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현세귀환록
203. 종장(終章)
세상에서 바퀴벌레의 적응력이 가장 강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인간의 적응력도 그에 못지않다 할 것이었다.
둠스데이가 일어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인간은 둠스데이 전의 문명 수준을 상당히 회복했다.
물론 아직 남반구는 몬스터들의 소굴로 어떤 국가도 세워지지 않았고, 북반구에도 여전히 많은 몬스터들이 있었지만,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이런 세상에 적응했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중 한국은 과거 영국이 그리고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세계의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모든 국가가 둠스데이 이후 엄청난 피해를 입으며 결계 도시 외에는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어 버려 국가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만이 유일하게 온전한 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능 세계의 또 다른 정부라 할 수 있는 유니온도 한국으로 이주한 상태였기에 지금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그 한국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KM그룹이었다. 유니온에서 마물의 처리와 능력자의 관리만을 맡겠다고 천명한 이후 그들이 가진 사업은 모두 KM그룹에 매각을 하였기에, KM그룹은 일반 세계에서도 이능 세계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세계 1위의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주식시장은 둠스데이 이후 아직 열리고 있지 않아 정확한 가치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능력을 지닌 헌터들조차 KM그룹에 입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을 정도로 KM그룹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선망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우러러보는 KM그룹 회장실에 오늘 뜻밖의 손님이 방문하였다.
삐익.
“무슨 일이죠?”
“회장님, 손…… 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오늘 약속은 없다 하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만……. 이 손님이 말씀하길 과거 회장님께서 한 번의 기회를 주시며 본인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받고 나서 찾아오라 하셨다고…….”
여기까지 듣고 나니 강민은 지금 밖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던 유리엘도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강민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누군지 알겠군요.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회장님.”
비서의 말이 끝나자 조심스레 회장실의 문이 열리며 덥수룩한 머리를 한 초라한 옷차림의 남자가 들어왔다.
“강민 회장님, 김유리 감사님. 드디어 붉은 천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흑흑흑…….”
목발을 짚고 들어온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했는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며 흐느꼈다. 이 남자는 바로 과거 악행을 저질렀다 한 번의 기회를 받은 김창민이었다.
과거 김창민은 강민에게 악행을 생각하면 고통을 받는 금고아의 술법과 함께 성불구가 되는 처벌을 받았다가 개과천선을 하고 뉘우친 뒤 유리엘에게서 한 번의 갱생 기회를 부여받았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악행에 대한 용서를 받는 것이었다. 당시 김창민은 푸른 천에 자신의 악행을 낱낱이 썼는데, 유리엘의 말에 따르면 모든 용서를 받게 되면 그 푸른 천은 붉게 변한다고 하였다.
지금 김창민의 손에 있는 붉은 천이 그때의 푸른 천인 것으로 보아 드디어 그는 과거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용서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호오.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어찌…… 어찌 제가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하는 김창민의 머릿속에 과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죄를 저지르는 것은 순간이었지만,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그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했다.
물론 당연히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창민은 그런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찾아가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고, 그러면서 갖은 욕설을 먹고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른 것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일 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김창민에게 얼음장 같던 피해자의 마음도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결국은 용서를 받기도 하였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김창민의 잘못으로 자식이 죽은 부모에게 용서를 받는 일이었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불공대천의 원수를 용서할 부모는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김창민이 무슨 방법을 쓰든지 그 부모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용서할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지만 그들은 완강했고, 김창민은 푸른 천에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의 악행 때문에 결국 용서받지 못하는가 그런 탄식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용서를 구하는 일뿐이었고, 그날도 그렇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때 피해자 부부의 둘째 아이가 부부에게 달려올 때, 그 아이를 못 봤는지 한 덤프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고, 이대로라면 아이는 그대로 차에 치일 것만 같았다.
그때 김창민이 달려들어 아이를 구했지만, 자신의 한 다리는 덤프트럭에 깔려 으스러지고 말았다.
그렇게 그대로 기절한 김창민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피해자 부부는 김창민의 악행이 담긴 푸른 천에 용서한다는 글을 써주었고, 그 순간 푸른 천은 붉게 변했다.
김창민은 이런 사실을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았지만, 유리엘이 붉은 천을 쥔 순간 그녀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건 마법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는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강민에게도 심어를 통해 간략히 그의 상황에 대해서 전해주었다.
“고생했군.”
강민이 보는 김창민은 지금 완전한 선인이라 할 수 있었다. 악행을 떠올리면 고통을 주는 금고아의 술법이 작동하지 않은 지도 벌써 십여 년 가까이 되어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남은 금제는 성불구의 금제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곁에 있던 여성은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네 옆에 있는 것인가?”
“네……. 그녀가 없었으면 전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군. 좋은 사람을 만났군.”
그렇게 말을 마친 강민은 손가락으로 김창민을 가리켰고, 순간적으로 강민의 손가락이 빛나는 것 같더니 김창민의 몸에 황금빛 기운이 스며들었다.
“으음…….”
“이제 금제는 풀렸어. 그동안 고생했다. 이 형벌을 이겨낸 자는 그리 많지 않아. 비록 과거에 너는 악인이었지만 지금은 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야.”
“크흑…….”
감격과 허탈감이 동시에 드는지 김창민은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유리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으니 이 정도는 서비스라 생각해.”
그렇게 말을 마친 유리엘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순간 김창민의 주위로 마나가 활성화되더니 의족을 붙여놓은 왼쪽 다리가 덜컹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덜컥하고 의족이 빠져 버리더니 사라진 지 몇 개월이 된 그의 왼쪽 다리가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
왼쪽 다리가 완성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김창민은 새로이 생긴 왼쪽 다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는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
“네, 그래야죠. 네.”
죗값의 무게를 아는 김창민은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김창민을 보내고 난 뒤 강민은 또 누군가가 생각났다는 듯 다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의 상태를 물었다.
“아. 그때 최현호인가 하는 녀석은 어떻게 되었지?”
최현호는 이 차원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리엘을 노리고 접근했던 SG엔터 사장의 아들이었다. 당시 진정 사랑하는 사람 말고는 성관계를 할 수 없도록 마법을 걸었는데, 지금 강민은 그의 상태를 묻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죽었어요.”
“죽어?”
“네, 성관계를 할 수 없으니 처음에는 무술 같은 것을 배웠는데, 결국 그것도 포기하고 변태적 성관계로 성욕을 만족시키려고 했죠. 그러다가 한 무도가에게 걸려서 맞아 죽었네요.”
“그렇군. 역시 사람은 변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태생부터 다른가 보군.”
“네, 그런 것 같아요.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는 일이겠지요.”
* * *
시간은 흐르고 흘러 강민의 어머니 한미애가 92세의 나이로 천수를 누리고 영면에 들어갔고, 이후 강민의 동생 강서영 역시 98세가 되어 생명의 불꽃이 꺼질 상황이 도래했다.
KM병원의 최상층에는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기 위해서 십수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며칠째 의식이 왔다 갔다 하는 강서영이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정신이 또렷해 보였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오빠, 정말 돌아와 줘서 고마웠어. 그때 오빠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엄마랑 내가 어떻게 살아갔을지 감히 상상도 안 돼.”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된 강서영이었지만 강민은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조용히 대답했다.
“고맙기는. 내가 고마웠지.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이 한 거 잘 알아.
강서영은 이번에는 유리엘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서영은 90살이 넘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유리엘은 여전히 50대의 미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조차 다른 이들과 시간의 흐름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신체를 노화시킨 것이었다.
“언니, 언니도 정말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우리 오빠 잘 부탁드려요.”
“그래, 민은 걱정하지 마. 언제나 내가 함께할 테니 말이야.”
이번에 그녀가 바라보는 사람은 수십 년간 그녀의 옆자리를 지켰던 그녀의 남편, 최강훈이었다.
“여보……. 나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와요. 그래도 성우랑 성현이가 결혼하는 것은 다 보고 가서 다행이네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후한 노인이 되어버린 최강훈은 강서영의 말에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여보,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웠어…….”
결국 심지가 다 타 꺼져 버린 촛불처럼 마지막 말을 남긴 강서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 최강훈은 그제야 내뱉지 못한 울음소리를 밖으로 터뜨리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흐흑…… 흐흐흑…….”
최강훈의 눈물에 강서영의 죽음을 알아차렸는지 최강훈과 강서영의 두 아들 최성우와 최성현 역시 어머니를 부르며 그녀의 몸에 엎드려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강서영의 장례 절차는 성대하고도 성대하게 치러졌다. 드림시티를 창설한 드림시티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강서영을 은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십, 수백만의 인파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강서영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 강민과 유리엘은 세 사람을 KM그룹의 회장실로 불러 모았다. 바로 최강훈, 정시아, 그리고 엘리아였다.
그동안 50대처럼 보여왔던 강민과 유리엘은 지금 과거 그들이 지구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20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회장실에 들어온 세 명은 강민과 유리엘의 모습을 보고 둘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간의 침묵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먼저 최강훈이 입을 열었다.
“형님의 그 모습은……. 이제 떠나시려고 하시는 것인지요?”
“그래. 애초에 난 가족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여기 머물 생각이었지.”
“오빠 정말 떠나는 건가요? 우리도 가족같이 지냈잖아요. 가실 거면 저도 데리고 가세요!”
뱀파이어 종족의 특성상 정시아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애교를 부리는 것이 어색하지가 않았다.
그런 정시아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강민이 말했다.
“유니온 총재가 된 지 이제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소리냐? 그리고 드미트리와 한창 깨 볶으며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
벤자민이 천수를 다해 죽고 난 후 유니온의 총재 자리에 오른 것은 정시아였다. 루시페르를 이끄는 드미트리가 받쳐주고, 백두일맥과 백록원의 주인들까지 그녀를 지지하자 그녀의 취임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애초에 강민이 그녀에게 총재를 할 것을 권하였고 그녀가 승낙한 이상 누구의 의견도 필요가 없었지만, 표면상으로도 그녀가 총재가 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라는 의미였다.
이제는 백 살이 훌쩍 넘은 엘리아는 강민과 유리엘이 떠난다는 말에 다소 당황해하며 말했다.
“유리 님……. 저는 평생 유리 님을 모시기로 하였는데…….”
“그래, 그 마음 고마워. 하지만 지금 네 몸 상태로는 차원 이동을 버티지 못할 것 같구나. 10서클에만 올랐어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9서클로는 힘들 것 같아.”
“몸을 버리더라도 영혼이라도 따라가고 싶습니다.”
어차피 천수가 얼마 남지 않은 몸이었다. 아직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엘리아는 어떻게든 유리엘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엘리아를 보며 유리엘이 다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강민이 유리엘에게 말을 건넸다.
“저렇게 의지가 강하다면 봉인한 후에 우리가 만들 차원에서 다시 신체를 줘도 되겠지.”
“그렇지만 봉인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채 좁디좁은 공간에 정신을 유지한 채로 봉인이 된다는 것은 미치기 딱 좋은 방법이었다. 과거 직접 그것을 겪어본 유리엘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유리엘을 따라갈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 엘리아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녀에게 외쳤다.
“봉인이 되어서라도 유리 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엘리아의 말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유리엘은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알고 가볍게 한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
“후회할지도 몰라.”
“아닙니다.”
“그렇다면 알겠어.”
무언가 주문을 외우려는 유리엘을 잠시 막고 강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대로 봉인하기보다는 일단 내가 영육의 시간을 멈추는 것이 나을 것 같군.”
“그렇겠죠?”
“엘리아. 마음을 편히 먹도록.”
그 말이 엘리아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강민의 손에서 푸른색 기운이 나와 그녀를 옭아매었고, 이어 유리엘의 주문이 발동되며 엘리아는 하나의 구슬로 변해 유리엘의 아공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 마지막 인사를 못한 것은 최강훈뿐이었다. 강민은 잠시 최강훈에게 눈을 맞추며 눈빛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뒤 말을 꺼냈다.
“강훈아.”
“네, 형님.”
“그간 수고했다.”
“아닙니다, 형님. 형님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 어쨌든 KM그룹은 네게 맡기마. 이미 법무팀을 통해서 절차는 마무리해 놨으니 네가 잘 운영해.”
“형님…… 저는 무인(武人)으로 살다가…….”
“됐고, 네 앞으로 해놨으니 네가 알아서 처리해. 어차피 성수랑 성현이가 처리하겠지.
어차피 강민과 유리엘 사이에 자식이 없었기에 지금 강민의 핏줄을 이은 혈육이라곤 강서영의 두 아들뿐이었다.
최강훈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그의 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간 즐거웠다. 그럼 잘 있도록 해.”
“그래 이별이 길면 좋지 않다지? 그럼 잘 있어!”
그렇게 말을 마친 강민과 유리엘은 전면의 공간을 찢으며 그 사이로 들어가 버렸고, 더 이상 둘의 기감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형님! 누님!”
“오빠!”
* * *
푸르른 녹음이 짙은 숲의 상공에 나타난 강민과 유리엘은 새로운 공기를 맡는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의 차원 이동이었네요.”
“그래, 그렇지만 마나가 동일하니 차원 이동한 느낌도 들지 않네. 그렇지 않아?”
“뭐 그렇긴 하네요. 그럼 어서 여기 볼일만 보고 다른 곳으로 가 봐요. 이젠 신체 재구성도 쉽게 할 수 있으니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그래, 저기 마나 축이 보이는군.”
“꽤나 자연주의적인 녀석인가 봐요. 마나 축의 공간을 자연으로만 꾸며놓은 걸 보니 말이에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둘이 날아간 곳에는 흰색 로브를 걸친 40대 중년인이 서 있었다. 중년인은 둘의 등장이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둘에게 말을 건넸다.
“네놈들은 누구냐? 어떻게 이곳에 들어온 것이지?”
그 40대 중년인의 말에 강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바르자크의 부탁이라면 알려나? 아르포스?”
- 完 -