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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3화 (3/164)
  • <3화>

    매화검투(梅花劍鬪)(2)

    본격적으로 수련이 시작되었다.

    유우화는 검술과 함께 두 가지의 무공을 전수했다.

    폭혈기공(爆血氣功).

    연화생공(連和生功).

    폭혈기공은 이름 그대로 내공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기술이었다.

    마치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힘과 속도를 올려 주나 몸에 가해지는 부담감이 크며 자칫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장시간의 사용은 금물이었다.

    “명심하거라. 이걸 사용할 때는 자신보다 더 강한 자를 만났을 때와 죽음을 각오했을 때다. 그러니 필살(必殺)의 각오가 선 순간에만 사용하도록 하거라.”

    “네.”

    다음은 연화생공이었다.

    연화생공은 특이하게도 운공과 동시에 대자연의 기(氣)를 체득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력이 정순해지고 축적되는 기의 양이 늘어났다.

    그리고 하나 더 특이한 점은.

    ‘머리카락이…….’

    연화생공을 익힐수록 머리의 색이 빠지는 탈색 현상이 일어났다. 유우화의 백발과 마찬가지로.

    “그럼 내가 이 나이에 자연 백발이 되었겠느냐?”

    “불혹(不惑)을 넘겼는데 적은 나이는 아니죠.”

    유우화는 꽤나 상처를 받았는지 한동안 시무룩했다.

    남량은 매일 새벽 갑시(甲時:4시 반∼5시 반)에 일어나 연화생공으로 운기(運氣)를 하고 체력 단련을 했다.

    화산 초입(初入)부터 시작해 가장 높은 연화봉(蓮花峰)까지 달렸다.

    처음에는 중반도 채 가지 못하고 기절했으나 매일같이 똑같은 훈련을 반복한 끝에 연화봉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체력 단련이 끝나면 검술 수련을 했다.

    모든 무공의 체계는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백만, 천만 번 검을 휘두르기를 반복했다.

    스승 유우화는 악귀처럼 남량을 채찍질했다.

    “내 평생 한 가지 구절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주자(朱子)가 말하길, 정신을 한곳에 모으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네가 흘린 땀과 정성, 휘두른 검은 훗날 마도의 악귀들을 상대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할 것이다.”

    검술 수련이 끝나면 바윗덩이를 지고 숲을 달렸다.

    폭포 밑에서 바위를 든 채 근육을 단련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멈추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준비되었느냐?”

    “네, 스승님.”

    “시작하거라.”

    스승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을 뽑았다.

    몸을 돌려 집채만 한 바위 앞에 섰다.

    “후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리며 내력을 모았다.

    검을 타고 아지랑이처럼 주홍빛이 맴돌았다.

    반듯한 자세로 내려친 일검(一劍).

    흐트러짐 없이 뻗어 나간 검격이 바위를 베었다.

    번쩍! 짧은 섬광이 터지며 거대한 바위가 둘로 갈라졌다.

    검을 갈무리한 남량이 칼집에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스승님. 드디어 검기(劍氣)를 터득했습니다.”

    무형의 기를 이끌어 내는 경지.

    남량은 절정(絶頂)의 경지에 올라섰다.

    그것도 무려 반년이라는 시간 만에!

    고금을 통틀어 이와 같은 전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승 유우화도, 남량도 전혀 만족하지 못했다.

    “아직 멀었다.”

    ‘아직 멀었어.’

    이 정도 실력으로 마교의 삼천위 앞에 섰다가는 일초지적도 채 당해 내지 못하고 죽임당할 것이다.

    남량의 나이 열일곱. 아직 무한한 시간과 가능성이 있는 나이였지만 그들은 절박했다.

    “량아.”

    “네, 스승님.”

    “이만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

    “네?”

    남량은 깜짝 놀란 표정을 했다.

    유우화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느냐? 나는 네게 매화천수검의 모든 것을 전수했고, 연화생공과 폭혈기공까지 가르쳤다. 더는 네게 가르쳐 줄 것이 없어.”

    “아…….”

    “이제는 그 위에 있는 것을 배울 차례다.”

    남량은 그제야 유우화의 말뜻을 깨달았다.

    자하신공(紫霞神功).

    대대로 화산의 장문인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 무공.

    발현 시, 온몸이 자색으로 빛나며 하늘이 붉게 물들고 폭풍우가 몰아친다는 전설마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화산의 극(極)이자 천하제일의 열쇠를 쥔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래 삼백 년 동안 자하신공을 익힌 장문인은 없었다.

    자하신공도 매화천수검과 같아, 자격을 갖춘 자에게만 얻는 것을 허락한다고 전해졌다.

    유우화는 남량에게 그 자격이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량아. 장문인의 자리를 노려라. 자하신공을 얻고 천하제일의 자리에 올라 마교를 멸하고 너의 의지를 세워라.”

    남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의 말에 따르면 곧 마교와의 전쟁이 벌어진다.

    남량이 전생을 넘어선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전쟁을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법.

    결국 중원 무림을 자신의 편으로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 전까지 남량은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 무림을 다시 세우고 전열을 갖춰 전쟁에 대비해야 했다.

    “곧 화산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차출해 무림맹으로 보내는 매화검투(梅花劍鬪) 행사를 열 것이다. 매화검투란, 과거 도교 문파의 제자들이 강호에 나가 경험을 쌓던 표주(漂周)를 변형한 것이다. 일대제자들은 그곳에서 협행을 하며 명성을 얻고, 매화검수가 될 자격을 쌓는다. 무림맹에 차출될 일대제자의 숫자는 다섯. 너는 그 가운데 들어야만 한다.”

    “저는 일대제자가 아니라 매화검투에 나설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이번 연담회(聯談回)에서 네게 자격이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연담회는 화산의 모든 도사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유우화가 일선에서 물러난 퇴물이라 하나 한때는 화산의 정점에 오른 인물.

    회의에서 그가 가지는 발언권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무공을 완벽하게 이은 후계자의 등장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남량은 유우화가 이렇게까지 든든한 아군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내 복수에 더욱 빨리 다가가겠군.’

    그래. 앞으로도 내 앞길을 잘 닦아 다오.

    대신 나는 네가 꿈꾸던 비원을 이뤄 줄 터이니.

    남량은 드높은 연화봉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

    사흘 후, 화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위치한 상궁(上宮)에서 연담회가 이루어졌다.

    주최자는 17대 화산파 장문인 화신(華神) 구양중(具陽仲).

    참석한 인원은 십대 장로와 매화검수(梅花劍手)를 비롯한 1품부터 9품의 모든 도사들까지.

    화산을 이끄는 전체가 참여한 큰 회의였다.

    “그럼 연담회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늘상 그래 왔듯이 재정과 교육, 교류와 행사에 대해 논의를 하고 매화검투로 주제가 넘어갔다.

    “……그럼 이번 매화검투에 심사관으로 참여할 매화검수들은 공월(空月) 진인이 차출하도록.”

    “네.”

    매화검수의 수장인 홍매검(紅梅劍) 공월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검투의 심사 방법은 이러하다.

    먼저 일대제자들과 매화검수를 일대일로 겨루게 하여, 무공 실력을 가늠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장문인과 장로들이 제자들의 등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매화검투에서 뽑힌 다섯 명을 가장 뛰어난 화산의 제자라는 의미에서 매화오절(梅花五絶)이라 불렀다.

    “따로 건의할 사항이 있는가?”

    장문인 구양중의 물음에, 유우화가 대답했다.

    “있습니다.”

    “말하라.”

    “이번 매화검투에서는 특별히 이대제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어차피 이대제자들의 실력이야 일대제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타 장로들과 교육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일순, 구양중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자네의 제자 때문인가?”

    유우화가 속으로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눈치 빠른 건 여전하시군.’

    구양중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들었다. 자네의 제자……. 아니, 제자라고 하기에도 민망하군. 자네를 보살피는 남량이 반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고. 매일 미명(未明)에 화산을 오르는 남량의 모습을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렇잖아도 궁금했는데 잘되었군. 무슨 바람이 분 건가?”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유우화는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제 검을 이을 제자가 바로 녀석입니다.”

    쨍그랑!

    구양중의 손에서 미끄러진 찻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회의장에 참석한 전원이 입을 쩍 벌린 채 침묵했다.

    구양중은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

    “자네의 매화천수검을 이해했다고? 그 아이가?”

    “네.”

    “자질이 보이는가?”

    “보입니다.”

    유우화는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가 장차 화산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거짓입니다!”

    그때, 자리를 벌컥 젖히고 일어서는 도사가 있었다.

    그는 유우화와 같은 항렬의 교육자인 이건(李健)이었다.

    “매화천수검이라니! 화산의 삼백 제자들이 도전했다가 전부 실패한 무공이 아닌가! 설마하니 불쌍한 제자 한 명을 위해 꼼수라도 부린 건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이네. 내가 미쳤다고 연담회에서 거짓을 고하겠는가?”

    “못 할 거야 없지. 아무래도 그동안 자네 수발을 들어 준 대가로 그놈이 매화검투의 자격을 요구한 모양인데…….”

    “말을 심하게 하는군.”

    “내 말이 틀렸는가?”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순간.

    “정숙(靜肅).”

    구양중의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의 목소리에는 중후한 내력이 깃들어 있어, 굳이 큰소리를 치지 않아도 힘이 있었다.

    “일단…….”

    구양중이 입을 열었다.

    “고려해 보도록 하지.”

    “장문인!”

    이건이 또다시 소리쳤다.

    “대대로 매화검투는 일대제자들에게만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한 명의 이대제자를 위해 규율을 바꾸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디 재고를…….”

    “그럼 모두의 의견을 들어 보도록 하겠다.”

    구양중이 회의장을 쓱 둘러보며 말했다.

    “남량을 비롯한 이대제자에게 기회를 준다.”

    “…….”

    “거수(擧手).”

    유우화는 긴장한 기색으로 좌중을 응시했다.

    서로의 눈치를 보던 도사들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거수.”

    이번에도 도사들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결과가 정해졌다.

    “찬성과 반대의 비율이 각각 8:2로, 이번 매화검투에는 특별히 이대제자에게도 기회를 주도록 하지. 방법은 장로들과 의논해서 정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유우화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반면, 이건은 이를 부득 갈며 손을 떨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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