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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6화 (6/164)

<6화>

매화검투(梅花劍鬪)(5)

까악, 까악-.

화산을 울리는 까마귀 울음소리.

인시(寅時:03∼05시)에 일어난 남량은 이제는 일상이 된 화산 등정을 마치고 아침상을 준비했다.

유우화와 함께 아침을 먹은 뒤 벌을 받기 위해 낙안궁으로 올라갔다.

“남 사숙. 오셨습니까?”

“그래.”

낙안궁 청소도 오늘로 사흘째.

아침 청소를 담당하던 이대제자들이 익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오늘은, 예상치 못한 손님이 한 명 있었다.

“왔냐?”

“……?”

“기다리고 있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나온 남량의 앞에, 못 보던 제자 한 명이 서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가르는 커다란 흉터. 한 번 보면 잊을 얼굴은 아닌데…….

도포에 그려진 매화 문양을 보니 일대제자인 듯했다.

그런데 나를 기다렸다고?

“처음 뵙는 얼굴이군요.”

남량의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초면이니까.”

“……?”

이상한 놈이네.

“내 이름을 알려 줄 테니까 잘 새겨듣도록 해라.”

“전혀 알고 싶지 않은데.”

“잘 들어라. 내 이름은 운휘(雲輝)다.”

“전혀 알고 싶지 않다고.”

아침부터 신경 더럽게 거슬리네.

남량은 손을 휘휘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짓은 네놈 스승님한테 가서 하고, 바쁘니까 꺼져.”

“용건이 있어서 왔다.”

“용건이고 뭐고 비키라고.”

“남 사제의 비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청서의 고환을 깨 버린 일검은 정말이지…….”

운휘는 말을 잇지 못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사형으로서 한 수 가르침을 받고 싶다. 대련 좀 부탁한다.”

“갑자기 그게 무슨…….”

남량은 눈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화산 내에서 사적인 대련은 금지다. 일대제자라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난 원래 규율 같은 거 안 지켜. 걱정하지 마라.”

운휘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약간 모자란 새끼가 분명하다.

“난 강해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 사제 같은 강자와의 대결이 꼭 필요해. 부탁한다.”

“헛소리 그만하고 썩 꺼져.”

“맨입으로는 안 된다는 건가? 그럼 내가 청소라도 대신…….”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이다.

남량은 혀를 차며 손바닥을 뻗었다.

쩌엉-!

남량이 내쏜 장력에 적중당한 운휘는 그대로 허공을 날아 낙안궁 벽에 처박힌 채 정신을 잃었다.

남량은 손을 탈탈 털며 중얼거렸다.

“이제 좀 잠잠해졌군.”

“사수-욱!”

이대제자들이 대경실색하며 운휘에게 달려갔다.

남량은 태연히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

다음 날.

낙안궁으로 올라가자 언제 기절했냐는 듯 운휘가 계단에 걸터앉은 채 어제와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복력은 좋은 놈이네.

운휘는 남량을 발견하고 벌컥 화를 냈다.

“남 사제! 어제의 비무는 무효다! 말도 없이 먼저 시작하는 게 어디 있나!”

“내가 너랑 비무를 한 줄 알아? 또 기절하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라.”

“그럼 어디 또 기절시켜 봐라. 두 번은 안 당하니까!”

운휘는 바닥을 박차고 남량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운휘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화산파의 기본 권법인 비형권(飛刑拳)이었다.

자세가 탄탄하고 무게가 제법…….

쩌엉!

손바닥을 들어 주먹을 막은 남량이 눈을 부릅떴다.

직접 부딪쳐 보니 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근골이 잘 잡혀 있었다.

이런 부류를 무골(武骨)이라 하여 무공을 익히기 가장 안성맞춤인 몸뚱이라 부른다.

이놈은 복을 타고났다.

그때, 운휘가 반대쪽 주먹을 쥐며 말했다.

“어서 그 검술을 펼쳐라!”

“검술? 매화천수검?”

“그래. 청서의 고환을 박살 낸 고환분쇄(睾丸粉碎) 초식 말이다!”

뭐? 무슨 분쇄? 낙영용섬 초식이?

남량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재미있는 작명이네.”

슈욱-!

이번에는 양기(陽氣)를 가득 분출하는 화형권(火刑拳)이 뻗어 나왔다.

남량은 매화천수검의 동작을 응용해 운휘의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팔을 휘감아 그대로 던져 버렸다.

“끄악!”

마당에 나가떨어진 운휘가 비명을 질렀다.

남량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골은 좋은데 응용이 엉망이다.”

스승이 누군지는 몰라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 무재를 데리고 기본 권법이나 가르치다니.

명검으로 채소나 써는 격이 아닌가.

“비무고 뭐고 수련이나 열심히 해라.”

“아직 멀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운휘가 소리치는 순간.

단숨에 달려든 남량이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뻐억-!

공중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돈 운휘가 바닥에 꼬꾸라졌다.

남량은 바닥에 떨어진 빗자루를 들며 이대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도 부탁한다.”

“……네.”

이대제자들은 최근 생긴 일과(?)대로 기절한 운휘를 들쳐 업고 매월관(梅月館:화산의 의실)으로 향했다.

***

그날 저녁, 밥을 먹던 남량은 유우화에게 운휘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파(邪派)였다고요?”

“그래.”

유우화는 목저(木箸:나무젓가락)로 생선 살을 바르며 말했다.

“삼 년 전이었다. 화성(和成) 진인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장문인과 같은 배분에 온화한 성품으로 인망이 두터웠다. 그분이 한번은 강호행에 나갔다 운남의 악독한 사파 무리인 흑사파(黑砂派) 무인 한 명을 화산에 데려와 제자로 삼으셨다.”

“그게 운휘였군요.”

도사답지 않은 특유의 거친 언행은 그래서였던가. 남량은 생각했다.

“화산의 규율에 따르면 흑도(黑道)에 몸을 담은 자는 제자로 받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아. 당연히 장문인을 비롯한 많은 도사들이 반대했지. 하지만 화성 진인께서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셨어. 운휘를 자신의 관문제자(關門弟子)로 받아들이신 거지.”

관문제자란, 노년의 도사가 생의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는 제자를 말한다. 보통 관문제자들은 스승의 무공과 더불어 그 의지를 이어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화성 진인은 운휘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운휘를 입문시키고 바로 다음 해, 화성 진인께서 병사(病死)하셨다.”

“그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던 화성 진인이 없어지자 다들 운휘를 향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지. 적당히 구실을 잡고 파문(破門)시키자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흑도라…….

남량은 채소 볶음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무식하지만 순수해 보였습니다. 악랄한 면은…….”

“착한 녀석이야. 그래서 더 안쓰러운 아이지.”

유우화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승이 없어졌으니 화산을 나가 버리면 그만인데, 뭐 하러 갖가지 수모를 당하면서 녀석이 화산에 남아 있겠느냐?”

“설마?”

“그래. 제 스승 때문이다. 화성 진인이 남긴 유언이 운휘가 어엿한 화산의 도사로 자라 달라는 거였으니까.”

뒷말에 따르면 화성 진인이 죽기 전 유우화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그건 운휘가 부당하게 화산에서 파문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운휘의 파문을 막은 사람이…….”

“그래. 나였다.”

유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휘를 떠올리는 남량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저 단순무식한 짐승인 줄로만 알았는데…….

하늘이 내려 준 무골, 순수한 성정(性情). 강함을 향한 욕구와 떠나간 은인의 부탁을 잊지 않고 지키는 의리까지.

‘과거의 내게 없던 사람이었지.’

천마였던 때, 만약 그런 녀석들이 휘하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내 과거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아주 조금, 속이 쓰라렸다.

“표정이 복잡해 보이는구나.”

“아닙니다.”

“운휘가 요새 낙안궁에 자주 들른다던데…….”

남량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유우화는 모든 걸 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한 고조 유방에게는 한신(韓信)이 있었고, 촉황제 유비에게는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있었다.”

“네?”

“유방은 한신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그를 신뢰했다. 그리고 유비가 아니었다면 관우와 장비가 천하의 무장이 되었을까?”

“…….”

“영웅은 홀로 일어설 수 없다.”

훌륭한 인재를 알아차리는 안목(眼目).

왕좌에 앉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남량은 과거의 자신에게 안목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과연 지금은 어떨까.’

솔직히, 또 실수를 반복할까 두려웠다.

믿음을 배신당하는 경험은 한 번이면 족했다.

남량은 수저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유우화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

다음 날도 어김없이 운휘는 나타났다.

“근성 하나는 칭찬해 줄 만해…….”

“오늘은 반드시 이기겠다!”

뻐억-!

그러나 그날도 운휘는 주먹 한 대에 뻗었다.

단, 이번에는 일부러 기절시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운휘가 기절하면 빠르게 매월관으로 업어 가려 이대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량은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괜찮으니 물러가 있거라.”

“네? 네…….”

남량은 쓰러진 운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바닥을 펴자, 굳은살로 덮여 있었다.

투박하지만 조금씩 정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운휘의 옆에 주저앉은 남량이 말했다.

“안 힘들어? 맨날 이렇게 덤벼 올 거야?”

“강해지기 위한 발판일 뿐. 내 결정에 변화는 없다.”

남량은 문득 남산가이(南山可移)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결심한 일을 절대 굽히지 않는 의지.

운휘라는 사내와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너 내 밑으로 와라.”

“……?”

잠시 멍해져 있던 운휘가 말했다.

“내가 사형인데 무슨 개소리야.”

“그건 그렇지…….”

괜히 머쓱해진 남량이 헛기침을 했다.

“어렵지? 백날 주먹 휘두르고 검 휘둘렀는데 조금도 강해지지 않으니. 답답할 거야.”

정곡을 찔린 운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답을 찾아 줄게. 강해지게 해 준다고. 그러니까, 같이 수련하자.”

“……같이?”

“그래. 같이.”

남량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운휘는 잠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남량이 그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잡아, 이 새끼야! 손 떨어져!”

“네, 넵!”

깜짝 놀란 운휘는 얼떨결에 손을 잡았다.

힘주어 그를 일으킨 남량이 웃으며 말했다.

“잘 부탁한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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