 청년이 수도(手刀)를 세워 휘두르자 검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그리고 몸을 빙글 돌리는 것과 동시에 흑의인의 가슴팍에 장력을 날렸다.

    퍼엉-!

    “크윽!”

    흑의인은 가면 사이로 비명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한편, 흑의인을 쳐 낸 남량은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뒷간 가는데 뭔 이상한 놈이 달려들고 지랄이야…….”

    길게 하품을 한 남량이 흑의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뭐야, 니들…… 자객이냐?”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